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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올려본다

어쩔 수 없잖아
리세.첸 2020-02-08 14:32:21 조회 : 171
마지막 식물 상자를 카트에 싣고 출근을 했다. 거친 지표면 탓에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틀어지는 바퀴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조심히 걷는다. 지난 번 맡긴 이후로 화분이 여덟 개 늘었다. 파릇한 손바닥들이 나들이에 살랑였다. 과연 모두 뜨거운 계절을 버텨낼지.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분명, 엄청 슬플 것이다.


“좀 늘었네. 작은 것들은 계산대 뒷쪽에 놓아야겠는데?” 계절감에 부응하듯 활동력이 최고조에 달한 사장이 식물들을 마중 나와 주었다. 가게 곳곳에 놓인 정아의 식물들로, 우든로즈에도 여름이 찾아왔다.


“잘 부탁드립니다.”


“첫번째 토요일부터 안 나오는 건가?” 그렇다 대답했다. 사장은 그럼 이만 가보겠다며 그 커다란 한식당으로 향했다. ‘언제 한 번 먹으러 와요.’라는 말을 잊지 않고 해주었다. 정아는 늘 그렇듯 가벼운 유과 같은 그 성의만을 쏙 빼갔다 .


딱히 정한 건 아닌데, 애인이 정아를 자주 찾는 화요일. 금요일이 아니지만 바쁘지 않은 이상 종종 와인을 사들고 와 잠시 이야기를 한다든지 소파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거나 했는데, 크게 신경 쓸 회사 일도 없으면서 한달 째 결근이었다. 어쨌든 지난 금요일에 와서 성실히 창을 닦아주었으니 나무라진 않는다. 다만, 떠날 때가 다가오는 집의 정적이 깨지지 않을 뿐이다.



“여보세요? 오늘 밤 별일 없지? 호캉스 특집 때문에 거기 남산 쪽 호텔에서 티켓 준게 좀 있거든. 오랜만에 조식이 땡기는데 어때? 마사지도 포함이야.”


다행인건. 이번 ‘바캉스’를 앞두고 친구가 끊임없이 러브콜을 한다는 점이었다. 전에도 정아가 사라지기 전 이맘 때 자주 정아를 찾았지만, 올해는 조금 지나친 감이 있었다. 그래도 거절을 할 수가 없다. 타당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떠들다 돌아가는 일상이 쓸쓸한데도 그게 싫어 만나지 못하겠다는 말은 변명이 되지 못한다. 친구와의 관계는 우정 보다는 동지애니까. 우정이란 미명하에 상대에게 허물없이 굴 수 있는 가볍고 편한 사이보다는 아무래도, 조금 더 무거운 감이 있다. 결국 그녀를 만나기로 했다. 철저히 통제된 조명으로 보호된 요새에서.





하루종일 우든로즈의 수호신으로 있던 몸이 나른했다. 전문적인 손길을 받은 친구의 몸 곳곳 스며있는 향유의 향기가 잔을 채운 와인과 어우러졌다. 우든로즈를 마감하고 온 정아는 얼굴과 발만 동떨어지게 매끈한 기분이었다.


“참 한결 같다. 여기까지 와서 또 와인.” 라며 친구는 즐겨마시는 칵테일을 마셨다. 와인과 꼭 닮아보이지만 도회적인 잔에 담겨나오는 그 술.


“여기껀 어떤지 궁금하잖아.”


“그러게.” 친구가 가만히 웃었다. “그래서 어때?”


“가볍네.” 정아가 미간을 찌푸리고 둘러보았다. “시각 정보랑 충돌하고 있어. 얘 혼자 생각없이 웃고 있는 기분이야. 어린 애 같이.”


정아의 말에 친구는 “역시 하우스는 가벼운 대중성인가.”하고 칵테일 잔을 마저 비웠다.


“뭐, 여기 주 고객이 세 부류 정도일텐데 잘 맞네. 모처럼 기분 내러 왔거나, 아이처럼 다가질 수 있는 금수저거나, 웃는 것 만은 할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거나.” 입맛을 다신 친구가 에디터다운 분석을 했다.


“딱히 금수저는 아니지만 이런 데는 심심하면 오고, 나 좋은 일 하고 있는 인생이니 하나도 해당 안되네.” 친구가 피식 웃었다. “근데 왠지 탐난다.”


이에 정아가 한 모금 머금고 천천히 음미했다.


“나쁘진 않아.” 잔을 돌리며 맺혔다 흐르기를 반복하는 액체에 집중을 했다.


“내 것도 한 잔 해야겠다.”


친구는 웨이터와 눈을 마주치고 다가온 그에게 정아와 같은 하우스 와인을 청했다.


“그래서 넌 어떤거 같아? 해당 되는 거 있어?”


고민에 빠져버린 차에 친구가 주문한 와인을 가져온 소믈리에가 테이블에 잔을 올려두고 친구에게 병을 보여주었다.


“처음 보는 생산자네요.”


“네, 아마 처음 보는 생산자가 맞을 거예요. 림버그 경계에 있는 양조장에서 독립하고 재작년에 수확한 첫 와인입니다. 해당 빈티지를 저희가 전량 주문해 이번 시즌에 선보이고 있습니다.”


“생각나도 여기 와야 마시겠네요.” 시음을 한 친구가 쓸쓸하게 웃었다. 소믈리에가 돌아가자 친구가 다시 정아를 향했다.


“그래서?”


“나도 아냐.”


“완전 불순 분자들이 따로 없군.” 친구가 웃었다. “이 와인, 너랑도 안 맞네.”


“그러네. 그래서 물리나봐.”


“그러게. 지나치게 해맑다.” 친구도 가만히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액체를 구경했다. 그리고 나즈막히 읊었다.


“저기 복도 끝에 네 사진 있더라. 화장실 가는 길목.”



친구의 말에 너무나도 많은 것이 담겨있어 아주 잠시, 이곳의 무거운 조도에 짓눌려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마득한 시간 만에 처음으로 애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견디지 못해 전화를 했다. 금요일. 벌써 두 번씩이나 애인이 정아를 상대로 휴가를 냈다. 일이 있다고 했다. 간혹 있는 상황이었지만, 정아는 조금 있으면 떠날 것이다. 그러니까 평소와는 조금 다른 상황이다. 애인의 건강한 모습으로 한껏 충전하고 가야하는데, 애인이 곁에 없다.



못마땅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전화까지 했는데, 삼일 째 감감무소식인 건 심했다.



“당신이랑 자고 싶어.”


애인은 안 된다고 했다. 오랜만에 도리를 좀 하고 있다며. 잘 들지 않는 수화기까지 들었는데, 너무 했다. 기계 너머의 애인은 왠지 다른 사람인 것 같아 웬만한 일로는 전화를 하지 않는다. 애인은, 나중에, 라고 답했다.



“안 돼. 지금이야.” 떼를 썼다.


“어쩔 수 없잖아.” 애인이 달래며 끊었다.


참을 수 없는 절망감이 몰려왔다.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절실해지고 만다.




어쩔 수 없잖아.


애인의 몸은 정아의 것이 아닌걸.

#오후햇살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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