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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강성은
2017년 10월 24일

 

  

※'키워드3' 세번째 주제는 '창작-(   )-시간'입니다. 창작자들에게 창작하는 시간, 창작하는 요즘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습니다.


창작-시간-(2017 서울)

 

몇해 전 어느 대학 문예창작과 입시 면접 질문 중에 “시인은 가난해야 한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이 있었다. 예술고등학교 강사였던 나는 이런 질문에는 어떻게 답해야 하느냐는 학생들의 물음에 쉽사리 답변을 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가난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고, 가난해야 하는 사람도 없다고만 했다. 질문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시인이 되기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에게 가난을 각오해야만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암시하는 것처럼 들렸다. 가난을 각오하는 것.
 
등단하고 나서 가장 놀라웠던 일은 시를 발표해도 원고료를 주지 않는 잡지가 많다는 사실이었다. 시 전문 잡지의 절반 정도는 원고료가 없었다. 그런데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원래 그렇다고 했다. 나는 시 한편을 쓰는 데 꽤 오래 걸리는 편이다. 힘들게 쓴 시를 원고료도 안 받고 건네고 싶지는 않았으나 거절할 수 없었다. 선생님들도 원고료 안 받으실 텐데 갓 등단한 내가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들 너무 가난에 익숙해서 그런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인인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행히 요즘은 대부분의 잡지가 원고료를 준다. 예전에는 내게 원고료를 주지 않았던 잡지들도 이제 원고료를 준다. 원고료가 없는 곳에서 청탁이 오는 경우도 있긴 한데 내가 시를 싣지 않겠다고 전한다. 문예지의 사정에 따라 시 한편당 3만원, 5만원, 10만원도 받는다. 쌀을 받은 적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시 원고료로 쌀을 주다니 시인들의 세계는 참 낭만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상은 낭만적이지 않았다. 원고료로 받은 쌀은 거무튀튀했고 아무리 씻어도 계속해서 검은 물이 나왔다. 쌀을 버리기에는 마음이 꺼림칙했다. 새들이 먹을까 싶어 테라스에 뿌려놓았는데 새들도 먹지 않았다. 처치곤란이었다. 결국 나는 이런 쌀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엄마에게 여쭈었는데 일단 고향집으로 보내라고 했다. 우리 엄마도 농부의 딸이었고 쌀을 버리지는 못하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이런 쌀이 도대체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는데 원고료로 받았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s시인도 원고료로 그 쌀을 받았는데 검은 물이 계속 나왔지만 차마 쌀을 버리지 못해서 다 먹었다고 했다. 먹고 잘못되진 않았어, 하며 웃었다.
 
최근 최영미 시인의 호텔 관련 페이스북 글이 논란이 됐다. 시인은 호텔 측에서 자신에게 일년간 집필 공간을 제공해준다면 평생 홍보대사가 되겠다고 제안했다. 최 시인의 글에는 다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긴 했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나는 굉장히 재밌는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이분 진짜 시인이시구나, 하고 웃었다. 최영미 시인이 지목한 호텔은 내가 살고 있는 곳 근처에 있다. 나는 그 호텔이 유명한지 어떤지 잘 몰랐다. 그 부근을 지나다니며 호텔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도 봤는데 무척 깔끔해 보였을 뿐 화려하지는 않아서 4성급의 호텔인 줄도 몰랐다. 그런데 최 시인의 페북 글이 기사화되면서 논란이 뜨거워지자 비난의 수위가 점점 높아져갔다. 온갖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말들이 시인을 향해 쏟아졌다. 나는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고 마음이 힘들었다. 세상이 시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플라톤이 공화국에서 시인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한 글을 읽었을 때는 웃었는데 댓글을 읽고 웃을 수는 없었다. 아무도 최영미 시인의 글을 유쾌하게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시인이니까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할 수도 있지,라고 말하지 않았다.
 
러시아 시인 요제프 브로드스끼는 구소련에서 사회의 기생충이라는 죄목으로 재판에 회부되어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서의 5년 강제노역형을 선고받았다. 브로드스끼는 정식으로 소련 문단에 데뷔한 적도 없고 공식출판물에 소개된 적도 없는 시인이었다. 그러나 ‘쌈이즈다뜨(samizdat)’라고 하는 지하출판을 통해서 이름이 알려진 시인이었다. 그는 노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국 강제추방을 당했고 미국에 정착한 이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노동에 대한 경직된 사고를 가진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다.
 
 
판사: 왜 일을 하지 않았는지 말해보시오.
브로드스끼: 일했습니다. 시를 썼거든요.
판사: 그 대답에는 관심 없소. 그런데 당신 직업이 뭐요?
브로드스끼 : 시인, 번역가입니다.
판사 : 당신이 시인이라고 누가 인정했소? 누가 당신을 시인에 포함시켰소?
브로드스끼: 누가 나를 인간에 포함시켰지요?
판사: 당신은 그걸 배웠소?
브로드스끼: 뭘요?
판사: 시인이 되는 것 말이오.
(요제프 브로드스끼의 재판 기록 부분)
 
시인이 만들어내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빈곤한 사회가 된다. 시인들은 사람들이 생각해내지 못하는 엉뚱한 상상력의 공장을 가지고 있다. 그 공장에서는 정해진 시간에 노동이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시인의 공장은 일년 내내 쉬지 않고 가동되며 매순간 연기를 피워 올린다. 그 연기는 공중으로 높이 올라가 도시 전체를 통과해 미래로 향한다. 시인들이 쏘아올리는 꿈이 신호탄이 되어 멀리 퍼져나간다. 엉뚱한 상상력의 공장에서 생산되는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재화가치도 없는 것들이다. 시인들은 이런 무용하고 쓸모없는 걸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나는 시인들이 만들어내는 무용하고 쓸모없는 것들이 결과적으로 한 사회를 유용하고 쓸모있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시인들이 없다면 누가 우리를 먼 곳으로 데려다줄 것인가.
 
명동에 있는 서울 호텔 프린스는 2014년부터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만들어 소설가들에게 집필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41명의 소설가가 집필 공간을 제공받았다고 한다. 나는 명동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이 호텔 앞을 자주 지나다녔다. 호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신 적도 있는데 이런 곳에서 글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 적 있다. 호텔 프린스에서 소설가들에게만 집필 공간을 제공한다는 소식을 듣곤 부럽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시인들에게도 이런 공간이 제공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대체로 까페에서 글을 쓰는 편이다. 내 주위의 많은 작가들이 까페에서 글을 쓴다. 사실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까페에서 얼굴을 아는 작가들을 우연히 마주칠 때가 있다. 계간지 마감철 24시간 운영하는 까페에서 새벽에 작가와 편집자 여러명을 동시에 만난 적도 있다. 모두 마감하러 와서 지친 얼굴이었다. (서울은 좁고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다. 흥미로운 일이다. 나중에 서울에 사는 예술가들의 이런 집필 스타일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연구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까페에서 글을 쓰는 이유는 생활과 분리된 공간이 필요해서다. 내가 아는 몇몇은 작업실을 따로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럴 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 서울에서 작업실을 가지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집에서 글을 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집에서 나는 끊임없이 청소하고 세탁하고 반찬을 만들고 가족들과 친구들과 사는 얘길 하고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을 쇼핑하고 잠을 잔다. 이러한 일상적 루틴과 결별하고 오직 작품 속으로 몰입해 들어가야 하는데 낯익은 환경인 집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는 『가디언』에 쓴 글에서 자신의 집필 비결이 ‘가사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밝혔다. 대표작인 『남아 있는 나날』을 쓸 때 전화를 받지도 않고 편지에 답장도 하지 않고 모든 방해물을 차단한 채 아침 9시부터 밤 10시30분까지 집중해서 완성했다고 한다. 아내가 가사를 전담해준 덕분이라고 했다. 작가들에게는 생활과 단절된 집필 공간이 필요하다. 서울처럼 부동산 문제가 심각하고 주거비용이 높은 곳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에게는 까페가 대안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 이런 기사가 나온다면 돈 없는 예술가들 모두 시골 산간벽지로 내려가라는 댓글이 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돈이 되지 않는 글을 쓰면서 대부분의 작가들은 돈을 버는 다른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서울에 몰려 있는 것이다.
 
나는 단 일년만이라도 돈 버는 일을 안하고 글만 써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몇해 전에는 그 계획을 실행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나에게 그런 시간은 등단 이후 한번도 주어지지 않았다. 돈 걱정 없이 일년만 글을 쓸 수 있다면 훨씬 더 잘 쓸 것 같다. 실제로 내가 수입이 넉넉했을 때 나는 훨씬 더 많은 책을 읽었고 많은 글을 썼다. 수입이 넉넉했을 때는 다음 달과 내년을 걱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내 삶의 목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고 내 꿈은 부자가 아니다. 그러나 돈이 없으면 당장의 일상을 살아낼 수 없다. 자본주의는 모든 사람에게 노동을 해서 정당한 댓가를 얻으라고 한다. 내게 시를 쓰는 일은 노동일까, 아닐까. 그리고 만약 시 쓰기가 노동이라면 나는 노동의 댓가를 정당하게 얻고 있는가. 노동이 아니라면 시 쓰기는 내게 취미일까. 그러나 취미라고 하기엔 시를 쓰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과 고된 과정을 들이고 있지 않은가. 등단할 때 신인상 수상식에서 내가 소감으로 한 마지막 말은 “좋은 시 쓰고 싶습니다. 좋은 시 쓰겠습니다.”였다. 나는 좋은 시를 쓰고 싶다. 그러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면 시 쓰기와 돈 버는 일 중에 무엇이 더 먼저인가.
 
몇해 전 여러명의 시인, 작가 들과 함께 짧은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숙소에 머물렀다. 산속의 밤은 아름다웠다.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이 떠 있었다. A 시인과 내가 밖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중에서도 유난히 밝은 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저 별은 뭘까? 목성일까? 정말 아름답다 등의 말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별과 밤과 인간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뒤늦게 밖으로 나온 평론가 B가 우리에게 말했다. “이 순진한 시인들아, 저건 인공위성이라고. 저렇게 밝은 게 별일 리가 없잖아!” 순식간에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다 같이 웃었다. 그 장면이 가끔씩 생각난다. 그날 밤하늘에 유난히 밝게 빛을 내던 것이 인공위성인지 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는 인공위성이라고, 누군가는 별이라고 믿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공위성이든 별이든 저 멀리서 가장 밝게 빛을 내고 있고 우리 중 누군가는 그것을 볼 것이다.





3회에서 계속됩니다.



강성은
시인.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단지 조금 이상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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