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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예술가의 시선으로 기본소득 바라보기

유예
2018년 03월 15일

 

  

※'키워드3' 네번째 주제는 '예술-(   )-기본소득'입니다. 댓글과 투고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을 달아주신 독자 중 한분을 선정해 신간 『불편한 미술관』을 선물로 드립니다.
    투고하실 분은 이메일 munhak3@munhak3.com으로 A4 3장 이내의 완성된 글을 보내주세요.
    선별하여 문학웹에 업로드하고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예술과 기본소득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기다립니다.


예술-(청년)-기본소득

 

 
드디어 졸업을 했다. ‘급식’을 12년 동안이나 먹었다. 이제는 아무도 공짜로 밥을 주지 않는다. 여태껏 세번의 졸업을 했지만 이번 것은 유난히 마음을 시큰하게 한다. 열아홉에서 스물이 된다고 사람이 바뀌는 것도, 노동력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부모님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게다가 나는 대학에 가지 않는 것을 선택했기에, 이따금 외딴 섬에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내가 기타를 치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였다. F코드라는 큰 산을 넘고 나니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어떤 노래에도 직접 반주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간간이 가사와 멜로디도 썼다. 동네에 마침 좋은 예술가들이 있어 같이 공연도 자주 했다. 내가 주로 노래했던 곳은 북콘서트, 마을 커뮤니티 행사, 투쟁 현장 등 ‘대안적 삶에 대해 모색하는’ 공간이었다. 의미 있는 일에 노래로 마음을 보탤 수 있다는 점에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노래를 부르곤 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꾸리길 요구받는 시기가 다가올수록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일단, 돈이 안됐다. 나는 공연 섭외를 받을 때 공연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거의 없었다. 얼마인지, 주긴 주는지, 몇 시간 대기해야 하는지, 교통비라도, 밥이라도 주는지 알려준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스스로도 ‘내가 그들의 사정을 잘 알고 있으니까’ ‘아직 청소년이니까’ ‘일종의 자원봉사니까’라고 합리화하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옥탑방 로망과 옥탑방 죽음
 
모순적이게도, ‘대안적 삶에 대해 모색하면서 나에게 공연비를 잘 주지 않는’ 이 공간들은 청년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많은 매체들이 한국 청년의 우울감, 자살률, 빈곤률 수치들을 언급했고, 청년 문제는 여성, 생태, 노동 등 여러 분야에서 공동으로 다뤄야 할 주제가 되었다.
 
청년의 빈곤은 ‘중식이’ ‘장미여관’ 같은 예술가들에 이르러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 ‘가난한 청년의 찌질한 음악’이 인기를 끈 것이다. 이 예술가들은 취업, 결혼, 주거, 연애 등과 같이 청년이라면 한번쯤 고민해봤을 법한 주제들로 유쾌한 노래들을 만들었고,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자극했다. 실제로 홍대와 합정, 상암 사이에 있는 별 볼일 없던 동네인 망원동이 한 ‘한량’ 가수의 예능프로그램 출연 덕분에 청년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 나도 사실 ‘아이유’나 ‘지드래곤’보다 이런 가난해 보이는 예술가들이 더 멋져 보였고, 닮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 청년 예술가의 삶은 그렇게 유쾌하지 않다. 이들은 삶과 죽음의 살벌한 경계에 놓여 있다. 청년 예술가의 삶의 실체는 뮤지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과 작가 최고은의 죽음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창작물의 사용에 대한 공정한 댓가를 받지 못하고 사회적 관계망으로부터 단절되어 살아가는 이들을 도울 필요가 증명되었다. 무너져가는 옥탑방에서 만든 노래가 칭송받고 있는데, 어떤 예술가들의 집과 삶은 정말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가
 
서울시에서는 청년 세대의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청년 수당’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서울에 주소지를 두고 있는 만 19세 이상 청년 3000명에게 매월 50만원씩 지원하는 사업이다. 신청한다고 다 뽑히는 게 아니라, 심사를 통해 선정하는 방식이다. 우선 선정 대상은 ‘장기간 미취업자’ ‘저소득 청년’이었다. 돈을 받기 위해선 서류에다가 자신이 얼마나 찢어지게 가난한지, 얼마나 일을 하고 싶은 지 적어야 했던 것이다. 많은 청년들이 이 과정에서 상처를 입었다고 증언했다. 지원받은 돈은 오로지 취업을 위한 직간접적 활동에만 쓰여야 했고, 사용내역을 보고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 사업의 목적은 청년이 ‘취업’하는 데 있었다. 하지만 예술로 돈을 버는 것은 서울시가 여기는 ‘취업’과는 거리가 먼 행위이다. 말하자면, 예술가의 작업은 노동으로 치환되지 않는다. 회사에 소속되어, 일정한 업무를 수행하고 일정한 급여를 지급받지 않는 예술가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다. 얼마나 일하고 싶은 지 증명할 기회조차 없는 것이다.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은 구본주 작가의 유가족은 ‘무직자’에 준하는 보험금을 배상한 보험사를 상대로 지난한 투쟁을 벌여왔다. 생전 다양한 예술 작업을 진행하고 전시회 등을 개최했음에도, 예술가라는 이유만으로 무직자 처리가 된 것이다. 이 사례가 보여주듯, 예술가의 작업과 노동으로의 인정에 대한 시각을 재구성해봐야 한다.
 
 
한달 15시간을 기획할 권리
 
기본소득의 가치는 인간의 존엄성을 기반으로 한다. ‘인간은 존재하기에 일정한 돈을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다’ ‘인간은 존재하기에 노동한다’ 두 명제는 기본소득의 원리이다. 청년 예술가에게 기본소득이란, 단순히 금전적 여유가 생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노동이 인정되는 것, 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가시화되는 것이다.
 
나는 작년말, 친구들과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청년들에게 매달 기본소득을 주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에게 자유롭게 모금을 받아 기본소득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했다. 열아홉명의 청년들이 지원을 했고, 추첨을 통해 이들 중 나를 포함한 8명이 기본소득을 받게 되었다. 매달 12만원씩, 6개월 동안 지급받는 부족한 형태이지만 내 삶에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대학거부를 한 나는 이른바 ‘정상적인’ 길을 걷지 않게 되었다. 월급을 주는 회사에 취직한 것도 아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내 행복을 찾으려 하지 않고 새로운 일들을 꾸며보려 했기 때문이다. 대학을 염두에조차 두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닐 만큼 자신감이 넘쳤지만, 사실은 내심 엄청 걱정했었다. 대학에 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움도 느꼈고, 어딘가 소속되고 싶은 외로움도 느꼈다. 그러나 기본소득을 통해 친구들과 공유경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알아서 벌어 각자 도생’하는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보기로 했다. 이왕이면 ‘좋은 일’을 하면서 얼마를 벌든 돈을 n분의 1로 나누기로 한 것이다. 기본소득이 ‘공유’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덕분에 내몰리듯 아르바이트 시장에 나가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레 소속감도 생겼다.
 
이외에도 사비를 조금 들여 공연도 해보고 있고, 8월엔 여성 아티스트들과 아일랜드로 버스킹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기본소득이 없었다면 좀더 어려운 길을 걷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실험이 더 확장되어서 결국은 청년 예술가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도 기회가 닿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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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적인 아르바이트 평균 임금으로 계산해볼 때, 한달에 기본소득 12만원을 받게 되면 약 15시간을 버는 셈이다. 15시간은 결코 적지 않다. 장편영화 여덟 편을 볼 시간,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올 시간, 노래방 열다섯번을 갈 시간, 이외에도 셀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는 시간이다. 내게는 기본소득과 함께 ‘15시간을 기획할 권리’가 주어진 것이다. 지금 이 사회의 청년, 예술가, 그리고 청년 예술가 들에게는 그 시간조차 있을까? 삶과 시간을 기획할 권리가 필요하다.
 

 


 

유예

대안학교를 졸업하고 성미산 청년 유니온 명왕성과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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