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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과를 둘러싼 전근대-근대-탈근대

이신조
2017년 04월 25일

 문학-(문학교육)-문단

 
 
 

문학을 교육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199X년, 문예창작학과 3학년이 된 나는 그제야 비로소 학교 도서관이란 곳을 (말하자면 본격적으로) 드나들기 시작했다. 동기들에 비해 문학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평균 이하인 채로 문창과에 입학한 나는 1학년이 다 지나도록 '문지'와 '창비'가 무얼 뜻하는 단어인지 알지 못했다. 아니, 애써 알려고 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문학 전문 출판사의 책들을 몇권씩 읽게 되었지만, 90년대 X세대 스무살이 알고 누리고 즐겨야 할 대상은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 짐짓 차분해진 태도로 시집이나 소설책을 펼쳐놓고, 아, 혹은 아아, 낮은 탄식을 내뱉으며 영혼의 성분이 얼마간 바뀌는 것 같은 경험을 시작한 것은 2학년 때였다. 그리고 3학년이 된 나는 학교도서관 정기간행물실 6인용 테이블에 유난히 좋아하는 자리를 갖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문예지를 뒤적거리던 어느날, 기고문 한편이 내 시선을 끌었다. 그 글에 씌어진 '창작을 가르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인가' '문예창작학과 회의론' 같은 표현은 문창과 학생인 내게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세기말'보다 훨씬 더 흥미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아주 단호한 투의 글이었다. 필자는 '예술행위는 결코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피력하며, 문창과에서는 기껏해야 '수사적인 기술'을 배울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글의 어디에도 필자가 문창과에서 가르치거나 배운 적이 있다는 말은 없었다. 숨겨진 행간에서도 그럴 가능성은 감지되지 않았다. 당시의 나보다 두배쯤 나이가 많은 평론가인 필자가 왠지 좀 화가 난 듯 힘주어 쓴 글임에도, 그 글은 나를 전혀 가격하지 못했다. 그저 도서관에서 하마터면 소리 내 혼잣말을 할 뻔했을 뿐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20년쯤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어느 원로작가가 강연회 도중 예의 글에서 읽었던 문구들과 거의 같은 말을 했다는 소식을 기사로 접했다. 자신은 예술교육을 믿지 않으며, 문창과는 글 쓰는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며, 문창과 출신들이 많아서인지 요즘 작가들의 작품에는 철학이 부재한다 등등. 거기에 더해진 "오늘날 한국문학이 이 꼴이 된 것은 바로 문창과 때문"이라는 자극적 언사는 미디어가 선호하고 요란한 구설이 이어질 만한 것이었다. 과연 그렇게 됐다. 그와 관련된 반응을 살펴보다, 나는 어느 익명의 블로그에서 “그의 얘기를 듣고 문창과 학생인 나는 똥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라는 표현을 보았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그 문창과 학생은 자신의 문학적 사유와 고민, 읽은 책들의 감상문을 블로그에 꼼꼼히 정리해두고 있었다.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문단의 여러 추문과 폐단에 대한 논쟁, 그리고 결코 추문 정도일 수 없는 엄연한 범죄, 그 한가운데, 그 수많은 논란의 중심에, 마치 그 모든 일의 무대이기라도 한 것처럼 문창과가 존재한다. 확고한 편견과 노골적 악의가 합쳐져 문창과는 때로 '악의 축'으로까지 취급받는다. 그리하여 나는 이 지면을 통해 문창과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뉘앙스가 개탄일지, 반발일지, 대안일지는 규정할 수 없다. 다만 특정 대상에 대한 비난과 폄하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잘 알지 못하는' 무지의 측면을 소상히 파악하고 진단하는 일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겠다.
 
(*이후 이 글에서 사용되는 '문창과'라는 용어는 몇몇 대학에 개설되어 있는 문예창작학과는 물론, 대학의 학과개편 및 통폐합 추세 속에 명칭이 변경된 관련 학과, 국어국문학과 내의 창작 강의, 출판사 신문사 공공기관 산하의 여러 교육기관에서 운영하는 창작강좌 등 각종 문학예술교육 형태를 총괄하는 단어로 사용된다는 것을 밝혀둔다.)
 
 

문창과와 근대라는 시스템

 
우선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중얼거릴 수 있는 나는, 그럼 문창과에 대해 무얼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의 문제. 나는 (몇년씩 간격을 두고) 학부생과 석박사 대학원생으로 문창과에 재학했다. '문창과 졸업생'으로 20세기 끄트머리에 소설가가 되었고, 올해로 10년째 문학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10년간 다섯군데 대학에서 학부와 일반대학원과 특수대학원 학생들을 만나 강의를 진행했다. 4년 전부터는 한 사설 교육기관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 강의를 하고 있다.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문창과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된 사람들을 최소 1000명쯤은 만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내가 문창과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오랜 시간 문창과에 대해 평균 이상으로 보고 듣고 겪고 느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예의 원로작가가 믿지 않는다는 '예술교육' 종사자가 나의 엄연한 두번째 직업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나브로 작가만큼이나 나의 중요한 정체성이 되었다.
 
앞서 언급한 문예지의 필자와 원로작가에 대해 내가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은 그들이 문창과를 '총체적으로' 경험한 적이 없을 거란 점이다. 문창과에서는 꽤나 자주 작가초청 강연회 같은 것이 열린다. 작가가 초청 행사의 강연자가 되어 문창과 학생들과 한두시간 '문학의 향기'를 공유하는 것과, 작가가 문창과 선생이 되어 매주 세시간짜리 강의를 16주간 진행하고 거의 모든 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상대평가' 기준에 따라 학점을 부여하는 것은 '완전히'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른 일이다. (보통 8주나 12주 코스로 진행되는 일반인 대상의 창작클래스도 이벤트성 강연과는 사뭇 다른 성격을 갖는다.) 학생으로 경험하는 문창과와 선생으로 경험하는 문창과도 당연히 다르다. 학교마다 시기마다 과목마다 소위 문창과의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다. 문창과의 학년별 커리큘럼 구성이나 특정 과목의 강의계획서 정도만 살펴봤어도, 혹은 문창과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작품 합평시간을 참관해봤다면, 문창과가 글 쓰는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일차원적 평가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글 쓰는 기술'이란 것이 다루어지긴 한다. 그러나 문창과를 총체적으로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지엽적인' 부분인지 알고 있다. 그것이 지엽적인 것임에도 짐짓 전부로 보이기 쉽다는 걸 알기에, 문창과 구성원 대부분은 그 얄팍한 도식화를 마땅히 경계한다.
 
문창과에서 본질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의외로 '근대성'의 적용에 관한 것이다. 알다시피 문학은 인간의 모든 것, 세계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감내한다. 인간과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을 탐색하고 실험하는 것이 문학예술이다. 그런 문학과 달리 문창과는 '근대적 교육'이란 확고한 시스템 속에 자리잡고 있다. 모든 것이 다루어질 수는 있지만, 그 모든 것이 행해질 수는 없는 형국이다. 어느 학생이 흠모하던 작가를 문창과의 선생으로 강의실에서 만났을 때, 그가 특정 작품의 작가였을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던 일들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강의의 질에는 딱히 긍정적이라 할 수 없는 너무 작은 목소리나 부정확한 발음 같은 것들. 잦은 휴강이나 옷차림의 기호나 숙취의 흔적 등에 문학과 교육은 각기 다른 기준을 갖고 있다. 20세기에는 그 기준이 꽤나 유연하게 적용됐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예술을 상대평가 하는 게 말이 되는가'라는 항의에 많은 이들이 수긍했지만, '문창과만 예외일 수는 없다'는 교육시스템의 완고한 방침은 이의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문창과에는 '예술가(지망생)는 좀 그래도 돼'와 '학생(선생)이 그러면 되나' 사이의 크고 작은 갈등과 긴장이 상존한다.
 
특히 문창과 안에서 전근대적인 폐단이 자행되는 경우, 문제는 심각하고 복잡해진다. 문창과에서는 위계(位階)나 성(性)과 관련된 시비와 폭력이 단순히 불의나 권력의 차원을 넘어, 왜곡된 예술적 자의식의 병적 발로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문창과의 구성원들이 대체로 (어떤 측면의 어떤 의미로든)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문제는 그 종류와 수준이 천차만별인 '비범'이 문창과 안에서 위태롭게 발현되기 쉽다는 점, 그 미심쩍은 비범이 곧잘 문학적 낭만으로 포장되고, 전위적 포즈로 둔갑하기 쉽다는 점이다. 예술가(지망생)가 자신의 뒤틀린 내면의 어둠을 타인을 향한 착취와 가해로 이어가며 그것을 자신의 예술적 알리바이로 합리화할 때, 그것은 그저 열등함과 저열함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최근의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
 
 

샘물을 마시고 모닥불을 쬐다

 
그러한 문학과 문창과의 존재방식의 아이러니로 인해, 또다른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것은 문학이 교육이라는 시스템으로만 작동한다면, (많은 이들의 우려대로) 문창과의 문학은 ‘글 쓰는 기술’로 고착되고 말 것이란 점이다. 문창과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만큼이나 과잉된 기대도 뚜렷하게 존재한다. 문창과를 등단을 위한 스파르타식 훈련소 정도로 여기는 인식, 재학생이나 졸업생의 등단이 문창과의 ‘실적’처럼 되어버린 현실, 어떤 식으로든 문창과에 적을 두어야만 작가의 길을 갈 수 있을 거란 환상. 이럴 때의 문학은 하릴없이 왜소하고 추레해진다. 그러나 이 역시 문창과의 총체적 실체라고는 할 수 없다.
 
어느 문창과를 막론하고, 문창과를 거쳐간 사람들의 대다수는 ‘직업 문인’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등단은 성공, 미등단은 실패라는 프레임은 결코 성립될 수도 없고, 성립되어서도 안 된다. 문학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부족한 채로 문창과 신입생이 된 내가 시나브로 도서관에 좋아하는 자리가 생기게 된 것은 ‘글 쓰는 기술’이나 ‘등단 준비’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당시의 나는 내가 문학을 제대로 ‘향유’하는 법을 익혀가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창작이라는 거대한 자유, 그 자유의 치열하고 정교한 행사, 독서라는 겸허한 당위, 그 당위의 깊은 음미와 실천, 나아가 문창과의 다양한 구성원들과의 역동적이고도 내밀한 교류. 문학을 통해 새롭게 다듬어진 정신과 영혼으로 새롭게 인간을 느끼고 세상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대한민국의 공교육 과정에서 입시교육의 일부로 경험했던 문학의 황폐함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문창과는 ‘비로소’ 문학을 제대로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란 의의를 갖는다. 일반적으로 문창과는 문학을 전면적으로 순도 높게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원로작가의 극단적인 발언에 익명의 문창과 학생이 “똥물을 뒤집어 쓴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한 것은 원로작가가 문창과를 그저 ‘비난’했기 때문이 아니다. 문창과에는 실제 많은 문제와 모순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숱한 고민과 실질적 대안을 필요로 한다. 원로작가는 문창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했다. 불안 속에서 빛나는 스무살이 비로소 문학을 향유하는 방법을 배워가며 자신이란 인간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와중에, 그 모든 것이 함부로 매도되는 것에 충격과 모멸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예의 극단적인 언사가 강력한 문제제기이자 작가 고유의 문학관을 설파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문창과에 대해 함부로 말한 것이라는 혐의를 벗기는 어렵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는 것을 우리는 폭력이라 칭하며, 우리가 문학을 하는 어떤 이유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많은 ‘함부로’를 고발하고 바로잡기 위함이다.
 
문창과는 문창과 구성원에게, 혹은 문학이란 세계 속에 ‘샘가’ 혹은 ‘모닥불가’쯤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1세기 스펙지상주의의 시대에, 더욱더 노골적이고 공고해진 자본주의와 형편없이 낮아진 문학의 위상을 감안하면 그러한 발상은 지극히 나이브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철저히 혼자로 남는 우리는 삶과 예술 사이에서 숨 가쁜 갈증을 느끼고 청량한 휴식을 원한다. 몸을 녹일 온기와 마음을 덥힐 위로, 근원적인 형식의 아름다움과 여정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의 막막하고도 담담한 상기. 샘가와 모닥불가, 그곳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야 마땅하다. 샘물을 마시고 모닥불을 쬐듯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문창과를 경험했으면 한다.
 


이신조 
소설가. 소설집으로 『나의 검정그물스타킹』 『새로운 천사』 『감각의 시절』, 장편소설로 『기대어 앉은 오후』 『가상도시백서』 『29세 라운지』 『우선권은 밤에게』 『크리에이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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