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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어머니의 죽음
구름밭 2019-01-17 22:16:26 조회 : 365

   어머니가 93세 노령에 돌아가시니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느니 돌아가시는 게 바람직했다. 그런데, 눈물을 마구 쏟으며 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다. 어머니 유해가 시골 장지에 도착했을 때 고향에 사시는 고모님이 어머니 관을 잡고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북받치는 흐느낌의 눈물이 흘렀다.

오래 전부터 어머니는 고향 읍내의 새 집에서 혼자 사셨다. 조상 기제사, 성묘, 여름휴가 때는 우리들이 시골에 내려가고 설, 추석 명절에는 어머니가 서울로 올라오셨다. 어머니 집은 고모네 집 가까이 있어서 두 분은 수시로 오가면서 고적함을 덜었다. 그러다가, 더 이상 혼자 생활할 수 없다고 서울 아들들 집에 차례로 돌아가며 거주하면서 심심할 때는 고모한테 전화하여 기분전환 하였다. 통화시간이 으레 10여분이고 길 때는 30분이었다. 근래에는 전화할 때마다 당신 몸의 병들을 서너 가지씩 대면서 "이제 살고 싶지 않고 그만 죽고 싶네. 거짓말 아니고 내 진짜 참말일세" 하곤 했다.

어머니는 실제 연세보다 대여섯 살 적게 볼 만큼 정정하다고 했다. 나는 그 비결을 활동성이라고 본다. 걷기운동, 인정 베풀기, 남들과 친해지기 등이다. 그리고 가장 큰 활력소는 경로당에서 고스톱 치는 것이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의사와 상담할 때 나는 자랑하듯 말했다. "아프다가도 경로당에 가서 고스톱 치면 안 아프답니다"

부정맥으로 인한 협심증 고통을 겪다가 나중엔 천식기침 때문에 경로당 방문도 거절(?) 당했다. 숨 쉬기 어려운 증세가 발작하면 빨리 죽고 싶다며 "여기 내 목을 한번 꾹 눌러봐라" 했다.

어느 날 거실 소파에 누워 있다가 화장실에 간다고 일어나 한 발짝 걷다가 주저앉았는데 바닥에 엉덩이를 찍고는 꼼짝 못했다. 의사는 대퇴부 뼈가 부서져 수술해도 회복되기 어려우니 그냥 두는 게 좋다고 했다. 음식을 삼키지 못해 영양제 주사, 콧줄 음식 투여, 산소호흡 줄을 코에 꽂았다.

병실에 며느리들이 들어갔을 때 눈을 떠서 알아보고는 "먹고 죽는 약을 좀 가져 오너라" 했는데 그게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 마지막 말이었다. 한창 추울 때 운명하면 어떡하나 염려했는데, 일기예보가 "내일부터 일요일까지는 높은 기온을 유지할 것"이라고 한 다음 날 새벽에 날을 맞추듯이 숨을 거두셨다.

고향(울진) 선산에 모시기 위해 꼭두새벽에 대형 운구버스로 줄기차게 달려 동해안에 다다랐을 때 해뜨기 전에 펼쳐 보이는 구름하늘의 색 조화는 장관이었다. 드디어 '말갛게 씻은 고운 해'가 엷은 구름을 머금으며 떠올랐다. 곱디고운 아침 해를 바라보며 동해안 따라 달리는데, 아! 이제 찬란히 비치는 눈부신 광휘! 태양님이시여, 정말 아시고 그러시는 건가요? 어머니가 그렇게 해달라고 했는가요? 이 햇빛은 맨 앞좌석에 놓여있는 어머님 영정을 비추고 있을 것 같았다. 법정스님이 어느 날 아침 떠오르는 태양빛을 보고 감격하여 "나무 일광보살" 하면서 합장했다는데 바로 이것이구나. 그리고 언젠가 경로당에 어머니를 뵐 일이 있어 가니 아들이 나타난 것에 기쁜 미소를 짓고 나를 보는 맑고 예쁜 얼굴을 처음 보았는데 바로 그 얼굴이 선연히 떠올라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앞으로 두고두고 떠 올릴 보배로운 모습 !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울진에 사실 때 일요일에는 꼭 절에 가셨다. 108배 절도 하고 초파일에는 아들 다섯 수대로 연등을 달았으며 집에서는 다라니 불경을 외우려고 애썼다. 한번은 천자문을 내가 외우는 것보다 더 나가며 읊기에 깜짝 놀라 어떻게 배웠냐고 하니 "오빠가 아버지한테서 배우는 걸 들었다"고 했다.

어머니 관이 장지에 도착했을 때 이미 예상했었던 장면이 그대로 벌어졌다. 고모님이 관을 붙잡고 통곡하며 토하는 말이 나의 감성을 질렀다. "아이구~ 언제 죽노, 언제 죽노 하더니 그래 그만 가는가..."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는 고모한테 전화로 "나 왜 이렇게 안 죽는고. 언제 죽으려고 이러는고" 하시고, "내 죽거든 딸처럼 많이 울어주게" 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들 다섯이나 두면서 딸이 없어서 여자가 우리 집에 오면 그리 좋아하셨다.

무덤이 완성되고 제를 지낼 때 풍수가 축문을 읽은 뒤, 상주들은 곡을 하며 절하라고 해서 절은 하면서도 곡소리는 내키지 않았다. 잔을 다시 올리고 또 두 번 절하고, 또 축을 읽고 두 번 절하고, 되풀이 하는데 아들, 며느리, 손자, 친척들 40여명이 지관의 말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인 듯싶었다. 이것이 망자를 생각하는 마음어린 절인가? 나중에는 절을 하지 않고 뒷전으로 물러서서 마을을 두르고 있는 산들을 둘러보았다. 그 때 내 눈에 보이는 산은 이 전에 보던 산들과 달랐다. 산이 저런 모습도 나타내는구나. 유심히 보고 있으니 산은 나에게 마치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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