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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테스터
형람 2017-04-20 23:25:11 조회 : 582

애들이 병원에 가야 할만큼 아플땐 쉬는 날이거나 한밤 중이라서 응급실 신세를 진다. 평일에 아프면 얼마나 좋을까. 헐레벌떡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갈때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지만 응급실 병원비를 내고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올 때면 그런 생각이 든다. 혹시 아빠가 집에 있을 때까지 아픈 걸 참고 기다리는 건 아닐까. 아빠가 집에 있는 날은 병원도 쉬거나 한밤중이니까. 

시골이나 도시 변두리에 사는 서글픔이 있다. 감기로 병원에 가는 것도 큰 일이다. 필요한 걸 얻기 위해서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어쩌면 집세를 생각하면 비용은 같을 지도 모르겠지만 애초에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갖추어진 도시에 사는 건 처음부터 계획에 없었다.

머리를 자르러 시내로 간다. 머리를 자르는 일은 항상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맘에 드는 미용실을 찾았을 때는 그 스트레스가 반으로 줄어든다. 머리를 잘 자르면 삼주에서 한달은 머리에 신경 쓰지 않고 살아도 된다. 그래서 머리를 자르러 시내로 간다.

돌아오는 길에는 임신테스터를 사가지고 와야 한다. 쉬는 날이라 아파트 앞에 있는 약국이 문을 닫았다. 그러고 보면 임신테스터를 계속 내가 사가지고 온 것 같다. 그걸 사오는 건 남편이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처음 임신테스터 를 사러 갈 때는 내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았다. 잘못은 아니더라도 큰 일이긴 하다. 남의 일도 아니고 내 일이기도 하고.

어쩌면 이번에는 내 잘못인지도 모르겠다. 둘째를 낳고 나서 아내는 나에게 계속 정관수술을 할 걸 요구했다.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수술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기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어 왔었다. 미뤘다는 말은 거짓인지도 모르겠다. 결정한 적도 없었으니까.

결혼하자 마자 신혼여행에서 첫 애를 가졌다. 신혼의 달콤함은 출산과 육아의 막중함에 묻혀버렸다. 첫째는 태어나서 침대의 아내의 옆자리를 차지했고, 나는 방바닥으로 밀려났다. 애가 크고 이제 좀 사람 구실 좀 하나 싶을 때 둘째를 가졌다. 둘다 아기를 낳고 키우는 걸 다 잊는 바람에 처음부터 다시 하는 기분이었다. 몸에 익었던 것을 잊은 후 다시 익히는 건 정말 곤욕이다. 아예 처음부터 모르는 거면 힘든지도 모르겠지만 알기 때문에 더 힘들기만 하다. 

둘째는 태어나서 방바닥을 차지했고 아내 역시 함께 내려왔다. 첫째 혼자 퀸 사이즈 침대를 휘저으면서 잠을 잤고 나는 거실로 쫓겨났다. 그런데 그게 잘된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아내가 애 둘을 재우고 나오면 우리는 사랑을 나눴다. 너무너무 좋았다. 단지 횟수로 따져도 결혼해서 둘째가 태어나기 전보다 둘째가 태어난 후가 훨씬 더 많았다. 일 마치고 늦게 들어와도 아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이 잠든 밤은 천국이었다.

우리 둘 다 둘째가 끝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은 우리의 능력 밖이다. 하지만 함께 사랑을 나누는 게 좋았고 정관수술을 하는 건 매우 합리적이다. 그런데 왜 나는 수술을 안 했을까. 사실 수술할 시간적 재정적 여유가 없었다. 일하러 가느라 애들을 볼 시간도 없었기 때문에 애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주말을 놓치기는 너무 아까웠다. 가계부를 쓰지는 않지만 정관수술비용은 어떤 항목으로 들어가게 될까. 취미생활이지 않을까. 수술할 돈이 있으면 맛있는 걸 사먹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둔해서 변두리에서 빡빡하게 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셋째를 바라고 있는 걸까. 애 둘을 키우면서 힘들지 언정 싫은 적은 없었다. 가장 뿌듯한 순간은 큰 애를 업은 채 작은 애를 안고 설겆이 하는 아내를 방해할 때다. 애들에게서 나와 아내의 모습을 발견하는게 좋다. 나와 아내의 장단점들이 묘하게 믹스되어 내 삶 속에 들어온다. 괴롭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대체로 좋다.  셋째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다. 난 장남인데 항상 셋째의 삶을 살고 싶었다. 첫째의 책임감도 둘째의 열정도 아닌 자유로운 셋째로 살고 싶었다. 나를 닮은 셋째가 세상을 어떻게 살지 궁금하다. 

물론 셋째를 키울 여력은 없다. 1년짜리 계약을 두번 채워서 이제는 실직 중이다. 아내에게 셋째를 갖자고 당당하게 말할 처지가 아니다. 아내는 몸도 약해서 둘을 키우는 것도 버거워 보인다. 셋째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내가 문제다. 이력서를 다시 쓰고 면접을 보는 일은 이제는 정말 스트레스다. 이제는 면접관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물론 그 여유는 면접관의 표정을 읽으면서 이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내가 아님을 깨닫는데 주로 쓰인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구인광고를 보면 내 자리가 없다. 무슨 일이든 버텨내고 할 패기도 없고 그렇게 보이기 위해 애쓸 에너지도 없다.

미용실에 도착했다. 안 열었다. 한달에 한번 있는 정기 휴일이다. 미용실이 일요일에 쉴 거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미용실도 남들 쉴 때 한번은 쉬어야 하겠다 싶다. 언제부터 이런 정기 휴일이 있었나 싶지만 잘 하는 일이라 싶다. 집에서 나올 때 큰 애가 부탁한 가면을 사러 문구점에 갔는데 거기도 쉰다. 두번 째 허탕이다. 허탕치다 보니 약국에 들러야 한다는 것도 까먹었다. 임신테스터를 사기 위해 문을 연 약국을 찾아다닌다. 심지어 종합병원 앞에 있는 약국들도 열지 않았다.

겨우 문을 연 약국을 찾았다. 이제는 임신테스터를 달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내가 생각하기에 말이다. 약사가 뭐라고 물어본다.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물어보았다. 생리예정일이 지났는지 물었다. 예 라고 바로 대답하긴 했지만 당연한 걸 왜 묻는지 모르겠다. 뭔가 다른 용도로 임신테스터를 구하는 사람이 있는 건가 궁금하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그거를 사왔다고 알린다. 집에 들어오는 아빠의 손에 지극한 관심을 두는 애들이라 약국 옆 빵집에서 사온 빵으로 관심을 돌린다. 아내도 관심없는 척 하더니 조금 있다 물어 본다. 그거 어디 있냐고. 나는 대답했고 아내는 그거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나는 화장실 앞에서 서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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