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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고장 난 아이
연연이 2017-02-06 05:41:12 조회 : 588

'언제부터 그 불안이 시작된 것 같아요?'


나와 90도 각도에 있는 소파에 앉은 상담사가 소곤소곤한 목소리로 물었다. 가습기도 틀어놓지 않았는데, 공기가 무겁고 나른해서 그 말이 글자 그대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대학교 3학년은 '사망년'이라는 말대로, 나는 그즈음 거의 목숨을 위협하는 호흡 곤란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좀 과장이 섞이긴 했어도, 청년 실업 백 만 시대에 취업률이 바닥을 기는 인문대를 3년 째 다니고 있으려니 누워 있어도 가슴이 답답했다. 경영학과를 다니는 친구가 금융권 준비를 한다고 막 스터디를 시작한 때여서 더 그랬다.


남들이 스펙을 쌓느라 분주할 때, 나는 학원 알바를 하느라 늘 시간에 쫓겼다. 나랑 전혀 상관 없는 애들의 공부를 위해 자료를 준비하고

공부하느라 날밤을 까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애들이 학원 강사를 상대로 저지르는 갑질이라도 저지르면 늘 그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여러모로 스트레스가 극한에 다다라 있을 때였다.


국립대라서 거의 공무원이나 다름 없는 신분으로 일을 하는 교직원들은 매번 성실하게 공지사항들을 문자로 보내주곤 했었는데,

여름 방학을 맞아 학교 상담실에서 상담을 진행한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네, 저 언제 가면 되나요?"


학기 중에는 신청 인원이 많아서 제 때 상담 받기는 힘들다고 들었는데, 마침 방학이라 빨리 내 차례가 돌아왔다.


"다음 주 화요일 10시에 복지관 3층 상담실로 오시면 돼요."


휴대폰 너머에서 근로장학생이 친절하게 대답했다. 심리학과생일까? 이 사람은 얼마나 가난할까? 나도 가난한데, 왜 국가는 날 근로장학생으로 한 번도 뽑아주지 않았지? 살기 참 빡빡하네,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학원 계단을 내려왔다.


"쌤, 잘 가요"


뒤에서 내 수업을 듣던 중학생 남자애 한 명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응, 다음 시간에 보자."


말 끝에 이름을 붙여서 다정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 아이 이름이 생각 나지 않아서 관뒀다.

대신 '저 애가 이 학원에서 국어랑 수학을 배우니까 한 60만원 쯤 수업료를 내려나?' 하고 속으로 셈을 했다.

그리고 '제발 학원 그만 두지마라.' 빌었다. 이름은 생각나지 않아도, 그들의 수업료는 명백히 알고 있었다.


"왜 그렇게 잘릴 것 같고, 걱정을 하는 것 같아요?"


내가 대답을 하고 있지 않자, 삼담사가 다시 물었다.


"1학년 때, 찜닭 집에서 처음 서빙 알바를 시작했는데, 사장님이 너무 무서웠어요. 아줌마였는데 아이라인을 관자놀이까지 죽, 그리고 다니시는 분이었어요. 저는 완전 초본데, 그 무서운 얼굴로, 제가 잘하나 못하나 감시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헛소리를 하는 것을 상담사는 묵묵히 들어주었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노동이라니, 참 편한 직업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은 찜닭에 같이 나오는 샐러드에 쓸 양배추의 물기를 빼놓으라는 거예요. 저는 어떻게 해야 되는 지 몰라서 같이 일하는 알바생한테 물어봤거든요? 걔는 일 한 지 1년 정도 되는 베테랑이었어요. 어쨌든 걔가 이래저래 하라고 해서 그래저래 했더니, 사장님이 대뜸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왜 그렇게 했냐면서! 그리고 짤렸어요."


"아, 너무하네, 사장님. 재영 씨는 초보였는데..."


상담사가 연극 배우처럼 한숨을 푹 내쉬고, 안타까워 했다. 피상담자 대부분이 여기서 마음을 여나? 여기가 그 포인튼가? 나도 같이 '그렇죠?' 맞장구를 쳐야 하는 지 고민하다가, 관뒀다. 나는 이런 걸로 쉽게 풀어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도 징징 대는 걸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다행인 일이어서 나는 그 것 말고도 내가 한 알바들에서 어떻게 빨리, 비참하게 짤렸는지를 상담사에게 늘어놓았다.


"그랬구나. 일을 참 많이 했네요, 힘들었겠어요."


그 때마다 상담사는 그렇게 맞장구를 치면서 눈꼬리를 거꾸로 된 반달 모양으로 내려뜨렸다.

이렇게 경청하고, 공감하는 댓가로 돈을 받다니, 참 편한 직업이다, 또 그 생각을 했다.


"그래서 좀 불안해요. 늘 잘릴 것 같고, 사장님 눈치도 봐야 하고. 학원에서는 애들 눈치 봐야 하거든요. 요즘 애들은 좀 영악해서 앞에서는 쌤 좋아요, 나팔을 불다가도 집에 가서 엄마한테는 나 학원 그만 둘래, 쌤 별로야. 이렇게 말하기도 하거든요. 저한테 월급 주는 건 실질적으로 학원 애들이니까, 수업 들어갈 때마다 맨날 평가 받는 기분이에요."


거기까지 말하고, 솔직히 나도 의문이었다. 상담사가 나한테 사장님도 아니고, 학원 애들도 아닌데, 어떤 입장에서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난 왜 여기 온 거지? 고작 하소연 하려고 2시간을 잡았나.


"언제부터 그렇게 불안했던 것 같아요?"


역시 상담사는 그런 속물적인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대신 뭔가 답이 정해져 있는 듯한 질문을 던졌다. 불안의 근원? 같은 거.

나는 좀 불우한 가정사를 섞어서 그 상담사를 울리고 싶었다. 테스트랄까, 아니면 나만 실험용 쥐가 될 수 없다는 복수심에서?


"고등학교 때 학교 기숙사에서 살았는데, 일주일에 한 번 집에 갈 수 있었어요. 수업 끝나고 기숙사 침대에 누워 있으면 아, 우리 할머니 잘 있을까. 혹시 나 없을 때... " 


나는 여기서 잠깐 말 끝을 흐렸다가 다시 이어 붙였다. 연극 배우가 된 기분이었다.


"돌아가시면 어떡하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학교가 읍내에 있어서 집에 가려면 1시간 마다 오는 버스를 타고 30분을 달려야 했거든요. 걸어서 또 10분. 그래서 좀 불안했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실까봐."


기대했던 대로 상담사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이 보였다.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였기 때문에, 나도 좀 목이 메였다. 

아무튼 내친 김에 나는 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주도권이 나에게 있었다.


"제가 어렸을 때, 엄마가 집을 나가셨어요. 그래서 할머니가 저희 세 자매를 키웠구요. 그러니까 저한테는 할머니가 엄마나 다름 없어요. 그런데 제가 클수록 할머니는 늙어가시니까, 마음이 늘 불안했어요."


이제 한 방.


"만약에 제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이동할 수 있다면, 저는 무조건 과거로 갈 거에요. 할머니의 어린 시절, 아빠의 어린 시절, 언니, 동생, 그리고 제 어린 시절로 가서 꼭 안아주고 싶어요. 괜찮다고, 힘내라고 말해줄 거에요."


이 때 쯤엔 내가 한 말이 너무 슬프기도 하고 스스로도 감동 받아서, 나도 울었다. 상담사도 무슨 비극 영화라도 한 편 본 것 마냥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앞에 놓인 휴지를 자기가 다 쓸 기세로 뽑아 눈가를 닦았다. 이 촌스러운 눈물 바다를 본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웃었을 것이다. 적어도 이 상황을 또 다른 내가 봤다면 말이다.


기어이 상담사를 울리는 데 성공한 나는 가뿐한 마음으로 복지관을 나섰다. 사람들은 참 여리다니까.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이야기를 해주면, 착한 사람 코스프레라도 하듯이 엉엉 울기나 하고.


기숙사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 나는 내가 얼마나 사람들의 눈물샘을 적실 수 있는 가정사를 타고 났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뿌듯해야 할 지, 슬퍼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무기임엔 틀림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스스로 흠칫 놀라기도 했다. 나 참 영악한 인간이구나. 

모성애가 부족한 어머니의 아픈 자궁에서 태어난 아기는 날 때부터 고장이 난 것이었다. 고장 난 아이가 커서 고장 난 어른이 되다.


멋진 말이네, 중얼거리면서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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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와와 2017-02-07 13:18:58
소설인지 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그냥 막 읽게되네요. 이런 글을 올릴 수 있는 곳이 생겨서 뿌듯하네요.
아지몬 2017-02-07 15:00:41
훅- 들어오는 몰입력에 짧지 않은 글임에도 금세 읽었어요.
요즘 "그냥 올려본다" 에 올라오는 글들 보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저도 조만간 "그냥" 올려볼게요!
아이 2017-02-10 20:51:53
재밌어요!
감사합니다 문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