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SHARE
2

Time after Time

이상우
2017년 09월 26일

 

 

  

※'키워드3' 세번째 주제는 '창작-(   )-시간'입니다. 창작자들에게 창작하는 시간, 창작하는 요즘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습니다.


창작-(이후)-시간

 

이건 어머니가 친구 딸의 결혼식장을 찾아가는 이야기인데 나는 동행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써본다. 쉰아홉살의 여성이 영상 6도의 겨울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이따금씩 수사의 시선을 초과하면서 오전 11시, 방 안에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걸음소리, 멈춰섬, 다시 걷는 소리 어머니 얼굴을 바라본 지 오래됐다. 점점 더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는 게 어렵다. 손잡이를 붙잡고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 주홍색 안전조끼를 입은 인부들이 라인기로 횡단보도를 그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사거리에 서서 신호등 불이 바뀌길 기다릴 때. 트럭 짐칸에 종대로 앉아 담배 피우며 멀어지는 사람들이 어머니를 내려다보았다. 언젠가 종이냄새 묻은 손가락 사이로 비쳐오는 햇빛 따라 고개 들어보면 네 갈래로 갈라진 하늘. 교회 종탑의 십자가 옆모습 아래 어머니는 장갑을 벗을 듯 말 듯 걸으면서 다가오는 교회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자동차와 상가건물의 유리창이 나타날 때마다 흘깃 어젯밤 가발을 샴푸 물에 헹구어 옷장의 코트들과 색감을 맞춰보았음에도 어색한 전신을 훔쳐보며 창에게서 벗어나는 속력만큼 순간적인 절망감이 희미하게 혼잣말을 내뱉도록 했다. 셔틀콕처럼 공터에서 모녀가 주고받는, 잠시 벤치에 앉은 어머니에게 풍경은 바람에 휘어지고, 작년 여름에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부터. 나는 슬펐지만 정확히 그 이유 때문은 아니었는데 보다 사적인 우울함이 있었고 가족의 건강보다도 더 가까운 감정이 있을 수 있다는 식의 이기심에 그 점을 깨닫는 일의 역겨움에 놀랐다. 아마도 그보다도 더 어둡다고, 항암치료 덕에 새카매진 어머니의 얼굴이 벤치보다 앞서 수국다발 같은 볕에 놓여 있다고 이야기해둬야겠다. 병원에 찾아가면 에메랄드 색 커튼 아래 그 얼굴이 누워 있어서 나는 침대 옆 보조의자에 앉아 창밖을 온통 흐르는 에메랄드 색 물결을 어머니가 바라보는 것처럼 어느 여름 청량동 구립수영장 위로 떠다니던 얼굴을 떠올리곤 했다. 내가 아직 열살 때 어리고 빳빳한 긴 검정색 머리칼의, 차갑고 투명한 25m 풀에서 한시간 내내 자유형을 할 수 있었던 어머니가 가발 앞머리를 정리하며 벤치에서 일어난다 어깨 부근의 햇빛들, 이십년 전 집에 가자 보채던 나 때문에 새로 산 원피스 어깨를 적셔야 했던 덜 말린 머리칼 위로 통과해갔던 정오가 돌고 돌아 그날 어머니에게서 훔친 물기를 머금고서 기다려왔다는 듯이, 어머니는 어머니의 어깨를 보지 않고 물방울처럼 조각난 그림자 또한 그동안 병든 모양으로 오랜만이겠지 백화점으로 들어가 지하철을 타는 어머니는. 가끔은 시민공원 중앙에 개찰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비 오는 시민공원의 산책로를 걷다가 수풀 속에 누워 신음하는 할머니를 본 적 있는데 나는 119에 전화를 걸고 나서 구급차를 기다리며 내가 평생 처음으로 구급차를 불러봤구나 하는 생각만을, 빛 한톨 돌아다니지 않는 밤의 공원을 떠나가는 구급차가 검은 빗줄기 속에서 일층부터 옥상까지 빛을 폭파하듯 뿜어대는 대학병원을 향해 녹색 경광등으로 거리가 자해하듯이, 그분의 안위는 금세 잊혔지만 머지않아 같은 시민공원에서 나의 외할머니가 쓰러졌고 다행히 누군가 또다시 구급차를 불러 대학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으므로 시민공원 중앙의 개찰구를 통과하는 상상, 비숑이나 삽살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을 주위로 그을린 생명의 빛바랜 잎사귀 아래 개찰구를 지나, 천장으로부터 부드럽게 헝클어진 모과나무의 뿌리가 보이는 공원 지하 플랫폼 대신 롯데백화점 지하 3층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 어머니가 병실 침대에 누워 있던 어머니의 어머니를 간호하다 결국 침대에 자신이 앉게 되어 허공을 할 말처럼 입술을 벌린 채 방치했던 모습으로 다가온다. 지하철이 내가 비치질 않는 스크린도어 뒤의 공간을 기다랗게 메우면서, 고개 숙인 얼굴들의 유리창으로 어머니는 섞여들어 이동되고 나는 까페 테이블에 앉아 주홍빛 조명에 녹아들 듯 유리창으로 흩어지는 여러 얼굴들을 보고 있다. 여러 흐릿함, 어지러움, 아직 첫눈이 내리지 않은 채 나는 저녁이고 한국지하철도공사에 따르면 7호선 지하철의 평균 시속은 80km, 나와 어머니의 거리가 1분에 1.2km씩 멀어지며, 어머니는 도시 최하층의 터널 속으로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낮의 길이를 상상 속 목소리로 읽어내면서, 한때는 그렇게 늘 동네 도서관의 사서자리에 앉아 있었다. 주민회관 지하에 조그맣게 자리한, 아무도 오질 않는 도서관에 나는 때때로 하굣길에 용돈을 얻기 위해 들렸고 신발을 가지런히 벗고 들어가야 했던 그곳은 지금 생각해보니 가상 같은데 낮은 천장, 페인트 벗겨진 벽장, 한글 자모음 적힌 바닥타일, 허물어져가는 책들, 앞에 열거한 사물들은 사실 확실치 않고 또 나는 도저히 그곳의 차림새를 사계로 나누어 기억할 수 없는데 색연필도 필요 없이 아무래도 계절조차 닿지 않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주민회관 지하, 언젠가 어느 망명자가 작곡한 사중주의 첫 음으로 등장한 저음계가 갑작스레 나에게 그곳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그런 추상 속에서마저 너무나 소외되어 좀체 재현될 수 없었던 도서관에 십년 동안 매일매일 혼자서 앉아 있던 어머니의 자세만이 지금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그 시기의 전체이기도 하다. 아마 그보다는 더 불편하게 앉아 어머니는 더 이상 지하철이 가리키는 방향을 미래라 여기지 않으며 단순히 여기서 저기로, 그동안 읽어온 책들에 적혀 있던 글자들이 의미를 떠나 그저 생김새로 조합되어 전광판에, 차창 밖 안내판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처럼 이동되어지고 신호등, 불빛 깊은 겨울 저녁의 까페에 앉아 있는 나는 몇년 뒤일지도 몇년 전일 수도 있다. 근처 테이블에서는 갓 구워진 빵 위로 녹아내리는 계피의 냄새가 풍기고 창밖으로 여전히 혹은 아직, 전조등 켠 차들이 지나간다. 한 세기 전에는 말들이 지나갔을 거리라고 이보다 훨씬 맑을 대기로 거대한 샹들리에처럼 가득히 부딪치는 별빛 아래 맨발과 갈기를 절뚝이며 눈길을 걷는 말을 떠올리면 조금 추워지는데 벌써부터 가라앉고 있는 어둠 속에서 차들이 몸 밖을 향해 필사적으로 쏟아내는 눈빛 또한 한 세기 뒤면 사라질 거라 예감되어 그럴지도. 어쩌면 이제 정말로 희미해져 망상의 도감으로나 느껴지는 별자리들 또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될지도. 다시 몇억 분의 일초 뒤, 몇억 분의 일초 앞, 멀어지고 있는 어머니는 파릇이 금귤나무가 심겨 있는 베란다에 나와 금호아파트 주차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아스팔트 바닥, 하얀 얼룩이 그려져 있는 곳에 어린 내가 축구공을 들고 서 있는데, 매주 동네에 하나씩 더 늘어나는 얼룩이 투신자살을 표시함을 알고 있었던 나는 그럴수록 앞으로도 이토록 무성한 녹색 풀잎들이 홀린 듯 젖어오는 햇빛을 거실로 환대하게끔 베란다를 서성이며 파란 물뿌리개 기울이는 어머니를 올려다보지 못하고 물뿌리개의 미세한 구멍들로부터 촉촉이 분쇄되어 창살을 지나 화분 위로 드러난 흙에 닿기까지 물줄기가 햇빛에 닿아 어머니의 얇은 손목 주위로 동그랗게 펼쳐낸 무지개처럼 어머니에게 넓은 거실은 잔상만 남아 사라지고 소파, 흔들의자, 대리석 식탁, 안방의 욕조, 서재, 전축기 이사 할 때마다 꿈꾼 듯 밤새 증발된 것들 계속해서 점점 더 작아져가는 집은 죄와 벌이라는 종교적이라고밖에 설명할 도리 없고 그렇기에 개인이 끝낼 수 없는 지극히 관념에 오염된 이성으로서의 자기의심을 한순간도 쉬지 않게 하여 그것이 결국 하나의 장소로 왼쪽 겨드랑이 속에서, 환승역에 다다른 지하철의 문이 열린다. 문틈으로 광선같이 뻗어가는 녹색 선을 따라 어머니는 이렇게나 처음 보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걸어가며 결혼식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친구가 자기보다 키가 컸는지 작았는지, 그 친구의 딸은 자기가 누군지 알아보기나 할지, 가발이 가발인 티가 나는 건 아닐지 벽에 그어진 안내 선을 놓치지 않기 위해 스무걸음마다 한번씩 확인해가며 어느덧 빈곤하게 반짝거리는 액세서리 가게와 옷가게 등이 즐비한 지하상가가 나타나면 손님 없는 토스트가게 주방에 앉아 라디오 듣고 있는 또래의 여성. 6월 10일 화장품 가게 문을 평소보다 일찍 닫고 나서 이렇게나 처음 보고 이름도 모르는 이들과 한 방향으로 걸어가다보면 몇명은 연행되고 몇명은 머리에서 피가 났다. 최루탄 가루로 사위가 희뿌옇던 지상의 1987년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나를 뱃속에 품고 스물아홉살의 여성이 지하도를 나와 부평 거리를 행진한다. 방직공장에 위장취업 했던 작은 고모도 그 근처에, 두 아이 때문에 이혼할 수 없었던 작은 이모도 그 근처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가 기억할 수 없는 시대의 어느 거리에서 서로를 찾을 경황도 없이 폭력을 각자 버텨내며 전진하고 있는 이들을 떠올려보면 그 시대가 나에게 존재했던 것 같다. 창을 통해와 산산조각 난 볕의 모양새로 부서진 어제들 중 하나인 양 그 시절을 기억해낼 수 있을 것처럼 까페는 고요하고 나는 이 글을 이미 회고할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처음 보았던 날, 내가 가만히 있음에도 그것이 나를 비스듬히 이끌어 공중에 데려다놓았을 때, 나를 지하로 내려다놓았을 때, 내 고갯짓 너머에서 나를 사선으로 역행해오는 이들이 모두 차례대로 사라져갔을 때 나의 손이 어머니의 손 안에 안전히 쥐어져 있었고, 목각별과 줄무늬 지팡이 등의 장식구들이 화사하게 백화점을 꾸민 90년대의 크리스마스이브에 밍크코트 입은 어머니가 내 옆에 나란히 서 나의 손을 붙잡은 채, 거울들에게 반사되어 환영에 가까울 정도로 버무려진 전구 빛을 향해 스스로를 끝없이 삼켜내며 상승해가는 계단 위에서 어머니는 어머니의 손에 감긴 움직임이 어머니에게서 사라져버리지 않도록 꼭 상실의 속도를 버텨내며 나 없이, 여느 일행도 없이 역 출구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 앞선 사람들 머리칼 사이로 비쳐오는 햇빛을 올려다본다. 조금 눈을 찌푸렸을지, 가까워질수록 베어오듯 이마 위로 층지는 빛 고개를 조금 돌리거나 오히려 표정을 빛 속으로 놓아두면서, 돌고 돌아와 마침내 거의 들려오듯이 새하얗게 저 앞 아치형으로 오직 빛만이 머무는 곳에서 무엇이 보였을지, 빨려들어가다시피 환히 휩싸여 보이지 않는 얼굴과 두 눈 속으로 바스러지는 빛의 무늬들에 대해서만 쓸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내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본 소리 새벽녘 잠에서 깨어나 부은 눈 부비며, 날카롭게 밝은 문틈을 바라보면 들려오던 작은 허밍, 에메랄드 색 커튼 아래 한가닥의 머리카락도 남지 않은 어머니가 약기운에 무너져 비명 대신 흥얼거리던 노랫말, 이것만큼은 잊을 수 없게 되겠구나라고 나는 차라리 여기가 북극이라면 이렇게 유리창을 고개 들어 올려다보면 오로라가 펼쳐져 있을 텐데 빛깔은 적을 필요 없어 적히지 않은 문장들처럼 롱 패딩 입은 한 연인이 창밖에서 나에게 등 돌린 채 나와 같은 각도로 고개 올려 하늘을 올려다보고, 왜인지 둘이 동시에 한걸음을 더 나서고, 무언가를 받아내듯 두 손바닥을 하늘을 향해 펼치고, 모든 사람들이 알다시피 첫눈은 피할 수 있을 것처럼 내린다. 천천히 하얗게 주름지는 드레스 대신 네이비 턱시도 입은 두 여성이 박수 받으며 카펫 위를 걸어오는 장면을 쓰겠다. 나는 동행하지 않았기에. 무릎 위로 손바닥을 닦아내던 피아노 주자가 건반 위에 손끝을 얹어둔 웨딩홀, 턱시도 입은 두 여성이 손을 잡고 나란히 걸음을 내딛는다. 두 여성이 두 여성으로 걸어오는 감정에 압도된 하객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결 풍성한 아마빛 카펫 위 발렌시아가 구두코로 이어지는 오로지 둘뿐인 순간 속에서 두 여성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을 때, 어머니와 어머니의 친구 또한 나란히 앉아 스치듯 조명 비껴든 무대 옆에서, 저 두 여성은 어떻게 저리 멋지고 행복해 보일 수가 있는지 어쩌면 그것들은 저들 스스로가 마음먹은 순간 모두 한꺼번에 일어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지도 않은 미래에까지 자국을 남길 정도로 환히, 그 갑작스런 밝음이 두려워 눈을 감거나 놓지 말아야 한다고 두 여성이 자신들의 머리 위를 스쳐가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행진하는 두 여성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피할 수 있을 것 같이 내리는 눈, 나는 이 글을 상상하면서, 내린다기보다 단지 약간의 바람에 몸을 간신히 띄우고 있는 작은 눈송이들 사이를 걸어가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캄캄한 개방형 아파트 복도에서 고요히 지속되는 눈송이들은 그 아스라한 형태로 아주 적은 별빛의 기척까지 모조리 반사시켜내며 어둠을 하나씩 하나씩 하얗게 뒤집어냈다.(끝)





2회에서 계속됩니다.



이상우
소설가. 소설집 『프리즘』이 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