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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나의 훈련병 시절
francisco 2017-09-11 18:59:01 조회 : 147

나의 훈련병 시절

 

20062월 달에 나는 춘천102보충대에 입대하였다. 나는 보충대에서 34일을 보낸 후 군버스를 타고 오랜 시간을 지나 어떤 훈련소에 도착하였다. 그곳은 강원도 양구에 있는 악명 높은 21사단 백두산 부대였다. 내가 도착한 훈련소는 80년대 전두환 시절 삼청교육대로 쓰였고 지금은 21사단 신병훈련소로 쓰이고 있었다.

 

훈련소에 도착하자 훈육조교가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색과 녹색과 갈색의 얼룩무늬가 덮인 동그란 모양의 철모를 뒤집어쓴 조교는 계급이 낮아 보였다. 철모 앞 계급장에 작대기 두 개 인걸 보니 일병으로 보였다. 그는 훈련병들에게 막사 안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였다. 나는 긴장한 채로 명령에 따랐다. 나는 막사에 들어갔다.

 

막사는 허름한 건물이었다. 중간에 사람2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있었고 침상이 양쪽으로 있고 신발을 벗고 침상에 올라가면 폭이 좁고 높이가 높은 관물대가 있었다. 폭은 35cm 정도로 1인이 쓰기에는 아주 좁은 공간이었다. 아래쪽에는 높이 10cm정도 되는 작은 서랍이 있고 위에는 정사각형 모양의 칸이 있고 그 위에는 옷가지를 높을 수 있는 꽤 기다란 공간이 있었다. 이 공간만이 나에게는 소중한 자유의 빈틈이었다.

 

하지만 자유의 빈틈은 완전한 자유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일렬로 관물대 앞에 앉아 복도중심으로 마주 보았다. 마름모 2개가 달린 계급장이 달린 모자를 쓴 사람이 복도 끝에 서 있었다. 그 사람은 중위 계급은 장교간부였다. 그는 훈련병들에게 주머니 속에 모든 것을 꺼내라고 지시 하였다. 담배나 지갑 같은 것을 모두 꺼내라고 하였다. 다양한 것들이 나왔다. 천 원짜리 지폐, 오천 원짜리 지폐, 라이타, 전화카드, 백 원짜리 동전, 주민등록증, 학생증......

 

나는 엄마에게 받은 천주교 스카풀라는 꺼내지 않고 지갑 안에 모셔 두었다. 스카풀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스카풀라를 착용한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한 불의 고통을 면하게 되리라장교는 담배와 라이터가 나오면 모아서 가지고 갔다. 담배는 여기서 필수 없었다. 그리고 노트와 볼펜을 훈련병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장교는 중요한 것이니 신중하게 적으라고 하였다.

 

노트의 앞면에는 생활지도기록부 라고 적혀있었다. 모나미 볼펜으로 꼼꼼하게 나의 이야기를 적었다. “나는 포항에서 태어났고 고2때 포항에서 서울 서초구 서초동으로 이사를 갔다.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세종대학을 다녔고 식품공학을 전공했고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해서 독학으로 신문방송학을 공부하고 한국 현대사를 공부했다. 전북대 신방과 강준만 교수님을 존경한다. 신문읽기가 취미다

 

나는 꼼꼼하게 나의 이야기를 풀어갔다. “ <김영삼 이데올로기>, <김대중 죽이기>, <노무현죽이기>를 재미있게 읽었다.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한다.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게 되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의 이론을 좋아하여 도전과 응전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 토인비 박사의 책도 재미있게 읽었다

장교는 내가 오랫동안 글을 쓰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나는 빈 공간 없게 생지부의 모든 페이지를 나의 글씨로 채웠다. 다른 훈련병들은 대충 조금만 쓰고 그만이었다. 나는 달랐다. 생지부에 나는 안중근 의사를 존경한다고 적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행동이었다. 나는 거창하게 말만 잘하고 행동의 실천은 부족하다.

 

생지부를 제출하고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다. 조교들은 훈련병들을 막사 앞 연병장에 집합시키고는 4열종대로 줄을 서게 하였다. 줄이 만들어지자 조교들이 앞장서서 식당으로 훈련병들을 데리고 갔다. 식당은 허름한 가건물이었다. 훈련병들은 배가 고팠다. 나도 배가 고팠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식당이 총 인원에 비해 작아서 대기시간이 20분 정도 있었다.

 

훈련소 취사병이 보였다. 막내로 보이는 취사병이 있었는데 별명이 조피디 였다. 얼굴모습이 가수 조피디와 닮아서 그곳 취사병 선임병들은 조피디라고 불렀다. 훈련병들도 조피디 라고 불렀다. 조피디는 아주 피곤해 보였다. 취사 막내 생활은 빡세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그런지 훈련소 취사 선임들도 아주 피곤해서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곤 했다.

 

대기시간이 끝나자 내가 속한 소대가 식사할 시간이 되었다. 식당 안에 들어가니 중앙에 식판과 수저, 젓가락이 있고 흰쌀밥과 김치, 마른멸치, 감자조림, 김치국를 떠먹을 수 있었다. 봉투에 든 조미김도 먹을 수 있었다. 반찬분량을 조금씩 분배 받았다. 너무 열악한 식사였다. 재미있는 것은 간부들의 식사 공간이 식당의 한쪽구석에 따로 있는데 훈련병들은 밥과 반찬을 식판에 담아 간부들의 식탁을 향해 한쪽구석까지 걸어 이동해 밥 먹는 간부의 등짝 을 보고 큰소리로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라고 큰소리로 줄줄이 비엔나처럼 외치는 것이다. 레밍즈처럼... 나는 그냥하기 싫었다. 그래서 침묵으로 간부식탁을 아무 말 없이 지나 쳤다. 내 차례에서 복종훈련이 정지된 것이다. 나는 나의 병사식사구역의 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조교 한명이 나에게 가까이 오더니 내 가슴에 달린 번호를 수첩에 적어 갔다. ‘222-3간부구역식탁에는 여자 간부한명이 밥을 먹고 있었다. 모자 계급장에 브이 모양 한 개가 붙어 있었다. 하사계급의 부사관 이었다. 얼굴에 진한 갈색과 검은색을 띠는 여드름이 있었다. 여자라고 하기엔 이상하게 생긴 모습이었다.

 

그는 훈련병들에게 항상 큰소리로 성질을 내듯이 말하였다. 여자간부가 식당에서 조교들을 관리 했다. 여자 간부는 눈짓으로 조교에게 내 번호를 적으라고 말했고 그래서 조교는 나의 번호를 수첩에 적게 된 것이다. 나는 여우같은 여자간부와 조교가 미웠다. 식사시간이 끝나고 저녁 해가 진후였다. 식당에서 막사까지 걸어가는데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었다.

 

아주 반짝반짝 하는 것이 서울에서 볼 수 없던 노란색의 빛나는 별들의 모습을 보니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다. 숨 막히는 훈련소 생활에서 유일한 기쁨이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읽으면 양구의 밤하늘이 생각난다. 강원도 양구에 이런 밤하늘이 있어서 좋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밝은 마음은 그것까지였다. 10시쯤 되어 잠자는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막사에 너무 과밀한 인원이 들어와 있었다.

 

훈련병들은 1인용 매트2개에 3명씩 어개를 새워 칼잠을 자야 하는 것이었다. 나는 황당했다. 군대에 병사로 입대한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학사장교로 가라고 말씀한 것이 기억나고 누님이 카투사로 가라고 한 말씀도 기억났다. 요즘은 강아지도 대접이 좋던데 라는 마음이 생겼다. 개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 마음이 우울해졌다.

 

다음날에는 조교가 전우조라는 걸 말하며 가까운 번호 3명이 한조가 되어 서로 감시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하였다. 나는 혼자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데 정말 단체생활만 허용하는 군대문화는 숨이 막혔다. 3명이 세쌍둥이처럼 붙어 다니며 화장실도 노동도 식사도 같이 하고 잘 때도 붙어 자야 하는 것이다. 한명이 잘못하면 다른 두 명이 책임을 지고 같이 처벌을 받는다.

 

나는 친한 사람이 생기는 것 같아 좋았지만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허용되지 않는 숨 막히는 생활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2주가 지났다. 조교 중에 일병계급인 사람이 있었다. 피부가 하얗고 똑똑하게 생긴 사람인데 소문에 고려대학에 다니다온 신분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였다. 간부들에게도 인정받고 병사들 사이에도 인기가 좋았다.

 

그는 다른 상병계급의 조교와 함께 간부 몰래 생활관에 들어와 간부들에 대한 비밀!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간부들과 병사들 사이는 아주 나쁘다. 나는 조교이지만 병사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는데 내가 하는 말은 간부들에게는 비밀이다.” 나는 숨을 죽인 채 들었다.

 

간부는 우리의 적이다. 간부들이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병사들은 더 힘들어진다. 왜냐면 간부들은 지배계급이고 우리를 부릴수록 자신들의 진급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간부들은 병사들의 피를 짜먹고 산다.” 고대 나온 조교는 이어서 훈련병들에게 말했다. “자 다 함께 따라 외쳐라!” 간부는 우리의 적이다” “간부는 우리의 적이다” “간부는 우리의 적이다

 

훈련병들은 조교에 구령에 따라 같이 외쳤다. 나도 큰소리로 말했다. 아주 긴장된 순간이었다. 일반 교육에 없는 이야기를 몰래 하는 것 이었다. 조교들이 나가고 얼마 있다가 갑자기 무언가 눈치를 챈 듯이 신경질적인 눈을 한 여자하사 간부가 생활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훈련병 한명에게 다짜고짜 따지듯이 물었다. “아까 머라고 그랬어!” “말해봐라고 했다.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훈련병이었다.

 

나는 간부와 마주보고 있는 훈련병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 훈련병은 당황 했지만 다행히 모르겠습니다.”라고 둘러대고 그 간부는 자기가 먼가를 들었는데 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유지한 채 훈련병에게 다시 따지듯이 조교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었냐?” 고 캐묻듯이 질문하였다. 하지만 훈련병은 모르겠습니다.” 라고 다시 말했다. 간부는 의심의 눈을 거두고 생활관을 빠져나갔다.

 

위기의 순간이었다. 만약에 병사들끼리 간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이 들통이 나면 집단으로 단체 기합()을 받을 것이다. 아마 엎드려뻗쳐자세를 다 함께하고 팔굽혀펴기 100회 정도 하지 않았을까? 간부가 적이라고 말한 조교는 영창에 갈 수도 있다. 나는 그 조교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총검술도 멋지게 잘했고 기타연주도 잘했다. 몸매도 좋았다. 학벌도 좋았다.

간부들에게는 비밀로 하는 병사들만이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간부들이 병사들의 적이라니 그렇다면 북한군이나 일본군은 적이 아니란 말인가? 평소의 공식적인 장교나 부 사관의 정신교육과는 다른 내용이 부담스럽고 헷갈리게 느껴졌다. 북한군은 두 번째 주적이고 간부가 첫째가는 주적이라는 것이 병사 입장에서 진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군인가족이다. 친척 중에 장교출신이 많았다. 간부라도 좋은 분은 좋다. 나의 작은 고모부는 군단장까지 하셨는데 성실한 분이라고 들었다. 젊을 때 전방에서 고생을 많이 하시고 맡은 일에 충실한 분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때 조교의 말이 더 진실하게 다가 왔다. “간부는 우리의 적이다

 

병영생활행동강령을 외우고 직속상관 관등성명을 외우고 복무신조를 외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진실은 간부는 우리의 적이다였다. 밤에 눈이 펄펄 왔다. 2월말 양구에는 눈이 온다. 아주 추웠다. 그래서 하시간부 한명이 갑자기 생활관에 들어와서 눈 쓸기 자원봉사 7명 손들어!” 하고 생활관 입구에서 외쳤다. 나는 신속하게 손을 들었다.

 

하나, , , , 다섯, 여섯, 일곱 명 까지 빗자루 들고 나와!” 나와 지원자 6명은 하사간부를 따라서 위병소 주변과 이어진 자동차가 지나가는 길 200m정도를 쓸었다. 그리고 일이 마무리 되자 막사로 복귀하는 길에 그 하사는 우리들에게 뒤돌아 군 생활을 잘하려면 줄을 잘서야 돼라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턱을 끄덕거리며 반응했다.

 

줄을 잘서야 하는 게 중요하구나...하고 생각했다. 점오 시간에 간사하게 생긴 조교가 나를 보고 비웃었다. “안중근 의사를 존경한다고! 하하하! 이야 대단한데 하하하!” 라고 말했다. 내가 쓴 생지부를 읽었나보다. 누군가 나의 글을 몰래 읽는 다는 것이 기분 나빴다. 생지부에 너무 솔직하고 많은 량을 쓴 것을 후회하였다.

 

3주간의 신병훈련이 마무리 되었다. 대강당에서 주특기 분류시간이었다. 나는 긴장한 채로 중앙에 있는 거대한 스크린을 보았는데 나는 취사병으로 나왔다. “65연본 취사-김지훈06-71046732” 뚱뚱한 돼지 코 조교가 내 옆에 있었다. 그는 나에게 너 좆 됐다.”라고 말했다. 아마 사고가 자주 나는 부대보직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총검술 훈련 때 고대 다닌 조교가 “65가 제일구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65연대가 구역이 험하고 넓고 열악하고 시설이 노후화 되어서 사고가 많이 나는 모양이었다. 내 주위의 훈련병들은 취사병이 된 나를 걱정의 눈으로 보았다. 나는 걱정되고 두려웠다. 하지만 밥을 하는 단순육체 노동이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순진한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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