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뉴스등록
포토뉴스
RSS
자사일정
주요행사
맨위로

테마글쓰기

레이먼드 카버와 노스탤지어
경희 2017-03-21 22:06:38 조회 : 725


테오 앙겔로폴로스 감독의 영화<율리시즈의 시선>에 나오는 대사를 옮겨 적는다.

신이 세상을 만들 때 처음 만든 것이 의심, 그 다음에 여행 그리고 노스탤지어라네.”


어쩌면 인간의 삶 자체가 오딧세우스의 여정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떠나온 곳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돌아갈 곳을 잃은 도정에서 느끼는 노스탤지어. 고향을 그리워하는 의미보다는 잃어버린 것의 고통을 나타내는 의미에 가깝다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을 읽고 소설이 혹은 문학이 아니면 어떠한 허구가 주는 낮은 위로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이발소에서 모두들 침묵하고 고요한 가운데 째깍거리는 시계소리와 가위소리 그리고 짧게 잘려나간 머리카락이 바닥에 나른히 쌓여가는 들리지 않는 소리 같은 것.


숨 막힐 듯 빼곡한 일상에서 키우던 개를 이웃동네에 갖다 버리고 가족들에게 갖은 원망을 듣고는 서둘러 개를 찾아보지만 정작 길에서 마주친 개는 슬쩍 한번 쳐다보고 조용히 비껴가 버릴 때의 그 참담한 나락. 죽은 아이의 생일 케익을 마주하고 앉은 부부와 빵집 주인의 거리 그런 것들.


어느 눈먼 사내가 멀쩡한 남자의 몸의 윤곽을 더듬는 장면 어렴풋하게 어떤 희미한 빛을 보거나 진부하지 않은 잔잔한 너울이 서서히 자리를 차지하며 내게서 멀어져가는 그런 것 말이다.


모두가 떠나고 남은 집 앞에 잔뜩 쌓인 폐허 같은 가구들 사이로 추는 춤 같은 그런 것.


팔려고 내다 놓은 것들인지 떠밀려 온 듯 밖으로 떠내려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채로 그저 그 속에 앉아 모두가, 모든 것이 훼손되지 않고 온전한 때를 잠깐 동안 생각하거나 혹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그런 태도들.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삶이 낯설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내가 삶의 주인이 아니라 삶 자체가 자신의 자유 의지로 나를 견인하고 있는 느낌. 삶에서 분리된 채 변방으로 밀려나간 이방인이 갖는 이산(離散)의 정동이 문득 나를 가득 채우는 순간들. 인간이 마치 시지프스의 운명처럼 무의미한 행위를 끝없이 반복하면서 맞서고 있는 것이 있다면 이와 같은 실향의 정서가 아닐까


수잔 손택을 인용해본다.


우리 시대의 진지한 사유 대부분은 실향의 정서에 맞서 싸우고 있다. 비인간적인 속도로 변해 가는 역사가 인류의 경험에 초래한 이 의지할 데 없다는 느낌 때문에 감수성 예민한 현대의 지식인들은 모두 일종의 구토감에 관해, 지적 현기증에 관해 기록하게 됐다...(해석에 반대한다 )


카버의 짧은 소설을 읽었을 때 마치 이국에서 동향인을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이 와락 덮쳐왔다. 임신 초기. 메슥거리는 입덧이 현실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나 자신의 불협화음처럼 느껴지면서도 아이가 제 존재를 끊임없이 알리는 희미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라며 반복되는 유산의 두려움을 애써 떨치던 그 때. 카버의 소설집 마지막 장을 덮으며 그래. 이건 위로다라고 스스로를 위무하던 때가 있었다. 태양이 가장 높은 두시. 매끄러운 백사장같이 환하게 빛나는 제2자유로를 질주하며 눈물이 났던 건 슬픔이 아니라 고마움의 안도감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또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천일동안 이어진 세헤라자드의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왕의 분노를 잠재웠듯 미끄러져서 끝내 가닿지 못하고 상실해버린 것에 대한 애도의 정동이 결국 개별자인 우리 모두를 나란하게 마주보게 하여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시선이 교차하게 만든다. 내게 레이몬드 카버가 그러하다.


 



 


130
댓글
<버티는 삶에 관하여> by 허지웅- 나의 인생 책 나의 인생책 (나의 아름다운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