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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목발 단상
구름밭 2018-12-06 11:00:49 조회 : 67

목발 단상

한 달 넘게 짚은 목발이 이젠 나를 떠나서 현관 한쪽 벽에 기대어 외로이 서있다. 더 이상 쓸모없으니 버려도 되겠지만 혹 모르기에 놔둔 것이다.

밤늦은 귀가 길에 아파트 내 도로에서 넘어져 대퇴부를 정통으로 보도블록에 박아 고관절 골절상을 입었다. 남의 일로만 여겼던 낙상이 나에게도 닥치다니 황당하고 억울했다. 술은 약간 취했을 뿐이고,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턱이 아주 낮아서 걸릴 것도 없는데 그리도 요상하게 옆으로 옹차게 넘어지다니 마치 마귀가 나를 밀친 것 같았다. 물 흐르듯 유유자적한 나날을 보내는 나를 시기한 것인가? 세상 이치는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다지만 그것이 그냥 좀 오래 가면 안 되나. 더구나 인공관절을 끼어 박는 처지가 되니 심적으로 자못 껄끄러웠으나 날이 지나면서 생각을 돌렸다. 일도 없이 만판 노는 내가 거동이 좀 제한된들 어떠리오. 다만, 열심히 하던 기공체조(단요가)를 못하고, 즐기던 산보를 안 하니 늦가을의 그 좋은 단풍경치들을 둘러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아내가 목발을 사왔을 때 나는 입원실 침대에서 받아들고 반갑고 귀한 듯 매만졌다. 알루미늄 제품의 산뜻 미끈한 목발(?)이었다. 집 안에서 목발을 짚으면서, 옛날에 설악산에서 목발 짚고 산객들을 안내했다는 '설악산 발발이'가 떠올랐다. 매스컴으로 들었다가 케이블카로 권금성에 올랐을 때 우연히 그 인물을 보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과시하듯 일부러 가파른 바위비탈을 목발로 오르내렸는데 목발의 고무판이 암석에 밀착되기에 용이했다. 그는 한 그룹의 안내를 자원하며 "자, 갑시다" 하고 신난 듯이 앞장섰다.

그리고, 대입시공부 때 읽었던 영문 글 한 토막이 생각났다. 중년 신사가 목발을 짚는 동안 사람들이 자기에게 베푼 친절을 얘기한 것이다. 그는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제대로 오르지 못하고 꾸물거렸다. "버스 기사는 백미러로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기사는 앞에 무엇이 막고 있어서 출발을 못하는 것처럼 몸을 앞으로 기울여 내다보며 클랙슨을 울렸는데 그것은 승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라는 것을 안 나는 자리에 앉아 앞에 달린 거울을 보니 그는 나에게 빙긋 웃기에 나도 웃었다" 그 글의 제목은 '이해의 (연결)다리' 였다.

대학동창 모임에 가기 위해 목발을 짚고 전철역행 마을버스를 타는데 내 앞 사람이 타면 뒤따라 타려는데 그 젊은이는 타지도 않으면서 탈것처럼 승강대에 그냥 서 있기에 나는 그를 피해서 좀 지체하여 버스에 오르려고 하는데 문이 닫히기에 얼 른 막으니 문은 반 쯤 닫힌 상태에서 되 열리지 않았다. 잠시 후 열려서 버스에 오른 나는 기사한테 "사람이 타는 걸 보지도 않으세요? " 하고 나무랐다. 화가 나서 큰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자제했다. 그 다음날에 문득 생각나기를, 그 기사는 나를 보지 못한 게 아니라 안태우려고 한 것이다. '목발이'가 차에 타면 재수 없다는 고정관념일 것이다. 아침에 첫 택시 승객으로 여자가 타면 재수 없다고 하듯이! 학창 때 버스 앞쪽에 앉아 가던 나는 어떤 기분에 휘파람을 불었더니 기사는 나를 모질게도 꾸짖었다. 차 안에서 휘파람 불면 재수 없다.

 토요일에 결혼식장과 고교동창 송년회에 연달아 가기 위해 또 마을버스를 탈 때 나는 목발을 한손에 모아 쥔 자세를 취했다가 목발을 들고 차에 올랐다. 전철역에 와서 버스를 내릴 때 나는 신속히 내린다고 조리 있게 거동하는데 기사가 돌아보며 "천천히 내리세요." 하고 느긋한 마음씨를 보였다. 강남에서 9호선전철로 갈아타는데 상당히 붐볐다. 차 안에서 목발을 짚고 서있는 나에게 중년이 "자리를 좀 비켜달라고 하지요" 하고 조심스럽게 말하기에 "다음 역에서 내립니다." 하였다. 에스컬레이터를 여러 번 타면서 요령을 더 익히게 되었다. 얼마 전에 처음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목발을 한 계단 앞을 짚어 그 계단이 솟아오르면서 하마터면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지하철의 계단을 차근차근 내려가는데 청년이 다가와서 "저가 책을 들어 줄까요? "하고 정중히 물었다. 내가 목발 손잡이와 책을 동시에 잡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결혼식장에서 혼주인 친구가 직접 쓴 책을 일부 하객들에게 주는데 "너는 글을 잘 쓰니까" 하며 가져가라고 하여 책을 주는 데스크에 가서 서명을 하고 생각하니 목발 짚고서 두꺼운 책을 지닐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포기했다가 나중에 다시 가서 달라고 한 것이다. 나는 그 젊은이에게 책을 건네며 기분 좋아서 절로 흥겨운 말이 나왔다. "와우, 책을 들어주다니. 조~옿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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