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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너는 우리가 될 수 있을까 (feat. 문학몹 세번째 현장)
munhak3 2017-08-17 14:34:02 조회 : 370

나영호
광운대 국문과 교지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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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문학몹에 대한 후기를 본격적으로 쓰기 전, 이 글에 대한 당신의 원활한 이해를 돕기 위해 밝힌다. 나는 남들보다 비교적 늦게 소설가 지망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렇게 간략한 정보를 접한 센스 있는 당신은 알아챘을 것이다. 이 사람이 소설을 몇편 썼겠구나,라고. 그리고 남들에 비해 늦은 만큼 무언가를 더 치열하게 했을 거라고. 그게 무엇이 됐든 간에.

그렇다. 나는 소설이라고 할 만한 글을 지금까지 두편 썼다. 그리고 출판사에서 기획한 작가와의 만남에 꽤 참여했다. 작가들과 소통을 하다보면 그들의 습관이나 생각을 자연스럽게 체득하여 끝내 소설가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일종의 취미다. 작가들을 만나는 게 다른 작가 지망생들보다 치열했는지, 그리고 그게 내세울 만한 노력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들긴 하지만 아무튼.

7월 28일에 “내 삶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문학”이라는 주제로 세번째 문학몹이 진행되었다. 이른바 불금이었으며 황금시간대에 속했던 오후 7시 30분이었다. 남들은 일주일의 고단함을 술집에서 풀 때 문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문학몹이 진행된 카페창비에 모였다.

문학몹은 내가 여태껏 경험한 작가와의 만남과는 달랐다. 먼저 형식적인 것을 말하자면, 모두가 동그랗게 둘러앉아 서로가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얘기했던 문학행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작가와의 만남 때 내가 마주칠 수 있는 눈은 앞에 있는 작가뿐이었다. 그것도 운 좋게 앞에 앉았을 때 가능한 일이지 조금이라도 뒤에 앉으면 앞사람의 뒤통수는 보지 않으려 해도 보였던 게 현실이다. 이쯤 되면 당신은 내가 경험한 작가와의 만남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짐작이 될 것이다. 학창시절 때의 친숙한 모습, 바로 전형적인 학교의 모습이다. 때문에 저는 작가이고 당신은 독자예요,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무튼 보이지 않는 선에 의해 위화감이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이런 대형은 무언가를 전달하기에 확실히 효과적이다. 가르침을 주는 위의 대상과 가르침을 받는 아래 대상이 존재하는 학교에서 이런 대형을 사용하는 게 바로 그 근거다.

하지만 서로 간의 원활한 소통을 하는 데에 있어서는 문학몹이 선택한 대형이 매우 적합하다. 더군다나 이때 참여했던 작가들은 모두 독자들 사이사이에 앉았다.



[문학3]은 ‘나-너-우리’의 연결과 참여를 통해, 차이를 간직한 각자가 이미 가진 것을 확인하기보다는 함께 가지게 될 것을 만드는 장이고자 합니다.

문학은 작가의 자리와 독자의 자리를 따로 두지 않습니다. 언제나 작가는 먼저 예민한 독자의 자리에 있으며, 독자는 문학보다 더 문학적인 발언과 행위로 작가의 자리를 겸해왔습니다.



『문학3』 창간호에 실린 발간사의 일부다. 나는 작가와 독자의 구분 없이 모두가 동그랗게 둘러앉아 함께 문학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는 문학몹에 참여하면서 문득 이 대목이 떠올랐다. 이것이야말로 작가와 독자를 구분 짓지 않는 것이고, 이렇게 되어야만 나와 너, 그리고 우리의 연결과 참여가 가능해져 함께 가지게 될 무엇을 만드는 장이 비로소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런 문학몹의 형식만이 발간사를 떠올리게 한 건 아니다. 내용적인 측면도 한몫했다. 이번 문학몹 주제가 문학 얘기를 포괄적으로 해서 그런지 몰라도, 문학몹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공감하며 서로 각자의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최소한 내가 그랬는데, 문학몹이 진행되는 동안 마이크를 잡고 얘기한 적은 없었어도 누군가 얘기하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우뚱하기도 했고 때로는 웃으면서 그 사람의 말에 반응했다. 그리고 내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어도 속으로 곱씹으며 문학몹에 참여했다. 예컨대 조우리 작가가 국문과만 이해할 수 있는 “왜 먹지를 못하니”와 같은 개그를 하곤 했다고 얘기할 때, 나는 국문과 학생이 표준어를 사용하지 않느냐고 누군가가 따질 때 시적 허용을 언급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뿐 아니라 처음 단편소설 한편을 독서실에서 완성했을 때 기분이 좋아 집까지 뛰어갔다는 박민정 작가 얘기를 듣고 나 역시 처음 소설을 썼을 때를 떠올렸다. 내가 소설가 지망생이라는 사실을 안 학보사 편집장이 소설 연재 의뢰를 했다. 작년 여름이었고, 더워서였는지 당황해서였는지 식은땀이 났다. 아직 소설을 써본 적이 없던 터라 걱정이 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쓸 것이고 이번이 아니면 언제 이런 멋진 경험을 해보겠나 싶어 감사히 수락했다. 소설 연재는 작년 하반기 내내 여섯번에 걸쳐 진행됐고 이 소설이 내가 쓴 두편의 소설 중 하나에 해당되며 아직까지 그 신문들을 소중히 보관하여 지인들에게 자랑하곤 한다.

이처럼 스스로의 경험을 떠올린 것에 그친 적도 있고 더 나아가 다른 독자들의 질문에 답한 적도 있다. 일상이 연기가 되는 순간, 예컨대 눈물을 흘리거나 화를 낼 때 기억해둬야겠다고 생각한다는 연기 전공자의 말에 나는 배우 황정민의 사례를 생각했다. 황정민이 군대에 있을 때 본인의 친한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휴가를 받아 친구의 유골을 뿌린 곳에 가서 절하고 울었던 그 순간, 본인이 어떻게 울고 있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아직도 한다고 한다. 연기 전공자가 작가들에게 궁금해했던 건 이와 비슷하게 일상이 문학이 되는 순간의 사례였지만 질문 도중에 가끔 혼란이 온다던 그녀의 말에 괜찮다고, 황정민이라는 훌륭한 배우도 마찬가지라고,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 쏟는 열정과 고민하는 자세로 보아 훌륭한 배우가 될 자질을 갖춘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내가 연기 전공자가 아닐뿐더러 연륜이 있는 것도 아니라 이런 말 할 자격은 딱히 없으니, 속으로 말한 것에 그쳤지만.

이뿐이 아니라 도움을 받기도 했다. 누군가가 작가들에게 슬럼프가 올 땐 어떻게 이겨내느냐고 질문했다. 나도 마침 요즘 글이 안 써졌다. 때문에 작가들의 답에 귀를 기울였다. 이 질문에 조우리 작가와 임현 작가가 차례대로 답했는데, 둘이 비슷한 맥락의 답을 했다. 소설 망해도 별일 일어나지 않는다, 망해도 나만 망하고 성공해도 크게 성공하지 않는다, 잘 쓰려고 하다보니 슬럼프가 오는 거다, 쓰려는 마음 두고 편하게 쓰길 바란다,는 식의 답변이었다. 나는 순간 대중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치며 알몸으로 뛰쳐나간 아르키메데스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깨달음을 얻었을 때는 오로지 그 기쁨에만 심취할 수 있다. 깨달음을 얻었던 그 순간에 역사에 남을 만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던 게 아르키메데스보다 현실을 인지한 능력이 커서 그랬는지 아니면 아르키메데스보다 깨달음에 대한 기쁨이 적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한동안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잘 써야 한다는 것에 많은 부담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즐겁고 좋을 땐 뭐니 뭐니 해도 쓰는 그 순간이다. 글을 잘 써서 기분 좋은 건 부차적인 것이고, 그러거나 말거나 글을 쓸 때나 글에 대한 고민을 할 때 나는 나다울 수 있으며 그런 모습에 스스로가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이런 까닭에 한동안 갖고 있었던 잘 써야 한다는 ‘두려움’에서 우선 써보자는 ‘행동’으로 마음가짐을 바꿨다.

이렇게 이번 문학몹을 통해 나눴던 대화들은, 문학이란 공통분모 안에선 독자가 하는 생각과 고민이 작가와 별다를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해줬다. 이로써 동질감을 느꼈고, 작가는 독자의 고민을 본인의 입장에 비추어 답함으로써 그나마 있었던 빈 공간도 메꾸려 했다. 이것이야말로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만든 소중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앞에서 일부 언급한 발간사의 제목은 「문학은 모두의 말이 모두의 것이 되는 순간입니다」이다. 세번째 문학몹 참여 후기를 적는 지금, 나는 문학몹 참여 당시에 괜히 발간사가 생각난 게 아니란 걸 알았다. 발간사는 앞으로 [문학3]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밝힌 것이고 문학몹은 밝힌 사실대로 움직인 결과의 일부였다. 즉, 작가와 독자의 구분을 짓지 않는 문학몹의 형태를 통해 ‘모두’가 성립될 수 있었고, 문학이란 공통분모 안에서 나눈 대화의 내용을 통해 발간사의 제목, 다시 말해 ‘문학은 모두의 말이 모두의 것이 되는 순간입니다’라는 문장이 완성될 수 있었다. 문학몹 도중 발간사를 떠올렸던 건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문학은 요즈음 꽤 시끄러웠다. 그중에서 문단 내 성폭력은 이미 첫번째 문학몹에서 얘기됐던 주제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주제부터 이번 주제처럼 비교적 가볍게 얘기할 수 있는 주제까지 문학몹에서 가리지 않고 다루길 바란다. [문학3]이 “시장에서 개별적으로 소비되고 마는 문학을 경계하고, 각자의 취향만을 확인하거나 옹호하는 것에 그치는 문학을 지양하며, 현실 바깥으로 뚫고 나오기를 기다리는 잠재성과 활력으로서의 삶의 자리를 겨냥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불금이든 주말이든, 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언제든지 행동으로 옮길 준비가 되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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