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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알록달록 새 그림
리세.첸 2020-02-08 14:38:47 조회 : 146
잔뜩 짜증이 오른 정아가 빈 과자 팩을 쓰레기통을 향해 던졌다. 덩치도 큰 주제에 제대로 뻗지도 못하고 손바닥에 엉켜 침대가로 떨어져버리는 한심한 꼴에 정아가 다시 이불을 뒤집어 썼다. 잠을 잘 것이다. 잠을 자면 이 일은 없던게 될 수 있다.

몇 해 전부터 장마가 제대로 찾아오질 못하고 있긴 했는데, 이번에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팽팽한 태양만이 하늘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 탓에 정아의 뼈에 붙어있을 고름도 팽창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비가 오길, 자고 일어나면 먹구름이 다가오길 빌었다. 샐 기미가 확인되지 않는 하늘에 기적처럼 잿빛 구름떼가 나타나길 빌었다.

정아의 신경에 멍 자국을 낼 뿐인 다른 계절의 비와는 달리, 사정없이 내리치는 여름 장마는 정아의 몸에 낀 그 고름을 짜내주었다.


그런데 그 장마가 올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지만 비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태풍이 한국까지 오지도 못한 채 바다 한가운데서 꺼져버렸다는 암울한 기사 몇개만 확인될 뿐, 새로이 다가오는 태풍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덤으로 뒤늦게 온 애인의 부재중 기록 세개가 침대 끝에 있는 과자 포장지처럼 정아의 휴대전화 한 곳에 박혀있었다.


정아가 이불을 걷고 앉았다.

이렇게 하늘에게 갱년기가 와버린 것일 모른다.

영영 장마가 오지 않고 비릿한 비만 산발적으로 뿌리는 그런 시기가 와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정아는 여름 출사조차 허락되지 않는 영원한 겨울에 갇혀버리게 될 것이다.

절망감에 커튼을 젖혀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철없는 근육을 자랑하고 있었고 정도를 모르는 해의 모습에 정아가 눈쌀을 찌푸렸다. 벌써 보름 째 조식과 방울토마토 몇 알고 과자 정도로 버티고 있어 몸에 기운이 별로 없었다.



하루를 더 버틴 정아는 결국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을 했다.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건물 밖으로 나섰다.


바깥 공기로 나서는 것은 마치 물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 같아 이불 속에서 꿈을 꾸고 있을 때 보다 비현실적이었다. 몸을 조여오는 뜨끈한 습기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저녁 거리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모두, 조금은 들떠보였다.

매마른 땅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눈에 보이는 동네 마트까지 가보기로 했다. 거리에는 여기저기에서 스며나는 음식냄새로 정신이 없었다. 약간의 후회가 밀려왔다. 조금 더 늦게, 아니면 조금 더 일찍 나올 걸. 가뜩이나 밀도 높은 공기가 더욱 갑갑해진 것 같았다.


천천히 길을 가던 정아가 잠시 고민하고 빨간 수레 앞에 섰다.


“하나 주세요.”


“서울 사람인가 보네.”


“...네.” 어서 이 대면이 끝나길 바랐다. 조금 더 노력해서 공기도 시원한 어떤 빵집이라도 찾아 들어갈 걸 그랬다.


“예까지 와서 왜 혼자 다니고 그래요?” 상인은 강한 억양으로 빵을 벌리며 괜히 말을 이어갔다.


“애인이랑 엄마한테 버림 받았어요.”

막상 말은 했지만 바깥 더위에 지친탓인지 웃음은 지어지지 않았다.



“아이고, 길 잃었나보네? 길은 찾겠어요?” 호떡을 건네주며 물었다.


“글쎄요. 모르겠어요.” 답을 하고 해바라기씨가 흩어지는 컵을 받아들었다.


"하긴 무슨 서울 사람 걱정을 해." 너스레에 적당히 인사를 해주고 마트 간판을 향해 걸었다.


후덥지근한 공기보다 더 뜨거운 컵에 삐져나온 빵 끝을 베어물었다. 입안에 겉도는 기름과 튀긴 빵조각을 씹어어 넘겼더니 곧 몸 여기저기서 약간의 기운이 도는 것이 느껴졌다. 간판까지 무사히 도착해 다시 돌아갈 힘은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유유히 바다냄새를 지나는 정아의 가방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한 동안 무시하고 걸었더니 다행히도 그 거슬리는 느낌이 끊어졌다. 어딘가로 떨어진 끈적한 해바라기씨를 털어내는데 다시 또 그 진동이 반복을 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짧게 끊어진 전화 진동이 연발적인 메시지 수신으로 변했다.


친구가 분명했다.

손을 털고 전화를 꺼냈다. 역시나 수신함에 선명한 친구의 부름에 전화를 걸었다.


"출사중?"

연결이 되자마자 친구가 물었다.


"아니 아직."


"다행이네." 정아의 사진을 가장 열렬하게 응원하는 친구는 촬영중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를 했다.


"별로 다행은 아냐." 정아가 솔직히 털어놓았다.


"왜? 잘 안 잡혀?" 친구의 목소리가 심각해졌다. 친구이자 동지이기에 친구는 이 사태의 무게를 가늠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있어." 가게 앞의 파란 봉투에 호떡이 든 컵을 버렸다.


"왜, 뭐가 마음에 안들어?"


"너무 안 들어." 정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비가 안 와."


"...비?" 곰곰히 생각을 하는 친구가 침묵을 했다.


친구조차, 정아가 그 동안 무엇을 찍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현상을 하지 않았으니까. 동지이기에, 친구는 그저 정아가 어떤 방식으로든 카메라를 들도록 부추겨 온 것이다.

‘치사한 기집애’라는 핀잔과 함께.


“너 그 동안 비 찍은 거야?”


“그건 아냐.”


잠시 생각을 한 친구가 입을 열었다.

“너 어딘데?”


“부산.” 친구에게 솔직히 밝혔다. 행여, 전사라도 하더라도 친구는 정아의 유해를 걷으러 올테니. 그리고 정아도, 친구가 부서지는 일이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걸 뒤로 한 채 친구에게로 갈 의무가 있었다.


“...기다려봐.”

한 참을 끊어지지 않는 전화를 들고 어수선한 마트로 들어갔다. 한 손에 때묻은 바구니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귓가에 전화를 든 채. 몸을 채워줄 무언가가 있길 바라며 천천히 둘러보았다.


“비 얘기가 없네...” 친구의 말에 정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태풍 얘기는 있다. 다다음주 쯤에 아래 지방에 온다는데?”


곤란했다.

“곤란한데”


태풍이 지나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실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


“어쩌냐 힘들겠네 지금. 아파서.” 마치 수화기로 정아의 고름을 이어받기라도 하려는듯, 깊은 곳에서 끌어낸 안타까움이 전해졌다.


“...너 간지 보름 넘지 않았어?”


“몰라 아마 그럴걸.”


“그럼 그 동안 그냥 앓고 있었던 거야?”


“비슷하지 뭐.”


“진통 한 번 참 뭐 같다.” 친구가 대신 욕을 해줬다. “너도 편하게 찍을 때가 올만도 한데...”


“...편하면 찍지 않겠지.”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하냐.” 정아의 말에 친구가 핀잔을 놓는 말투를 했다.


“네 말대로 현상하지 않는 사진이 무슨 소용이라고.”


“그러니까 현상 좀 하시라고요, 작가님.”


“은퇴했잖아.”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그거 번복하는게 어때서… 그거 아니잖아.” 친구는 정아를 너무 잘 안다.


그게 아니라는 건 정아도 깜빡하고 있었다. 정아로서는 개의치 않는 이유지만 정아 대신 유난을 떨 타자들로 인해 은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을 친구가 상기시켜 주었다.


“그러게.”


“답답아.”


문제는 정아로서는 아직도 타자들의 유난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이 사안에 관해서는 아직도 사회는 한 가지 생각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적어도, 엄마를 둘러싼 사회에서는. 그래서, 아주 피곤한 ‘남들’은.

게다가 그렇게 사회가 어물쩡대는 사이, 정아 스스로도 그들의 시선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생겨버리고 말았다.


“미안.”

동지에게 말을 하지 않은 죄책감이 뱃속에 눌러 앉았다.

“말해줄게 언제.” 행동력이 있는 친구가 단순한 상태를 사태로 바꿀 있어서 당장은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러든가...”

약속 위반으로 이미 동지에게 죄를 지었다.


“그냥 전화해봤어. 박 교수님이 너 진짜 손 놓았냐고 나 잡고 물어보시더라.” 친구가 핀잔을 놓았다.


“박교수님 뵀어?”


“그래. 그래서 괘씸해서 전화했다.”

괘씸해서라니. 어쩐지 출사기간에 전화를 했다 싶었다.


“어쩌다 뵀는데?”


“뭐 어쩌다?” 친구가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우리 지면에서 네 전시 소식을 봐야겠니.”

상당히 토라진 목소리였다. 이것 또한 정아에게 약간의 과실이 있는 사안이기는 했다.


“그냥 돌려쓰고 있는 사진 몇 장 걸어둔거 뿐이잖아. 너도 몇 번이고 본 애들.”


“그래그래. 나도 뻔히 알고 있는 ‘애’들.” 친구의 말에 딱딱한게 만져졌다.


“내 친구 새끼들이 나들이 나왔다는데 내가 몇 번을 봤던 안 봤던 그게 뭐가 중요해?”


아직도 빈 장바구니를 들고선 정아가 알록달록한 시리얼 곽을 만지작댔다.


“나 우리꺼 그만 보내줘?” 다달이 보내지는 친구네 잡지.


“아니. 보내줘.”


“안 지겨워? 버리지도 않고 쌓아두고 있잖아.”


“어떻게 버려. ‘네 새끼’인데.” 정아도 모르게 지면을 부르던 친구의 말투를 따라했다. 애틋함이 가득한 그 말투.


“그러니까. 새 거 내놓으란 잔소리 그만할게. 그러니까 전시할 때 좀 알려줘.”


“...알았어.”


“내가 작가 친구인데 회사 이름으로 가야겠냐고.”


“알았다니까.”


“간만에 괜찮은 소식이네.” 친구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 있어?” 정아도 모르게 물었다.


“...그냥.”이라며 말을 아끼던 친구가 가볍게 털어놓았다.

“나 유산했어. 엄밀히 말하자면 수술.”


시리얼 상자의 주인공이 된 알록달록한 새. 매끈한 상자 표면에 맞춰 매끈한 깃털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지금 어딘데?”


“병원.” 간결한 답과 추신. “올 생각하지 마.”


“그래도.” 그래도 동지의 일인데.


“올래면 몸 다 풀고와.”

단호했다. 친구의 단호함은 존중해주는 것이 맞아 정아에게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누가 있는 거야?”


“아니. 너만 알고 있는 거야.”


“남편은?” 그래도 알 의무가 있으니까. 부주의에 대해.


정아의 물음에 친구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 자식 스텔싱하고 있었어.”


시리얼 상자 하나만 수저를 들고 있는 새에 테이프로 칭칭 감은 그릇으로 가려져있어 얼굴은 보이지가 않았다.


알록달록 새 그림.

환한 조명 아래 얼굴을 그릇으로 덮고 있는 걸 보니 많이 울고 있을 것 같아 아무도 보지 않도록 안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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