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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검은 개(1)
송승훈 2017-06-28 00:05:41 조회 : 180

 시커먼 축-처진 젖가슴 그리고 그의 등 뒤로 하나의 검은 문(門)이 보인다. 개를 뒤따라가는 사람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발걸음이었다.

 

공모전이다 문예지다 하는 것도 그는 더 이상 바라지 않았고 사실 그런 꿈들은 이미 오래전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목 끝에 묻어버린지 오래였다. 글에 대한 어떠한 환상도 남아있지 못하는 그에게 이제 남은 것이라고는 소박하고, 단순하게 자신의 남은 삶을 이어 나가는 것뿐이었다.

 

그는 걷는 일을 좋아해서 기분이 울적할 때마다, 그리고 그것의 구 할은 주로 점심 직후에 일이었으므로 그때마다 작은 월세방을 두드리고나와 집 주변을 배회하는 일로 자신의 침체된 기분을 상기시키려했다.

 

그는 성격 상 사람과의 대화가 원활하지 못해 이야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입을 다무는 일이 여러 번이었으며 그로 인해서인지 대화자 앞에서 스스로 이빨을 내보이는 일도 극히 적은 극도의 과묵한 사람이다. 그러나 걸을 때만큼은 중얼거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는데 우물쭈물거리며 그에게 인사를 건네는 마을 사람들 중에서도 길을 걸으면서 혼잣말을 즐겨하는 작가의 정신을 의심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배후에서 들려오는 수근거림에도 의연치 않아했고. 사실은 자신의 중얼거림에 집중하느라 듣지 못한것이다. 그러나 작가 본인은 내뱉어진 말에 대해 온갖 신경을 쏟아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말이 굉장히 초라하고 비루한 문장이라는 자괴감에 빠져있었다.

 

‘수풀은 미역같은 빛깔이다. 잎사귀는 바람에 흐느적이고 흐느낀다. 그나마 꼿꼿한 꽃과 나무의 줄기가 하늘을 보면 흘러내리는 것은 아지랑이 같은 열기의 흔적이다.’

 

이 문장들은 모두 나의 상흔이다. 이렇게 곁을 맴돌기만 하는 산책이 외견상으로 드러나지는 않겠지만, 이것처럼 문장들은 밤마다 모든 이들이 꿈꾸는 환상이나 몽정처럼 허황되고 헛된 일이다. 밤새 미망에 허덕이며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다.

허공에 손을 내저으며 망상하는 일이 웃겨서, 또 우습기 때문에 나는 눈을 뜨는 아침마다 크게 웃는다. 밤마다 나만 아는 환상에 젖고 그것이 태양 앞에 쇠락하고 있음을 뼈끝까지 새기는 것에 혼자 웃어버린다. 그런 한심한 일이 예전부터 많았기 때문에 이제는 웃을 수 있다.

 

믿지 못한다면 저 개를 보아라. 저 놈으로도 나는 웃을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 한심한 나의 배회에 동참해서 나보다도 앞서 걸어가는 저 앙상한 개를. 시커먼 터럭은 아지랑이인지 기름인지에 푹 머금어져 있고, 아니 털은 이미 태양의 열기에 타버린 것처럼 생기라고는 좀체 찾아볼 수 없는 잿더미 같다. 걸을 때마다 출렁거리는 젖가슴은 또 어떠한가. 여섯 개인가, 아님 여덟 개? 몇 개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이제는 그녀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아무튼 한껏 짓눌려진 듯한 둔덕들에게서 나는 어미개로서의 중력을 느낀다. 멍울이 검버섯처럼 짙게 배여있고 그것에게서 몇번을 빨고 물다 버린 담뱃재 같은 향이 날것만 같다.

사실이라면 담배를 피지 않는 나에게는 약간의 혐오감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금 더 초라한 생각을 해보자. 저건 때일지도 모른다. 식물인간 같은 현실이 자신으로서의 의식을 차릴 때까지 환상이라는 먼지가 쌓일테니. 나비가 나인지 내가 나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성공은 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때까지 수 십년. 피부에서 벗겨내지 못한 때는 부전나비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날개가 아름답다는 말도 원래는 다 거짓말이고 가까이 본다면 나비는 그건 단지 보기 흉한 벌레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환기가 되지 않는 텁텁한 방 위로 날라다니는 먼지들의 구십 퍼센트가 인간의 각질이라는 이야기는 믿을 만한 것 같다.

그건 이 어미개도 마찬가지겠지. 저 여자는 도대체 몇 명의 자식을 슬하에 두었는지 차라리 두 명이라면 좋았을 것을. 저 불쌍한 개는 일년의 몇 번의 수태에 걸려서 넘어지고 물리고 빨리며 늙어간 것일까. 갈수록 더러워졌고 그에 비례해서 그녀의 원래 주인 또한 그녀가 모르는 어딘가에서는 마찬가지로 초라해졌을 것이다. 나는 연기(緣起)와 쇠락을 믿는 사람이기에 인간의 몸과 검은 문(門)도 그 자체로 먼지투성이라는 점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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