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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어릴 때 겪은 무당굿과 꿈..." 글을 쓰고
구름밭 2018-10-13 08:45:50 조회 : 115

내가 아기 때의 사진을 꺼내 보았다. 너무 작은 사진이라 애기 얼굴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는데 프린터기로 스캔하여 확대하니 생생하게 보이는 게 아닌가 !

그리고 젊은 내 어머니의 얼굴 !

이 여인이 병든 나를 업고 다니며 고생했구나.

얼굴이 달처럼 곱다 하여 "월희" 라는 이름의 처녀는 열아홉에 시집 왔다.

어머니는 내가 애기 때 "순하기만 해서 앞에 무슨 물건이 놓여 있어도 잡으려 하지 않고 그냥 보고만 있었다" 며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본심" 이라고 했다고.

"학교에 갔다 와서는 동무 아이들에게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고 학교에서 배운 것을 일러 주더라"고.

2학년 가을에 다리 병이 나서 나은 후 3학년에 다시 들어가 4학년에 군내 초등생 글짓기 대회에서 1등을 하고 다리가 또 아파 집에 누워서, 내가 쓴 그 동시가 실린 책을 받아봤다.

시제는 "그림책"

어머니 께서

사오신 책은

크고도 작은

동물 그림책

한장씩 한장씩

넘겨 보다가

커다란 범이

나타 나면은

무서워 무서워

두장 넘겨요.

중학교에 들어가서 학업 성적이 중,고교 전체 수석을 하고, 웅변대회에서 수상한 상장을 아버지가 동마루에 앉아서 보았다.

담임선생이 반 전체 기합을 준다고 운동장을 돌게 해서 세 바퀴 째 뛰니 다리에 기별이 왔다.

아픈 다리로 겨우 걸으며 학교로 가는 나를 멀리서 보는 아버지 모습을 보고 죄송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다 나은듯했는데 어느 날 들일을 마치고 부엌에 들어오는 어머니께 다리가 또 아프다고 하니 바짝 마르는 어머니의 입술을 보고 미안했다.

무당굿을 하게 된 경위를 서술하느라 아팠던 얘기를 쓰면서 눈물이 줄줄 흐르고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가 가까이 다가왔다.

이젠 아득한 옛일.

아름다운 것으로 끝맺음 해야겠다.

내가 무당집 방에 앉아 있을 때 내 앞에서 춤을 추던 그 소녀 아이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거기에 살고 있는 그 사람에게 내 안부를 전해주오.

그녀는 단 한번 나의 진정한 사랑이었네"

Remember me to one who lives there.

She once was a true love of m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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