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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아버지의 외출
곰곰 2018-09-26 12:25:54 조회 : 228

아버지의 외출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환자복 바지에 추리닝 윗도리를 걸치고

가을걷이가 다 끝난 밭의

옥수숫대처럼 외로이 서서

날마다 겨울 산을 흐르는

바람의 거센 물결을 응시한 채

저물어 가고 있었다


문안을 하러 병실로 들어설 때마다 아버지는

자동차로 반나절 거리인 바닷가 마을로

돌아갈 채비를 잘도 하였다

챙길 것이라고는 지팡이와 모자

잠바와 속옷이 개켜진 검정 비닐봉지뿐

이곳이 마지막 거주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듯

두꺼운 눈꺼풀이 천천히 열리고 닫힐 때마다

꺼졌다가 켜지는 어둠

천만 번의 웃음과 울음으로 골이 패여

쭈글쭈글해진 입은

우물우물

침묵의 말들을

말들의 침묵을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해독하다가 일어서곤 했다


아득한 눈빛으로

하루에도 이만저만이 아니게

고향 집과 마을 사람들을 어루만졌을 마음을

나는 모르지 않아서

찍어 온 고향 사진들을 보여준 후에

검붉은 핏줄이 불거진 아버지의 손등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핏물이 흘러가는 이 수만의 관 속에서

어떤 열망들이 피었다 졌을까


논밭에서 나는 것들로 배를 불리고

곶에 안긴 바닷물과 갯바닥에서

오징어와 전어, 놀래미, 농어, 낙지, 해삼이며

피조개, 꼬막, 소라, , 백합까지

생것을 잡던 기억의 세간들을

아무도 몰래 아득한 곳으로

모두 옮겨 놓았던 것일까

아흔세 번째로 찾아온 얼음의 계절

섣달 초여드렛날 이른 아침에

고향에 가는 것보다

더 빨리 독감을 앓아서

잠바 대신 수의를 입고

아버지는 세상 바깥으로

영 외출을 하신 것이었다


텅 빈 바람 속에서

뼈와 가시로 흔들리는

겨울나무들의 애도를 받으며

건넛마을이나 고개 너머에 사는

세상에 또 좀 오래 머문 사람을 길동무하여

생전에 흙발로 일구던

보리밭 벼논 그루터기를 밟으며

어둡고 환한 길을 걸어가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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