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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당신은 영면을 봉합하고 내 기억은 빈틈없이 춥다
siscloudycandy 2018-11-03 13:05:39 조회 : 72

당신은 영면을 봉합하고

내 기억은 빈틈없이 춥다

 

어제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말이에요우린 산책을 했어요길을 걷다가 행인과 부딪힌 기억이 나요. 저는 밤에 몸을 웅크리고 부딪힌 자리를 내내 쓰다듬었어요견딜 수 없었어요무엇을 견딜 수 없었을까요기억나지 않아요행인이 험상궂었기 때문이었을까요제가 제 몸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었을까요만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거 같아요아버지이걸 보세요쓰다듬었을 뿐인데 살이 벌어졌어요이래도 아직 숨에 배려 받고 있는 걸까요.

 

벌어진 살에 숨을 부는 것만으로 아픔이 가실 거라 생각한다면아들아그건 네개 어울리지 않는 치료법이겠구나가뜩이나 성치 않던 살이 흉하게 벌어졌다방부처리를 해야겠구나앉으렴의자에 네 무게를 줘보렴그게 죽은 이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기증명 수단이란다죽은 이는 묘지로 향하는 동안 생애의 무게를 운반자에게 전달한다나는 너를 더 떠안고 싶다네 묘지는 세상 끝에 마련될 거란다.

 

아버지이러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아들아난 네가 의미 없이 살아가던 시절을 기억한다.

하지만 죽은 이에겐 의미가 필요해요죽었으면서도 말을 하거나 움직인다면 더더욱.

 

아들아,

입을 벌려라.

 

아버지,

제 녹은 잇몸 사이에 물컹한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요.

 

산 전상에서 함성을 지르는 이들에게 전달될 바람을 모아왔단다바람은 소유주를 가리지 않고 움직인다덕분에 가장 먼저 바람을 마주하는 이가 소유권을 얻지바람은 좋은 접착제란다순식간에 우리에게 다가오지단숨에 달라붙는단다그래서 우린 믿게 된단다어딘가에분명히 바람이 존재할 거라고덕분에 바람은 세상 어느 곳에든 안주할 수 있단다구하기 쉬운 재료지동이 트기 전 산에 올라가면그날 등반할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람이 봉우리마다 쌓여 있단다끈질기게 고여 있더구나.

 

바람은 산을 싣고 있는 거예요.

아니바람이 싣고 있는 건 높이다하늘과 땅 사이 높이를 바람이 붙잡고 있는 거다바람에 쓸려나간 땅이 쌓여 산이 된 것에 불과하고.

지금 제 입에 들어오는 이것들도 바람이라 확신할 수 있나요.

세척을 위한 거지만원한다면 바람이 될 수도 있는 거란다.

아버지저는 바람에 실어줄 것이 없어요제 몸속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불쌍해요.

바람은 이미 너를 싣고 있단다네가 하늘로 가지 못하게 붙잡아두고 있지.

 

,

하고 말인가요.

아들아,

눈꺼풀을 들어 올려보겠니.

 

눈꺼풀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끼인 이건 뭔가요.

 

어린 아이가 가장 아끼는 구슬을 훔쳐 왔단다아이들의 구슬은 언제나 구슬 이상의 값어치를 할 수 있거든아이들은 구슬 속 무늬에서 세계를 본단다너도 그랬고나도 한때 그랬지구슬 속 무늬를 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에 능통했어구슬 속에서 세계를 볼 수 없었다면 그 정도 시간을 소비할 수 없었을 거다그 세계 속엔 분명 너를 위한 시신경도 있을 거다네가 죽었는지 모를 사람도 많고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 또한 많겠지만그들은 결국 세계의 일부일 뿐이지죽은 이가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챈 학자들 또한 마찬가지다그들로는 아이들 구슬 속을 채우기에 역부족일 거다너는 그들이 미처 채워놓지 못한 틈으로 앞을 본단다아들아너는 아직 어리다.

 

어제까지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말이에요당신은 제 아버지가 맞을 텐데내일 제가 그걸 잊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제 몸에 봉합이 필요했고세척이 필요했고그 모든 것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했는데아버지는 아직 제 기억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셨군요.

 

그날 모두가 그랬지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모두가 네 죽음을 기억할 거라 말했지.

그랬지요.

기억하는 순간 기억된 것들은 썩기 시작한단다네 기억은 천천히 썩는 중이다잊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렴내 기억 또한 썩어가는 중이란다언젠가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게 될 거다우리가 나란히 땅 속에 묻히게 될 수도 있고너는 천국에나는 지옥에 떨어질지도 모르겠구나하지만 그건 나중 일이란다나는 지금 너를 만지고 있다기억하기 위해 너를 만지는 게 아니란다기억할 가치도 없는 일이지살아생전의 네 체온쯤이야 얼마든지 기억하고 있으니까.

 

잊힐 일만 남았군요.

오늘도 몸이 차구나춥니?

모르겠어요기억할 수 있으신가요.

그럴 필요 있겠니.

 

아들아,

난 네 추위를 잊기 위해 살아가고 있을 뿐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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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 있는 짧은 시입니다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