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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가는 이모티콘

신용목
2018년 06월 20일
 

 

상형문자의 매력은, 말하자면 ‘기표와 기의’의 관계에서 자의성을 최소화하고 필연성을 극대화한 데 있을 것이다. 코끼리 모양(기표)을 그려놓으면 코끼리(기의)가 되니까 말이다. 아니, ‘대상’이라는 기표를 ‘문자’라는 기표로 옮겨놓았으니, ‘기표가 기의를 삼킨 것’이라고 보아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이모티콘’을 즐겨 쓰는 이유 가운데는 기호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것’에 대한 그리움이 늘 우리를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 몸이 삼키고 있는 마음의 어디쯤 ‘이름’으로 호환되지 않는 ‘실체’의 꿈틀거림 같은 것. 스마트폰을 쓰기 전에는 특수문자나 문장부호를 활용해 이모티콘을 만들어 보내곤 했다. 1990년 전후로 활발하게 사용된 이러한 ‘기법’은 (:->(세워놓으면 웃는 얼굴)을 시작으로, 지금도 즐겨 쓰는 ^__^(웃음)이나 ;;;(긴장), ㅠㅠ(눈물) 표시도 있지만, 놀라울 정도로 휘황찬란한 것도 많았는데, 나 역시 정성이 가득한 이모티콘을 만들기 위해 2G폰을 들고 낑낑대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 이런 그림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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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딴에는 너에게로 달려가는 장면이지만, 액정 가득 밤하늘을 펼쳐놓는 이들이나 성탄절 나무장식까지 만들어내는 이들에 비하면 좀 초라하긴 했다. 아무튼! 당시의 저 ‘기호조합형 이모티콘’은 나름 쎈세이션을 일으켰던지라, 누구는 저런 이모티콘을 소설 쓰기에 활용하여 적잖이 회자되기도 했고, 나중에는 그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져 걸출한 청춘스타를 배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백수였던 나는 ‘방위’라는, 지금은 사라진 특수부대 요원으로 오후 6시면 민간에 침투해 ‘사랑’이라는 작전을 수행하던 친구에게 나름대로 참신한 기호조합형 이모티콘을 개발하여 보급해준 적도 있다.
 
3G, 4G, LTE로 이어진 기술의 발달은 감각도 바꾼다. 지금은 이모티콘 천국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대화방은 흥미진진한 표정과 감정 들로 가득하다. 복숭아 머리를 가진 사람은 물론 각종 캐릭터와 모션, 거기다가 ‘어디서 이런 것까지!’ 싶은, 개성 만점에 특수 직업군을 위한 이모티콘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내가 좀 구식인데다 오래된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하면 딱히 둘러댈 말은 없다. 한때 고강도 우정으로 이모티콘 자체 개발에 나서기까지 한 나는, 여전히 꾸역꾸역 버튼을 찾아 ^^(웃음)이나 ㅠㅠ(눈물)을 찍어보낼 뿐 최근의 화려한 이모티콘은 거의 쓰지 않는다. 왜냐고 물어도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사람이 변한 것도 아닐 것이다. 경험상 보건대, 사람은 잘 안 변한다. 
 
그것들은 나보다 더 통쾌하게 웃고 제대로 낙담하며 심지어 더 잘 달리기도 한다. 예전의 이모티콘이 내가 퉁탕퉁탕 뒤뜰에서 만든 깡통로봇 같았다면, 지금의 그것들은 미지 행성의 아바타 같다고 할까. 그들이 나보다 더 큰 보폭으로 상대에게 달려가 그를 번쩍 들어올려 빛나는 태양을 보여주는 동안 나는 투명 유리관 속에 가만히 누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깊은 곳에 고여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가, 저 엉성한 나의 대리자들은. 아무리 오래 매만져 그럴 듯하게 찍어보내도, 상대에게 닿기 전에 왠지 쓰러질 것 같고, 결국 흩어져서 그가 쏟아내는 웃음소리의 작은 받침 하나가 되고 말 것 같지 않은가. 내가 그에게 달려가는 동안 말이다.
 

 

 


 

신용목
시인.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아무 날의 도시』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와 산문집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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