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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의 기억, 기억의 장소

백수린
2018년 10월 02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처음 알려준 사람은 M이모다. 진짜 이모는 아니고 엄마의 친구인 그녀를 나는 M이모라고 불렀다. M이모는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70년대에 독일로 유학을 떠날 정도의 엘리트 여성이었지만 유학을 다녀온 이후 대단한 직업을 갖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경기도의 작은 주택에서 직접 농사한 작물로 음식을 해먹으며 고요히 홀로 살았다. 언젠가 이모의 집에 놀러 갔을 때 보았던, 들판의 높다란 옥수수대와 이모가 해주었던 두부김치—두부를 기름에 지지지 않고 물에 살짝 데쳤고, 김치는 들기름에 조물조물 버무렸다—요리는 지금도 여름이면 생각난다. 엄마의 친구는커녕 형제자매들 중 누구에게도 그다지 싹싹한 편이 되지 못하는 내가 M이모를 따랐던 것은 독특한 삶의 방식을 가진 그녀가 매우 영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면의 어둠을 잘 견디지 못한 탓인지 어려서부터 종교랄지, 구원이랄지 하는 것들에 관심을 가져왔으나 어느 종교에도 끝내 설득되지 못해 괴로웠던 나는 언제나 종교심이 깊은 사람들, 영성이라든지, 신앙심, 도라든지 우주의 원리 같은 것들에 대해서 나에게 이성적으로 설명해줄 법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좋아해왔다. 독일에서 돌아온 후 긴 세월 공부해온 학문과 무관한 신학을 홀로 연구하며 수도자처럼 사는 M이모에게 메일을 보내 인생이 무엇인지, 죽음은 무엇인지, 신이 존재하는지 같은 쓸데없는 질문들의 답을 달라고 졸라댔던 것은 그 때문이다.
 
이모와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것은 어떤 이유였던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내가 이모에게 연락을 다시 건넸을 때 이모는 경기도의 집을 처분하고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서울 어디에 살고 있어요?” 나는 뜻밖이라는 생각에 이모에게 문자를 보내 물었다. 내가 알기로 이모는 돈이 많지 않았고, 서울에서 집을 구해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다. “아주 재미있는 동네야.” 이모는 그렇게 말하며 “언제 한번 너도 놀러오렴. 좋아할 것 같은데.”라고 답을 했다. 그로부터 몇달 후, 나는 이모의 동네로 이사했다. 이모가 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이모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결정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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