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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읽는 우리, 가지런히 듣는 우리(문학몹333 낭독회 후기)
관리자 2018-04-27 14:59:58 조회 : 364

글쓴이: 박선우


그날은 여러가지가 급하게 돌아가던 날이었다. 늦잠을 잤고 합정역 까페에 가자마자 저녁을 먹기 전까지 급하게 마무리 지어야 할 글을 썼다. 결국 저녁을 먹은 뒤 시계를 보자 행사 15분 전이었다. 덕분에 합정의 고요하면서 복잡한 골목길을 뛰어서 이동해 행사가 열리는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땐 숨이 가빠져 있었다. 이름을 확인하고 자리에 앉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이날 열린 행사는 〔문학3〕에서 3월을 맞아 준비한 ‘문학몹333’ 중 둘째날 열린 ‘뭐라도 읽는 저녁’이라는 이름의 낭독회였다. 낭독회의 주인공인 망원글방은 이십대 이슬아 작가와 삼사오십대 여성들이 모여 ‘일요일 저녁마다 뭐라도 쓰는 모임’이었다. 그들은 글을 가슴에 품은 채 살아오다가, 혹은 언니를 따라서, 아니면 그냥 이슬아 작가의 만화와 글이 좋아서 모이게 된 사람들이었다. 각기 모인 이유와 동기는 달랐지만 모두가 글쓰기를, 이 모임을(그리고 우리 이슬아 선생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낭독 내내 절절하게 느껴졌다. 나는 책자를 읽자마자 ‘이런 평화롭고 아름다운 문학공동체라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조금, 예전엔 박완서와 조정래를 좋아했던, 지금은 인터넷 소설을 매일 밤 자기 전 열심히 읽는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 또래의 여성분들이 무대에 오르고 그 생각은 더욱 진해졌다. 시간이 조금 상냥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첫번째 낭독자였던 김응미 씨가 쓴 「나는 어떻게 호명되는가」가 낭독되는 동안 좌중에선 웃음이 이어졌다. 특히 김응미 씨가 사투리로 자신을 부르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그렇게 다정할 수 없다며 ‘응미씨!’ 하고 흉내 낼 때면 실제로 귓가에 들리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낭독회가 시작되기 전 굳어 있던 분위기는 ‘응미씨!’ 한번에 따뜻하게 풀어졌다. 조금 딱딱했던 자세들이 무너지고 서로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김응미 씨는 어렸을 때부터 대충 지어진 것 같은 자신의 이름이 그렇게 싫을 수 없었다며 아들을 낳고 아들의 엄마로 불리자 오히려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의 이름은 10원짜리 같았는데 100만원을 주고 작명소에서 지은 아들의 이름으로 불리자 기분이 좋았다고.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자신을 부르는 그 아저씨의 음성은 좋았다는 말이 역시 왠지 모르게 공감이 되었다.

이어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유년시절에 대한 이야기,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정확한 제목과 낭독자의 이름은 희미하지만 유년시절에 관한 글 역시 가슴에 오래 남는다. 아이가 누운 채 문밖을 바라보며 거미줄에 매달린 물방울을 바라보는 묘사와, 아이의 외로움을 모르는 형제들과 아버지에 관한 문장들이 기억에 남는다. 낭독자는 수첩 뒤에 그림을 그려놓았는데, 그림책처럼 낭독과 잘 어우러져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낭독이 진행되는 동안 많이 떨려했던 낭독자의 목소리, 그리고 후련한 표정이 선명하다. 엄마가 된 자신에 대한 글을 쓴 분은 이 자리에 아이를 데려왔다며 사람들 앞에서 엄마가 직접 쓴 글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억지로라도 데려왔다고 이야기했다.

준비된 이야기가 끝나고 낭독자들의 ‘우리 선생님’ 이슬아 작가 역시 짧은 인터뷰와 낭독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작가는 초등학생이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해 죽겠는데 글방 멤버들에게 처음 선생님이라고 불렸을 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고 웃었다. 연재 중인 『일간 이슬아』의 한 부분도 읽어주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엔 실화인 줄 알고 그 연애 이야기에 푹 빠져 듣다가 작가의 “제 글은 픽션이다”라는 얘기에 웃음이 터뜨렸다.

곧이어 글을 준비해온 분들의 낭독이 짧게 이어지고 행사는 끝이 났다. 나는 합정역 까페에서 두시간 동안 쓴 글을 지울까 하는 고민을 해야 했다. 낭독자들의 진심으로 즐겁고 후련해 보이는 표정에 같이 행복했다. 무대의 높낮이가 없는,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수평적인 자리에서 함께 웃고 함께 들었다. 만약 행복한 문학이 따로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엄마에게 언젠가 글을 써보는 것이 어떠냐고, 오늘 이런 사람들을 만났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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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힌 이야기(문학몹333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