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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왜 사랑이 아닌가: 미술에 깃든 성적소수자의 얼굴

김태권
2017년 05월 05일
동성애 이야기가 부담스럽단다. 성적소수자 이야기가 나오면 당황한다. 다른 사람의 사랑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이 불편한가보다. 어떤 이성애자는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동성애자는 극소수 아니야? 성적소수자의 목소리에 우리가 지나치게 신경쓰는 것 같아. 내 주위에는 한명도 없거든.” 이 말이 폭력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게다.
 
이렇게 대답하면 어떨까. “아니야, 동성애자는 당신 주위에도 많이 있어. 다만 당신이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당신한테는 털어놓지 못했을 거야. 당신 스스로는 친구가 많다고 생각하겠지만, 게이 친구도 레즈비언 친구도 당신에게는 마음을 열지 않는다고. 당신은 불쌍한 사람이야.” 
 
우리, 불쌍한 사람은 되지 말자.
 

 

동성커플에 빚진 민주주의

 
크리티오스·네시오테스 「하르모디오스와 아리스토게이톤」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대왕, 카이사르(Caesar), 사자심왕 리처드(Richard I),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차이콥스키(Tchaikovsky), 앤디 워홀(Andy Warhol), 조디 포스터(Jodie Foster). 유명한 동성애자 또는 양성애자의 목록이다. 한번쯤 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유명한 사람들도 동성애를 했으니 우리 모두 동성애를 하자는 뜻은 아니다. 이렇게 곡해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일부러 짚고 넘어간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만, 동성애나 양성애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이다. 역사를 훑으면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시대가 종종 보인다. 인권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어떨까. 성적인 문제에서도 자기결정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이성애자건 동성애자건 양성애자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각자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로 가보자. 석상을 세우고 두 남자를 기렸다. <하르모디오스Harmodios와 아리스토게이톤Aristogeiton>. 참주(僭主)를 살해한 사람들이다. 고대 도시국가의 권력을 잡고 제멋대로 휘두르던 사람을 참주라고 부른다. 그리스 말로는 티라노스 (tyrannos). 티라노사우루스라는 무섭고 난폭한 공룡의 이름이 여기서 왔다. 티라노스는 요즘말로 ‘독재자’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두 남자는 연인 사이였다. 독재자를 죽인 동기 역시 치정문제였다고 한다. 아무려나 민주주의는 이 두사람한테 큰 빚을 졌다. 두사람이 목숨을 바쳐 아테네의 독재자를 암살했고, 뒤이은 권력투쟁을 거쳐 민주파가 아테네의 권력을 잡았으니까. 민주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민주주의 최초의 두 영웅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에 당황해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진실을 숨기려고도, 두사람의 공을 깎아내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사회는 동성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군대 

 
 
소시아스의 화가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갑옷을 입은 두 전사. 왜 짧은 치마일까? 고대 그리스에는 바지가 없었으니까. 땅에 화살이 꽂힌 걸 보니 전투가 한창인가보다. 왼쪽 남자는 팔을 다쳤다. 오른쪽 남자는 곰살궂은 손길로 상처를 싸맨다. 두 남자 사이가 애틋해 보인다.
 
고대 그리스의 도기 그림이다. 아픈데 왜 웃지? 아니, 웃는 표정 같지만 정말 웃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 그림의 관습이 그렇다. 어떤 상황에서도 표정이 비슷해서 조금 어색하지만, 익숙해지면 그 시대 그림 나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애틋한 그림을 그린 소시아스(Sosias)의 화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만,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나도 소개해드릴 말이 없으니, 이 작품이 그려진 도기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이 그림은 킬릭스(kylix) 바닥에 그린 작품이다. 킬릭스란 흙으로 빚어 구운 도기술잔이다. 오늘날 접시처럼 얕고 넓다. 거르지 않은 포도주를 따르면 바닥 그림이 잘 보이지 않았을 터. 그림을 보려면 포도주를 비워야 한다. 옛날 사람들이 술 권하던 방법인 걸까. 술을 빨리 마시라고 그랬을까. 킬릭스 바닥에 야한 그림을 자주 그렸다. 남자와 남자가 성관계를 갖는 그림도 드물지 않다. 
 
이 그림은 <아킬레우스Achilles와 파트로클로스Patroclus>.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전쟁 때 엄청나게 활약한 신화 속 영웅이다. 파트로클로스는 그 친구다. 그냥 친구였을까? 연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잘라 말하기 어렵다. 이 문제를 놓고 2800년 동안이나 싸웠는데,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아무려나 상관없다는 것이, 고대 그리스사람들의 생각이다. 동성애에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군대는 사랑하는 남성들로 구성된 군대다. 서로 지키려고 열심히 싸울 테니까.” 유명한 철학자 플라톤(Platon)의 주장이다. 그 사례로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를 들었다. 당시 사람들은 둘 사이를 연인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아킬레우스가 양성애자였을 수는 있다. 아들을 낳은 적도 있고 여자친구도 있었다고 하니. 하지만 옛날 그리스사람들은 동성애와 양성애를 엄격히 구별하지 않았다. 이성애도 동성애도 모두가 자연스러운 사랑일 뿐이었다.
 
 

‘플라토닉 러브’의 원래 뜻은

 
 
자크 루이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 그림을 이해하려면 사전지식이 필요하다. 가운데 인물이 소크라테스(Socrates)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 아냐고? 소크라테스 얼굴이 저렇게 생겼다고들 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조각에 전부 저렇게 묘사됐다. 다만 저렇게 몸짱은 아니었다. 조각을 보면 올챙이배가 볼록하다.
 
작품은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 Louis David)의 <소크라테스의 죽음>. 손에 든 잔은 독약이다. 처형당하는 장면이다. 다른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죽어서 다른 세계로 간다는 몸짓이다. 제자들이 하도 슬퍼하자, 자기 몸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며 소크라테스가 그들을 달랜다. 플라톤이 쓴 『파이돈Phaidon』이라는 책에 나오는 장면이다.
 
슬퍼하는 사람이 몇인가. 공교롭게도 열둘이다. 예수의 열두 제자와 같다. 그렇다면 이 장면은 ‘최후의 만찬’인가. 그러고 보니 한 손에 잔을 든 것도 마침맞다. 그렇다, 다비드는 소크라테스를 예수처럼 묘사했다.
 
그림에 직각이 많다. 팔이며 기둥이며 침대며, 수직과 수평을 맞춰 그렸다. 엄격하고 절제된 느낌을 준다. 신고전주의 회화의 특징이다. 인물을 조각미남으로 그린 점도 신고전주의답다. 소크라테스의 푸짐한 뱃살 역시 지나치게 ‘이상화’됐다. 원래는 아니다. 『향연』이란 책을 보면 소크라테스는 얼꽝에 몸꽝이라고 되어 있으니 말이다.
 
『향연』의 주제는 사랑으로, 플라톤이 썼다. ‘플라토닉 러브’라는 말의 출처가 바로 이 책이다. 유래가 흥미롭다. 아테네에서 내로라하는 꽃미남 알키비아데스(Alkibiades)가 얼꽝 소크라테스한테 반했다. 외모는 별로여도 지성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단다. 술 취한 척 소크라테스를 끌어안았는데, 이 뇌섹남은 알키비아데스의 몸에 밤새 손대지 않았다고. 플라토닉 러브가 ‘정신적인 사랑’이라는 뜻은 맞다. 다만 원래 뜻은 ‘정신적인 동성애’인 셈이다. 앞서 살펴본 “동성연인의 군대가 가장 강한 군대”라는 말의 출전도 『향연』이다. 
 
소크라테스와 제자의 관계는, 예수와 제자의 관계와는 다르지 않았을까.
 
 

사랑에 관한 ‘다빈치 코드’

 
레오나르도 다빈치 「세례 요한」
 
동성애를 당연하게 받아들인 그리스문화. 그러나 기독교문화는 달랐다. 동성애건 양성애건 엄격하게 금지했다. 물론 소용없었다. 사랑이란 금지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러다보니 일만 복잡해졌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평소 동성애를 내버려두다가 고발이 들어가면 엄벌에 처했다나. 관용하는 것도 아니고 엄격히 단속하는 것도 아니고, 운 나쁘면 걸리는 상황인 셈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불운했다. 젊은 시절 ‘동성애 혐의’로 고발이 들어가 곤욕을 치를 뻔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고발이 취소되고 다빈치도 풀려났다. 대신 피렌체를 떠나야 했지만 말이다. 이런저런 점을 미루어보면, 다빈치는 혹시 피렌체의 지체 높은 남성과 사귀었던 것은 아닐까. 당시 피렌체의 지도자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가 아닐까 추측하는 의견도 있다.
 
다빈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프랑스에 가서 숨졌다. 그의 걸작이 루브르박물관에 많은 이유다. 관광객들이 <모나리자Mona Lisa>에 몰려드는 동안, 비교적 보는 사람이 적은 다빈치의 다른 작품들을 천천히 감상할 수 있다. 예컨대 이 작품. 화면이 거무죽죽해 잘 보이지는 않지만, 털옷을 걸쳤다. 털을 몸에 두른 도상, 기억하시는지? 여성이면 막달라 마리아, 남성이면 세례 요한이라고 말씀드렸다.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 <세례 요한>. 하지만 거룩하기는커녕 야해 보인다. 묘하게 뒤틀린 성자다. 다빈치는 이 남자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지 않았을까. 나만의 상상은 아니다. 당시 사람들도 그렇게 봤고, 후대의 지식인들도 마찬가지. 그의 작품에 ‘다빈치 코드’가 숨어 있다는 이야기는 허구다. 반면 ‘동성애 코드’라면, 제법 많이 찾아낼 수 있다. 
 
손가락을 치켜든 모습도 주목. 원래 세례 요한은 ‘이 사람을 보라’며 십자가에 매달린(아니면 십자가에 곧 매달릴) 예수를 가리킨다. 그런데 다빈치의 이 작품에서는 하늘을 가리킨다. 고통받는 예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성서』에 나오는 요한은 고통에 익숙한 인물이다. 고통스럽게 살기 위해 스스로 털옷을 입고 광야에서 지내다가 고통스럽게 죽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그림은 이상하다. 다빈치가 그린 요한은 마치 쾌락의 성인 같다. 자기가 즐거울 권리를, 저기 높은 곳에 계시는 분도 인정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동성애를 수호하는 성인?

 
소도마 「성 세바스티아노」
 
하늘에는 천사, 땅에는 처형당하는 사람. 하늘을 올려다보는 눈빛이 선하다. 신을 원망하는 대신 ‘나의 영혼을 받아주세요’라는 표정이다. 순교자를 그린 그림이 이렇다. 처형방식을 보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서양미술을 읽는 한가지 방법. 
 
온몸에 화살이 꽂힌 순교자는? 세바스티아노 성인이다. (리페랭스의 그림에서 순례자들이 찾아가는 성인이 바로 이 사람.) 성 세바스티아노의 도상은 매우 자주 등장하니, 알아두면 편리하다.
 
소도마(Sodoma)가 그린 <성 세바스티아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로(Raffaello)가 추구하던 ‘우아함’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화가다. 세바스티아노의 몸은 우아하다. 지나치게 우아해서 관능적일 정도. 소도마라는 이름은 별명이다. ‘소돔(Sodom)사람’이라는 뜻. 요컨대 동성애자라고 소문난 사람이었다.
 
소돔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도시인데, ‘소돔과 고모라(Gomorrah)’로 유명하다. 번영하던 도시가 하룻밤 사이에 망했다. 어째서? 『성서』에는 도덕적 타락 때문이라고 했다. 중세에는 동성애 때문이라고 가르쳤다.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고, 성서 구절을 짜깁기하여 중세사람들이 상상한 것이다. 소돔이 동성애 때문에 망했다는 말은 엄밀히 따지면 근거가 약하다. 『성서』가 동성애에 부정적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대개 이런 식이다.
 
작가의 본명은 조반니 안토니오 바치(Giovanni Antonio Bazzi). 어쩌다 일 소도마(Il Sodoma, ‘그 소돔사람’)라 불리게 되었을까? 그를 질투한 다른 화가가 “조반니는 동성애자”라 흉을 보고 소문을 냈다는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당시의 복잡한 태도가 드러난다. 동성애자로 평판이 자자해도 고발만 안 당하면 잡혀가지 않지만, ‘동성애자’라고 흉보기는 했다는 것. 조반니가 진짜로 동성애자였는지 양성애자였는지는 지금 와서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조반니 본인은 소도마라 불려도 싫어하지 않았다고. 자랑스러워했다는 말도 있다. 혹시 ‘게이 프라이드(동성애자의 자존심)’의 원조였을까?
 
언임플로이드 필로소퍼즈 길드(Unemployed Philosophers Guild) 「성 세바스티아노 핀꽂이」
 
화살 꽂힌 세바스티아노. 옛날부터 수많은 화가와 조각가가 작품으로 만들었다. 서양의 미술관에 가면 가장 자주 만나는 도상 가운데 하나다. 왜 인기였을까? 가장 큰 이유는 세바스티아노가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성인이기 때문이다. 몸이 아픈 사람은 세바스티아노 성인에게 빌면 좋다. 돌림병이 돌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또하나 이유는 말하기 민망하다. 젊고 아름다운 남성이 옷을 벗은 채 몸을 배배꼬는 모습이 어딘지 관능적이다. 점잖은 분들은 싫어할 이야기지만.
 
미술관만 가면 만나는 작품이다보니, 이렇게 기발한 인형도 나왔다. 유럽 어느 미술관 앞에서 샀다. <성 세바스티아노 핀꽂이>. 기둥에 묶인 성인과 핀을 함께 판다. 성인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핀을 이곳저곳 꽂아보는 장난감이다. 상자에 인쇄된 그림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인 만테냐(Mantegna)의 <성 세바스티아노>. 성인께는 미안하지만, 접근이 유쾌하다.
 
또하나의 색다른 접근도 있다. 오늘날 성 세바스티아노는 게이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물론 교황청에서 공인해주지는 않았지만. (그럴 턱이 있나.) 남성 동성애자가 세바스티아노의 도상에 끌리는 까닭은? 영국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지에 따르면, “(이유는) 명백하다. 그는 젊고, 남성이고, 결혼도 안 했으며, 사회 주류에 의해 희생당했기 때문”이다. 편견 가득한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살면서, 고문받고 고통스러워하는 세바스티아노에게 공감을 느낀다는 이야기도 있다.
 
신성모독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좋게 보고 싶다. 하느님도 싫어하지 않으실 것이다. 동성애자를 못살게 굴던 그 오랜 편견과 폭력의 역사에 맞서 싸우는 방식이 이토록 평화롭고 문화적이라니 말이다.
 
 

동성애자의 인권은 사회의 척도

 
나치에 희생된 동성애자 추모비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사랑으로 인정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때로 가혹한 탄압을 받기도 했다. 동성애자를 괴롭힌 대표적인 집단이 나치였다. 이 책에 나치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그럴 만하다. 히틀러 패거리는 온갖 방법으로 인간의 권리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인권 침해의 백화점이랄까.
 
애초에 히틀러는 지지자들에게 약속했다. 강력한 단결을 이루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다양한 사람들 사이의 의견 통일을 이루는 방법은 단 하나다. 소수의견을 틀어막는 것뿐이다. 그래서 나치는 소수자를 학살하는 일에 참으로 열심이었다.
 
나치가 수백만 유대인을 학살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은 삼각형을 두개 붙인 노란 별을 가슴에 달았다. 나치는 좌파도 학살했다. (수용소를 지은 까닭도 처음에는 좌파를 가두기 위해서였다.) 좌파는 빨간색 역삼각형을 달았다. 여호와의 증인도 죽였다. 그들은 보라색 역삼각형을 달았다. 집시라 불리던 로마족도 죽였다. 그들은 검은색 또는 갈색 역삼각형을 달았다.
 
동성애자 역시 학살당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수용소에 갇힌 남성 동성애자는 핑크색, 여성 동성애자는 검은색 역삼각형을 달았다. 무지개 깃발과 더불어 핑크색 또는 검은색 역삼각형이 동성애자 인권운동의 상징이 된 까닭이다. 핑크빛 돌로 만든 역삼각형 조형물은 <나치에 희생된 동성애자 추모비>. 베를린(Berlin)의 놀렌도르프플라츠(Nollendorfplatz) 지하철역에 있다. 동성애자 학살은 부끄럽고 슬픈 일이다. 이 작품은 깔끔한 디자인 속에 슬픔을 절제하여 표현했다. 현대적인 감각이 살아있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면면을 보자. 나치는 사상의 자유를 억압했다. 좌파며 여호와의 증인이며, 자기네와 사상이 다른 사람을 죽였다. 핏줄이 다른 사람도 죽였다. 유대인과 로마족, 그리고 슬라브사람을 살해했다. 그리고 성소수자도 학살했다. 
 
동성애자가 핍박받는 사회는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다. 동성애자의 인권 수준이 그 사회 인권 상황의 척도인 까닭. 우리 사회는 어떤가. 우리 안의 성소수자는 충분히 존중받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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