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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환삼덩굴
김영주 2018-01-05 20:39:23 조회 : 382
작년까지 살던 동네는 구릉의 비탈을 깎아 만든 동네라 산의 흔적이 제법 남은 동네였다. 평지인 서쪽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다세대 주택들이 밀집해 있었고 반대편으로 제법 굵은 나무들과 주민들이 개간해 만든 텃밭이 있었다. 처음엔 이것저것 작물도 심고 과실수도 심고 관리를 하나 싶더니만 한두해가 지나자 지친 것인지 모르겠으나 방치하다 시피 버려둔 밭은 작물과 잡초가 세를 다투듯 마구잡이로 자랐다. 그중에 가장 왕성하게 자라던 녀석들이 환삼덩굴이었다. 가시가 달린 줄기로 보이는 곳마다 감아가며 자라니 한 여름이면 지구를 덮어버릴 기세로 번진다. 외래종 식물이라 천대 받거니와 보기에도 영 좋지 않아서 밭 주인들이 가끔 약을 쳐서 죽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임시방편일뿐 금새 다시 자리를 잡는다. 그렇게 강렬한 초록으로 땅 위를 뒤덮던 환삼덩굴도 가을이면 시들해지고 겨울이면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지 종적을 감춘다. 그 식물이 하루가 어찌 흘러가는지, 일년이 어찌가는 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사는 나같은 막일 노동자에겐 계절감을 인지하게 하는 몇 안되는 것중 하나인 샘이었다. 눈이 드문 고장이긴 하지만 연말지나 신년이 되면 간혹 눈이 올 때가 있다. 온동네가 하얗게 뒤덮이면 풀조각이 있던 곳도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양 눈을 얹고 있다. 그렇게 눈이 오면 꼭 꼬치집에서 따듯하게 데운 청주를 마시고 집으로 간다. 그러다 집앞에서 가로등 빛을 받는 눈밭을 바라보다 이내 웅크려 앉아 쌓인 눈을 헤집는다. 술에 취해서는 손이 벌겋게 달아오르는데도 차가운 줄 모르고 파면 가장 추한 몰골을 한 환삼덩굴을 마주한다. 겨울을 견디려고 체내에 수분을 최대한 빼내서 조금만 건드려도 부스러질 것처럼 쭈글쭈글한 모습이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위안을 얻는다. 버티는 인생이란게 환삼덩굴 같은 거 아닌가 싶었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여기에 뿌려지고 살려고 빛이 있는 곳을 향해 손을 뻗었을 뿐인데 외래종이니 제초 대상이니 하며 죽이려 드는 것을 겨우 버텨냈는데 계절마저 견뎌야 한다. 다 찌그러진 추한 몰골 따위 아무렴 어떠랴. 지금은 겨울이다. 김훈의 문장처럼 어제의 한끼는 닥쳐올 내일에 한끼 앞에서 무효인 인생이 아닌가, 새해에도 이유 막론하고 버텨 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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