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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아주 잘맞는 한 쌍
리세.첸 2020-01-18 12:03:50 조회 : 67
거실에 쪼그리고 앉아 유심히 식물상자를 들여다보았다. 겨울 동안에도 싱싱하고 단단하게 자라 서로 이리저리 뒤엉켜 있는 꼴이 제법 친해보여 뿌듯했다. 정아의 식물들은 유난히 무성하게 자란다. 가지치기처럼 심미적 목적을 위해 식물을 해치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는 것도 한 몫을 할 것이다. 어쨌든, 눈치를 보지 않고 잎과 가지를 힘껏 뻗는다.

조심조심 다치지 않도록 하나씩 식물 상자에서 꺼냈다. 정아의 곁에는 이미 각양각색의 새 집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벌써부터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흙을 보고 문득, 거실 가득 흙으로 채우고 식물을 심으면 실내 정원이 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실에서 맨발로 풀을 밟고 다니는 삶을 상상해보았다. 꽤 만족스러웠다.


한참을 생각 속에 떠돌고 있는데, 초인종소리가 정아의 어깨를 두드렸다. 오늘은 금요일. 애인이 오기에 마음껏 흙을 만질 수 있다.


“좋아보이네 오늘”

인사로 부드러운 키스를 나눈 뒤 애인이 말했다.

그 반짝이는 눈빛에 오랜만에 애인을 만난 날이 떠올랐다. 유유자적 홍콩에서 지내던 시절로 정아는 식물 상자보다 몇 배는 더 복작복작한 타임스퀘어 난간에 기대어 있었다. 낯선 말들이 귓가에 맺혔다 사라지고, 하필 점심시간 즈음이어서 멀미 기운마저 느끼고 있어 한참을 난간에 기대어 있었다. 그런 정아 곁으로 지금의 애인이 다가왔다.

“한 세 시간 정도 기다려줄 수 있어요? 저쪽으로 가면 카페가 있는데.” 상당히 벙쪄있었을 표정에 그가 턱이 강한 웃음을 지었다.

“난 일주일 기다렸단 말이에요. 자 이 이거요.” 다짜고짜 카페 상호가 적힌 차가운 음료를 정아 손에 쥐어주고는 달려가며 손을 손을 흔들었다. “이따 봐요!”

음료까지 떠넘긴 탓에 별 수 없이 카페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할 일이라곤 앉은 자리에서 둘러보는 것 밖에 없어 천장을 향해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가 올 시간이 다가오며 그런 건물 안에도, 오후 햇살이 들어오는 것이 신기했었다.



“분갈이 하나보네.” 애인은 커다란 손으로 정아의 얼굴에 묻은 흙을 털었다. 그러고는,

“나. 휴가 받았어.” 아주 중요한 소식을 전했다.


“정말?” 잔뜩 들뜨자 애인의 팔이 허리를 감쌌다.


“정말." 확답을 해줬다. "언제쯤 떠날까?”


“음. 조금 더 따뜻해지고?” 한껏 미뤄두고 싶었다. 그러면 그 기대감까지 합해 시간이 늘어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좋아. 준비하고 있어.”

“응.”


신이 나서 다시 화분을 향했다. 애인은, 겉옷을 벗어두고 팔을 걷었다. 조금 후 청소도구를 챙겨들고 정아를 지나 베란다로 나가 덧문은 닫아두고, 큰 키를 돋보이게 팔을 쭉 뻗어 유리창을 닦기 시작했다.

분명 이 남자는 알고 있는 것이다. 정아가 얼마나 그 멋진 등을 좋아하는지.


문틀을 프레임 삼아 애인을 잠시 감상하다 얼른 화분을 정리하고 그가 먹을 점심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손놀림에 최대한 박차를 가했다. 맛있게, 그리고 많이 만들어서 애인이 그 강한 턱으로 식사를 하는 모습을 오래도록 구경할 것이다.


유리창을 온통 반짝반짝하게 만들어준 애인이 손을 털어고 땀이 나는 것도 아닌데 습관처럼 하는 남자들만의 그 동작도 잊지 않았다. 그 광경에 정아가 그릇을 들고 활짝 웃었다. 성황리에 집안 단장을 마치고 거실 소파에 나란히, 조그마한 그릇 하나씩 들고 앉았다. 새하얀 요거트에 꿀을 넣어 한 입씩 떠먹는다. 애인에게 반쯤 기대어 있자니 몸의 허기 또한 충족되는 기분이었다.


“그 때 홍콩에서, 어쩌다 날 발견한 거야?”

문득 궁금해졌다. 말했듯이. 정아는 이따금 피서차 타임스퀘어를 들릴 뿐이었는데 그걸 지켜봤다니.


“뭐. 비즈니스차로 온 사람들이나, 관광 온 사람들 보면 다 부산스러운데. 당신 혼자 다른 시간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다른 차원에 있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가 웃으며 디켄딩 해둔 와인을 한잔 따라주었다. 정아는 ‘조금 더’란 표정을 담아 애인을 응시한다.


“음. 이런 말 하면 웃기지만... 꼭, 먼지 같았어.

왜, 학교 다닐 때 보면, 오후에 유난히 먼지가 떠다니는 게 보이잖아. 다른 것들은 전부 공중에서 떨어져버리는데, 대책 없이 그렇게 떠다니는 게 어이가 없었지. 같은 반 누구와 너무 닮아서.”

애인이 히죽히죽 웃었다. 그 눈빛이 한결 같이 첫사랑을 하는 소년에 머물러 있었다. 먼지처럼 흩어진 정아의 시간과 달리, 애인의 시간은 모래시계 속에 갇혀있다.


그런면에서 정아와 애인은 아주 잘 맞는 한 쌍이다. 이건 친구도 인정한 부분이다.


학창시절. 정아는 오후 햇살에 떠도는 먼지를 참 좋아했다. 그리고 아직도 꾸준히 좋아하고 있다. 멋대로의 속도를 유지 할 수 있는 것을 시샘하며.


“나 누군지 알겠어?”

정말로 세시간 뒤 나타났던 그. 방금 전 보았던 눈빛, 그리고 교실 옆자리에서 정아에게 흘린 그 눈빛을 고스란히 하고 있던 애인은 정아와 중학교 동창이다.


애인의 말대로, 정아는 오후 햇살에 떠도는 그 느긋한 먼지와 같은 삶을 산다.

시간에 몸을 띄우고, 갈 곳 없이 부유한다. 멋진 표현으로 가둬준 애인에게 키스를 했다.

#오후햇살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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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의 땅 산뜻한 늦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