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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바꾸는 시민이 필요하다

최현희
2018년 02월 14일
 
 
 
1. 학교에는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하다?
 
지난여름 SNS에서는 ‘#우리에게는_페미니스트_교사가_필요합니다’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났다. 페미니즘 교육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교사를 향해 가해진 악성 민원과 공격으로 촉발된 이 움직임은 다양한 영역에서 페미니즘 담론이 가시화되는 시대적 변화에 따른 당연한 흐름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너무 늦었던 걸지도 모른다. ‘페미니즘 리부트’라 불리는 시대를 지나오면서도 학교는 그간 논외로 치부되었던 듯하다. 어른이 된 페미니스트들에게 학교는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하는 남교사를 경험해야 했던 공간, 혹은 성차별을 은폐하고 재생산하는 역할을 하는 공간일 뿐,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적극적으로 해결할 만한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랬기에 페미니스트 교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반가운 단비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페미니스트 교사를 향한 지지와 연대의 움직임은 나에게 이 사건의 ‘피해당사자’로서 큰 힘이었고, 한명의 ‘페미니스트’로서 기쁜 일이었지만 ‘교사’로서는 다소 복잡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바로 학교라는 공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몰이해와 불신 속에 몇몇의 두드러진 행적의 교사가 조명받고 과한 칭찬과 지지를 받는 현상에 대한 불편함 때문이었다. 이 불편함이 명료하게 표현되기 위해서는 학교현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많은 언론과 단체로부터 학교현장과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학교현장에 대한 이야기란 교실 안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만나는 생생한 모습인 듯하다.
 
그러나 학교라는 공간은 그저 교실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한다고 해서 이해될 수 없다. 학교라는 관료화된 조직이 가진 부조리와 모순, 우리 사회의 교사를 향한 불신과 편견, 평교사들의 현장 경험을 존중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하달되는 각종 교육정책을 쏟아내는 정부 등 사회 전반적인 교육환경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때 교실속 교사의 교육활동이 생생히 이해될 수 있다. 교육에 대한 진정한 고민과 실천을 시도하는 교사에게 학교는 거대한 벽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이러한 현실에서 교사 개인에게 혁신적이고 헌신적인 교육 실천을 기대하고, 몇몇의 두드러진 교사를 향해 과도한 칭찬과 지지를 보이는 사회가 나는 여전히 아쉽다. 그 지지의 수혜자임에도 그렇다.

 
2. 학교라는 공간

학교는 ‘사회화’가 압축적으로 일어나는 공간으로 인성교육, 창의성교육, 안전교육 등 사회의 다양하고 중요한 요구들이 들어온다. 문제는 사회가 협업하고 함께 고민해가야 할 의제들이 일방적으로 학교에 전달되고, 학교는 이러한 교육을 했다는 증거로 형식적인 행사나 활동을 하고 이를 문서화하여 성과의 지표로 삼는다는 점이다. 학교에 깊이 스며든 관료제의 폐단이다. 교사들은 학생들과의 만남과 배움의 과정을 성찰하고 사유하기보다 기한이 정해진 공문서와 관례적인 학교행사 및 업무에 경도되어 자율성을 잃고 무기력해진다. 교사의 의견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된 사항에 질문 없이 따르고, 반대하는 의견을 가진 교사는 조직의 안정성을 해치는 존재로 비난받는다.
 
나는 학교가 교육을 하기에는 너무 큰 몸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커다란 건물에 많은 학생들을 한데 모아놓은 공간이 마치 감옥이나 군대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대규모의 조직이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유지되려면 관료주의가 작동될 수밖에 없다. 많은 인원을 효율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 속 기다란 복도를 따라 늘어선 천편일률적인 교실공간은 학생들과 교사의 상상력을 제한한다. 지금의 학교 건물은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삶의 터전이 되기에는 너무 폭력적인 공간이다. 아이들이 따뜻하고 편안하게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 학교 건축물을 꿈꾸는 건 우리 사회에서 아직 무리일까.
 
교사가 감당해야 할 학급당 인원수도 너무 많다. 출생률의 급감으로 교사의 정원을 줄인다는 정책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학급당 인원수를 적정화하여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한명의 교사가 30여명의 학생을 지도하며 신체적 활동을 포함하는 다양하고 깊이있는 수업을 기획하고 실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창의성교육, 활동중심 수업, 토론수업 등을 이야기하는 걸 보면 교육관료들의 탁상공론이 염치마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학급당 인원수 적정화 문제가 좀처럼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인권적인 학교환경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감수성이 너무 무딘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학교의 가장 큰 문제는 바쁜 교사이다. 학생들에게 집중하여 학생들 속에서 바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학생들과 상관없이 바쁘다. 교사의 업무과중은 학교현장의 고질적인 문제로 꾸준히 지적되고 있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왜일까. 교육에 대한 정책과 예산을 담당하는 관료들이 교실현장에 너무 무지하기 때문일 거라 추측해본다. 바쁜 교사는 학생들과 눈을 맞출 여유가 없다. 아이들의 한마디 한마디 작은 질문들과 사소한 수다에 함께할 수 없다. 그런 날은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리고 밉다. 교사를 아이들로부터 떨어뜨려놓는 무자비한 행정가들이. 아이들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공문서 따위를 계속해서 학교로 보내오는 기관과 조직들이.
 
언젠가 한 동료 교사가 학교라는 관료조직에서 교사는 ‘행정’이라는 이름의 벌을 받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너무나 공감되는 말이라 잊히지 않는다. 학교에서 아이들과의 만남과 배움보다 언제나 우선시되는 것은 공문과 관례적 학교행사이다. 특히 공문은 마감기한이 있고, 업무의 분명한 결과가 드러난다. 하지만 하루하루 아이들과의 만남 속에 이루어지는 교육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보니 공문을 일사천리로 작성하고 학교행사에 필요한 관례적인 업무들을 제때에 수행하는 능력이 고평가되고 교사의 본질적인 업무인 교육은 뒤로 밀린다. 바쁜 행정업무 속에서 교사와 학생들이 소외되는 일은 매일 반복된다.
 
아래는 지난 학교에서 썼던 나의 교단일기다.
 
  •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십여건의 지출 품의서 기안과 내부 결재 기안을 작성하여 상신하였다. 참가 신청서들을 정리해서 명단을 각각 다른 양식으로 5개를 만들어서 보험사와 수련원, 행정실, 교무부장 등에게 보내고 보험사에 팩스를 보내는 일 등을 하였다. 새벽에 나와서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난 정말 쉴 틈 없이 일했지만. 오늘 일들이 마무리가 되어갈 무렵. 내일은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내일 시간표가 뭐더라… 하며 한숨을 쉬면서 집에 간다.
 
승진제도도 학교의 구조적 모순의 중요한 요인이다. 사실 나는 ‘승진’이라는 말이 이상하다. 우리나라의 교감과 교장은 수업을 하지 않는다. 학생들과 만나던 교사가 학생들과 만나지 않게 되는 자리로 이동하는 것을 승진이라고 부르며 많은 교사들이 승진을 갈망한다. 그러나 현행 승진제도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하루하루 충실하게 만나며 일상의 교육에 열정과 고민을 바친 교사가 승진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승진하기 위해서는 부장교사로서 학교의 중요한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각종 보고서, 연구대회 실적, 근평 등으로 성실하게 차곡차곡 점수를 얻어야 하는데, 이는 아이들과의 교실 일상을 최우선으로 두는 교사가 가기 어려운 길이다. 이처럼 교장을 향한 지난한 승진 여정은 대체로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가르치는 일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교사들이 택하는 길일 테지만, 일단 교장이 되면 학교 운영의 의사결정에 관한 막강한 권한을 독점한다. 아이들과 매일 교실에서 만나는 평교사들의 의견은 무시되고, 수업을 하지 않는 길을 선택하고 ‘승진’한 교사에 의해 학교교육의 많은 것들이 결정되는 부조리.
 
어쩌면 학교조직의 비민주성이 비합리적인 승진제도를 지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교장이 평교사 위에 군림하는 게 아니라,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교사들의 다양한 의견이 존중되는 학교라면, 평교사로 정년까지 아이들과 행복하게 교사생활을 하는 것이 지금처럼 평가절하되지 않고 존중되는 사회적 풍토라면, 교장이 평교사보다 높은 지위라는 ‘승진’의 개념이 해체된다면 교사들이 학생들을 떠나 교장이 되기를 그토록 갈망할까?
 
학생들과 함께 하나의 작은 사회를 꾸려가는 교사들이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학생들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학교 운영에서 자율권과 전문성을 보장받지 못한 채 상명하달의 구조에 적응한 교사들이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민주적인 학급공동체를 만들어가기란 매우 어렵다. 학교에서 자신이 경험한 독재를 자신의 학급에 고스란히 재현해내는 교사들이 많다.
 
언제부턴가 나는 매일 아침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늘 마음속으로 ‘우리 반 아이들 한명 한명을 개별적인 개성을 가진 인격체로 존중하자’고 다짐한다. 사실 너무도 당연한 교육의 기본 전제를 매일 아침 의식적으로 결심해야 한다는 건 역설적으로 학교가 얼마나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을 방해하는 공간인지 보여준다. 학교는 끊임없이 학생들을 하나의 집단, 전체로서 통솔하고 관리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도록 교사를 채근한다. 좁은 교실에서 30여명의 아이들과 하루를 꼬박 보내다보면 어느 순간 교육이 아닌 관리와 통제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퇴근할 때면 오늘 하루는 얼마나 아이들과 눈을 마주쳤나, 얼마나 한명 한명의 개성과 욕구를 인정해주고 소통했나 반성하며 자괴감을 느낄 때도 많다. 이 모든 것이 교사로서의 나의 자질과 능력 부족인 것 같아 자책하며 보낸 시간도 적지 않았다.
 
교직 3년차쯤 되어서야 학교를 의심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학교의 구조적인 문제가 보이자 오히려 그 속에서 고민의 끈을 놓지 않고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던 나 자신을 겨우 격려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고민을 하고 어렵지만 실천을 이어가는 동료 교사들이 보였다. 또 교실에서의 실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학교의 구조적 모순에 저항하고 변화를 위해 학교 안팎에서 노력하는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러나 학교의 모순은 겪을수록 단단하고 견고했다. 그냥 적응하는 게 쉬울지도 모른다. 그러려니 하며 넘기면 학교생활이 훨씬 더 편안해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조차 쉽지 않았다. 가끔은 학교에서 경험하는 순간순간이 거대한 부조리극의 한 장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의 학교는 학교라는 기관의 본질적인 목적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교사들이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고, 교육에 대해 함께 토론하며 사유하고 실천하는 학교를 상상해본다. 
 

3. 학교를 개선하는 사회: 교사와 시민의 연대
 
의무교육 이후의 우리 사회는 거의 모든 시민이 학교와 교사를 경험했다. 그래서 학교와 교사에 대한 경험적 실체를 각자가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학생의 시야에서다. 학생으로서 만난 교사는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큰 권력을 가진 존재이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교사를 자신과 동등한 시민이자 노동자로서 인식하고 연대할 대상으로 보기보다, 학교를 바꿔낼 충분한 권력을 가지고도 그 힘을 사용하지 않는 존재로 인식한다. 스승의날에 촌지를 받은 교사에 대한 기사, 학생을 체벌한 극악한 교사에 대한 기사, 혹은 반대로 교사에게 폭력을 휘두른 학생에 대한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기사 말고 학교라는 공간을 밀도있게 조명하는 언론도 부재하다.
 
물론 학교에는 문제적인 교사가 있지만 그런 교사가 학교에서 탈락되거나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교조직의 헤게모니를 쥐고 사유하고 실천하는 교사가 변두리로 밀려나게 만드는 시스템이 더 문제적이다. 열정을 가진 신규교사가 학교라는 조직에 편입된 지 몇년 만에 열정과 고민을 잃고 매너리즘에 빠지며 냉소하거나, 혹은 학교의 부조리에 둔감해진 채로 ‘적응’해버리게 만드는 시스템.
 
이러한 시스템을 이해하고 개선하기 위해 연대하려면 학생으로서 경험했던 교사의 위치성에 거리를 두고, 동시대를 사는 시민이자 노동자로서 교사가 처한 노동환경이 어떠한지를 냉정하게 이해해야 한다. 교사의 구체적인 노동환경에 대해 이해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부나 교육관료들의 역할에 주목하고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교사라는 직업의 노동의 질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다분히 공적(公的)이기 때문이다. 학교라는 사회가 교장이나 교감 혹은 교육관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불안정하고 부조리한 시스템 안에서 피해자는 교사뿐 아니라 교사가 만나는 학생, 학부모는 물론, 교육을 통해 공공의 선을 만들어가야 하는 사회 전체이다.
 
물론 가장 노력해야 할 변화의 주체는 교사이다. 그러나 고군분투하는 교사의 현실을 함께 이해하고 연대하는 사회라면 학교는 더 빨리 변할 수 있지 않을까.
 
학교에는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교사라도 학생들을 만나던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고 자신의 교육적 신념에 따라 교육활동을 안정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특정 교사 개인이 순교자적인 교육실천을 선도하는 것으로 학교는 변하지 않는다. 보다 많은 시민들이 학교 현장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며 시대의 변화에 맞게 학교가 개선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었으면 한다. 적어도 우리가 지나온 답답한 학교보다는 조금이라도 달라진 학교를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숨 막히는 학교 안에서 아이들과의 만남에 열정을 잃지 않고 싶은 교사로서 간절한 연대의 손을 내민다.
 


최현희
마중물샘. 2005년 초등교사에 임용되어, 2017년 혁신학교에서 페미니즘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인터뷰 동영상 「학교에 페미니즘이 필요한 세가지 이유」가 공개된 이후로 보수 세력의 공격과 비방을 받았으며, 성평등 교육에 대한 공론화를 촉발했다.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를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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