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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내무실의 소문
서정현 2018-02-09 23:39:05 조회 : 521
지난 가을 소문이 돌았다. 착한 척을 해서 모범의경이 되려고 한다는. 처음엔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점점 눈덩이가 몸을 불리듯 소문에 살이 붙었다. 착한 척을 한 것은 맞았다. 위선과 위악 중 내가 군생활의 생존을 위해 선택한 건 위선이었다. 마음대로 청사 앞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석고대죄를 할 순 없었다. 속으론 수도 없이 뻗댔지만 나는 웃으면서 명랑하게 최선을 다해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닭과 달걀의 선후싸움처럼 웃고나면 행복해졌다. 가끔 경찰서 사람들과의 즐거운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움직인다. 나는 그들의 유머나 행동들이 보여주는 전면성을 그리워했다.

그 소문을 접한 후 많은 게 변했다. 악의가 내무실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나를 겨냥한 채 누군가 깊은 숲속에서 기관총 난사를 준비 중인 것 같았다. 무성한 뒷얘기들,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공포, 정확히 주어지지 않아 극복할 수 없는 고난. 몸을 웅크리며 생각했다. ‘비극이 왜 인물들을 폐쇄된 장소에 가두고 시작하는 지 알겠어...'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도는 아버지 영조를 암살하고 왕위에 오를 담력이 없었지만 나는 암살시켜야 할 소문의 진원자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종종 제도탓을 했다. 사도가 후계자 자리를 박차고 궁 밖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면, 조선 내내 회자될 뒤주의 죽음 따윈 없었을 것이다. 같은 마음으로 모병제를 상상했다. 징병된 군인들은 공통적으로 꿀에 대한 풍부한 수다꾼이었다. 그들은 누가 꿀을 빨고 있는지, 어떻게 꿀을 빨 수 있을지, 가능성과 현실과 개입까지의 논리를 정연하게 답할 수 있는 본능을 갖고 있는 듯 보였다. 꿀벌들에게 모병제는 로얄젤리여야 맞았다. 나는 왜 나의 코골이가 나의 사랑하는 전우를 깨워대는 시스템을 지속해야 하는 지 궁금했다. 우리가 이 안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될 수 있을지 몰랐다. 나는 진원자를 색출해 영창에 보내는 대신, 국방부 앞에 신문지를 펴놓고 백팔배를 할 계획만 세웠다. 이제는 모병제를 할 때여야 하고 지금은 과도기처럼 보였다.

사도세자는 공식적 기록에 따르면 점점 미쳐갔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 를 통해 진실을 알고 있다. 먼저 미친 것이 혹시 영조일지 모른다는 사실 말이다. 물론 영조는 당대의 성군이었지만 역사 안에서 비극은 피할 수 없었다. 타자의 불가피성을 이해하는 일, 그게 내가 군대에서 배운 많은 것 중 하나다. 다시 말해, 누군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고 그가 어딘가에 갇혀 있는 거라 말해볼 줄 알게 됐다. 그래야만 이해가능한 영역이 있다. 과도기를 끝내고 펼쳐질 미래만이 공포 속에서 나를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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