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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온의 밤(1회)

김초엽
2018년 10월 01일


설아 언니를 본 건 새벽 한시쯤이었어요. 휴게실에서 졸고 있다가 발소리를 듣고 깨어났죠. 복도 쪽 창문으로 누군가 지나가는 걸 봤는데, 분명 언니였어요. 이 시간에 어딜 가는 걸까 생각했죠. 창문을 두드렸지만 언니는 그냥 복도 끝으로 사라졌어요. 못 들은 건지. 작업복 차림이었는데, 손에는 공구함을 들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시계를 봤고, 언니가 이제야 복귀한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다시 잠이 들었죠.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설아 언니가 왜 그렇게 급했는지. 그 균열은 그리 심하지 않았대요. 물론 그대로 내버려뒀다간 어떤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지만. 그냥 제 말은…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니었다는 거죠. 언니는 누군가를 호출할 수도 있었고, 다른 사람들을 기다려도 됐어요. 저를 깨울 수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그냥, 마치 자신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것처럼, 오직 언니만이 이 일의 책임자인 것처럼 그곳으로 간 거예요. 누군가의 도움도 받지 않겠다는 것처럼요.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왜 그랬을까. 그날 이후 하루도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어딜 가냐고 물어볼걸 그랬어요. 뭐가 그렇게 급하냐고…… 그때 저라도 언니를 불렀어야 했는데.
 
 
*
 
 
나흘간의 비상근무가 끝나고 마침내 상황종료 싸이렌이 울렸을 때, 승희는 기쁨의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입 밖으로는 다 죽어가는 듯한 신음만 흘러나왔다. 기상관측소에서는 파편 추락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고 알렸다. 생태연구소 직원들에게는 마냥 다행이기만 한 소식은 아니었다. 이번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은 생태연구소였고, 시설 복구작업은 이제부터 직원들의 몫이 될 터였다. 하지만 연구소장은 직원들에게 일찍 퇴근하라고 지시했다. 일단 잠이라도 제대로 자고 내일부터 작업에 들어가자는 이야기였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소장은 이렇게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 강승희 팀장은 좀 남으세요."
 
승희는 전역 방송 마이크를 쥐고 있던 최유경 소장을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눈이 마주친 유경은 무심하게 소장실 문을 톡톡 두드리고는 안쪽으로 사라져버렸다.
 
짐을 챙겨 상황실 밖으로 나가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시끌벅적했다. 승희는 미간을 찌푸린 채 책상을 미적미적 정리했다. 책상 위 자료들만 봐서는 여기가 생태연구소인지 우주위험대책본부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지긋지긋한 레이더 프로그램. 더 지긋지긋한 우주쓰레기들. 종이 뭉치를 치우다보니 누군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오스왈트 합금 조각이 눈에 띄었다. 재난의 원흉이었다. 승희는 조각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릴까 하다가 그대로 다시 두었다.
 
소장실로 걸어가 노크를 했다. 창문 안쪽에서 유경이 승희를 향해 들어오라는 듯 고개를 까딱하는 것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입구를 마주 보는 커다란 스크린에는 연구단지의 피해상황을 촬영한 사진들이 떠 있었다. 소장실은 온갖 물건이 책상과 바닥에 어질러져 난장판이었다. 유일하게 깔끔한 곳은 홀로그램 화면이 송출되는 벽면뿐이었다. 화면에서는 다른 부서의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보고를 하고 있었다. 승희는 어색하게 서서 보고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동쪽 온실의 패널이 파손됐어요. 임시 보수를 요청했으니 당장 며칠은 괜찮을 겁니다. 본격적인 수리에 들어가려면 터미널로 차출된 로봇들을 회수해 와야 해요. 수송지역에도 추락한 파편이 많습니다만, 그쪽은 지상에 노출된 장비가 없어서 천천히 확인해도 될 겁니다. 무인 연구단지는 상황을 파악 중입니다."
 
남자가 카메라를 돌려 주위를 비추었다. 온실은 여기저기 부서져 엉망이었다. 온실 쪽이 가장 피해가 크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상황을 눈으로 확인한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추락이 이어지는 중에 현장에 나가면 위험하다는 유경의 판단으로 복구가 미뤄졌고, 생태연구소 직원들은 추락물 모니터링에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오전에 있던 충돌 때문인가? 파손된 위치가 정확히 어디지?"
 
"네, 오전의 충돌로 주거지역과 동쪽 온실의 통로 패널이 파손되었어요. 어제부터 이미 균열이 생겨 있던 곳입니다. 시설관리팀에서는 임시로 보수했었다는데, 아마 피로한도를 잘못 계산한 탓이겠죠. 1차 필터가 작용하고 있지만 내부온도 제어 기능이 떨어졌고요."
 
어제 짧은 점심시간 동안 쌘드위치를 우물우물 씹어 삼키며 주워들은 말이 생각났다. 최유경 소장이 이번 재난의 대책반장까지 떠맡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소장실에서는 고성이 오갔다고 한다. 대책반장을 맡기 싫어서 그랬다는 말도 돌았지만, 승희가 유경을 지켜본 바로 그런 이유인 것 같지는 않았다.
 
유경은 남자에게 주거지역 인근 시설물 점검을 지시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그러더니 곧장 휴대폰을 열어 또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한숨 돌릴 여유도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승희도 계속 여기에 서 있을 수는 없었다.
 
"소장님?"
 
유경이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승희를 부른 게 생각난 듯했다. 유경은 다시 시선을 휴대폰 위로 옮기며 말했다.
 
"아 참, 강박사. 미안한데… 오늘 나랑 같이 밤 좀 새워줘야겠다."
 
이럴 줄 알았지. 승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지금은 재난상황이니 누군가는 불가피하게 근무를 해야 한다. 하지만 사실 유경은 굳이 승희를 지목할 필요가 없을 때도 꼭 승희를 남기곤 했다. 좋게 말하면 신뢰이고 나쁘게 말하면 부려먹기다. 그래도 굳이 현장직이 아닌 승희를 부른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
 
"며칠 동안 고생한 거 아니까 오늘은 혼자 해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되겠더라고."
 
보도자료를 만들거나 본부에 제출할 보고서를 쓰거나, 아마도 그런 종류의 일손이 필요한 것일까.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
 
“본부에서 바로 보고하래요?”
 
"맞아. 복구 지원에 자료가 필요하대. 상황종료 후 12시간 이내가 원칙이라는데, 원칙이라니 따라드려야지. 일단 지금까지 수합한 건 보내줄게."
 
유경은 태연한 어조로 대꾸했지만, 외계종 열매라도 씹어 삼킨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승희는 유경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사태에서 본부가 대응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원흉을 제공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랬다. 본부에 정식으로 보고를 하는 것쯤이야 일반적인 절차라고 해도 말이다. 사실상 본부에서 한 일이라고는 여기에 ‘우주 위험파편 낙하 사태’라는 점잖은 이름을 붙인 것뿐이었는데, 그런다고 이 황당한 재난을 점잖은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외계 위성의 크레이터에 세워진 돔 안의 도시가 낙하위험물에 취약할 거라는 사실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이 연구단지를 설계한 사람들도 그런 위험성은 충분히 염두에 두었는지, 단지에는 낙하물에 대비하기 위한 안전장치들이 많았다. 주거지역의 돔은 튼튼한 이중 패널 구조였고, 기상관측소의 레이더는 추락 위험이 있는 지름 1cm 이상의 물체들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위성 궤도에는 낙하위험물을 제거하기 위한 자동 요격 장치들이 공전하고 있었다.
 
미처 고려되지 않은 것은 자동 요격 시스템의 불완전성이었다. 지구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한 시스템은, 진짜 운석이나 오래되어 힘이 빠진 인공위성 같은 고전적 위협을 상대할 때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일주일 전, 터미널 사고가 발생하면서 결함이 드러났다. 산산조각이 난 무인 수송선을 향한 두번의 요격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상황을 파악한 기상관측소에서는 요격 시스템을 수동으로 돌리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본부에서는 지구 측의 전문가들을 투입해주겠다며 요청을 일축했다. 그리고 전문가들을 동원한 시스템은 원래 수백개 정도였던 위험 물체들을 궤도상에서 치운답시고 수천수만개의 파편으로 만들어버렸다. 파편들은 고스란히 위험낙하물이 되었다.
 
하늘에서 우주쓰레기가 쏟아지기 시작했을 때 승희는 문득 해본 지 십년도 더 된 게임 하나를 떠올렸다. '테라포밍 문'이라는 시뮬레이션 게임이었다. 달에 기지를 건설하고 버티는 것이 목적이던 그 게임에서는 툭하면 운석이 떨어져서 주요 시설을 부숴놓곤 했다. 쾅, 하는 효과음과 번쩍거리는 경고 메시지가 뜰 때마다 인구수가 쭉쭉 줄어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게임을 해보고도 이곳에 올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는 운석 한번 맞았다고 줄어드는 숫자가 짜증나기만 했다. 그 숫자 중 하나가 된다는 게 이런 기분이었다니.
 
차라리 진짜 운석이면 나을 뻔했다. 그러면 지구의 수집가들에게 비싸게 팔아넘기기라도 했을 것이다. 연구단지를 타격한 파편들은 쓰레기에 불과했다. 지난 몇년간 성간 수송선 외장재를 독점하다시피 한 오스왈트 합금은, 성간 이동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열에도 손상되지 않는 초내열성을 자랑했다. 그러나 바로 그 초내열성 때문에 위성 달온의 얄팍한 대기층은 달온으로 추락하는 파편들을 다 태워버리지 못했다. 하긴, 차세대 첨단 고기능성 신소재와 불완전한 완전 자동화 요격 시스템의 만남이 이런 결과를 낼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
 
유경이 자료를 전송하다가 또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투덜거렸다.
 
"아까는 뭐라는 줄 알아? '그러니까 저희 요격 지원이 없었으면 더 큰일났을 거 아니에요.' 이러는 거야. 돔에 뭐 흠집 정도 난 걸로 걱정하지 말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것이 화면 속의 '테라포밍 문'에 불과하다. 특히 우주적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이들에게는. 하지만 연구단지 거주자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승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담당자가 그러는 게 한두번이어야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머리 위로 뚜껑 덮을 필요도 없어서 참 좋겠어."
 
넘겨받은 자료로 간략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은 금방 끝났지만, 기상관측소에서 받을 데이터가 남아 있었다. "이따 자정 전까지는 준대. 대충 정리 끝나면 눈 좀 붙이고 있어." 유경은 자료가 오는 대로 깨워주겠다는 친절한 말을 덧붙였다.
 
자정부터는 관측소의 직원과 계속해서 진행상황을 공유해야 했다. 나흘간 이어진 비상근무에 철야까지 하려니 피로가 어깨를 잔뜩 짓눌렀다. 하지만 적어도 머리 위로 쓰레기 폭격이 이어지는 상황보다는 나았다. 당장 어디서 충돌음이 들릴지, 돔이 깨져서 산소통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드니 긴장이 풀리고, 몸이 노곤해졌다.
 
하지만 사건은 이제 한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한 시점에 발생했다.
 
새벽 다섯시. 꾸벅꾸벅 졸던 승희는 화들짝 잠에서 깨어났다.
 
연구소에 요란한 경보음이 울리고 있었다.
 


김초엽
소설가.
 


2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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