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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우리들의 짧은 생애
서정현 2018-02-02 23:13:00 조회 : 426
우리들의 짧은 생애

스물여섯에 군입대를 했습니다. 그 전에는 로드스꼴라라는 학교에서 한 달에 두어번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이었습니다. 주로 십대 후반의 청소년들과 함께 했습니다.
군대에 처음 자대배치를 받고 만난 옆 배의 한 선임은 제 볼을 자주 꼬집었습니다.
"막내는 왜 나이들어도 다 막내같냐?"
저는 그때 제가 만나온 십대 후반의 청소년들을 떠올렸습니다. 그 선임이 스무 살이었기 때문입니다. 내 글쓰기 피드백을 경청하고 교정지를 받아안아야 할 너는 어째서 내 볼을 꼬집고 있느냐. 저는 이등병이었고 군대엔 제가 존댓말 해야하는 사람 투성이었습니다. 여느 이등병처럼 저도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안간힘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충성을 외쳤고 모든 행동들에 조심이 배어 있었습니다. 또 누군가의 손잡아줌이 긴급히 필요했습니다. 저는 그 선임 앞에서 귀여워졌습니다. 나이 같은 건, 그리고 글쓰기 선생님이란 직함은 내던지고 저는 성실한 막내로 변신해서 최선을 다해 '살기'를 도모했습니다. 가끔 볼이 꼬집힐 때마다 그가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인간은 나이를 셀 수 없어. 도끼나 세는 거지."
노벨문학상을 받은 심보르스카의 시 '우리 조상들의 짧은 생애'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삼십까지 사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오래사는 것은 돌과 나무의 특권이었다

그리고 중간에 이런 단락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나이를 세지 않는다
그들은
나무들, 그릇들, 오두막집들, 도끼들을
세었다

볼을 꼬집히고 나면 제 사물함에 붙여진 이 시를 읽으면서 막내생활을 버티곤 했습니다. 나이, 계급, 직업 같은 것들이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세상을 전복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언제부터 인간은 일분일초를 세며 살게 된 걸까. 인간의 감각으론 십년단위로 시간을 세야하는 게 아닐까. 그게 우리 조상들이 말하는 '대운'이었고 서구에서 'decade'라고 불렀던 단위인게 아닐까하고. 그렇게 한 시절을 '계급' 앞에서만 상대적으로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이용해 살아냈습니다.
그리고 이 년도 안되는 시간만에 저는 후임들의 볼을 꼬집어줘야 하는 선임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남성 아이돌그룹 샤이니 종현의 한 일화를 떠올립니다.
"막내가 말을 잘 듣나요?"라고 기자가 묻자 그는 "막내가 동생이라고 꼭 제 말을 잘 들어야 할 필요는 없어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문현답입니다. 왜 반항하는 후임들에게 매력을 느끼는지 모를 일이었는데 이제 알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 최고령자입니다. 계급으로도 최상위층에 속합니다. 밥도 하지 않고 빨래도 하지 않고 청소도 하지 않고 후기 로마의 귀족처럼 가끔씩 제 보직에 걸맞는 일만 하고 먹고 잡니다. 요샌 남는 시간에 제대 후를 상상합니다. 내가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을까. 혹은 글쓰기를 가르칠 수 있을까. 내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스물여덟이 되니까 많은 게 조급해지는 기분입니다. 짧은 휴가 동안 둘러본 세상은 이년이란 시간동안 또 너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그때는 볼을 꼬집어 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십년단위로 볼 줄 알게되면, 계급이 사라진 세상에서 계급의 존재를 읽을 줄 알게되면 주어진 문제를 나름 잘 해결하며 또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낙관이 마음 속에 생기니까요.
무술년 새해엔 1, 2년 먹은 나이를 세지 말고 세야 할 것들을 세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전역일을 손꼽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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