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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양손잡이 -1-
sin 2018-05-02 03:04:41 조회 : 100


1. 양손잡이






전화를 받고 일찍이도 집을 나선 채호는 하늘을 보고는 시계를 쳐다봤다. 분명 밝아야 할 새벽의 하늘은 우중충하게 물들어 들떠 있던 채호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울산의 거리는 어두웠다. 도시 어디를 가도 그림자가 있었다. 채호는 저 흉물스런 회색빛의 건물이 태양마저 집어삼킨 것은 아닐까 연신 구름 속을 두리번거렸다. 불쑥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가며 바짓단에 물을 뿌렸다. 헬맷 조차 쓰지 않은 그는 길을 방해했다는 듯 도리어 채호를 노려보았다.


‘이 도시 놈들은 당최 존중이란 걸 모른다니까.’


역으로 가는 내내 불쾌한 기분이 떠나질 않았다. 젖은 바짓가랑이에 모래가 들러붙어 종아리를 간질였다. 백화점 건물 아래를 지나던 채호는 삐걱대는 소리에 위를 올려다보았다. 태양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백화점 옥상에 설치된 관람차가 바람에 밀리기라도 했는지 낡은 철근들이 맞물리며 기이한 소리를 냈다. 옥상 난간 너머로는 사람의 머리가 지나다녔다.


채호는 늘어진 목살을 긁적이며 넥타이를 풀었다. 열차 도착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짐이랄 것도 없이 간소하게 나선 채호에 비해 역에 몰려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캐리어며 큰 가방들을 가득 채운 꼴이었다. 서둘러 승차장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뒤로 채호는 느긋하게 몸을 일으켰다. 비에 젖은 열차는 숨을 몰아쉬며 사람들을 빨아들였다.


열차가 출발하고, 채호는 길게 몸을 늘어트린 채 눈을 감았다. 의정부 까지는 두 시간 정도가 걸리니 눈이라도 붙이려는 심산이었다. 간밤에 있었던 전화 탓에 저절로 몸에 힘이 빠졌다. 막 잠이 드려는 찰나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한참이나 울어 재꼈고 채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곁눈질로 소리가 나는 쪽을 노려보았다. 아이를 안고 있는 노인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게 아닌가 착가할 정도로 무심한 표정이었다. 채호가 ‘흠’ 하고 헛기침을 해보였지만 노인은 조금도 신경을 두지 않고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채호의 앞좌석에 젊은 여인이 와 앉았다. 그녀는 짐을 옮기느라 채호의 다리를 걷어찬 것도 모른 채 귀엽다는 듯 아이를 바라보았다. ‘울산이다.’ 채호는 생각했다. 젊은 여인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도시락을 꺼냈다. 뚜껑을 열자 삭은 김치가 냄새를 뿜었다. 입에 고춧가루를 묻힌 여인은 밥을 먹다 말고는 아이를 향해 사탕을 흔들어 보였다.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사탕이 눈앞에라도 있는 것처럼 손을 쥐었다 폈다 하였다. 여인은 여행이라도 다녀가는 길인지 가득 찬 가방에서는 나름의 특산물이며 간식거리가 쏟아져 나왔다. 아이는 슬픔 따윈 금세 잊어버리고 생긋 웃으며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사탕을 손에 쥔 아이는 무어라 웅얼거렸다.


“응? 뭐라고 하는 거야?”



“할아버지랑 여행 갔다 왔어요.” 아이가 몸을 꼬며 말했다.



“여행? 대단하네. 재밌게 놀았어?”



“토끼. 옥상에 토끼가 살아요.”


여인은 알아듣지 못할 말에도 그저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귀가 먹은 줄로만 알았던 노인이 다가와 감사를 표했다.


“아, 백화점 옥상에 공원이 있는데, 작은 풀숲도 있고 토끼며 짐승들이 뛰어 다니더군요. 식사하시는데 방해한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예의가 바른 사람이 나한테는 사과 한마디 없구만.’


채호는 노인이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며 필히 젊은 여자에 환장하는 노인일 것이라 생각했다. 주름진 손이 아이의 고개를 눌렀다.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사탕을 쥔 손을 버둥거렸고 그 바람에 침에 젖은 사탕이 채호의 바지에 떡하니 달라붙었다. 채호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아이의 손에 들려있던 사탕은 바닥에 내던져져 산산조각이 났다. 멍하니 깨진 사탕을 내려다보던 아이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얘가 왜 또 울까? 울지 마, 뚝 하렴. 할아버지가 하나 더 사줄게.”


아이는 채호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딸국질을 해댔다. 노인은 아이를 안아들고 등을 토닥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채호는 모른 채 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주 앉은 여인은 비닐봉지를 뒤적이며 사탕을 하나 더 꺼내보였지만 노인은 한사코 거절했다. 여인이 꺼내놓았던 도시락 통을 정리하며 채호에게 말했다.


“가서 사과하시지 그래요?”


채호는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여인에게 질려버렸다. 채호는 못 볼 것이라도 보았다는 듯, 자신을 노려보는 여인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버지가 아프십니다.”


새벽에 받은 전화 한 통이었다. 피로에 찌든 어머니의 목소리가 채호를 깨웠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아버지가 뒤로 고꾸라졌다는 소식이었다. 언젠가 벌어졌을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채호는 슬프다기보다는 화가 나 있었다. 통 고집불통인 아버지는 심장 수술을 두 번이나 겪고도 술을 끊지 않았다. 첫 수술이 끝나고 단번에 금연을 성공한 것을 볼 때, 끊지 못한 것이 아니라 끊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자기를 죽이는 줄도 모르고.’


여인은 채호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고 있었다.


“가서 사과하시라구요.”


당돌한 여자였다. 도무지 초면에 이렇게 까지 말할 수 있는 당돌함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괜한 소리를 해 여인에게 죄책감을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던 채호는 실소를 터뜨렸다. 여인은 사탕 하나를 내밀었다. 채호는 졌다는 듯, 두 손을 들어 보이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눈이 퉁퉁 부은 아이는 방금 전 일은 잊었는지 손가락을 오물거렸다. 채호는 사탕을 쥐어주며 말했다.


“아저씨가 미안. 사탕이 부딪혀서 떨어졌네. 계속 울면 햇님이 구름 속에 숨어서 안 올라올 거야.”


“햇님은 벌써 올라왔어요.”


채호는 창밖을 보았다. 분명 해가 떠 있었다. 창에 맺힌 빗방울이 아이의 얼굴에 무지개를 그렸다. 채호는 의자에 몸을 묻었다. 어째서 해가 뜬 것을 보지 못했을까. 채호는 다시금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와의 관계는 썩 달갑지 못했다. 전화를 받고 가장 먼저 고민했던 것이 아버지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일 정도였다. 누가 아버지를 당신의 이름으로 부른단 말인가. 채호의 기억 속에 아버지란 뒷좌석에 앉은 변태 영감만도 못한 존재였다. 경찰 출신의 아버지는 자신의 직업에 상당한 자부심을 지닌 사람이었는데, 그 자부심이라 할 것이 은퇴한 뒤에도 좀처럼 사그라지질 않으니 그것이 문제였다. 사고를 당해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마음씨 좋은 사람이 다가와 조금이라도 부축해주려 하면 그것을 못 참고 버럭 성을 내었다.


“오백 명 중에 첫 번째로 시험을 통과했지. 체력이 어찌나 좋은지, 한 번 뛰기 시작하면 아무도 쫒아 오질 못했어. 도둑놈들은 말할 것도 없지. 아무도 날 따라오질 못했다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 뒤를 돌아 봤을 때도, 아무도 없었단 말이야! 시상대에 올라섰을 때는 모두가 날 올려다보았지. 알아? 내가 무슨 소릴 하는지 알겠느냐고. 사람은 품위가 있어야 된다는 말이야! 품위라는 것은 몸에 배어있어야 하는 거고, 그게 위대한 사람과 나머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지.” 아버지는 술에 취하기만 하면 같은 소리를 몇 시간이고 반복하였다. 그랬던 아버지가 창문에 매달린 빗방울처럼 그저 태양빛에 말라가고 있었다. ‘잊지 말고 그놈의 품위도 챙겨 가셔요.’ 채호는 삶이라는 것이 참 별게 아니구나 생각하였다.


열차 통로로 작은 것이 휙 지나갔다. 손에 사탕을 쥔 아이는 열차 칸 내부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신발 밑창에 사탕조각이 눌어붙었는지 닿았던 곳이 반짝 빛났다. 젊은 여인은 공책을 꺼내놓고 무언가를 끄적대고 있었다. 글씨가 엉망이었다. 자세히 보니 왼쪽 손가락이 온전히 구부려지질 못했다.


“손은 왜 그래요?”


“어렸을 때 사고를 당해서요.” 대수롭지 않은 답변이었다. 채호는 펜을 뺐어들고 공책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리 줘 봐요. 내가 써 줄 테니. 뭘 쓰는 거예요?” 채호는 짓궂은 복수라도 할 양으로 굳이 물었다. 자신에게 그렇게 참견 질을 해댔으니 당해보라는 투였다.


“일기요. 천천히 말 할 태니 잘 받아 적으세요.” 물끄러미 채호를 바라보던 여인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여인이 불러주는 것을 받아 적던 채호는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왼손잡이 시네요?”



“양손잡이입니다.”



“대단하네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왼손을 못 쓰게 하셔서요.”



“그런데 왜 왼손을 쓰시죠?”



“반항심이었나 보죠.”



“꽤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씀하시던데.”






여인은 창을 향한 채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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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팔이 2018-05-04 10:34:09
잘 읽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적의가 채호에게서 느껴졌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에게서 기인한다는 것도 글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적의도 나와 같은 뜻 밖의 왼손잡이를 만나면서 하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않았나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조금 마음이 무거웠던 건 처음부터 채호에게 너무 치우친 적의였습니다. 다소 중립적이어야 할 3인칭에서 벌써 인물에 대해서나 세계에 대해서 너무 드러나버려 좀 불편한 감이 있었습니다.
sin 2018-05-07 21:19:39
의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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