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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문학하기

신용목
2017년 10월 16일
 

세번째 문학지의 소설 ‘중계’는 복자여고 학생들과 함께했다. 학교라는 공동 영역 안에서 각자의 경험을 쌓아가는 그들이, 일상의 세부와 그 문제를 개성적으로 다룬 곽재식 권여선 김솔 김혜진 서현경의 소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학의 개성은 작품에서만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독서 과정에도 적극 발현된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한 좌담이었다. 김기택 신영배 심지아 임경섭 하혜희의 시를 함께 읽은 이들의 관점도 흥미롭다. 뮤지션이자 교육자인 권나무, 일본인 여성학 연구자 하마무, 열혈 청년독자로 함께해준 김유미, 그리고 실재와 그 너머에 질문을 기입해온 시인 조혜은을 통해 감각의 다양함이 세계의 복잡한 구조와 어떻게 연관하는지를 엿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호 문학작품들이 가진 풍성한 매력을 이 자리에 다 옮길 수 없어 안타깝다. 이 또한 텍스트를 통해서만 맞이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증명하는 지극한 조바심이라는 생각도 든다.
 
많은 분들이 원고모집에 응해주셨다. 게재작을 선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호에 비해 그만큼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확신을 주는 작품이 적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두에게 지면을 드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서현경(소설)과 하혜희(시)의 작품이 그 안타까움을 메우리라 믿는다. 애초 중계란의 취지도 그랬듯이 원고모집의 활성화를 통해 문학이 머무는 테두리를 조금씩이나마 허물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주목’ 또한 그와 다르지 않은 고민을 담고 있다. 독자 개인의 경험 차가 텍스트 해석과 이해를 다채롭게 바꿔놓는 것처럼, 이제 한 사건은 정련된 논리로만 해석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지적 경험에 의해 도출된 해석은, 생생하고 다양한 일상의 지평 위에서 쉽게 반론되고, 수많은 목소리들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방위를 갖게 된다. 광장을 가득 메운 모습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른바 ‘집단지성’을 통해 주변부의 여백을 지워나가는 이러한 현상은, 자의든 타의든 그간 중심부로 기능했던 ‘엘리트주의’에 교정을 요구하고 있다. 권위가 만들어낸 원칙들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차이와 균열을 동력으로 삼는 움직임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논리적인 분석과 신념, 그리고 실천으로 이어지는 패턴이 아니라 ‘수행 그 자체’로 보인다. 도처의 불합리를 폭로하고 거부하기 위해 주류와 비주류를 넘나들고 논리와 비논리 심지어 적대와 모순을 넘나드는 것은, 어쩌면 전략이라기보다는 세계의 폭력적인 작동원리에 대항하고자 하는 이들의 존재 양태일지도 모른다. 서로 엇갈리는 평가를 안고 갈 수밖에 없으리란 판단에서 복수의 필자에게 같은 주제의 글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여론에서 보이는 진보 언론 혹은 엘리트주의를 향한 목소리에 대해 오영진, 안희곤 두분이 다루었고, ‘넷페미’로 일컬어지는 새로운 페미니즘 행동주의 경향에 대해 류진희, 윤보라 두분이 썼으며, 문학비평 바깥의 독자들에 대해 이지은, 윤경희 두분이, 그리고 대의제와 민주주의의의 역사적 맥락을 김민철이 짚었다. 이 자리에서 논의를 찬반이나 정반의 문제로 바꿔놓고자 한 것은 아니다. 두개의 힘은 늘 존재한다. 양 끝을 지키고 선 그것들은 때로 균형이라는 이름으로 묘하게 희석되고 뭉개지기도 하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자신이 사라지는 자리에 늘 새로운 것들이 들어설 힘을 남긴다.
 
문화예술을 공학적으로 제도화하는 정책적 오류를 넘어 정치적으로 제도화하려 했던 파행을 우리는 경험했다. 그로 인해 블랙리스트나 적폐로부터 벗어나 한층 견고해진 시장으로 방생되는 일을 규범의 승리로 여기며 환호하게 되었다. 어떤 특수한 구조에 대한 제도적 관리보다는 상품 경쟁이 훨씬 정의롭게 느껴질 만큼 현실은 바뀌어 있고 문화예술지원 정책마저도 당연하다는 듯 상품성의 지표를 요구하는 형편이다. 이제 상품성을 갖지 않은 문학성을 말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정작 문학이 자신의 반자본적 가치를 보편적 가치로 구성해내기 위해 한 일은 무엇일까? 원론적인 대답이 입가에 맴돌기만 할 때, 현실의 지평에서 떠오른 수많은 목소리와 시도들로 점철된 싸움의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이번호 ‘현장’에서는 장애활동가 홍은전이 장애인시설 거주인들에 대한 소회를 유려한 문체에 실어 보내주었으며, 김수상 시인은 사드반대 투쟁 현장의 열정과 온기를, 노동활동가 강정주는 달라진 시선 속에서 촛불 이후에도 계속되는 노동운동 현장 소식을 전해주었다. ‘시선’에는 시인 안희연과 만화가 앵무가 각각 사진과 만화로 우리가 사는 세계의 일면을 기입해주었다. 모든 필자와 참여자 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문학웹 ‘3×100’에 연재되고 있는 최은영의 소설 「모래로 지은 집」과 정지돈의 소설 「은뢰」 역시 날로 흥미를 더해가고 있다. 전혀 다른 개성의 글쓰기를 선보이는 두 소설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와 함께 어떤 결말에 다다를지 함께 점쳐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어지는 최진영과 황정은의 연재도 애독을 부탁드린다. ‘키워드3’에서는 ‘진지충’과 ‘글쓰기’를 키워드로 내걸고 김요섭 박해민 김송희의 글을 선보였다. 이 시대의 단면을 유연하게 점검해보고자 하는 이 코너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문학몹은 플랫폼 기능의 한축으로 조금씩 자리매김하고 있는 듯하다. 시인 김현의 사회로 김세희 박민정 임현 조우리 작가를 초대해 ‘문학하기’를 둘러싼 여러 고민을 나누는 세번째 현장을 가졌다. 한층 더 편안하게 꾸려질 문학몹 네번째 현장에도 많은 성원을 기대한다.
 
그사이, 〔문학3〕은 ‘장르교환 창작’ 코너 운영에 대해 입장을 낸 바 있다. 장르교환 대상 작품에 대한 사전 조치를 보완하고, 다양한 시도들에 활기를 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 해당 코너를 운영하기로 하였다. 반성은 어떤 오점에 대한 무차별적 폐기가 아니라 점차 습관이 되어가는 오류를 깨우고자 하는 사유의 기술이 되어야 한다.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은 아무래도 문학을 통한 교감과 삶의 자유로운 전개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들이 모두 문학과 삶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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