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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글을 쓰기까지
2019-03-09 15:47:58 조회 : 585


차였다.


비 오는 날에 기름을 질질 흘려 아스팔트 바닥을 무지갯빛으로 물들이는 기계를 말하는 게 아니다. 품격이 있는 미용실에서 순서를 기다릴 때, 으레 직원들이 물어보는 음료의 종류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엉덩이를 걷어차인 것도 아니다. 아니, 이쪽은 어느 정도 뜻이 일맥상통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그녀에게 퇴짜를 맞았다.


사실 퇴짜를 맞은 게 한 번뿐만은 아니다. 전에 만났던 여자에게도, 그 전에 만났던, 그 전의 전에 만났던 여자도... 하지만 그들은 그녀에게 차였을 때처럼 혼자 치킨에 소주를 들이켜며 질질 짤 정도로 나에게 큰 의미는 아니었다. 나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었다. 다 잘 될 줄로 알았다. 그리고 차였다.


3일 동안을 폐인처럼 살았다. 다 큰 놈이, 군대도 다녀온 건장한 청년이, 방안에 틀어박혀 눈물로 하루를 지새우는 꼴을 누가 못 봐서 다행이었다. 눈물의 이유는 그동안 여자를 만나면서 겪었던 실패와 그 실패에서 비롯된 자괴감의 풍선을 터트려 준 그녀였다. 억눌려 있었던 자괴감의 내용은 이러했다. 내가 못생겼나? 내가 소심한가? 내가 재미가 없나? 내가 매력이 없나? 나는 가치가 없는 사람인가? 나는 아무런 쓸 데도 없는 사람인가?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나? 그렇다면 내가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겠지.


다행히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대신 그래도 살아보겠다며 이대로는 안되겠다, 방구석을 뛰쳐나갔다. 우울이 나를 집어삼키기 전에, 어디로든 탈출하고 싶었다. 정처 없는 걸음은 집 앞 서점에 닿았다. 가고 싶어서 간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서점이었다. 어쩌다 보니는 내 인생을 바꾸기 시작했다.


체육을 전공하는 나는 평소에 책이라고는 한 줄도 읽지 않았다. 관심도 없고 읽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매대의 책들을 손으로 훑고 지나갈 뿐이었다. 어느덧 손은 베스트셀러가 비치되어 있는 매대에 도달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책에 관심이란 게 생겼다. 윤홍균 저자의 <자존감 수업>이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날 바라보고 있는 그 책을 뽑아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길로 책을 샀다. 서점에서 나와 한적한 카페로 들어갔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어 내려갔다. 놀랍게도, 난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존감 수업>은 뻔한 말들을 늘여 놓은 뻔한 자기계발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다르게 느꼈다. 책은 책이 아니라 정말 내 옆에서 날 토닥여주며 위로해주는 사람이었다. 괜찮다고, 너는 특별하다고, 포기하지 말라고.


카페를 나오니 바람이 산뜻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감히 그 날의 오후를 내 생애 최고의 날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아름답던 날이 만 사천 원짜리 책 한 권 때문이었다니.


나는 책을 읽기로 했다. 책은 나에게 위로가 되었고 지식이 되었으며, 환희를 주었고 때론 감동을 주었다. 인문학서는 사유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었고, 소설은 인생을 다양한 관점으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파트리크 쥐스킨트, 양귀자, 김유정 같은 천재적인 소설가의 글을 읽었을 땐, 어떠한 욕구의 성취보다 더 뛰어난 쾌감마저 느껴졌다. 그것이 나를 소설들의 숲을 떠돌게 만들었다.


떠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모든 소설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고르지 않았다. 도서관 서재를 둘러보다가 제목이 마음에 들면 책을 펼치지도 않고 빌려왔다. 그렇게 아무거나 빌려 온 소설을 카페에서 다 읽고 나면,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써도 이것보단 재밌게 쓰겠다.’


그래서 내가 썼다. 내 경험을 각색한 단편소설을 썼다. 생각했던 것처럼 쉽진 않았다. 완성된 글을 내가 다시 읽으면서 많이 낙담했다. 글 쓰는 건 어렵구나. 하지만 낙담이 글을 쓰는 일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내 경험을 각색한 소설을 쓰면서 내 이야기를 하는 즐거움에 빠졌기 때문이다.


난 소심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곧잘 하지 못한다. 솔직한 내 이야기를 털어놓는 건 부끄러웠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가면을 쓰니, 나는 얼마든지 자신감에 차서 내 이야기를 떠들 수 있었다. 소설의 첫 문장을 쓰려고 할 때, 난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이건 내 얘기는 아니고, 내 친구 얘긴데...’


소설을 쓰기 전까지, 나는 내 인생이 정말 평범하고 지루한 줄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털어놓지 않았던 것도 있다. 어차피 재미없는 얘기인데 뭘. 하지만 소소하다고 생각했던 경험을 소설로 쓰고 나니, 정말 재밌고 특별한 경험처럼 보였다. 내가 이렇게 특별한 일을 겪은 사람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내 글을 읽은 사람들도 혹평 속에서도 재미는 있다고 말해주는 걸 보면, 난 정말 특별한 사람이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사실은 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책이라곤 하나 읽지도 않던 내가, 글만 읽으면 졸았던 내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던 내가, 운동만 좋아하던 내가, 그래서 체육학과에 진학했던 내가 말이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조용한 카페에서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고 있노라면, 불현듯이 나를 찼던 그녀가 생각난다. 그녀가 나를 차지 않았다면 과연 나는 지금 여기서 글을 쓰고 있을까? 글을 쓰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까?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그녀였다. 한때 나에게 최고의 불행을 주었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최고의 행복을 준 셈이다. 이제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지만, 그녀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고 큰 의미다.


이 짧은 글로 감사를 표하고 싶다. 작가의 꿈을 꾸게 해준 그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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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37.***.2542019-03-29 02:13:18
잘읽었어요. 담담한 글 감사해요 ^^
묵원 2019-04-01 13:31:30
잘 읽었습니다. :)
글 올라가는지 테스트 자목련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