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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소윤이
리세.첸 2020-01-25 16:00:57 조회 : 136
무모할 정도로 큰 밀짚모자를 쓰고 애써 발걸음을 재촉했다. 급한 일에 익숙치 않아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진즉 딸기맛 키도우를 사두지 않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실망한 소윤이의 얼굴을 볼 수 없어 정아가 탐탁치 않아하는 백화점까지 가봤지만 소용 없었다. 아침에 무슨 자신감으로 그로셔리에 갔는지. 그 날 유독 눈에 띄였던 그 과자를 주인장이 또 마련해뒀으리라는 보장도 없었으면서. 이렇게 성의없이 약속을 어긴 자신에게 화가 났다.

너무 미안한 나머지 근처에서 가장 맛있는 빵집까지 뛰어가 빵을 한 아름 사들고 나왔다. 사람이라 해봤자 소윤이와 정아, 그리고 동생 밖에 없으면서 굵직한 바게트 한 덩이에 딸기잼까지 소윤이가 좋아할 만한 건 일단 다 넣었다. 겨우 버스정류장에서 내리자, 기가막히다는 듯 입을 벌린 동생과 활짝 웃고 있는 소윤이의 모습이 보였다.


“미안해 소윤아. 이모가 나빴어. 딸기 맛. 못 사왔어.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아이의 눈높이까지 주저앉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딸기 없어?” 동그란 눈망울이 정아를 또렷이 바라보았다.


“응. 가게에 갔는데. 없었어.”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에 마음이 넓은 소윤이는 금세 이해를 하고 정아의 손을 잡았다. 그 작은 손이 정아는 너무도 고마워 감격스러웠다.


“무슨 소리를 또 하는 거야…

그리고 언니는, 뭔 빵을 이렇게 사왔어? 누가 보면 빵장사 하러 나온 줄 알겠네.”


“소윤이 빵 좋아하잖아.”


“으이그. 언니도 참. 못 말린다 정말. 애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가만 보면 애랑 생각하는게 똑같은거 같아?”

동생의 핀잔에 정아는 할 말이 없어졌다. 자신은 충분히 어른이다. 혼자 독립해서 살고, 언제고 와인을 마시고, 애인이 있는 어른이다. 그런데도 동생은 언젠가부터 정아를 어린애 취급한다. 그것도 소윤이 나이쯤으로. 그래서 동생을 자주 만나지 않는다.


하늘이 뚫린 풀밭에서 돗자리를 펴고 앉으니 소윤이가 한층 즐겁게 조잘댔다. 정아도 즐거웠다. 둘은 아직 점심도 먹지 않은 채 드러누워 아득한 하늘 아래 눈을 감는다. 정아의 동생이 옆에서 도시락을 하나 둘 펼쳐냈다.


“어쩜 그렇게 똑같아 둘이?”

동생의 말에 소윤이가 정아의 품으로 데굴데굴 굴러들어왔다.


“아무래도 쟤는 동경의 대상을 잘못 찾은 거 같다” 동생이 농담조로 말을 흐렸다. “진짜 언니처럼 될까봐 무섭다니까. 솔직히. 너무 닮으면 좀 그렇잖아?”

동생의 말이 품은 어감을 이해 할 수 없었다. 그건 엄마의 말에서도 종종 듣는 것이었다. 성장을 쭉 더듬어보면, 너무 투쟁이 많아 닮지 않기 바라긴 하지만, 동생은 분명 다른 의미일 것이다.


“그래도 거의 아빠를 닮아서. 알아서 잘 하겠지. 근데 내 애지만, 날 닮은 구석은 하나도 없는 것 같네.” 아줌마 같은 시덥지 않은 농담을 해가며 동생은 방정맞게 웃었다.

그 바람에 너무 당혹스러워진 정아의 손끝이 오돌토돌해진 느낌이었다. 웃음소리 마저 바뀌어버린 동생은 정아가 들어가보지 못한 어떤 무리의 획일적인 구성원으로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런 동생의 입에서 ‘언니’라는 말을 듣는 것이 어색했다.

그 무리들은 정아보다 나이가 많고, 감각이 뭉뚝해진 탓에 섬세하지 못하고 거친 구석이 있었다. ‘누구 엄마’라는 호칭을 쓰는 그녀들은 어설픈 정아의 손놀림에 혀를 차고 정아는 막무가내인 그들의 모습에 가벼운 구역감을 느끼는 역할극이 정해져 있는데, 언젠가부터 동생이 그녀들과 같은 역할에 몰입하고 있어 혼란스러웠다.


사실, 엄밀히 놓고보자면 소윤이는 동생을 많이 닮았다. 물론 ‘누구 엄마’가 되기 전의 동생의 모습을. 성향이 꽤 다르긴 해도, 분명 동생의 모습이 많이 있다. 그리고, 정아와 이름의 삼분의 이 씩이나 나눠가진 동생은, 또, 정아와 생김새가 많이 닮았다.

동생이 소윤이에게 집중하는 사이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얼굴을 관찰을 했다. 자매란, 본래 비슷한 형상으로 태어나, 각자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 아닐까. 비슷한 얼굴에 가득 찬 다름 때문에 이질감을 느낀다.


자리를 잡자 동생이 야심차게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사람은 밥, 소풍은 김밥이란 엄마의 공식을 그대로 이어받은 그 배려 없는 식단에 종이봉투에 비쭉 튀어나와있던 바게트로 손이 갔다. 엄마의 손에서 벗어난 상황에서 또 다시 그걸 입에 밀어넣고 싶지 않았다.


“언니도 참. 간식부터 먹으면 어떡해. 언니는 그렇다 치더라도, 소윤이는 밥을 먹어야지. 습관 되잖아.”

동생의 말에 소윤이를 쳐다보았다. 김밥통을 보자 아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있었다.


“소윤아, 김밥 하나만 먹자? 응? 아이 건강하다” 이것저것 뭉쳐있는 밥을 내밀자 소윤이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얼른 안 먹어? 이거 안 먹으면 곰곰이 안 보여준다?” 역할만이 남은 동생의 목소리에 속이 불편해졌다. “엄마 화낸다? 이거 김밥을 먹어야 이모 빵 먹을 수 있어. 빨리.”

아이의 얼굴이 거의 울상이 되어버렸다. 이런 걸 보면 엄마란 참 미련 맞은 존재가 아닐까. 싫다는데, 굳이. 엄마가 되면 아이에게 자신의 규칙을 강요하게 되어있는 건가. 아니면 동생이 엄마의 분신이기에 그런걸까. 어느 쪽이든, 아이에게 너무 가혹한 환경이라 입을 굳게 다물었다.


“소윤아, 한 입만 먹고 이모랑 빵 먹자.” 계란만 쏙 골라내 먹이며 아이를 구해냈다. 어떻게든 아이를 보호해야했다.

“내가 못살아. 정말. 언니가 이러니까 애 버릇이 잘 못 드는 거잖아.”


동생은 단단히 질투하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동생은 엄마의 역할을 그다지 즐기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저 정아의 엄마이자 동생의 엄마인 엄마의 손에서 배운 엄마의 모습이 이런 것일 뿐. 그래도 정아가 사온 빵 중에는 ‘건강한’ 샌드위치도 있어 합법적으로 김밥을 무시할 수 있었다. - 동생이 말하는 ‘건강’은 영양균형을 뜻한다. 샌드위치 하나를 나눠 먹고, 동생이 돗자리에서 독서로 교양을 쌓는 동안 정아와 소윤이는 공원 곳곳을 구경하며 놀았다. 자칭 ‘아줌마’가 되고난 후로 동생은 책을 읽거나 친구 만나기와 같은 활동은 교양이자 사치라며 생색을 낸다. 핀잔을 놓고 싶었지만, 관두기로 했다.


“꽃 아이 예쁘다!”

“응, 예쁜 꽃이네. 우리 여기 앉아서 실컷 구경할까?”


정아의 화답에 아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윤이와 꽃을 들여다보던 정아는 꽃잎보다도 결이 고와보이는 머리카락으로 뒤덥힌 아이의 정수리로 눈길이 갔다. 한참을 구경하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조심히 만져본다. 놀라울 정도로 작은 몸에서 촉촉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이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정아는 절대 다른 아이를 가까이 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정아에게 유일한 아이인 소윤이를 예뻐하지 않는 거라고. 촉촉하고 따뜻한, 정말 자그마한 머리통에는 마음속의 아련함을 피워내는 힘이 있었다.


딸기를 먹는단 생각에 소윤이가 노래를 불렀다. 허기를 느낀 두 사람은 돗자리로 돌아가 예정된 바게트를 해치우기로 했다.


“그것도 못 열어? 운동이라도 좀 해봐.” 야심차게 준비한 잼 뚜껑을 열지 못해 씨름을 하자, 동생이 휙 가져가서는 단숨에 열었다. 억울했다. 정아도 종종 운동을 하고 있는데, 지난 달 전시 때문에 기운이 빠져서 바로 열지 못했을 뿐이라고.


“언니. 애한테 바게트는 딱딱하잖아. 소윤아, 여기 부드러운 빵 먹자.” 동생의 종용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이거 딱딱해서 아야 해요.”


믿는 구석이 있는 아이는 제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제 몸만한 빵을 탐내며 버텼다. 정아가 크게 찢어 바게트 한 덩이 두둑하게 안겨주자, 정아에게 배운대로 속을 파서 잼에 찍어 먹기 시작했다.

“내가 못 살아...” 쫀득쫀득한 속만 파먹는 두 사람의 침착한 모습에 동생이 고개를 저었다.


양껏 즐기고, 먹고 나자 바람이 서늘해질 때 쯤, 동생이 돗자리를 거두기 시작했고, 셋이서 나란히 정아를 배웅하러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동생은 차를 가져왔기 때문에 배웅 받는 건 정아 쪽이었다.


“데려다 준다니까?”

“아냐. 버스 탈거야.”


“고집은... 어, 전화 오네? 여보세요?” 동생이 '잠시'라는 손짓을 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아 여보. 으응. 이제 소윤이랑 집에 가려고.”

동생이 정신 팔린 사이 정아가 탈 버스가 다가왔고, 통화를 하는 동생과 어정쩡하게 작별을 주고 받고,

“이모 갈게.”하고 소윤이에게 인사를 했다. 정아의 손을 잡고 있던 아이의 작은 손가락을 풀고 짧게 안아보았다.


때에 물든 칙칙한 버스 좌석. 역시나 지저분한 창밖에는 아직도 새파란 하늘이 공허하게 펼쳐졌다. 다가 갈 수 없는 그 푸름이 너무도 야속하게 다가왔다.


나 참.


턱이 강한 웃음을 짓는 예쁜 소윤이. 촉촉함이 가시지 않은 손바닥을 가만히 매만졌다.


#오후햇살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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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뜻한 늦봄이었다. 배정받은 그 미소의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