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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은행잎
외동딸 2019-12-12 00:15:38 조회 : 98


 


노아야, 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봤어.

괜히 마음이 아프더라.


 


   노아야, 우리 굉장히 오랜만에 만났지? 고등학생 때 보고 몇 년 만이더라. 4, 5년 만인가? 넌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처음에 네가 나한테 나 기억해?”라고 한 거 듣고,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다니까. 내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어쩔 뻔 했냐구. 고등학교 때 싸움 잘하기로 유명했던 애가 경찰이 되어서 내 눈앞에 나타날 줄이야. 난 상상도 못 했어. 나한테 잘 지냈냐고 묻는다면 긍정적으로 대답은 못 해 줄 것 같네.

  너를 만나기 전에 은행나무 밑에 은행잎이 잔뜩 떨어져 있는 걸 봤어. 문득 우리가 처음 만난 날에도 은행잎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는 게 떠오르더라. 잊고 지냈던 너까지도. 맞아, 그땐 가을이었지. 너는 나한테 은행잎을 하나 건네주면서 말을 걸었잖아. 음악실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을 때도 어느새 들어와서는 은행잎을 놓고 갔고. 졸업하고 집안 문제에 취업까지 겹쳐서 정신이 없었는데 그날 너를 보고 고등학생 때의 기억들이 다시 떠올랐어. 은행잎이 나와 너에게 무슨 존재였는지도 함께 말이야.

  오늘도 어제와 같은 길을 걷는데 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걸 봤어. 괜히 마음이 아프더라. 나락으로 떨어진 너를 보는 것 같아서. 너 고등학생 때 일주일 정도 학교를 안 나왔었지? 나는 아무 소식도 못 들어서 답답했는데 친구들은 전부 어디서 이야기를 들었는지 떠들어대고 있더라. 나중에 네가 나타났을 땐 싸웠는지 상처가 가득한 걸 보고 엄청 놀랐어. 나를 보자마자 끌어안았던 거 기억해? 그렇게 강해 보이고 무섭던 네가 나를 안고 울고 있다니. 믿기지 않더라. 꿈만 같았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말을 안 해 주냐. 그래서 나는 그 은행잎이 꼭 너 같았어. 분명 떨어지기만 했을 텐데 일부는 찢겨있고, 말려 들어가고, 까맣게 변해있고. 어떤 게 진짜 네 모습이야? 내 생각에 네가 보여줬던 모습은 극히 일부였던 것 같아. 바닥에 떨어져 있던 노아들은 너무 많아서 담을 수가 없었어. 제대로 된 네가 보이질 않아서 주울 수가 없더라고.

  솔직히 말하자면 난 네가 더 나쁜 사람이길 바랬어. 그래도 노아가 착해서 나름 고마웠어. 가을에 너를 만난 건 참 좋은 일이었던 것 같아.


*


   내 수첩에 언제 이런 걸 적어뒀을까 너는. 네가 말했던 것뿐만 아니라 나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기억이 나. 내가 봤던 고등학생의 너는 정말 태양 같았어. 너무 흔한 말 같은데 표현할 방법이 이것뿐인 것 같다. 차라리 울창한 은행나무라고 하는 게 더 나을까. 우린 왜 항상 가을에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걸까. 가을이 우리를 연결해주는 힘이 있을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해볼게.

   너를 좋아하고 나서부터 다짐했어. 강하고 정당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그래서 경찰을 하게 된 거야. 나는 아직도 너에게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아. 하지만 이건 차차 물어볼게. 그래야 널 만날 수 있는 이유가 생기니까. 바닥에 떨어진 내 모습들은 아직 너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들이라고 생각해줘. 영원한 건 절대 없다고들 하지만, 널 안 만큼 그 말은 믿지 않을래. 넌 그저 나를 보면서 계속 웃어줬으면 좋겠어. 그러면 바닥에 떨어져 있는 흠집 난 나도 편하게 누워있을 수 있지 않을까?


*


   노아야, 오늘은 한쪽 길가에 쌓인 은행잎 무덤을 봤어. 두 손으로 한 움큼 집어봤는데 네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더라고. 네가 보고 싶어. 멀리서 보는 너는 가을 하늘처럼 파랗게 보이기만 해. 게다가 제복도 파랗고. 난 파랗고 또 노란색으로 물들어가는 네가 좋아. 노아야, 내가 너한테 은행잎의 존재를 물어봤었지? 내가 느꼈던 건 말하지 않을래. 네가 생각했던 은행잎의 존재를 알고 싶어.

  난 이제 너를 다시 알게 되어서 아무것도 두렵지 않아. 너를 다 주울 수도 있어. 집에 노아 네가 점점 쌓여가. 근데 우린 서로를 좋아하면 안 되는 거였나 봐. 내 인생이 자꾸 너와 닮아가고 기울어가. 그렇다고 후회하는 건 아니야. 난 여전히 네가 좋아. 은행잎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아. 단지 바닥에 떨어져 있을 뿐이야. 그리고 그게 왠지 나랑 닮았어.


*


   난 네가 찬바람에 사라지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글을 안 남기려다 남겨. 너에게 닿으려고 쓰는 거야. 감정을 느끼는 건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해. 우리 서로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너도 알고 있잖아. 그럼 된 거야. 그거면 충분하지 않아?

  맞아. 은행잎은 아무 말을 하지 않지. 하지만 난 말을 할 수 있어. 바닥에 떨어진 나와 이 글을 쓰는 나의 차이점을 알겠어? 난 너라는 유리 조각을 치우고 싶지 않아. 손에 피가 나도 가지고 있고 싶어.

  넌 굉장히 묘해. 밝은 사람인 것 같다가도 금세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곤 하지. 그래도 난 그런 네가 좋아.

  무슨 일은 없는지 걱정이 된다. 겨울인데 아프지 말고. 훈련 다녀와서 다음 주에 보자.


  p.s. 이제 바닥에 내가 없더라. 진짜 나만 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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