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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영미의 소녀시대

신미나
2018년 05월 29일
 

※'현장에세이' 코너에 새로운 연재가 시작됩니다.
    앞으로 작가들의 섬세한 감성을 만나보는 에세이 연재가 격주로 진행됩니다.
    첫 주제로 '사라진, 사라질 것들'을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첫 이야기는 시인 신미나가 들려드립니다.
    기대평이나 감상평을 댓글로 달아주신 분 중에 한분을 선정하여 『詩누이』를 선물로 드립니다.



 

 

동계올림픽 컬링 경기 중에 김은정 선수가 “영미! 영미이!”를 외칠 때 내게도 불현듯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으니 바로 고등학교 동창 추영미다.
 
영미는 배드민턴 선수였다. 도 대회에서 상을 탄 적도 있다. 키가 커서 교실 뒷자리에 앉았고 훈련하느라 수업을 자주 빠졌다. 배드민턴 시합이 주로 평일에 이뤄졌으므로 영미의 시합을 직접 볼 기회는 없었다.
 
영미의 걸음걸이는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는데 각도계로 재면 앞으로 7도 정도 기울어져 구부정하게 걸었다. 영미와 나란히 걷다보면 나는 번번이 길가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야, 좀 똑바로 걷자”고 말하면 영미는“아, 미안” 하고는 다시 앞을 보며 걸었고 한참을 걷다보면 나는 어느 결에 다시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곤 했다.
 
생각해보면 그녀의 ‘횡보(橫步)’는 신체 비율에 비해 한뼘 정도 긴 팔의 길이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곤란한 사람처럼 흐느적거리며 걸었는데 그 독특한 걸음걸이 때문에 멀리서도 영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영미는 한결같이 양쪽 귀가 훤히 드러나는 상고머리를 고수했다. 희고 깨끗한 귓바퀴를 드러내고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크로스백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내가 뒤에서 “영미야!” 하고 부르면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고개를 돌려 나를 봤는데 그 동작이 바람을 타는 제비처럼 유려했다. 나는 엄지와 검지로 사각형을 만들어 그 모습을 기억 속에 저장하고 싶었다.
 
찰칵.
 
근사했다.
 
그렇다고 영미가 반에서 인기가 있거나 튀는 아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있는 듯 없는 듯 했다. 공책에 스친 연필 자국처럼 조용한 아이였다. 성적도 중간, 이목구비도 특징이랄 게 없이 무난했다.
 
영미에게 눈길이 갔던 것은 걸음걸이 탓도 있겠지만, 그애의 눈빛에서 한점의 열망도 읽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영미는 지루한 영화를 반복해서 볼 때처럼 심드렁하게 자신의 소녀 시절을 견디는 것 같았다. 외모에 신경 쓴다거나, 성적을 올린다거나, 가수를 좋아한다거나, 남자친구를 사귀는 것에도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종종 구령에 맞춰 토끼뜀 뛰는 영미를 보면 오른손을 번쩍 들어 “어이!” 하고 손을 흔들어 알은체를 했는데, 영미는 나를 힐끗 돌아보고는 “푸!” 하고 한숨을 쉬듯이 웃었고 붉어진 얼굴로 다시 계단을 오르내렸다.
 
한번은 성적표를 받아든 내가 경악할 만한 수학 점수를 보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영미는 성적표를 접어 아무렇게나 가방에 쑤셔넣었다.
 
“넌 무슨 생각으로 사냐?”
 
누군가 묻는다면 영미는 그때처럼 내게 어깨를 으쓱해 보일까.
 
-
 
십여년 만에 영미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진심으로 반가웠다. 고향인 부여에 내려간 김에 영미를 만나고 갈 참이었다.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까페에서 냅킨을 접으며 영미를 기다렸다. 영미는 5분 정도 늦게 나타났다. 고등학교 때처럼 커다란 가방을 메고서. 키가 훤칠하고 말수가 적은 것도 여전했다. 딸기 스무디가 녹아서 아랫부분은 진한 핑크색, 윗부분은 연한 핑크색으로 나뉠 때까지 영미는 근황을 묻는 내 질문에만 짧게 답했다.
 
영미가 스무디를 섞으니 컵 안에 분홍색 회오리가 생겼다. 영미는 빨대로 호로록 회오리를 빨아들이더니 여유 있으면 사달라면서 테이블 위에 치약이며 영양제 따위를 늘어놓았다. 의외였다. 제품에 대한 설명이나 효능은 생략한 채 창밖으로 시선을 두고 “그냥저냥 쓸 만해”라고만 말했다. 자세히 보니 눈가에 들깨를 흩뿌린 듯 거뭇한 기미가 퍼져 있었다.
 
그냥저냥 쓸 만하다니. 이 말을 듣고 나는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만약 영미의 말투에서 어떤 간절함 읽었더라면, 나는 그 자리를 불편하게 기억할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부탁을 받는다고 해서 우정을 이용당했다는 배신감이 들 나이도 지났다. 으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서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은 뒤 본론은 이제부터라는 듯 핸드백에서 청첩장이나 보험설명서를 꺼내던 동창들과 영미는 달랐다. 무덤덤했다. 계좌번호로 송금하겠다는 말을 듣고도 딱히 고마워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영미가 세상에 지지 않고 지켜낸 소극적인 품위라고 믿고 싶어졌다. 이 세상에 함부로 자신의 전부를 걸지 않는 사람만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자기방어, 그게 영미의 최선인지도 모른다.
 
나는 허브 치약 두개와 오메가3, DHA 함유라고 적힌 영양제를 샀다. “너, 요새는 안 졸려? 학교 다닐 때 맨날 졸려 했잖아.” 물었더니 영미는 사내아이 둘 키우면서 일하느라 졸릴 틈이 없다고 말했다. 큰애가 벌써 중3이라고 했다.
 
우리는 근처 쌈밥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영미는 안경에 서린 김을 셔츠 끝자락으로 닦아가며 돌솥밥을 비웠다. 뜨거운 물을 부어 누룽지까지 마신 뒤 들척지근한 자판기 커피로 입가심을 했다. 영미는 내게 터미널까지 바래다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어디 들를 데가 있다고 했다. 딱히 갈 데가 있는 건 아니었는데, 말하고 보니 어디를 가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자 문득 떠오른 곳이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였고, 싱거운 감상이나마 마른반찬처럼 뒤적여볼 요량으로 학교에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학기 말이 되면 대부분 취업을 나가서 빈자리가 많았던 교실. 그 스산했던 교실의 공기가 떠올랐다. 수능시험 보는 날, 대부분의 동창이 반도체공장이 있는 기흥으로, 더러는 기숙사가 딸린 대전의 산업단지로 취직을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영미도 취업이 되지 않아 늦게까지 교실에 남아 있는 학생 중 하나였다.
 
영미는 어디로 갈 거냐고 묻지 않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쥔 것 같지도 않게 맥이 없어서 마치 기척만 남은 무엇과 악수하는 기분이 들었다. 영미는 트렁크에 가방을 실었다. 언제 또 보자는 약속 없이 “잘 가!” 하고 인사했다. 나는 고등학교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신미나
시인.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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