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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 같이 기도하지 않으련? -
sin 2018-10-19 05:41:12 조회 : 86


- 같이 기도하지 않으련? -



*



정호는 밖으로 나가 교회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외벽을 뚫고 자라난 나뭇가지에 이끼가 꼈고 축축한 흙냄새가 올라왔다. 정호는 두꺼운 손으로 나뭇가지를 잡았다. 단번에 뿌리까지 뽑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교회를 빙 돌며 작업을 마친 정호는 입구 계단에 걸터앉아 높게 자라난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얼마 전 교회 앞 유리를 스테인드글라스로 교체했는데 나무그늘 탓에 빛이 들어오질 못했다. 외벽에 자라나는 나뭇가지야 그렇다 쳐도, 꽤 돈을 들인 스테인드글라스가 빛을 잃는 것은 큰 문제였다. “톱이라든지 도끼가 있으면 순식간일 거야. 밑동은 의자로 삼으면 될 테고….”


멀리서 노인이 걸어오는 것도 모른 채, 정호는 나무의 크기를 가늠하며 중얼댔다. 한쪽 다리를 절뚝이는 그 노인은 혼자였고 기운이 빠져나간 듯 보였다. “또 뭘 하려고 응?” 그가 물었다. 정호는 그제야 노인을 발견하고는 손에 흙을 털어 보였다. “나무가 빛을 가려서요. 도끼라든가 연장 같은 게 있으면 베어내려고 생각중이였죠. 그나저나 오늘은 혼자시네요? 어머님은 어디가시고?”


정호는 제 미소가 섬뜩해 보이는 줄도 모르고 씩 웃어보였다. 노인은 조금 다가오더니 아예 옆에 걸터앉았다. 그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 그놈의 여편네 이젠 마음대로 하라지. 그나저나 나무는 어떻게 자르려고?” 노인도 나무를 보며 제 나름대로 가늠해보았다. “창고에 손도끼가 하나 있긴 한데, 그걸로 충분할지 모르겠네요.” 노인은 어느새 정호와 함께 고민하고 있었다. “손도끼면 충분할거야. 전기톱이다 뭐다 그런 건 필요 없을 거야. 시간은 걸리겠지만 나무가 두껍지 않으니까. 아래쪽을 먼저 잘라내라고. 삼각형으로 말이야, 쓰러질 방향 쪽으로. 어느 정도 되었다 싶으면 반대쪽을 베어내. 이번엔 직선으로 곧게. 그러면 알아서 넘어 갈 거야. 반드시 쓰러질 방향을 삼각형으로 잘라내야 해. 잘못하다간 교회 쪽으로 쓰러질 수도 있어. 건물 상태를 보아하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 편이 좋겠군.” 정호는 씩 웃었다. “도와주실 건가요?”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조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직접 도끼를 쥐지는 못해.” 그는 자신의 왼쪽 다리를 쿡쿡 찔러 보이며 말했다. “내 꼴을 보라고. 자네 정도 체격이면 금방 넘어갈 거야. 제대로만 한다면 한 시간이면 끝날 테지. 뿌리까지 뽑을 생각인가?” 정호는 눈썹을 들썩이고 다시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아니요. 밑동은 남겨서 의자로 쓰려구요.” 멀리서 몇 사람이 무리지어 걸어왔다. 곧 예배시간이었다. “그것도 좋을 테지.”


그 동네에 살던 사람들은 누구나 정호를 알고 있었다. 그는 말하자면 많은 사연이 있는, 하지만 동시에 짐작이 가는 남자였다. 얼굴을 사선으로 길게 가로지르는 흉터가 있었고 머리는 정수리부터 벗겨지기 시작했다. 잡아당긴 듯 눈 아래 피부가 추하게 늘어져 있었고 그 위로 걸친 동그란 안경 아래에는 결심이 선 두 눈동자가 있었다. 덩치가 여간이 아니었던지라 직접 교회에 나가보지 않은 이들은 그가 목사라는 것을 믿지 않았다. 동네 어른들은 필히 그가 종교의 길로 도망친 어떤 범죄자, 적어도 전과자라 의심했는데, 퍽 틀린 짐작은 아니었다. 정호 본인 또한 그것을 알았기에 외모에 꽤나 신경을 두는 편이었지만 동그란 안경 하나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또 몰랐던 모양이다. 정호는 주말이면 색이 바란 갈색 양복을 입고 교회 강단에 올랐다. 아무래도 그는 차분하고, 뭔가 조용한 현인의 느낌을 풍기지는 못했던지라, 침을 튀기며 그 거대하고 흉터와 굳은살로 덮인 두 주먹을 하늘로 뻗어 올릴 때면 사람들은 그의 말보다 주먹에 더욱 집중하곤 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항상 소녀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정호에게 입양된 딸이라는 것만을 알 뿐 많은 것은 알지 못했다. 그녀는 항상 심드렁한 얼굴로, 어른들이 보기에 반항할 만한 시기이기도 했고, 정호의 말을 뜻있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정호의 외모와 더불어 동네 주민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단골 소재였다.


그럼에도 정호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려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런 면에서 정호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살면서 겪은 곡절일랑 신경 쓰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했으니까. 정호는 늘상 교회 앞을 서성였고 지나가는 이들에게 모자를 들어 올리며 말을 붙였다. 주말이면 직접 만든 요리를 내오기도 했다. 물론 실력이 좋지 못했기에 음식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가 노력한다는 것은 모두가 알았다. 특히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매일 산책을 나오는 노인, 그는 정호를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산책을 나오거든 꼭 정호를 찾아 이야기를 나눴다. 정호 또한 그로부터 어떤 인정을 받는 것이 좋았다. 노인은 정호에게 꽤 많은 것들을 털어놓았다. 사소한 잡담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주로 죽음에 관한 것,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에 관한 것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정말 그런 곳이 있다고 믿는 거지? 응?” 과거 사정이야 어찌하든 정호는 목사였고 대답은 뻔했다. “그럼요, 신은 자비로우신 분이니까요. 교회에 나오세요. 어르신께서 손해 볼 일은 없을 겁니다.” 노인은 습관처럼 대답했다. “빨리 마무리 지어졌으면 좋겠어.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처음으로 보이는 게 천국이든, 지옥이든, 내 무덤을 덮은 축축한 흙이든지 말이야…. 그나저나 딸은 좀 어떤가? 입양한 딸을 키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야. 난 아들밖에 키워본 일이 없지만 딸이 더 힘들 거라는 건 알지. 잘 하라고. 특히 병에 들지 않게 해야 해, 여자애들은 몸이 약하니까. 큰 병이라도 걸리는 순간 동정과 사랑을 구분하지 못하게 될 거야. 오, 바로 그게 아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지.” 정호는 한 가지를 바로잡아 주었다. “자비라는 말을 생각해 보세요. 사랑 자(慈)에 동정할 비(悲)가 합쳐진 말이죠. 넓게 봤을 때는 같은 사랑이 아닐까요? 제 딸아이의 이름도 그렇게 지었죠.” 노인은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기나 싶더니 곧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천천히, 공을 들여 말했다. “아니야 그건 슬플 비(悲)야 그렇게 보는 게 맞아.”



*



“더 할말은?” 정호가 물었다.


“없어.” 언제나처럼 건성인 대답.


“이제 나가자.” 작은방 뒤편에 나있는 출입구에선 나무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짧은 간격을 두고 문을 연 정호는 텅 빈 교회 내부를 둘러보았다. 깨진 거울과 차갑게 식은 촛대, 썩기 시작한 나무는 부서지거나 잔뜩 구부러져 있었다. 대부분이 목재로 만들어진 구조물들은 금방이라도 부스러질 듯 썩어있었다. 정호는 제 딸의 얼굴로부터 무언가를 발견해내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둘은 매일 아침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고해 성사와 가까운 그 행위는 순전히 정호의 고집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그녀에게도 어떤 의미를 주었음은 분명하다 생각했다.


‘운 좋게 얻어걸린 삶.’ 사춘기에 들어선 딸은 자신의 탄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고심하다 이런 결론을 내놓았다. 정호는 그녀와의 만남을 두고 신의 계시며 운명이라 여겼지만 정작 그녀는 신을 믿지 못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애초에 신이 있었더라면, 자신을 버리는 부모가 아닌 헌신적인 부모 밑에 축복받으며 태어나도록 하는 것이 이치에 맞았다. 정호는 그런 딸에게 끊임없이 말했다. “네 삶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어. 네 또래들과는 다른 비범한 무언가가.” 딸은 시선을 돌렸고 정호는 덧붙였다. “하루빨리 신의 목소리를 들었으면 좋겠어.” 정호는 진심으로 그녀의 가슴속 커다란 빈자리, 본래라면 부모의 존재가 채워줘야 할 그 구멍에 신의 존재가 자리 잡기를 염원했다.


사람들이 교회를 빠져나가고 어둠이 찾아와 혼자가 될 때면 정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은 밤하늘은 태양이 있던 낮보다 밝게 빛났고 별들은 금방이라도 쏟아질듯 미약하게 떨렸다. 드문드문 위치한 붉은 십자가들은 기둥처럼 하들을 떠받치고 있었다. 한동안 그렇게 서 있던 정호는 제 몸에 어떤 기운이 들어찼다는 생각이 들면 교회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고함에 가까운 기도를 올렸다. 커다란 양 주먹은 어찌나 꽉 쥐었는지 부서진 손톱 틈새로 피가 흘렀다. 하지만 십자가에 매달린 성자는 무심하게 그의 눈을 맞출 뿐, 대답을 주지 않았다. 정호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손이 맞닿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더 간절하게, 더 크게 외쳐야해.’


맞잡은 두 손의 주름을 따라 피가 배어들었다. 손목까지 흐른 핏방울은 한참이나 매달려 흔들리다 무릎으로 떨어져 자국을 남겼다. 정호는 평소보다 오랜 기도를 올렸다. 대단한 일이 금방이라도 벌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상상력은 정호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몸을 일으킨 정호는 두 발을 모으고 양팔을 넓게 펼쳐보였다. 십자가에 고정된 시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정호는 한참이나 소리를 질러댔다. 그것은 어떤 내용도 없는 괴성이었다. 정호는 목이 갈라질 때까지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펼쳐보였던 두 팔을 떨어트렸다. ‘또 다른 고난을 주신거야. 달리 생각할 것 없다고.’ 정호는 기도를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두 다리가 휘청거렸다. 정호는 힘을 잃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제 딸을, 그녀가 어떤 행동을 하든, 사랑할겁니다. 부디 어린 양을 올바른 길로 이끄소서.” 그가 읊조렸다.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병든 노모와 함께 살던 정호는 지금 자신의 딸이 그러하듯,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 어렸던 그에게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의 얼굴은 희미해져 생각조차 나지 않았고 기독교인이었던 어미는 언제나 그에게 희망을 주려 노력했다. 그녀는 자신을 담당하고 있는 어린 간호사의 이야기를 즐겨하며 그에게 무언가를 전하려하곤 했다.


“나이도 어린 것이 어찌나 그리 똑 열심인지.”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 노인은 아들에게 마음을 충분히 전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 유일하게 자신을 아끼던 병든 어미가 죽음을 맞이한 날, 정호는 목소리를 들었노라 생각했다. 제 어미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는 그 목소리는 늙은 어미의 몸을 빌려 지상에 현신한 신의 것이었노라 정호는 굳게 믿었다.



*



예배가 끝난 시간이었다. 정호는 창고에 들렀다가 교회 앞마당으로 나왔다. 하늘엔 구름이 없었고 태양빛이 광선처럼 쏟아졌다. 나무 앞에 선 정호는 갈색 외투를 가지위에 걸쳐 그늘을 만들고 자신의 무릎높이 정도에 흠집을 내었다. 나무를 두르고 있는 껍질은 단단했고 말라붙어 있었다. “손은 어쩌다가?” 노인이 물었다. 그는 자라난 풀을 방석삼아 앉아 있었다. “병원에라도 가보는 게 좋겠군. 상처가 덧날거야.” 정호는 도끼가 파고들 지점에 시선을 고정한 채 답했다. “별 거 아닙니다. 금방 나을 거예요. 전에도 이런 적이 몇 번 있었죠.” 정호는 도끼를 한 차례 휘둘렀다. 나무껍질이 갈라지며 노인이 앉은 자리까지 튕겨 올랐다. “각을 더 크게 해서 베어내야 해.” 노인이 말했다. 정호는 다시 도끼를 휘둘렀다. 도끼날이 깊숙이 나무를 파고들었다. 힘을 주어 뽑아내자 수액이 진득이 묻어 나왔다. “이정도면 될까요?” 잠시 숨을 고르며 정호가 물었다. “그렇지. 그대로만 해.” 정호는 다시 도끼질을 시작했다. 도끼날이 사선으로 들어박히며 나무에 깊숙한 상처를 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어디서 다 배우셨어요?” 노인은 어느새 정호의 곁에 와 섰다. “젊었을 적에. 그 때는 직접 땔감을 구해야 했으니까. 가스니 전기니 하는 것들은 없었다고. 그래, 이제 반쯤 되었군. 다음엔 직각으로 해.” 정호는 다시 자세를 잡고 직각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도끼날이 닿을 때마다 나무가 휘청거렸다. 정호의 어깨위로 벌레며 이파리 따위가 떨어졌다. 힘에 부치는지 갈수록 도끼날이 엉뚱한 곳에 꽂혔다. 그럴 때마다 노인은 ‘어이구.’ 하며 지적을 해댔다. “덩치 값을 영 못하는구먼. 조금 쉬었다 하지 그래?” 노인의 조롱에 정호는 온 힘을 다해 도끼를 휘둘렀다. 그때 도끼날이 손잡이와 분리되며 정호의 발 위로 묵직하게 떨어졌다. “이런 씨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몇몇은 목사가 욕을 내뱉은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수근 거렸다. 노인은 웃는 쪽에 속했다. 그는 발을 부여잡고 끙끙대는 정호를 보며 진심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정호는 아픈 와중에도 처음으로 보이는 노인의 웃음에 묘한 성취를 느꼈다. “이것 참. 괜찮은가?” 노인이 물었다. 정호는 신발을 내던지고 제 발가락을 살폈다. “벌써 완전히 부어올랐어요. 이건…. 며칠 고생 좀 하겠네요.” 노인이 하늘을 손가락질 하며 웃었다. “이것도 저 사람 짓인가?” 정호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어쩌면요.”


정호는 그 일로 꽤나 골머리를 앓았다. 노인이야 웃자고 한 소리였고 자신 또한 그렇게 받아들였지만 밤이 찾아와 다시 십자가 앞에 기도를 올리다보니, 그 사소한 사고는 더 이상 사소하지 않게 다가왔다. “저를 벌하시려는 겁니까.”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정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정호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저 나무를 베어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정호는 그것에 관해 생각하느라 제 딸이 문을 열고 들어온 것도 몰랐다. 그녀는 탐탁지 않은 눈길을 건네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정호는 눈을 감았다. 자신의 목소리가 하늘에 닿기를 바랐다. “당신의 뜻이라면.”



*



학교에 간다는 것은 정호에게 낯선 일이었다. 정호는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며 딸의 표정을 보았는데, 아무래도 그녀는 학교에서의 만남을 반기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정호가 물었다. 그녀는 정호를 바라보지 않은 채 덤덤히 답했다. “마음대로 해.”


딸이 가져온 가정통신문에는 참관수업이 있다는 것과 더불어 담임선생과의 상담이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그것은 경험과 맞닿아있는, 실체가 있는 두려움이었다. ‘언제나처럼 수군거리겠지. 아이들이 겁에 질릴지도 몰라.’ 정호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 당일 날이 되어서야 결심을 세웠다. ‘정말 내가 오기를 원치 않았더라면 가정통신문을 보여주지도 않았을 테지.’ 정호는 그 희망을 부여잡고 힘을 주어 걸음을 내딛었다.


학교에 도착하자 익숙한 시선이 쏟아졌다. 다른 학부모들은 크게 티를 내지 않으면서도 저들끼리 귓속말을 주고받았고 아이들은 호기심에 찬 눈으로 정호를 흘깃거렸다. 정호는 딸아이와 시선을 마주치려 노력했지만 그녀는 수업 내내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수업은 길게 느껴졌다. 딸의 담임은 과학 선생이었는데, 짧게 자른 머리가 잘 어울렸고 곧게 자라난 눈썹은 선하고 강직한 인상을 주었다. 그는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더니 곧장 수업에 집중했다. 정호는 담임과 눈을 마주치며 몇 번인가 고개를 끄덕였는데, 정작 이해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관심은 그의 손에 있었다. 평생 고생이라곤 해본 적 없는 듯한 부드럽고 새하얀 손이었다.


긴 수업이 끝나고, 담임선생은 부모 한명 한명과 모두 인사를 나눴다. 그리곤 그들과 멀찍이 동떨어져 서 있던 정호에게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자비 아버님이시죠?” 그는 활짝 웃어보였다. 부드러운 손이 거친 손을 맞잡았다. “정말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시간 괜찮으시면 잠시 이야기 좀 하시죠.”


담임선생은 교무실 옆 상담실로 정호를 안내했다. “커피 한잔 드릴까요?” 그가 자신의 컵에 커피를 따르며 말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정호는 경찰서에라도 끌려간 심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욱신거리는 발가락으로부터 불안이 타고 올라왔다. “입양아를 키우신다는 게 쉽지 않으실 겁니다. 더군다나 사춘기에 든 여학생이라면 더욱이.” 담임선생의 입에서 나온 ‘입양아’ 라는 단어가 무언가 맞지 않는 잘못된 단어처럼 거슬리게 들려왔다. “지금부터 제가 할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이미 알고 계신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정호는 마른 침을 삼켰다. 공포스런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아 쥐었다. “자비가 제게 말하길, 아버님께서 종교에 너무 심취해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조심스런 부분이란 건 압니다만, 그게 자비와 아버님 사이의 관계를 망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기독교 신자이신가요?” 두 손에 땀이 찾다. 갈색 외투 아래 겨드랑이는 이미 불쾌할 정도로 축축했다. “네, 맞습니다. 자비가 뭐라고 하던가요?” 목소리가 떨렸다. 담임선생은 들릴 듯 말듯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이런 말하기 죄송스럽습니다만, 자비는 아버님을 어떤 치료가 필요한 광신도라던가, 사이비 비슷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더군요. 학교에선 자비라는 이름도 쓰질 않아요. 게다가 아버님께서 자신을 입양한 것도 어떤 종교적인 수단으로….”


정호는 붉어진 얼굴을 꿈틀거리며 담임을 노려보았다. 그렇게 하면 그 샌님 녀석이 멋쩍게 웃어 보이며 농담이었다 실토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그 선한 눈은 미동조차 없이 정호를 바라볼 뿐이었다.



*



하늘은 보이지 않았다. 긴 들판처럼 펼쳐진 구름은 빛을 통과시키지 않았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검은 빛을 띠었다. 조금 거리를 두고 걷던 딸아이와는 어느새 서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 있었다. 교회로 돌아오는 내내, 정호는 ‘그 뺀질대는 얼굴을 후려칠걸.’ 하고 후회했다. 다친 발가락이 욱신거렸다. 내일 있을 예배는 분명 엉망일 것이리라. 준비해 두었던 말도 다 잊었다. 정호의 머릿속은 하늘에 대한 증오로 가득이었다.


교회에 도착하기 무섭게 비가 쏟아졌다. 빗줄기는 교회를 부술 기세로 무겁게 쏟아졌다. 정호는 창고로 가 청 테이프로 대충 감아두었던 도끼를 꺼내 쥐었다. 그리곤 반쯤 잘라두었던 나무 앞으로 달려갔다. 정호는 알아들을 수 없는 고성을 내지르며 아무렇게나 나무를 내리쳤다. 나뭇잎을 타고 빗방울이 떨어졌다. 나무의 절반 이상이 잘려나갔다. 도끼날이 손잡이에서 빠져나가 발등 위로 떨어졌다. “이런 제기랄!” 정호는 손잡이를 던져 버리고 단단히 말아 쥔 주먹을 내리쳤다. 나무가 한쪽으로 기우나 싶더니 우지끈 소리를 내며 교회 쪽으로 쓰러졌다. 그 덕에 창고 지붕이 완전히 주저앉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목소리가 들렸다.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뭐랬어? 응? 반대쪽을 직선으로 자르라고 했잖아.” 노인의 목소리가 빗소리에 파묻혀 아득하게 들려왔다. 정호는 노인의 모습이 환상인지 실체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일 났구만. 저걸 치우려면 사람을 불러야겠어.”


정호는 터벅터벅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가 실체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노인이 무너져 내렸다. 젖은 바닥에 널부러진 그는 움직임이 없었다. 정호는 목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심장이 요동치는 탓에 손끝에서 느껴지는 맥박이 누구의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정호는 무언가를 알아차린 사람처럼 하늘로 고개를 쳐들었다. 입에선 자신의 것이 아닌 듯,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 머리에 의심을 심어놓았으니, 내 손으로 노인을 벌했노라.”


몸을 감싸들었던 열기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른 것이 들어찼다. “구름, 비, 의심, 처벌.” 정호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맞잡았다. 딸아이는 막 집으로 돌아오다 그 광경을 보았다. 그녀는 쓰러져 있는 노인과 그 옆에 무릎 꿇은 제 아비를 보고는 서둘러 다가와 물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정호는 손을 내밀었다. 지금이라면 그녀에게 신의 존재를 전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제 자식이 자신을 혐오하게 될 것도 모르고 그는 말했다. “같이 기도하지 않으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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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이었으면 좋았으련만. - 위트 있는 짧은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