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그냥 올려본다

정아는 그런 것들을 대하는데 서툴다.
리세.첸 2019-12-13 12:20:43 조회 : 103

한낮이지만, 침대에서 꿈쩍을 하지 않는다.

반년 전쯤 선물로 받은 동남아산 커피가 잔에 반쯤 남은 채 책장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언제 만졌는지 알 수 없는 사진첩들은 먼지가 보송하게 덮여있지만, 개의치 않는 눈치다. 오히려 먼지는 있어 마땅한 듯.

한참을 버티던 정아는 결국은 침대에서 벗어나기로 하고 몸을 빼냈다. 밤새 이불 속에서 잠들어있던 정아의 어깨에 서늘한 기운이 투명하게 내려 앉았다. 벽에 맺혀 스며들어왔을 겨울의 고운 입자. 언제나 낯선 그 느낌을 가로질러 잔을 집어 올리고 난방을 켰다.

커피는 바쁘다는 게으른 핑계로. 그보다, 어디 있는지 모르는 커피필터에 대한 핑계로 성실히 마셔주지 않아 향이 옅었다.

잔에 부딪히는 여운에 뒤늦은 감상을 해보고 안타까운 기분에 빠져든다.

처음에는 아까워서 그랬다. 선물이니까.

게다가 원두로 가득 찬 봉투의 모양이 예뻐서 힘껏 마시지 못했었다.

알알이 귀여운 콩들로 볼록한 모습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향이 나지 않는다는 절망감에 물대신 습관처럼 두어 모금하고는 방안의 화초에게 권해주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무언가 사라진다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이 싫어 붙잡고 있다 한들, 변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커피의 향이 날아가는 것처럼 삶을 살아가다 보면 피치 못하게 흘려 보내야하는 것들이 있지만, 정아는 그런 것들을 대하는데 서툴다.


커다란 담요를 걸치고 오전 내내 뒹굴던 침대에 뒤엉켰을 머리를 대충 흔들어 정돈한다. 커피잔을 개수대에 놓아둔다.

점원일은 월요일 휴무, 금요일과 일요일은 사장과의 교대일이라. 정아는 일주일의 반절 정도 되는 시간을 이렇듯, 아주 너그럽게 보낸다.

출근을 한다고 해서 시간에게 볼멘소리 할 일도 없지만. 아무튼 오늘은 월요일이니 정성을 다해 즐긴다.


#오후햇살_ 제1-1 장


15
댓글
패스워드 패스워드를 입력하세요.
자동등록방지키
 92408916   자동등록방지키를 입력하세요.
나는 실은 어제 영화 보러 제주도에 간 게 아니다 적어도 주부는 되지 않을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