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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sin 2018-11-07 06:29:10 조회 : 44


- 7.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




새벽 4시였다.


“뻔한 사건이지. 달리 물을 것도, 답해줄 것도 없어.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니까.” 재훈이 말했다.


하나같이 그늘진 얼굴을 한 젊은 수습기자들은 이른 새벽부터 이어진 지루함에 지쳐있었다. 그들은 별 질문 없이 재훈의 말을 받아 적었는데, 그중에서도 신입으로 보이는 어리바리한 녀석이 질문을 해댔다. 관리하는데 시간을 꽤 들인 듯, 셔츠 안으로 탄탄한 근육이 꿈틀거렸고 진한 눈썹이 인상에 남았다. 그러나 재훈이 보기엔 어울리지 않게 빗어 넘긴 앞머리나, 일부러 면도하지 않은 듯한 턱은 어른티를 내려는 것 같아 우스웠다.


“목사님께서 발견하셨다고요?”


재훈은 셔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밖으로 나가려는 모양새를 취했는데, 그 눈치 없는 녀석이 따라붙었다.


“아무리 연세가 있다고 해도 갑자기 사람이 쓰러지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그럴 수도 있지.”


재훈은 담배를 물고 우물거렸다. 신입은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재훈은 담배를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이고 녀석 쪽으로 뱉어냈다. 송곳니 부근이 욱신거렸다. 녀석은 잔기침을 콜록거렸다. 녀석이 더 귀찮게 굴기 전에 재훈은 선수를 쳤다.


“기사거리가 될 만한 다른 소식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알려줄게. 누가 이런 일에 관심이나 있겠어? 나이가 많이 드신 분이니까 이런 일도 있는 거지. 어려서 잘 모르나보네.”


그는 무어라 구시렁거리더니 다시 대기실로 돌아가 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재훈은 기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이 사명감 가득한 신입이든, 그것과는 멀어진 중견이든 똑같았다. 그들이 새벽마다 대기실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것마저 막아버리는 것은 권한 밖의 일이었다. 동료들이 뭐라도 된 것 마냥 기자들 앞에서 우쭐대는 것도 싫었다. 겉으론 정의니 뭐니 떠들지만 속내는 먹고살 궁리뿐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재훈이 기자들에게 말해주지 않은, 어쩌면 다른 동료들이 신나게 떠벌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 사건은 실제로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충분했다. 이미 동네에는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재훈 역시 그 소문을 알았지만, 소문이란 것이 본래 주민들 사이에 오가는 말일 뿐인데다, 비가 무겁게 내리던 그날, 자신이 본 광경은 말해준들 쉽게 믿지 못할 종류의 것이었다. 우습게도 그런 재훈을 찾아와 자신이 진실을 알고 있노라 말하는 사람은 너무도 많았다. 그들의 말은 제각각이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공통된 것은 그들 모두가 목사를 범인으로 의심한다는 것이었다.


소문일지언정 그것이 제법 신빙성 있게 퍼져나가는 이유는 아무래도 목사 본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소문으로부터 자신을 변호하려 하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노인의 가족들조차 목사에게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노인의 가족들은 간단한 조사차 서에 들렸었는데, 늙은 아내는 한숨만 내쉬었고 아들이란 작자는 조사를 대충 끝내 빨리 벗어나고 싶어 했다. 가장 혈연관계가 먼 며느리만이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동료 한 놈은 두고두고 그 이야기를 꺼내며 혀를 찼다.


목사의 이야기가 다시 들려온 것은 그의 양녀가 실종된 뒤였다. 노인이 쓰러지고 소녀가 실종된 이후로 목사는 말하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굴었다. 주말 마다 진행하던 예배도 관두었다. 물론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던 탓도 있었겠지만.


소녀의 실종 사실 또한 목사가 아닌 그녀의 담임으로 인해 알려졌다. 그는 재훈을 찾아와 실종 소식을 전했는데, 그 말투에선 목사를 의심하는 속내가 다분히 느껴졌다. 재훈은 담임선생이 가족이 아닌 점, 그리고 시간이 얼마 경과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며 거절했다. 목사를 신고한 사람이 그 소녀라는 점은 말하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 보시죠. 그 나이 또래 애들은 밥 먹듯 가출하는 게 일상이니까요. 게다가 입양아이기도 하고.”


담임 또한 젊은 기자가 그러했듯, 불만족스런 표정을 지었었다.


재훈은 검지로 담뱃재를 털어냈다. 불씨가 낮게 튀어 오르더니 신발 위로 떨어졌다. 황급히 재를 털어냈지만 이미 그을린 자국이 남은 뒤였다. 아내의 신경 긁는 목소리를 떠올리니 송곳니가 찌릿하고 아려왔다. 재훈은 치과에 한 번 들려야지 생각했다.


동이 트며 구름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동료 한 명이 따라 나와 기지개를 켰다. “고생했어. 내일 모레 보자고.”


재훈이 집사람에 관해 투덜거리자 동료는 어쩌겠냐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무시무시한 맹세를 해버린 거지. 맹세란 게 원래 무시무시한 것이기도 하지만 말이야. 괜히 사람들 모아놓고 그 성대한 식장에서 선언을 하겠어? 아이가 생기면 더 할 거야. 이제 갓 다섯 밖에 안 된 녀석이 왜 이리도 말썽인지.”



*



오전 10시. 전화가 울렸다.


재훈은 들리지 않는 체 하며 목까지 이불을 끌어당겼다. 부엌에 가 있던 아내는 재훈을 픽 쏘아보고는 서둘러 전화를 집어 들었다.


“조용히 통화해.”


재훈이 말했다. 아내는 귀찮은 게 끼어들었다는 듯 인상을 쓰며 등을 돌렸다. 목소리를 조금 낮추는가 싶더니 금방 깔깔거렸다. 재훈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아내가 통화하는 것을 가만히 들었다.


“그러게 내가 뭐랬어?” 아내는 재훈을 힐끗 바라보며 눈치를 보았다. 점점 구석으로 몸을 옮기더니 재훈에겐 들리지 않을 소리로 무언가 속삭였다.


“누구야?”


재훈이 이불 속에서 웅얼댔다. 아내는 전화기에 대고 몇 마디 더 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친구.”


아내는 짧게 답하며 재훈의 옆에 와 앉았다.


“당신은 알고 있는 거지? 응?”


아내의 튀어 오르는 듯한 목소리에 재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몇 시간이고 그녀가 졸라댈 것을 익숙히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불을 잡아 당겼다. 재훈은 햇볕을 가리기 위해 이불을 끌어당겼지만 그녀는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알고 있는 거잖아? 이야기해줘.”


“도대체가 왜 그렇게 관심이 많아? 평범한 사건이야, 그걸로 끝이라고.”


“들은 게 있는데?”


“잊어버려. 다 사실이 아니니까.”


아내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내밀었다. 재훈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 표정은 연애시절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지만 언제부턴가 짜증만을 불러일으켰다.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아내는 다시 쏘아보듯 번뜩이는 눈동자로 돌아왔다.


“나한테는 말해줄 수 있잖아.”


재훈은 그녀가 이불자락을 놓기 무섭게 힘을 주어 이불을 끌어당겼다. 얼굴까지 이불로 덮어버리고는 다시 웅얼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 원, 별 일 아니라니까 그러네.”


아내는 쿵쿵 소리를 내며 부엌으로 돌아갔다. 재훈은 그제야 이불을 걷어내고 숨을 들이쉰다. 의무감으로라도 잠을 청하려 했지만 아내의 찌르는 듯한 목소리에 잠이 달아나버렸다. 부엌에선 접시가 깨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재훈은 화가 나 중얼거렸다.


“그럼 그렇지.”


재훈은 두 눈을 감쌌다. 구름이 몰려와 비라도 내렸으면 좋겠건만 지독히도 날씨가 좋았다. 아내가 쿵쿵 소리를 냈다. 거인이 지나가기라도 하는 듯 머리가 울렸다. 그럴 때마다 왼쪽 송곳니의 통증이 심해졌다. 발소리는 부엌으로부터 멀어지더니 현관 쪽으로 향했고, 보다 거대해진 발소리가 재훈에게 다가왔다. 재훈은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지 하는 심정으로 손가락 끝에 신발을 덜렁이며 서 있는 아내를 마주했다. 어두웠을 땐 잘 보이지 않던 그을린 자국이 햇빛 아래 선명하게 보였다.


“담배지?”


재훈은 그 목소리가 싫었다. 그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갈라진 입술은 더욱 싫었다. 한 때 저 입술에 입을 맞췄다는 게 상상이 가질 않았다.


“맞아.”


아내는 딱한 표정으로, 반은 경멸이 담긴 표정으로 재훈을, 그리고 그의 아랫도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뭔가 말하려다 연거푸 한숨만을 내뱉었다. 재훈은 “기왕 이렇게 된 거 당신도 한 대 태우겠어?” 하고 말하려다 꾹 참았다.


“그냥 내버려 둬. 조금 있다 나가야 해.”


“어디를? 누구랑?”


“친구. 술 마실 거야.”


물론 그런 약속은 없었고 내내 퍼질러 잠만 잘 생각이었다. 아내가 싫어할 법한 말을 내뱉으며 재훈은 내심 흡족해했다.


“다른 신발 신고 가. 이러고 다니면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겠어?”


“내버려 둬, 잘 보이지도 않는구만.”


“맘대로 해보든지.”


아내는 신경질적으로 돌아서며 현관에 던지듯 신발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빨랫감을 가져와 재훈의 앞에다 탁탁 털어댔다. 재훈은 참 철이 없는 여자라 생각했고 그 짓거리에 장단을 맞춰주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적어도 오늘 한 번 만큼은.


아내의 갈라진 입술에서 무언가가 새어나왔다. 그것은 때때로 커졌고, 한숨이 잔뜩 섞여 나올 때도 있었다. 재훈은 더욱더 침대 구석으로 기어들어갔다. 그 소음은 끝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다시 전화가 울릴 때까지.


전화를 받은 아내의 목소리가 다시 튀어 올랐다. 재훈은 문득 저기 서있는 여자의 입술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자신이 입을 맞추었던 그 입술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가 무어라 말하는 것이 이번엔 선명하게 들려왔다. 재훈은 몸을 웅크리고 웅얼거렸다.


“난들 알았겠어. 아이를 가지게 못하게 될 줄.”



*



“그래도 찾아봐야 하지 않겠어요?”


새벽 3시였다.


재훈은 귀찮게 들러붙는 녀석을 떨쳐낼 방법을 고민함과 동시에 이 녀석이 제법 자질이 있구나 생각했다.


어리바리한 녀석은 변함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재훈이 비번인 날도 마찬가지였는데, 그새 동료들과 안면을 텄는지 주워들은 것이 많았다. 재훈은 대기실에 처박혀 있으라는 둥 굳이 싫은 소리를 하진 않았다. 기자들에게 밉보여서 좋을 것은 없었으니까. 녀석은 재훈으로부터 실종된 소녀의 이야기를 캐내려 시도했다.


“평범한 일이 아닐 거예요. 기삿거리가 될 거라구요.”


녀석은 손가락 하나를 펴 보이고는 재훈의 눈앞에다 까딱거렸다.


“네가 어떻게 알아?”


“딱 봐도 이상한걸요?”


“난 전혀 이상한 점을 못 느끼겠는걸.”


“제가 도와드려도 될까요?”


“아냐, 그럴 필요는 없어.”


“도움이 될 텐데요?”


“방해만 되.”


녀석은 곧장 대기실로 돌아가지 않고 재훈의 앞을 서성였다. 바쁜 일이라도 있는 양 핸드폰을 힐끔거렸지만 연락 올 곳이 없다는 것은 재훈 또한 알고 있었다. 재훈은 신경 쓰지 않는 체 하며 자판을 두드렸고, 녀석은 계속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둘 사이의 암묵적 게임은 재훈이 담배를 피러 나가야 했던 탓에 끝이 났다. 녀석은 쫄래쫄래 재훈을 뒤따라 나왔다.


“하나 줄까?”


재훈이 묻자 녀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녀석이 바짝 붙어 섰다.


“그래서요?”


“뭐가 그래서야?”


“말해주시려고 나온 거 아니에요?”


“아닌데.”


“익명으로 써도요?”


“안 돼.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 거야.”


재훈은 코로 연기를 내뿜었다. 네가 얻어갈 건 이것뿐이 없다는 듯 입은 다문 채였다. 녀석은 조금 성을 내기 시작했다.


“제가 수습기자라서 그런 거죠?”


“그런 것도 있지. 넌 이제 막 사내티를 내기 시작한 애송이잖아.”


재훈은 그를 흘겨보며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녀석은 지지 않고 재훈의 눈을 똑바로 보았고 재훈은 “어쩔 건데?” 하는 식의 눈빛을 되돌려주었다. 녀석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대기실에 돌아가는 것이라는 걸 재훈은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기사 낼 겁니다.”


재훈은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퉁명스런 목소리로 답했다.


“마음대로 해.”



*



“입양한 딸도 사라졌다면서?”


어렴풋이 빗소리가 들렸다. 재훈은 아내의 말일랑 흘려 넘기고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뭇잎에 부딪치는 빗방울 소리. 한 때 아내의 목소리는 그것과 닮아 있었다. 눈이 감기려는데 날카로운 소리가 파고들었다.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오후 3시였다. 재훈은 막 잠에서 깬 터라 짜증이 나 있었다. 아내의 옹색해 보이는 옷차림을 보고는 더욱 신경질이 났다.


“쉿, 조용히 있자구. 조용히.”


“영감처럼 굴지 좀 마. 이제 겨우 서른이라고 우린. 이러려고 결혼 했나 몰라. 일어나, 치과 예약했다며?”


재훈은 답하지 않고 몸을 뒤척였다. 아내는 들으라는 듯 소리를 높였다.


“담배도 좀 끊고. 당신 원체 이도 약한데다…. 혹시 모르잖아?”


“뭘 모른다는 거야? 응?”


재훈은 솟구치듯 몸을 일으켰다. 아내는 그의 표정에 서린 것을 보고는 한 걸음 물러났다. 잔뜩 부어 반쯤 감긴 눈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마땅히 누려야 할 걸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거지? 응? 그런 거지?”


“그만해, 이미 끝난 얘기잖아.”


아내가 울먹였다.


“얘길 꺼낸 건 당신이라고.”


재훈은 집히는 대로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집을 나왔다. 빛을 받자 눈이 따가웠다. 낮의 풍경이 어색하게 다가왔다. 햇빛을 받았건만 평소보다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재훈은 마지막으로 진료를 받았던 것이 2년 쯤 되어가는 치과로 향했다.


치과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재훈은 자신이 그 치과의 풍경을 기억하고 있는 것을 알고 놀랐다. 어쩌면 너무도 고통스러웠던 치료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데스크에 앉은 간호사들은 재훈의 이름을 듣고 진료기록을 몇 번 뒤적이더니 잠시 기다리라 말했다.


대기실엔 아무도 없었고 재훈은 오 분 정도 앉아 있었다. 간호사 하나가 오더니 진료실이 아닌 원장실로 그를 안내했다. 재훈은 그의 얼굴을 보고 자신이 이 치과를 잊지 못하는 까닭을 기억해냈다.


“오랜만입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넨 의사는 쉰은 가볍게 넘어 보이는 외모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머리카락이 남아있었던 것 같은데, 이젠 완전히 대머리가 되어 있었다. 앙상하게 말라붙은 눈가는 어딘가 음습하고 불쾌한 인상마저 주었다. 책상 위 연필꽂이엔 굳은 밥풀이 붙은 숟가락이 꽂혀 있었고 습관처럼 책상을 두드리는 손톱은 지저분했다. 원장실 한 쪽 구석에는 값이 꽤 나가 보이는 안마의자가 벽에 달린 텔레비전 방향으로 놓여 있었다. 노인에게 치과의사라는 호칭이 없었더라면 그와 상종하지 않았을 것이란 진실은 간호사들의 표정에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재훈은 왠지 모르게 그 노인이 마음에 들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라서인가 생각해보았지만 닮은 외모라 말하긴 어려웠다. 노인이 차트를 훑어보더니 말했다.


“예약이 잡혀있었는데 오질 않으셨네요. 한 번 볼까요.”


재훈은 입을 크게 벌렸다. 노인의 더러운 손이 송곳니 가까이 다가왔다. 노인은 대충 알았다는 듯 차트를 덮고 말했다.


“충치가 많이 깊어요. 잇몸이 훤히 드러났네요. 일단은 신경 치료를 해보겠지만 뽑아버려야 할지도 몰라요.”


노인은 다시 진료실로 재훈을 안내했다. 재훈이 앉자 의자를 뒤로 눕히고 녹색 천을 덮어주었다. 노인은 간호사들과 뭐라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말했다.


“아무래도 뽑아야겠네요. 충치가 뿌리까지 파고들었어요. 임플란트를 해야 할 겁니다.”


재훈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대충 끄덕였다. 준비가 조금 늦어지는지 노인이 말을 걸었다.


“조금 걸릴 겁니다. 마취도 할 테니 많이 아프진 않을 거예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수사하느라 바빴어요. 워낙 이상한 일이라.”


“그 목사 이야기죠? 소문은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그 목사가 노인을 헤친 것 같아요. 전과도 있고.” “무서운 일이네요.”


“딸도 입양아인데, 가출이라도 한 건지 소재파악이 되질 않네요.”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철제 도구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사람이 입양아까지 기른다니 수상한 일이네요. 아, 이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수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에요. 파고 들어가면 분명 뭔가 나올 겁니다.”


“그렇겠죠. 이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입 크게 벌려 주세요.”


“그나저나, 저도 입양을 생각하고 있어요.”


“훌륭한 일이네요. 전 아이가 없어요. 아내도 없고.”


주사바늘이 잇몸을 찔렀다. 차가운 것이 들어오나 싶더니 이내 감각이 없어졌다.


“사실 저한테 문제가 있어서 아이를 가지질 못하거든요.”


“저런, 그렇다면야 입양하는 것도 좋은 선택지 일 수 있겠네요. 지금 잇몸을 건드리고 있는데 느껴지시나요?”


“아니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마취가 잘 됐네요.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집에 돌아가거든 아내에게 이야기할겁니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겠네요. 이제 정말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아이한테 입양아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게 좋을까요?”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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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영면을 봉합하고 내 기억은 빈틈없이 춥다 뉴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