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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나쁜 아저씨가 내일의 썰매를 끈다
Kakakim 2019-01-10 14:11:13 조회 : 492


 먼 기억 속 우리 가족은 그럭저럭 잘 살았던 것 같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진 않았지만 생계에 지장은 없었고 공기는 화목했다. 아빠는 엄마를 사랑했고 엄마는 아빠를 사랑했다. 누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나는 누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정상적이었고 또한 평범했다. 어린 내가 보기엔 그런 날들이 오래오래 이어질 것 같았다.

 어느 화창한 봄날에 우리 가족은 여행을 떠났다. 우리는 아빠가 큰맘 먹고 장만한 중대형 세단을 타고 바닷가를 질주했다. 제철을 맞은 신선한 해산물을 먹었고 밤에는 으리으리한 호텔에서 잠을 잤다. 몇 날 며칠을 단란하게 지내고 우리는 아파트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안은 폭격을 맞은 것처럼 쑥대밭이 돼 있었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엄마가 말했다.

 “어떤 놈 짓이야?” 아빠가 말했다.

 “우리는 망했어.” 누나가 말했다.

 그 말들이 유언이 되리라고는 그들 중 누구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으슥한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나쁜 아저씨였다.

 나쁜 아저씨는 손에 들고 있는 부지깽이로 아빠를 때렸다. 아빠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곤죽이 되었다. 나쁜 아저씨는 엄마도 때렸다. 여자라고 봐주는 법이 없었다. 누나는 험한 꼴을 피하려다 십오층 발코니 밑으로 추락했다. 누나는 유리컵처럼 깨져버렸다.

 “너도 죽고 싶니?” 나쁜 아저씨가 말했다.

 “아니오.” 내가 말했다.

 “아저씨는 착한 아이를 해치고 싶지 않단다.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살려줄 테니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구나.” 나쁜 아저씨가 말했다.

 “알겠어요.” 내가 말했다.

 나쁜 아저씨는 말없이 자기 할 일을 했다.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겨서 보따리에 넣었고 창문을 열어 상쾌한 봄바람을 만끽했다. 밤이 오면 거리의 여자들을 불러 끝내주게 놀다 잠이 들었고 낮이 되면 졸린 눈을 비비며 다시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챙겨 모았다. 닷새쯤 흐른 뒤 나쁜 아저씨는 자기 할 일을 마쳤다. 그때까지 나는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그동안 고마웠다. 미래는 자라나는 소년의 것이란다. 그것을 꼭 기억해줬으면 하는구나.”

 나쁜 아저씨는 아파트를 떠나며 내게 당부했다. 나는 아직도 그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우리 가족의 수난사를 고백했다. 그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였고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밥은 먹었니? 오늘 뒷산에 있는 교회에서 무료급식을 해준다더라.”

 “지하철을 탔는데 글쎄 노인네들이 내리는 사람을 무시하고 어깨를 밀치면서 들어오는 게 아니겠니.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야.”

 그 사이 나는 소년에서 청년이 되었다.

 선거철이 다가오자 지역을 위해 일하려는 사람들이 기름진 얼굴로 거리를 활보했다. 누군가는 구름 같은 군중을 몰고 다녔고 누군가는 봐주는 이 하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다.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내게도 익숙한 사람이었다. 나는 군중 속에서 쩌렁쩌렁 떠드는 그에게 다가갔다.

 “나는 아저씨를 알아요.” 내가 말했다.

 “나는 너를 모르는데?” 나쁜 아저씨가 말했다.

 그는 나를 무시하고 자기 할 일을 했다. 미래는 내가 아니라 그에게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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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의 뜻 어머니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