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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 꽃이었으면 좋았으련만. -
sin 2018-10-19 05:40:16 조회 : 121


- 꽃이었으면 좋았으련만. -



*



화분 옆, 베란다에 놓인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았다. 나만의 작은 공간인 베란다에는 꽃이 지는 날이 없었다. 봄이면 개나리, 민들레를 키웠고, 여름이면 장미와 나팔꽃, 가을엔 코스모스와 국화, 겨울엔 수선화, 쭉 이런 식이었다. 장미꽃이 질 시기가 되면 곧 붉거나 새하얀 국화꽃을 보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코스모스는 조금 일찍 개화하는 편이라 일찌감치 보랏빛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화분 너머로 아파트 언덕을 내려가는 남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절뚝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느리지만 꾸준하게, 남편은 살아 걷고 있었다. 며느리는 원래 남자가 더 빨리 늙는다고 말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수십 년 전, 직장을 잃은 그 순간 그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고, 그 중에는 젊음, 어떤 활기라던가 열정 같은 것이 함께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세월이 비껴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기에, 다를 것은 없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친들 시간은 아랑곳하지 않았으니까.


남편은 매일 새벽 비명을 질렀다. 항상 같은 시각, 새벽 다섯 시였다. 하지만 그가 왜 소리를 지르는지를 나는 몰랐다. 하루는 그의 비명이 시작되기 전, 그러니까 새벽 다섯 시가 되기 조금 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손을 더듬어 남편이 곁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시계를 봤는데 아직 다섯 시가 되지 않은 것을 알고는 심란해졌다. 항상 그 비명에 잠에서 깨어났지만 그것에 귀 기울여 본 일은 없었다. 곧 끔찍한 무언가를 듣게 되리란 공포가 밀려왔다. 시계를 보려던 눈이 질끈 감겼다.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가 귓가를 찔러댔다.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던 차에 남편의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단순히 신음이라 표현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꼭 들어맞는 것도 아니었다. 뭔가를 음미하는듯하기도 했고, 이따금씩 격렬하게 요동치기도 했다. 그는 고통스런 표정으로 몸을 뒤틀었다. 내 손은 가두어둔 무언가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처럼 그의 가슴팍을 지긋이 눌렀다. 그러자 남편은 몸 안의 공기를 전부 뱉어내려는 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는 더 이상 신음을 내뱉지 않았고, 곧 몸을 일으켰다.


그 후로도, 조금 일찍 잠에서 깰 때면 그 비명을 들어야만 했고 나는 똑같이 행동했다. 남편에게 비명에 관해 물을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손을 얹어주면 조용해지는 것으로 충분하다 싶었다. 게다가 나와 마찬가지로, 어쩌면 더 빠르게 숨을 다해가는 남편에게 당신은 인간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노라 선고하는 것은 분명 잔인한 짓일 테니까.


‘소뇌가 찌그러지셔서 걷는 것도 그렇고 행동이 많이 둔해질 거예요.’ 며느리의 말이 생각을 스쳐지나갔다. 그 말은 언제나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창틀 사이로 햇살이 쏟아졌다. 내 눈은 한참이나 그것을 바라보았다. 손등을 가져다대자 금세 따뜻해졌다. 손등 주름 사이로 튀어나온 혈관과 그 안을 힘없이 흐르는 피. 나는 눈을 돌렸다.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아파트 뒤편의 작은 교회까지 걸어갔다 돌아오기를 좋아했다. 역시 이유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사람을 만나고 다니니 다행인 점도 있었다. 실제로 몇몇 주민들이 집에 찾아온 적도 있으니까.


남편이 교회 목사와 대화하는 것이 보였다. 언젠가 남편을 따라 교회 앞까지 산책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의 외모란 것이 아무래도 목사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나는 그 목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집에 돌아와 그의 외모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대꾸가 없었다. 끝끝내 말하는 법도 잊은 것일까. 나는 그런 남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처음 그것을 떠올렸을 때, 꽤나 복잡한 심정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말하곤 했다. “그 아이는 나를 더 닮았던 거야. 그건 분명 나로부터 물려받은 거라고.” 그 말을 들은 남편은 토라진 사람처럼 한동안 말이 없더니 저녁 먹을 때가 되어서야 한 마디 꺼냈다.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이겠어.” 이번엔 내가 토라져버렸고 그는 다음 날이 되어서야 나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그날 나는 작은 보복으로 아침을 차리지 않았는데 몇 차롄가 부엌을 얼쩡거리던 남편이 다가와 말했다. “노래 교실에라도 다니겠어?” 말을 꺼내는 모양새가 꽤나 볼품없어 보였다. 나는 여전히 토라진 말투로 답했던 것 같다. “밥은 차려주고 갈게.”


당장에 아들 녀석에게 전화를 걸어 노래 교실을 알아봐 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알겠다고 답했고 며칠인가 지나자 며느리가 다가와 주말부터 다녀오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노래교실에 다니던 몇 주는 분명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우연히 친구를 따라 나갔던 노래교실에서 노래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이미 늙어버린 뒤였지만, 나는 알아버리고 말았다. 우습게도 그것은 아들 녀석이 그림 그리기를 완전히 포기했을 즈음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얼마가지 않아, 아까 언급했듯, 몇 주가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끝나 버렸다.


내가 노래 교실에 나가 있던 시각이면 남편은 홀로 저녁을 차려먹었어야 했는데, 그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요리는 라면을 끓이는 것 정도였다. 더군다나 수 십 년간 잘만 써오던 가스레인지를 며느리가 인덕션인가 뭔가 하는 것으로 바꿔버린 뒤로 그가 부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시피 했다.


남편은 인덕션이란 것을 작동해보려 골머리를 앓다가 방법이야 어찌됐든 부엌에 불을 지를 뻔했다. 집에 돌아가 마주한 것은 당연하게도 무언가가 타는 냄새, 그리고 남편이 불을 꺼보려 애쓰는 딱하고 한심한 꼴이었다. 그는 내 표정을 읽더니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게 이상해. 기계가 고장이 난 모양이야.” 그는 습관처럼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지거든 항상 그랬다. 변기에 똥을 칠했을 때도, 내가 아끼던 화분에 물을 너무 많이 주어 썩게 만들었을 때도. 방금 먹은 점심을 기억하지 못할 때에도. 직장에서 해고되었을 때도. “당신 정말 죽을 뻔했다고, 그거 알아?” 내가 쏘아붙일 때면 남편은 제 어미에게 혼나는 아이처럼 시선을 떨어트렸다.


그 사건 이후 나는 노래교실에 나가지 못했고 남편과 마주보는 일, 대화하는 일이 전보다 더 줄었다. 대신 베란다에 나와 화분을 보는 시간이 늘었다. 나는 털어놓지 못한 어두운 뒷이야기, 남편에 대한 적잖이 많은 것들을 꽃에게 이야기했다. 아무렴 어떻겠는가. 어디든 털어놓을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일 테니까.


나는 실제로 꽃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보통은 일방적이었지만 가끔씩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코스모스에게 말했다. “방금 아침을 차리고 왔어. 이번에도 그이가 기억하지 못하면 어쩌지?” 그러자 옆에 있던 장미가 붉은 자태를 뽐내며 끼어들었다. “그가 어제도 물을 뿌렸다고. 이러다 정말 썩어버릴 지도 몰라.”


다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니 남편의 모습은 없었다. 그는 느린 걸음으로 집에 돌아오고 있을 것이다. 내 손은 서랍을 열어 남편이 먹을 아침 약을 준비했다. 변비약과 지사제가 담긴 통이 나란히 놓여있었고 내가 먹는 약을 포함해 수면제, 백내장 약, 그 밖에도 온갖 상비약이 가득했다. 남편은 변비가 있었는데, 변비약을 먹고 온종일 설사를 하고 나면 지사제를 먹어 그것을 멈추어야 했다. 물론 그 지사제가 다시 변비를 일으키기는 했지만.


내 손은 나란히 놓인 약통들을 한 곳에 쏟아버렸다. 그리곤 제비뽑기를 하듯 신중하게 약을 매만졌다. 손가락 틈새로 알약 무더기가 빠져나갔다. 매끈하던 표면은 손이 닿자 순식간에 찐득거리기 시작했다. 손이 알약 하나를 집어 들었다. 반은 희었고 나머지 반은 밝은 파랑이었다. 작은 접시에 그것을 담아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그것이 변비약이든, 지사제든, 혹은 다른 약이든,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그는 돌아오거든 밥을 먹을 것이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안방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즈음이면 나는 집안에 없을 것이다.


나는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을 보았다. 눈 밑 피부는 힘없이 늘어져 기이한 인상을 주었고, 역한 냄새마저 풍기는 듯 했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처녀 시절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던 모든 열정이 송두리째 빠져나간 것 같았다. 하릴없이 낡아버린 육신. 그 안에 갇힌 것은 여전히 푸르렀다.


거울 속 정체모를 노파가 죽은 눈으로 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입 밖으로 내지 못할 말들이 꿈틀거렸다. “뭘 하는 거야?” 노파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대답이 없자 목소리를 높였다. 무언가를 선언하는 양 큰소리로 말했다.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산데. 그거 알아?” 그러자 내 다리에 힘이 붙었다. 깊은 곳으로부터 뭔가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젊고 강인했던 검은머리의 소녀가 다시금 육체에 깃드는 것만 같았다. 나는 전에는 해보지 못한 뭔가를, 남편의 따귀를 때린 다던가 용기가 필요한 뜻밖의 대단한 일을 저지르고 싶었다.



*



집을 뛰쳐나와 근처에 흐르는 하천으로 향했다. 태양이 높게 떠있었고, 아스팔트 도로가 끝나는 지점, 눈앞에 드리우는 광경은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빛을 받은 하천은 형형색색으로 반짝였고 군데군데 흩어진 징검다리 밑에는 수초가 잔잔하게 흔들렸다. 처녀 시절,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건만, 그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세상의 생기에 사로잡혀 덮쳐오는 무언가를 견딜 수가 없었다. 긴 잠에서 깨어난 아이처럼 즐겁고 순수한 그 무언가가 머릿속을 휘감았다.


내 머리는 초라하게 늙은 몸뚱이 따위는 잊어버리고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하천 주변으로 가늘게 자라난 풀들이 몸을 부드럽게 훑고 지나갔다. 발에 밟히는 흙과 불어오는 바람은 기분 좋은 선율을 연주했다. 교회 뒤편, 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평지였던 땅은 경사가 심해지며 언덕으로 변했고 푹신하던 흙길에는 바위가 듬성듬성 나타났다. 욱신거리기 시작한 다리를 이끌면서도 정상에 다다르면 자신이 기대하는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마침내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어졌을 때 나는 멍하니 산마루를 내려다보았다. 머리가 하얗게 센 뒤로 이토록 충만한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넓적한 바위를 골라 그 위에 앉았다. 집이 내려다보였다. 남편은 지금쯤 잠에 들었을까. 잠에 들지 않았다면 나를 찾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생각에 잠겨있다 내 뒷목과 허리에 묶인 끈,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꽃무늬가 수놓인 앞치마였다. 여러 종의 꽃이 있었고 목부터 허리춤 까지는 대부분 붉은색이었다. 무릎 아래로는 노란색과 푸른색이 섞여 있었다. 나는 앞치마를 풀어 바위 위에 대충 던져두었다.


나무 그늘 아래로 찬바람이 불어왔다. 하늘은 나뭇잎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작게, 그리고 점점 크게 노래교실에서 배웠던 노랫말을 읊조렸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았는데, 앵두나무 처녀인가 그랬던 것 같다.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노랫말을 읊조릴수록 입이 바짝 말랐다. 침을 삼키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눈물이 고였다. 난데없이 남편과 보낸 평생 동안 진실로 나 자신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너무도 무서웠다. 다시 집을 내려다보았다. 매우 피곤했고 사지에 힘이 거의 없었다. 어쩌면 집에 돌아가지 않는 것이 좋을 거란 생각이 확신에 가깝게 들어찼다. 나는 던져두었던 앞치마를 담요처럼 둘렀다. 그리고 그렇게, 잠시 동안 그늘 속에 누워 있었다.



*



눈을 떴을 땐 이미 해가 저문 뒤였다. 몸이 으슬으슬 심하게 떨렸고 콧물이 흘렀다. 올라온 길은 하나뿐이었을 터인데 길이 사라진 것처럼 방향 감각이 없었다. 나는 팔다리를 모으고 떨었다. 몇 시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나무 사이로 달빛이 쏟아졌다. 넋을 잃고 그것을 바라보다 손등을 가져다댔다. 손등 아래로 굵은 핏줄이 요동쳤다. 윤기가 흘렀고 뜨거웠다. 내 얼굴을 더듬었다. 손바닥의 열기가 차가운 얼굴을 덥혔다. 볼, 입술, 눈두덩에서 전에 없던 탄력이 느껴졌다. “오.” 나는 작게 감탄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나를 둘러싼 풍경이 펼쳐졌다. 고요하게 흔들리는 나뭇가지, 차가운 숨을 내쉬는 바위, 먼 곳에서 아득히 물이 흐르는 소리, 벌레 울음, 달을 휘감아 도는 별. 모든 것이 내가 자라난 대부도의 것을, 남편을 만났던 시기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지금 것 당신에게만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말을 뱉어낼수록 힘이 차올랐다. “언제고 당신의 아내로 남지만은 않을 거야. 이제 뭐가 되었든 날 위해 주고받으며 살 거야.”


나는 알지 못할 충동에 휩쓸려 넘어지다시피 산을 뛰어 내려갔다. 밑에 도착하거든 걱정스런 얼굴의 젊은 부모가 나를 찾고 있을 것만 같았다. 흉물스런 교회와 마음에 들지 않는 목사 일랑 사라져 있을 것이며 웃음이 없지만 이따금씩 간식을 챙겨주던 늙은 스님과 금빛 불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산을 내려갈수록 바위가 줄어들고 밟히는 흙이 부드러워졌다. 나는 속도를 줄이고 숨을 고르며 걸었다. 대충 포장된 흙길이 나타났다. 무릎이 욱신거렸다. 바람이 불었고 흔들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향초로 보이는 붉은 빛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나는 반쯤은 절뚝이는 모양새로 빛에 다가갔다.


그리고 마침내 산을 내려왔을 때 내 눈이 마주한 것은, 집으로 이어진 인적이 끊긴 아스팔트 도로와, 담배를 물고 있는 목사였다.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그 동그란 안경을 닦더니 다시 나를 보았다. “이 시간에 뭐 하세요?” 나는 그를 보지 못한 것처럼 지나쳐갔다. 아스팔트길에 발을 얹자 체중이 수배는 불어난 듯 몸이 무거웠다. 나는 상념에 잠긴 채 아파트 입구에 다다랐다. 위를 올려다보며 하나씩 층을 세 보았다. 23층이 끝인 아파트. 아래층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올라갈수록 불 켜진 집이 줄어들었다. 남편이 기다리고 있을 그곳, 21층은 완전한 어둠에 잠겨있었다.



*



집안은 어두웠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내 손이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남편의 형체가 보였다. 그는 죽은 듯 꼼짝하지 않았다. 창틈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왔다. 나는 창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커튼을 쳤다. 다리 근육이 작게 경련을 일으켰다. 겨우 들리는 남편의 숨소리. 그가 언제까지 잠을 잘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먹은 약이 무엇이든 중요치 않았다. 하루라도 그 끔찍한 비명 소리를 듣지 않게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일 테니까. 나는 베란다로 나가 의자에 걸터앉았다. 잠든 꽃들에게 말을 걸었다. “오, 나도 꽃이었으면 좋았으련만. 계절의 순환, 그 일부가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방안에는 어떤 냄새가 풍겼다. 뭔가가 타는 냄새. 그것은 남편과 내 몸으로부터 흘러나왔다. “타는 냄새가 나.” 남편은 답이 없었다. “타는 냄새가 난다니까.” 나는 되풀이하며 속삭였다. 내 손이 서랍장을 열었다. 그리곤 아무렇게나 쏟아 섞여버린 약통에 서 알약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그것이 진통제였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남편의 곁에 몸을 눕혔다. 힘이 빠져나가며 몸이 늘어졌다. 생각이 어둠에 풀려 흩어졌다. 희미하게 시작되어 강렬하게 자라났던 갈망은 다시금 늙은 육신의 깊은 곳 어딘가로 모습을 감추었다.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어.” 눈물이 주름을 타고 흘러 베갯잇을 적셨다. 청춘으로 돌아가는 일 따윈 환상이며 삶에서 남은 것이라곤 다가올 죽음뿐이라는 사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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