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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필모그래피

김종연
2018년 10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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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사는 세상이 알고 보니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쿠키 영상이라면?이라는 의문에서 이 시는 시작된다.
 
그러니까 이 세상이 인류가 이룩한 문명의 주요 공로자들을 치하하기 위한 테마파크고 우리는 굿즈나 사며 돌아다니다가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면 쓸데없이 명찰이나 달고 어딘지 알지도 못할 면접장에 앉아서
 
“저는 이 유니버스와 저 유니버스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같은 소리나 했는데 하필 출근하고 보니 저기가 미래고 여기가 과거라
 
내가 미래를 조금 반영하게 된 거라면?
 
 
2
 
그러니까 사랑하는 독자님들 끝까지 앉아 계서도 사실 별거 없습니다. 끝나도 떡밥 투척입니다. 다 보셨으면 이제 다음 편 광고 보실 시간입니다. (시작할 때도 광고를 십분이나 봤는데 이 나쁜 새끼들……) 사실 이것도 광고입니다. 나갈 때 들고 가시면 제가 팔백원을 받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
 
물론 잘했는지 묻는다면 잘못했습니다.
그래서 말해봅니다.
 
집으로 가는 길 놀이터에 이년째 파란 천막이 씌워진 리어카가 있었습니다. 친구와 저는 저 안에 시체가 들어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리어카가 삼년째가 되자 그 안에서 시체가 나왔습니다.
 
짜잔!
 
호러블!
 
벌써 몇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오늘처럼 놀랍습니다. 내일처럼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저 때문에 일년을 더 계셨습니다.
 
누군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기억은 삶을 관객으로 살게 합니다.
 
기억을 의심할 수 있을 때까지.
기억만 의심하면 될 때까지.
 
 
4
 
그러나 영화관에서 나오니 밤이었다. 여름이었는데 봄이었다. a는 외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b는 어느날 봤던 a의 외투가 인상적이었다. 거적때기였는데 몸에 걸치면 빈티지소울이었다. 갖고 싶었지만 가질 수 없었다. 어디서 샀는지 물어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걸 입으려면 둘 중 하나는 없어져야 했다. 그때 a는 “겨우 이런 것 가지고 이렇게까지 생각한다고?” 하며 놀라워했다. 동시에 b는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대답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아직 영화는 끝나지 않았고 a와 b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대본을 읽고 있었다.
 
― 한번 보고 나면 세상은 이미 다른 세상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도록 변해 있었다. 영화에서 영화를 보고 우는 주인공처럼 나도 모르게 주제보다 더 성공하는 오브제가 되어 있는 것이다…… 무언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예감과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불가능성이 목을 조여오기 시작한다. 정신을 차려보면 그 손이 내 손이라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흠이다……
 
그들의 대본에서 같은 메모가 여러번 발견되었다.
 
 
5
 
하지만 영화는 이제 정말 끝이 났고, 나는 커피를 한잔 마시고 담배를 한대 태운 뒤에 “네 안에 예술이 있다면 어디 꺼내보렴!” 하는 화면 앞에 앉아 있다. 커피와 담배가 아니더라도 성공하면 무엇이든 성공적인 의식이 된다. 여러 문장이 나왔다가 사라진다. 예컨대 “아픈 시늉 하지 마! 죽는 척하지 마! 아니 그렇다고 죽은 척도 하지 마!!!” 같은 문장들이다. 이것은 예시이므로 사라져야 할 것이지만
 
그냥 놔두기로 한다.
저절로 잊혀 사라질 때까지.
 
 
 
6
 
이런 이야기도 제기된다.
모든 영화가 속편을 제작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능하다면 과거의 내게 돌아가서 후회할 일을 미리 얘기해주고 싶지만 알아듣지 못할 테니 이길 자신이 없다. 예를 들어 너는 학교에 구름 무늬 스키니진을 입고 갈 거야. 몸에 붙는 티셔츠를 입고 다닐 거야. 라식 했다고 썬글라스 쓴 채로 수업에 들어갔다가 엄청나게 혼날 거야. 그래서 372페이지짜리 『매저키즘』을 2페이지로 요약해 오라는 과제를 받게 될 거야. 그리고 몇년 뒤엔 네가 사는 곳에 큰 비극이 일어날 거야.
 
너는 그대로면 내가 된다.
나의 사랑하는 후회여.
 
나는 지금도 영원히 스포 되고 싶다.
 
 
7
 
영화가 끝났는데 모두 떠나지 않고 있다. 영화가 끝났는데 아무도 말하지 않고 있다. 영화가 끝났는데 더 중요한 걸 기다리고 있다.
 
다 끝나야 돌아갈 수 있다.
아직 비유되기 이른 슬픔이 남아 있다.
 
배역은 어딘가에 가서 배역을 잊고 돌아온다.
 
다시 처음부터 해도 같을 것이지만
 
내게 미래가 조금 남아 있다.
 
꿈에 반영될 현실이 필요해서
현실에도 반영될 꿈이 필요했다.
 
 
8
 
우리는 모두 사람이고 스크린 안에서 픽셀입니다. 우리가 많을수록 영화의 해상도는 높아집니다. 우리는 점이고 선이고 면입니다. 전능하신 감독님들 덕분에 이 세상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이미지를 만드는 믿음에 우리 중 누가 처음 신이 되어주셨습니까?
 
다만
 
이 모든 우리에게는 계기가 있습니다.
 
 
9
 
다음 영화가 시작될 때까지 
영화관에 영화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럼 여기를 지금 뭐라고 불러야 할까?
 
다음 사람들이 올 때까지 
이전 사람들이 흘리고 간 팝콘을 줍고 있다.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걸
돌아갔다고 믿고 있다.
 


김종연
두근거리는 물질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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