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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시골 최고의 음료수는 박카스다
고타래 2019-11-25 02:07:40 조회 : 131

우체국에 신입 집배원이 들어오면 일단 사수가 정해지고, 신입이 쉽게 업무를 익힐 수 있도록 한 달 정도 집중적으로 관리해 준다.

한 달 가운데 일주일은 사수가 배달 구역을 따라다니면서 길도 익힐 수 있게 도와주고, 우체통 위치도 알려주고, 주민들한테 새로 온 집배원이라고 소개도 시켜준다. 지름길을 알려줄 수도 있고, 화장실 위치나 점심 먹을 식당들, 담배 피우기 좋은 장소 등등 알려줄 것들이 많다. 그리고 나머지 삼 주 동안은 사수가 따라디니지는 않고, 대신 다음 날 배달할 우편물 분류 작업을 도와준다.


1층 사무실에서 국장님과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도 안전운전을 다짐한 뒤 드디어 집배원으로서 첫 배달을 나갔다.

첫 배달이니만큼 오늘은 사수가 앞장서서 직접 배달까지 다 하고, 나는 그냥 따라다니기만 했다.

사수가 탄 오토바이를 삼사 미터 뒤에서 졸졸 따라다니며, 오토바이 속도를 높일 때는 같이 높이고, 오토바이에서 내릴 때는 같이 내리고, 배달 중에 주민을 만나 사수가 인사를 하면 나도 인사를 하고, 등기우편물이나 택배를 전달하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가면 나도 따라 들어갔다. 그렇게 따라 들어가면 집에 있던 주민이 고생한다면서 박카스를 주기도 하고. 그때가 12월 한겨울이라 전기밥솥 안에서 따뜻하게 데운 박카스를 준 주민도 있었다.


그렇게 한두 시간 따라다니다 보니 오토바이 운전에 여유가 생겨서 집 벽에 붙은 도로명주소 팻말을 보며 순서를 외우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청포로 3137, 청포로 3139, 청포로 3141-5, 청포로 3141-9…….

내가 집배원 된 때가 막 주소 체계가 지번 주소에서 도로명주소로 바뀌던 때였다. 그래서 지번 주소 보는 법은 안 배우고 대신 도로명주소 보는 법만 배웠다.

참고로 도로명주소 보는 법을 설명해 보자면, 주소가 청포로 3137이라고 해보자. 일단 숫자 뒤에 임의로 0을 붙이면 된다. 그러면 청포로라는 길의 시작 지점에서 31,370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집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다음 집이 청포로 3139니까 청포로 3137에서 20미터 정도 더 가면 나오는 곳이고. 그리고 3137이나 3139 하는 식으로 홀수는 청포로 길 진행 방향의 왼쪽에 집이 있다는 뜻이다. 만일 주소가 청포로 3140이라면 청포로 3139 맞은편, 그러니까 길 오른쪽에 집이 있다는 뜻이고. 청포로 3141-5는 청포로 3141 지점에 샛길이 있고, 그 샛길을 따라 50미터 정도 가면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5는 홀수이므로 왼쪽에 집이 있다는 거고.

글로 설명하려니 복잡한데, 아무튼 체계를 알고 있으니 도로명주소만 알면 집배원은 자기 배달 구역에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다. 그러니 우편물을 보낼 때는 꼭 도로명주소를 적어주는 것이 좋다. 간혹 도로명주소 대신 옛 지번 주소를 적는 경우가 있는데, 그럼 집배원은 그 지번 주소를 보고 다시 도로명주소를 찾아봐야 한다. 그만큼 배달 시간이 늦어지고 일이 많아지게 된다.


그때가 12월이라 좁은 마을길에는 눈이 안 녹은 곳도 있었다. 그런 곳을 사수가 부드럽게 지나가면, 나는 혹시라도 뒤처질까 봐 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따라갔다.

평소 스쿠터 몇 번 타본 게 전부라서 집배원이 되려고 부랴부랴 오토바이 면허를 땄기 때문에 운전에 서툴렀다. 그래서 눈길에 넘어질까 봐 첫날에는 긴장을 많이 했다.


우리는 잠깐 잠깐 쉬면서 담배를 두 번 피웠고, 오후 한시 정도 돼서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갔다.

집배원들 사이에서는 사수가 조수 점심을 사는 게 룰이라면서, 가격에 상관없이 아무거나 시키라고 했다. 그래서 1인분에 1만 8천 원짜리 불고기전골을 시키려다가, 일주일 동안 사수한테 얻어먹어야 해서 그냥 왕갈비탕을 시켰다.

집배원들이 점심 먹는 곳도 대게가 본인 배달 구역 내에 있는 식당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하루는 이 식당 다음 날에는 저 식당 하는 식으로 돌아가면서 먹는다.

사수가 음식값을 계산하면서 식당 사장님한테 나를 소개했다. 그러자 사장님이 고생 많다면서 또 박카스 한 병.


식당을 나와서 담배 하나씩 피우고 우리는 다시 배달을 시작했다.

오전 내내 배달을 했기 때문에 오토바이 적재함에 있던 우편물이며 택배가 조금 줄어서, 오토바이가 한결 가벼웠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속도를 높여서 오토바이를 몰았다.


오후 배달하는 마을에는 펜션이 많았다. 그래서 마당을 청소하는 사람, 본격 겨울철을 대비하려는 건지 장작을 패는 사람, 개집을 수리하는 사람, 대낮부터 손님들과 거실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 등등 주민을 많이 만났다.

사수는 그런 사람들한테 일일이 나를 소개시켜 주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더러 수고한다면서 역시 박카스를 주었고.

물론 오후부터 받은 박카스는 마시지 않고 적재함에 넣어놨는데, 아무튼 배달 첫날 받은 박카스만 일곱 병이었다. 사수 것까지 합하면 열네 병.


일곱 개째 받은 박카스를 오토바이 적재함에 넣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도 그랬겠지만, 앞으로도 수살면에서 박카스의 아성을 무너뜨릴 만한 음료수가 나타나기는 어렵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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