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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양손잡이 (수정)
sin 2018-05-07 21:19:19 조회 : 62


1. 양손잡이






전화를 받고 일찍이도 집을 나선 채호는 하늘을 보고는 시계를 쳐다봤다. 분명 밝아야 할 새벽의 하늘이었지만 울산은 어두웠다. 도시가 그림자에 잠겼다. 가로등은 이미 꺼진 채였다. 채호는 저 흉물스런 회색빛 건물이 태양마저 집어삼킨 것은 아닐까 연신 어둠속을 두리번거렸다. 불쑥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가며 바짓단에 물을 뿌렸다. 헬맷 조차 쓰지 않은 그는 길을 방해했다는 듯 도리어 채호를 노려보았다.


‘이 도시 놈들은 당최 존중이란 걸 모른다니까.’


역으로 가는 내내 불쾌한 기분이 떠나질 않았다. 젖은 바짓가랑이에 모래가 들러붙어 종아리를 간질였다. 백화점 건물 아래를 지나던 채호는 삐걱대는 소리에 위를 올려다보았다. 태양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백화점 옥상에 설치된 관람차가 바람에 밀리기라도 했는지 낡은 철근들이 맞물리며 기이한 소리를 냈다. 난간 너머로는 사람의 형체가 지나다녔다.


채호는 늘어진 목살을 긁적이며 넥타이를 풀었다. 열차 도착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짐이랄 것도 없이 간소하게 나선 채호에 비해 역에 몰려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캐리어며 큰 가방들을 가득 채운 꼴이었다. 서둘러 승차장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뒤로 채호는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 비에 젖은 열차는 숨을 몰아쉬며 사람들을 빨아들였다.


열차가 출발하고, 채호는 길게 몸을 늘어트린 채 눈을 감았다. 의정부 까지는 서너 시간 정도가 걸리니 눈이라도 붙이려는 심산이었다. 간밤에 있었던 전화 탓에 저절로 몸에 힘이 빠졌다. 막 잠이 드려는 찰나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한참이나 울어 재꼈고 채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곁눈질로 소리가 나는 쪽을 노려보았다. 아이를 안고 있는 노인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게 아닌가 착가할 정도로 무심한 표정이었다. 채호가 흠, 하고 헛기침을 해보였지만 노인은 조금도 신경을 두지 않고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채호의 앞좌석에 중년의 여인이 와 앉았다. 그녀는 짐을 옮기느라 채호의 다리를 걷어찬 것도 모른 채 귀엽다는 듯 아이를 바라보았다. ‘울산이다.’ 채호는 생각했다. 여인은 아이를 향해 사탕을 흔들어 보였다.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사탕이 눈앞에라도 있는 것처럼 손을 쥐었다 폈다 하였다. 여인은 여행이라도 다녀가는 길인지 가득 찬 가방에서는 나름의 특산물이며 간식거리가 쏟아져 나왔다. 아이는 슬픔 따윈 금세 잊어버리고 생긋 웃으며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사탕을 손에 쥔 아이는 무어라 웅얼거렸다.


“응? 뭐라고 하는 거야?”


“할아버지랑 여행 갔다 왔어요.” 아이가 몸을 꼬며 말했다.


“여행? 대단하네. 재밌게 놀았어?”


“토끼. 옥상에 토끼가 살아요.”


여인은 알아듣지 못할 말에도 그저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귀가 먹은 줄로만 알았던 노인이 다가와 감사를 표했다.


“아, 백화점 옥상에 공원이 있는데, 작은 풀숲도 있고 토끼며 짐승들이 뛰어 다니더군요. 여행하시는데 방해한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예의가 바른 사람이 나한테는 사과 한마디 없구만.’


채호는 노인이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며 필히 유부녀에 환장하는 노인일 것이라 어림짐작했다. 주름진 손이 아이의 고개를 눌렀다.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사탕을 쥔 손을 버둥거렸고 그 바람에 침에 젖은 사탕이 채호의 바지에 떡하니 달라붙었다. 채호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아이의 손에 들려있던 사탕은 바닥에 내던져져 산산조각이 났다. 멍하니 깨진 사탕을 내려다보던 아이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얘가 왜 또 울까? 울지 마, 뚝 하렴. 할아버지가 하나 더 사줄게.”


아이는 채호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딸국질을 해댔다. 노인은 아이를 안아들고 등을 토닥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채호는 모른 채 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주 앉은 여인은 비닐봉지를 뒤적이며 사탕을 하나 더 꺼내보였지만 노인은 한사코 거절했다.


“가서 사과하시지 그래요?” 여인이 채호에게 말했다.


채호는 못 볼 것이라도 보았다는 듯, 자신을 노려보는 여인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버지가 아프십니다.”


새벽에 받은 전화 한 통이었다. 피로에 찌든 어머니의 목소리가 채호를 깨웠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아버지가 뒤로 고꾸라졌다는 소식이었다. 언젠가 벌어졌을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채호는 슬프다기보다는 화가 나 있었다. 통 고집불통인 아버지는 심장 수술을 두 번이나 겪고도 술을 끊지 않았다. 첫 수술이 끝나고 단번에 금연을 성공했지만 술만큼은 끊지 못한 것이다.


‘자기를 죽이는 줄도 모르고.’


여인은 채호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고 있었다.


“가서 사과하시라구요.”


당돌한 여자였다. 도무지 초면에 이렇게 까지 말할 수 있는 당돌함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괜한 소리를 해 여인에게 죄책감을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던 채호는 실소를 터뜨렸다. 여인은 사탕 하나를 내밀었다. 채호는 졌다는 듯, 두 손을 들어 보이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눈이 퉁퉁 부은 아이는 손가락을 오물거렸다. 채호는 사탕을 쥐어주며 말했다.


“아저씨가 미안. 사탕이 부딪혀서 떨어졌네. 계속 울면 해님이 구름 속에 숨어서 안 올라올 거야.”


“해님은 벌써 올라왔어요.”


채호는 창밖을 보았다. 분명 해가 떠 있었다. 창에 맺힌 빗방울이 아이의 얼굴에 무지개를 그렸다. 채호는 의자에 몸을 묻었다. 어째서 해가 뜬 것을 보지 못했을까. 다시금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썩 달갑지 못했다. 전화를 받고 가장 먼저 고민했던 것이 아버지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일 정도였다. 누가 아버지를 당신의 이름으로 부른단 말인가. 채호의 기억 속에 아버지란 뒷좌석에 앉은 변태 영감만도 못한 존재였다. 경찰 출신의 아버지는 자신의 직업에 상당한 자부심을 지닌 사람이었는데, 그 자부심이라 할 것이 은퇴한 뒤에도 좀처럼 사그라지질 않으니 그것이 문제였다. 사고를 당해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마음씨 좋은 사람이 다가와 조금이라도 부축하려 하면 그것을 못 참고 버럭 성을 내었다.


“오백 명 중에 첫 번째로 시험을 통과했지. 체력이 어찌나 좋은지, 한 번 뛰기 시작하면 아무도 쫒아 오질 못했어. 도둑놈들은 말할 것도 없지. 아무도 날 따라오질 못했다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 뒤를 돌아 봤을 때도, 아무도 없었단 말이야! 시상대에 올라섰을 때는 모두가 날 올려다보았지. 알아? 내가 무슨 소릴 하는지 알겠느냐고. 사람은 품위가 있어야 된다는 말이야! 품위라는 것은 몸에 배어있어야 하는 거고, 그게 위대한 사람과 나머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지.” 아버지는 술에 취하기만 하면 같은 소리를 몇 시간이고 반복하였다. 그랬던 아버지가 창문에 매달린 빗방울처럼 그저 태양빛에 말라가고 있었다. ‘잊지 말고 그놈의 품위도 챙겨 가세요.’ 채호는 삶이라는 것이 참 별게 아니구나 생각하였다.


열차 통로로 작은 것이 휙 지나갔다. 손에 사탕을 쥔 아이는 열차 칸 내부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신발 밑창에 사탕조각이 눌어붙었는지 반짝이는 발자국이 남았다.


도시를 벗어난 열차는 어느새 드러난 논밭 위를 미끄러지며 달리고 있었다. 채호는 여전히 아버지를 생각하며 해야 할 말을 찾고 있었다. 아버지는 쓰러진 뒤에도 병원에 입원하기를 거부했고, 아무렇지 않은 척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에게 호들갑을 떨며 걱정하는 것도 우스운 일일 것이다. 채호는 가슴 주머니에 꽂아둔 메모장을 꺼냈다. 작은 메모지는 왜 이리도 넓어 보이는지 통 쓸 말이 생각이 나질 않았다. 채호는 낙서로 물든 메모지를 잔뜩 구겨버렸다. 아버지 일량 까맣게 잊고 간만에 아들들과 술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이었다. 채호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왼손잡이 시네요?” 물끄러미 채호를 보던 여인이 물었다.


“양손잡이입니다.” 채호가 강조하며 말했다.


“대단하네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왼손을 못 쓰게 하셔서요.”


“그런데 어떻게 양손잡이가? 꽤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씀하시던데.”


여인은 창을 향한 채 웃고 있었다.


“그만 좀 합시다.” 채호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화장실 쪽으로 몸을 일으켰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쥐었다. 담배를 쥔 손은 왼 손이었다. 채호가 담배에 손을 댄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별다른 인식 없이 서랍에 넣어둔 담배가 아버지에게 걸리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냈고 어김없이 손을 올렸다. 채호는 붉게 달아오른 뺨을 부여잡고 거리로 뛰쳐나갔고,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조용히 방으로 기어들어올 수 있었다. 채호는 아버지의 손아귀에 찌그러져버린 담뱃갑을 아쉬워하며 서랍을 열었다. 그곳엔 포장을 뜯지 않은 새 담뱃갑과 라이터가 있었다.


아버지와의 기억이 시도 때도 없이 떠올랐다. 채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대신 주마등을 겪고 있다 생각하니 아무래도 찜찜한 일이었다. 채호는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손을 멈췄다. 너무도 낡아 곧 떨어져 버릴 것만 같은, 화장실 구석에 달린 경보기가 불을 반짝이며 겁을 주었다. 채호는 몇 개비 남지 않은 담배를 구겨버렸다.


하얗게 바랜 머리가 거울에 비쳤다. 생기라곤 없는 낯빛이다. 유독 작은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고 툭 튀어 나온 귀는 아버지의 것과 닮아 있었다. 아들놈들도 자신을 닮아가나 생각했지만 얼굴이 금방 떠오르질 않았다. ‘기가 찰 노릇이야.’


창 밖에는 여전히 논밭이 흘렀다. 냅다 신발을 벗어던진 채호는 한결 편한 자세로 의자에 몸을 뉘었다. 여인이 또 참견질을 해댄다 해도 신경 쓰지 않을 셈이었다.


“편하세요?” 아니나 다를까 말을 걸어온다.


“원래 그렇게 참견을 잘 하세요? 신발 좀 벗고 있는 게 그렇게 꼴 보기 싫습니까?”


“아니요, 비꼬려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묻는 거예요. 훨씬 편안해 보이세요. 아깐 뭐랄까, 기계 같았는데….”


“알았으니까, 적당히 좀….” 채호가 성을 내려 하자 여인은 손사래를 치며 놀리는 웃음을 지었다. “알겠어요, 알겠어요.” 채호는 눈을 감았다. 뛰어놀던 아이는 지쳐 잠들었는지 그나마 열차가 조용한 것이 다행스러웠다. ‘기계…. 기계….’ 그렇지 않아도 일본에 대여해준 용접기계가 고장 나 한 주 동안 고생을 해야 했던 채호였다. 그런 자신에게 기계라니 영 억울한 심정이 들었다. ‘말 같지도 않은…. 온당치도 않은 소리를….’ 좌석에서 사탕 단내가 올라온다. 채호는 분을 터트리다가도 자신이 기계라면 무슨 기계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용접 기계라면 마땅히 무언가를 이어 붙일 줄 알아야 하는데, 정작 자신은 가족과도 붙어있질 못하니 탈락이었다. 양손잡이 기계라 생각하니 기계의 입장에선 양손을 사용하는 것이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결국 남은 것이라곤 돈 버는 기계뿐이니, 괜히 속이 쓰려오는 것이었다. ‘돈 버는 기계, 돈 버는 기계다. 멀쩡한 양 손으로 그저 돈 셀 줄만 아는, 돈 버는 기계다.’ 자신의 아버지도 그랬을까 생각하던 차에 주머니 춤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아내로부터 온 전화였다. 간호사인 아내는 아버지 탓에 작장에서 돌아와서도 일이 끝나질 않았다. 장남인 자신을 만나 한 세월 시부모를 모시고 살면서도 불평 한 마디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내를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그것은 또 아니니, 여간 자신이 혐오스러워 지는 게 아니었다. 전화 건너편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엔 조금의 짜증도 섞여있지 않았다.


“조심해서 와. 괜히 서두르다 사고 나지 말고.”


“재수 없게 그런 소리 좀 하지 말고. 거의 다 도착했어. 애들은?” 채호는 괜히 성을 냈다.


“모르겠어. 집에 없네.”


“끊어. 도착하면 연락할게.”


열차가 멈춰 섰다. 여인은 낑낑 대며 짐을 챙기는 동안 아이는 할애비 품에 안겨 열차를 나섰다. 어깨를 부비며 지나가는 사람들에 채호는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역사 앞에는 노숙자들이 왕이라도 된 마냥 늘어져 잠을 자고 있다. 채호에게 아버지는 잊혀진지 오래였고 걱정거리라곤 아들들이 일찍 돌아오지 않아 술 한 잔 하지 못할까 하는 것이었다. 담배를 사들고 역사를 나온 채호에게 거지들이 몰려들어 담배를 구걸했다. 담배하나 들고 있으니 선생님, 선생님 하고 들러붙는 꼴이었다. 채호는 담배 몇 개비를 건넸다. 노숙자들은 부끄러움도 없는지 더 달라고 요구했다. 채호는 담뱃갑을 던져 버렸고, 모이를 쪼듯 허리를 숙인 이들을 바라보았다. ‘이것들도 나를 돈 나오는 기계로만 아는구나.’ 담배를 하나 더 사러 가는 길에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였다. 아내는 아버지가 방금 막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채호는 답을 하지 못하고 흠, 하고 기침을 할 뿐이었다. 전화를 끊은 채호는 발이 닿는 곳으로 걸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걸었다. 바람이 손가락 사이를 간질인다. 목소리가 들렸다 생각했다. 채호는 쥐고 있던 것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왼손을 오물거렸다. 손을 뻗어도 닿는 것이 없었다. 오른손을 가져와 왼손과 맞잡았다.


‘양손잡이다…. 쥘 것이 없어 제 손이나 잡을 줄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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