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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망상해수욕장
이여름 2017-07-16 02:19:27 조회 : 281

그러니까 한국남자에게 스무살이라는 나이는 여름이 되면 물 한 방울 없는 서울 한복판에서도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리하여 바닷가의 정경을, 예를 들면 비키니 입은 여자들이라든지,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나이다.

그리하여 스무 살이 된 다섯 친구들은 망상해수욕장에 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각자들 땀내 나게 아르바이트한 돈을 모으면 두당 15만원. 그 돈이 떨어질 때까지 있기로 한다. 때는 바야흐로 2004.

돈이 없기 때문에 물자를 최대한 가지고 간다는 것이 그들의 복안이었다. 텐트는 물론이요, 동네 세계로마트에서 장까지 다 봐놓은 그들의 가방이란, 크고 무겁고 불룩할 수밖에 없었다.

동네에서 청량리까지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가서,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망상해수욕장 역에 내린 다음,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면 해수욕장이 나온다. 바다냄새가 그녀의 감지 않은 머리카락처럼 코를 찌르는 그곳.

으쌰으쌰하고 출발했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그들의 크고 무겁고 불룩한 가방들.

다섯 중 하나는 마치 윈도우95에서 대항해시대를 시작하는 설렘을 느꼈다. 그의 이름은 박형진. 그에게 코에이는 야설과 동의어였다. 그만큼 설렌다는 뜻이다. 자주 설렜던 그는 중학생 시절 여드름이 많았다.

또 다른 하나는 기차에서 혼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다섯이었으니까. 혼자 앉은 그 옆에 중년의 남성이 앉았다. 그는 카트에서 맥주를 두 캔 시켜 나눠마셨다. 그렇게 그들은 열 캔의 맥주를 기차에서 마셨다. 중년 남성과 맥주를 마신 그의 이름은 장호근. 맥주를 사준 아저씨는 언제든 술이 마시고 싶으면 연락하라며 명함을 주고 악수를 하고 기차에서 내렸다. 기아자동차 영업부장 정남호.

길고 무겁고 불룩한 기차는 길고 무겁고 불룩한 가방을 싼 스무살짜리 다섯을 싣고 망상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기차에 내려 버스를 타고 망상해수욕장에 도착한 것은 저녁 7시였다. 노을이 막 지기 시작한 바다는 그들의 마음처럼 빨갛게 일렁였다. 다소 부당한 자릿세를 내고 어설프게 텐트를 치고 후다닥 짐을 풀고 이제 좀 놀아볼까 하자 해는 이미 졌다. 하지만 스무살이란 해가 없어도 있는 것처럼 놀 수 있는 나이였다. 그들은 시커먼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음모처럼 축축하고 시커먼 밤하늘이 있었다. 여기저기서 폭죽이 터졌다. 해수욕장에는 사기꾼이 많아 불발탄이 많았다. 휘융 타다닥 탁탁. 하늘 위에서 빛을 발산하지 못한 폭죽은 모래바닥 위에서 애처롭게 몸을 비비 꼬았다. 아무래도 좋았다. 번지점프대에서 몸뚱아리 하나가 아래로 낙하했다. 낙하한 몸은 반동으로 다시금 높이 올라갔다 다시 내려왔다 올라갔다 내려왔다를, 종국에는 그 운동 자체가 멈출 때까지 반복했다.

점프대 근방에서 듀스의 여름 안에서가 나왔다. 어쨌든 그들은 여름 밖이 아니라 여름 안에 있었다. 습한 공기는 끈적했고 귓가에 모기가 윙윙댔고 해변에서 나는 담배냄새 술냄새 고기냄새가 묘하게 관능적이었다. 밤바람은 쉬지 않고 마치 꿈결처럼 그들의 귓가를 스쳤고 그 속에서 그들은 무언가를 들을 수 있었다. 차가운 바닷물도 그들의 풋풋한 흥분을 가라앉힐 수는 없었다. 그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바다를 향해 깊이 더 깊이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다섯 중 하나는 탈이 났다. 멀리서 가지고 온 고기가 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수시로 삽을 들고 소나무 숲으로 가 설사를 했다. 반나절 내내 설사를 하고 소나무 숲에서 나오는 그의 얼굴은 부쩍 늙어보였다. 그의 이름은 김영호. 다섯 친구들은 이제 초췌해진 삼촌 한 명과 네 명의 지나치게 건강한 조카들처럼 보였다.

둘째 날 저녁, 다툼이 있었다. 호근이와 형진이 사이에서였다. 호근이는 그날 낮, 그러니까 영호가 설사를 하고 있던 동안, 헌팅을 했다. 여자애들은 해변에서 라면을 먹고 있었다. 호근이는 구체적인 것은 얘기하지 않았지만, 확실한 건 여자애들이 고딩이라고 했다. 대딩인 척하지만 얼굴을 보면 딱 알 수 있다고 했다. 저녁에 술을 마시러 우리 방으로 올 거라고 했다. 호근이의 얼굴에 자신감이 땀처럼 흘렀다.

형진이는, 이 여행은 친구들끼리의 우정여행이지 무슨 고딩 여자애들이나 어떻게 해보려고 온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헌팅 같은 건 그냥 안 하고 우리끼리 깊은 얘기나 하는 게 더 좋다고, 가뜩이나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걔네들 불러서 뭘 줄 거냐고, 했다.

새끼야 깊은 얘기는 여자애들이 있을 때 더 잘 나오는 거야라고 호근이는 대꾸했고 미친놈아 모르는 애들이 있는데 그런 얘기를 어떻게 하냐고 형진이는 다시 대꾸했고, 아 시발 개새끼가 존나 흥깨네 라고 호근이가 다시다시 대꾸하자 형진이는 여자만 존나 밝히는 개새끼라고 다시다시다시 대꾸하고, 밖으로, 그러니까 그들이 가져온 4인용 텐트, 사람이 너무 많아서 꽉 찬 듯이 불룩한 그 텐트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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