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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불임의 땅
리세.첸 2020-01-18 11:59:30 조회 : 54
꿈을 꾸었다.

언제 적인지 기억나지 않던 시절. 풀밭에 누워있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는 평온함이 깃들었던 날들. 커다란 인형을 안고. 뜨끈한 털 속에 파묻은 고사리손을 꼼지락거리며 맛있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잠이 많은 건 그 시절 때의 습관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다소 게으르고 조금은 멍한 것이 자신의 참 모습이라고. 그러니 잔소리는 올 스톱. 단골 꿈에 왠지 반가운 느낌이 들어 미소를 짓는다. 잠시 깨어난 김에 오후 햇살을 감상하다 또 다시 잠에 빠져든다.



아침에 눈을 뜨자, 무료함이 느껴졌다. 자리에 앉아 멍하니 창밖의 풍경을 감지해본다.


화들짝 놀랄 만큼의 햇살.

빛의 농도가 굉장히 강한 날이었다. 가만히 창밖을 바라본다.


무언갈 기대하지만, 역시나 오전 햇살을 젊다. 젊어서, 진정한 멋을 모르고 자신의 기량을 과시하기만 한다. 한 숨을 쉬고 침대에서 벗어났다. 여느 때와 같이 부엌으로 향하지만, 굉장히 모호한 기분이 든다. 목을 축이기 위해 냉장고 문을 잡고 한참을 서 있다가 가까스로 결론을 내린다. 이 부엌에 정아가 원하는 것이 없다. 곰곰이 고민을 해보았다. 달콤한 것이 먹고 싶다. 사탕 한 알 까먹고 침대에 들어 누울까 하다 외출을 하기로 한다.


스카프를 둘둘 두르고, 빌라 입구의 문을 열고 한 발자국 밖으로 나갔다.

낯설어진 햇살 아래서 망설이는 정아에게 본능이 속삭였다. 어제와는 다른 세상이라고.


머뭇머뭇 한 걸음씩 나가 말간 공기에 손을 대고, 가만히 곱씹는 동안 다가온 보송보송한 바람의 개구진 손이 스카프 끝을 당겼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그 계절이 영원할 줄로만 알았다. 세상을 불임의 땅으로 가둬두고 있던 그 겨울 바람이 어린 새끼를 치다니. 일종의 배신감이 들었다.

끝이 나지 않을 거라 믿은 겨울 바람에 잔뜩 웅크리고 지냈다는 것에 속에 불편한 알맹이가 느껴졌다. 바람은 제멋대로 돌아다닐 뿐인데, 그 바람 때문에 정아만 줄곧 외투 속에 갇혀있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하루 하루가 지나가길 바라며.

하늘을 향해 나풀대는 스카프 끝을 바라보았다. 짙은 보라색 천에 숨어 있던 꽃무늬가 힘찬 빛 아래 모습을 드러내는 바람에 이를 거두어들여 다시 둘둘 목에 두르고 애써 걸어 나아갔다.


영원 같던 겨울이 떠난자리. 기지개를 켠 봄이 정아의 마음을 헤집었다.


#오후햇살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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