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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와인셀러
리세.첸 2020-01-13 10:54:20 조회 : 103
와인샐러 앞에 쪼그리고 앉아 조그마한 접시에 딱딱한 빵을 집어 먹는다. 잘게 잘라놓은 탓에 접시를 기울 때마다 자꾸만 굴러다닌다.


금요일 저녁, 퐁듀는 환상적이었다. 약속대로 애인은 재료를 사들고 왔고, 둘은 마주 앉아 기다란 꼬챙이로 소꿉장난 같은 식사를 했다. 그리고 애인이 세 병씩이나 가져와준 와인 중 화이트 한 병과, 샐러에 오래된 레드 하나까지 따서 마셨다.(애인은 그 레드 와인이 정아를 닮았다며 자주 사온다) 둘은 기분이 좋아 애인이 현관을 나설 때까지 몇 번이나 열정적인 키스를 했다.



반짝반짝 닦은 샐러 앞에서 오독오독 과자같은 빵을 먹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애인이 와인을 새로 가져왔지만, 두 병을 마셨기 때문에 도로 세 병 밖에 남지 않았다. 빈 접시를 무릎위에 올려 둔 채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부산스럽게 일어난다.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오늘은 와인을 사는 날이다.


자주 가는 와인샵까지 가는 길은 많이 미끄러웠다. 얼마 전 내린 비가 아직도 견고한 얼음 바닥에 또 한 겹의 막을 씌우고 가버렸다. 못된 장난을 치다니. 두툼한 부츠 아래로 간신히 땅의 촉감을 더듬는다.


“어서 오세요.”


주인이 친절한 인사로 정아를 맞이한다. 묵묵한 포도의 기운이 감도는 공간. 늘 그렇듯, 입구 근처에 장식된 인조 포도를 손가락으로 툭 쳐본다. 그리고 촘촘하게 누워있는 병들을 하나 둘 살핀다. 정아가 이 가게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주인장의 인내력 때문이다. 마음껏 망설여도, 굳이 방해하러 오지 않는다. 가만히, 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놔둔다. 그러면서도 늘, 필요한 순간 언제든 다가오는 모습에 프로정신을 느낀다.


“파티 하실 건가 봐요?”


그의 말에 문득 앞을 보니, 계산대 위에 여섯 병이나 올려놓은 뒤였다.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서 골랐기에 뺄 것도 없고, 샐러가 많이 비어서 여섯 병 정도는 필요해 난감해졌다.


“그건 아닌데, 어쩌지.”


“무거우실 텐데 제가 차까지 가져다 드릴까요?”


“걸어왔어요.” 망설이는 정아의 모습에 가게 주인도 함께 고민을 했다.


“그러면 제가 몇 병 맡아 드릴 테니까, 나중에 시간 될 때 나머지 가져가실래요?”


“그냥, 다 주세요.”


그러다 망설인다. 그 무거운 걸 팔이 버텨 낼 수 없을 것이다. 애인을 부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럴 수가 없다. 애인은 바쁜 사람이니까.


“역시 제가 맡아 드리는 편이 낫겠죠?” 그가 웃었다.


“그럼 두병만 가져갈게요.”


“네 알겠습니다. 여기 전화번호 좀 적어주세요. 나머지에 표시하게”


오랜만에 쥐어본 필기도구 탓에 글씨가 민망 하리 만치 허술했다. 지우고 다시 꾹꾹 눌러 쓰고 싶었지만, 주인장이 피식 웃으며 냉큼 종이를 가버렸다. 아무렴. 전화번호일 뿐인데. 흉 될 건 없다. 애인 앞에서만 잘 보이면 된다. 그리고 어차피 그 애인은 정아의 모든 것을 사랑스럽게 여겨주기 때문에 어정쩡한 숫자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오후햇살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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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48.***.922020-01-13 13:38:11
분위기가 좋아요
자주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175.223.***.2152020-01-14 00:51:24
감사합니다:)!
내 글을 읽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프로포즈 8주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