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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거 개념 변화에 따른 건축적 제안들

박세미
2018년 10월 02일

주목: 사는 곳과 사는 법


 
주거 개념과 접근방식 변화: ‘사는(buying) 집’에서 ‘사는(living) 집’으로
 
세어보니 열두 집이다. 내가 살았던 집들. 정원이 딸린 2층짜리 단독주택도 있었고, 가게에 딸린 한평 남짓의 방 한칸도 있었다. 사업가 아버지를 둔 덕분에, 가계 그래프가 꽤 극적이어서 거주공간의 경험 폭도 컸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압구정동에 있었는데,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거주지 유형에 따라 내가 특정 부류에 속할 수도 있고, 소외될 수도 있음을 인식했다. 중학교에 비해 고등학교는 더 여러 지역의 아이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직업, 부모의 차, 특히 부모의 집이 그대로 아이들 사이의 계급이 되었다. 노골적이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만연하게, 분명히 작용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쓰리구정’이라 불리는 압구정초–압구정중을 거쳐 압구정고에 입학한 미성·현대·한양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이를테면 순수혈통이었다. 압구정동에 살긴 하지만 강변의 아파트가 아니라 그 건너편 빌라, 맨션에 사는 아이들은 그나마 기세를 유지했다. 반면 반포와 잠실, 신천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확실히 그들과 노는 무리가 달랐다. 더 정교하게는 강변의 아파트 단지에서도 더 강변 쪽, 그러니까 한강뷰를 가진 넓은 평수의 아파트가 몇번대 동수인지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15년 전의 이야기다. 이것이 단지 과거의, 나의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라면 좋겠지만, 아마 만연한 세태일 것이며 지금은 이를 인지하는 연령대가 더 낮아지고 ‘감수성’은 더 예민해졌을 것으로 짐작한다. 거주 지역에 따라, 거주 유형에 따라, 소유 여부에 따라 삶의 가치에 등급이 매겨지는 것이다. 특히 소유의 측면에서 여전히 집은 과시의 대상이자 투기의 수단, 재산의 가치로 인식된다. 우리는 자신의 가치관과 고유한 생활 패턴을 미처 주거 공간에 대입해볼 겨를도 없이 마침내 평균 60세가 되어서야 ‘내 집’을 갖는다. 엄밀히 말하면 ‘내 이름으로 된 집’을 갖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 자본주의적 욕망의 대상으로 집을 인식하는 시대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공간으로서 집을 상상하는 시대로 전환되는 모습도 나타난다. 이 전환의 시기에 우리가 놓치지 않고 견인해가야 할 것은 바로 1~2인가구의 주거환경일 것이다. 통계청의 장래가구 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가구는 2018년 기준 전체 가구의 29%를 차지하고 있고, 2045년에는 809만 가구로 36.3%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1) 1인가구가 가장 주된 가구 유형이 되는 것이다. 이제는 부모와 슬하의 자녀로 이루어진 가구는 더이상 한국사회의 전형적인 가족 모습이 아니다. 「나 혼자 산다」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이 보여주듯 우리는 이미 혼자 사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시대에 진입했다. 하지만 이에 맞게 보급되는 주거유형은 양적·질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이러한 주거유형 변화와 그에 따르는 인식 전환은 건축계에서도 중요한 이슈다. 그렇다면 한국 건축계는 1~2인가구의 거주성 및 사회적 소외와 배제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을까? ‘사는 곳과 사는 법’이라는 주제를 앞에 두고 조금은 무책임하고 지엽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건축가의 직능에 기대어 몇가지 사례를 통해 최근 주거개념 변화에 따른 여러 건축적 제안과 모색을 살펴보고자 한다.
 
 
좀더 나은 거주감각을 향하여: 문정동 도시형 생활주택, 안산 밝은 다세대주택
 
지난 몇년 1~2인가구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데 반해 여기에 대응하는 주택 정책은 미미했다. 이른바 ‘집장사’로 통칭되는 시행사가 단독주택 필지를 매입한 후 수익형 다세대주택을 지어 분양하기 시작했고, 정부에서도 기존의 법을 완화하여 소형주택 보급을 활성화하고자 원룸형 도시형생활주택(2009) 및 준주택(2010) 제도를 도입, 행복주택 등의 공공임대주택 등 다양한 정책적 움직임을 보였지만, 공급량만 확대되었을 뿐 쾌적한 거주환경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도시형생활주택이나 다세대주택은 보급이나 시장 형성에 목적을 두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설계비를 요구하는 건축가들은 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우며, 진입하더라도 실제 거주자의 필요보다는 건축주 혹은 임대인의 수익성에 우선을 두고 설계할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서도 1~2인가구의 거주성에 천착하여 새로운 주택 유형을 탐색하는 사례들도 나타나고 있다.
 
디자인 및 시공 업체 스트락스어쏘시에이트가 설계한 문정동 도시형생활주택의 경우 대량생산을 위한 기본 모델을 탈피해 변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스트락스어쏘시에이트는 기존의 거주감각을 벗어나기 위한 전략 중 하나로 재료의 물성에 주목했다. 이를테면 건물의 1층부와 후면을 덮은 벽돌이 현관까지 타고 들어와 계단까지 이어지며, 일반적인 주택에서 볼 수 있는 석고보드 위 페인트 식의 매끈한 마감이 아니라 외부의 거친 질감이 공동 현관과 계단까지 이어진다. 또한 서로 다른 높낮이로 칠해진 페인트는 내부 공용 복도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집 내부는 콘크리트 위에 에폭시로 마감된 바닥과, 콘크리트와 나무로 만든 벽으로 이뤄져 있다. 이는 단순히 재료 선택이 아니라 재료의 물성을 활용한 내외부의 경계 흐리기를 통해 원룸의 협소함과 단순성에서 벗어나 집으로 느끼는 범위를 흔드는 것이다.
 
피그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안산의 ‘밝은 다세대주택’은 다세대주택의 거주성에 대한 문제의식과 고민이 잘 녹아 있는 사례다. 한국인의 절반은 아파트에 살고, 나머지 절반은 다세대와 다가구 주택에 거주하는데, 아파트에 비해 다세대의 거주환경 개선은 거의 관심받지 못했다. 아파트가 중산층의 주거유형이라면, 다세대주택은 저소득층의 주거유형이기 때문이다. 밝은 다세대주택은 이름 그대로 빛과 바람이 잘 통하는 주택을 위시하고 있다. 빛과 바람은 낭만적 명목이 아니라 주거환경의 질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이고 실재적인 요소다. 그렇다면 최대한 공간을 쪼개어 많은 세대를 밀어넣는 기존의 다세대주택과 밝은 다세대주택은 어떻게 다를까? 그 고민의 흔적은 다음의 공간 구성요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번째는 주출입구 부분이다. 여느 다세대주택처럼 1층 주차장 필로티를 통해 출입하는 방식이 아니라, 차량동선과 보행동선을 분리시키고, 높고 시원하며 어엿한 문을 만들었다. 이 문을 통해 공용 계단에 진입하면 오른쪽 통창을 통해 계단실로 빛이 들어온다. 무엇보다 중앙 중정이 있다는 점과 각 세대마다 다른 공간적 이점을 주어 균질한 거주환경을 제공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크게 세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남향 세대는 4-bay2) 구성을 통해 채광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고, 대신 북향의 세대는 중앙 중정을 통해 채광을 확보하고, 스킵플로어3) 구성을 통해 계단참에서 단독으로 진입하여 개인 외부 마당을 거쳐 실내로 들어가게 했다. 도로면에 면한 세대 역시 조망 확보를 위해 4-bay로 구성했다. 이러한 중정과 마당, 4-bay 구조 같은 요소들은 12평 남짓한 원룸에서도 단독주택과 같은 거주감각을 갖게 한다. 한정된 재정과 수익성을 보장하려는 임대인의 요구 속에서도 실제 거주자들의 공간 경험을 먼저 고민하고, 결국 이것이 공간의 시간성도 연장하는 것임을 설득시켰다.
 
이러한 거주성에 대한 고민과 모색이 다세대주택보다 더 열악한 쪽방, 옥탑방, 지하방, 고시원까지 미처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또한 상기해야 한다.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이 건축주의 개인적 재산 축적을 도와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거주감각의 폭과 깊이를 확장해줌으로써 한 사람의 삶 전반의 공간적 경험의 품질을 사회적으로 평균화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공유공간을 통해 찾는 삶의 가치: 어쩌다집@연남, 하남미사 다가구주택
 
1인가구의 사회적 소외와 배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주거공간에 대한 모색이 이루어지면서 대안주거로서 등장한 것이 공유주택(셰어하우스)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주거 형태인 공유주택은 물리적 공간의 공유를 통해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정서적 공유와 같은 사회적 측면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단순히 식사나 세탁 등의 일반적 생활을 같은 공간에서 공유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사건과 행위를 통해서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공생 혹은 상생의 공간은 어떻게 생성될 수 있을까?
 
‘어쩌다집’은 ‘어쩌다가게’ 시리즈로 동교동, 서교동과 같은 골목 중심의 상권지역에 공유 상업공간을 기획·설계했던 건축사사무소 SAAI의 공유주택 작업이다. 서울시 마을만들기 시범지역에 속한 부지에 9세대의 소규모 독립적 주거공간을 라운지, 동네부엌, 수직골목의 공용 공간을 통해 엮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공용공간을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배치했다는 점인데, 이를테면 가게 영업시간에는 외부 계단으로 올라가 2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게 만들어 이웃과의 접촉점이 더욱 늘어나게 한 것이다. 또한 쏘셜미디어를 통해 입주자를 모집한 것도 특징이다. 인터뷰를 통해 결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집들이를 했으며, 현재 디자이너와 건축가, 문화기획자, 한의사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입주해 있다.
 
어쩌다집이 외부 동선과 커뮤니티 공간을 통한 우연 혹은 필연의 공생을 유도하고 있다면, 디자인그룹오즈가 설계한 하남미사 다가구주택은 불특정하고 중성적이었던 옥상공간을 공용 공간으로 개별 가구와 접목시켜 다목적 공유공간으로 전환시킨 예다. 하남미사 다가구주택은 일종의 수익형 땅콩주택으로 1층은 근린 생활시설, 2층은 임대주택 두 가구, 3, 4층은 복층형 주택 두 가구를 배치해서 복층형 주택 두 가구가 약 25평의 옥상 데크를 공유하도록 설계됐다. 옥상 공간은 각각의 주택 다락을 통해서만 접근되는데, 개개인의 집이 확장되는 동시에 기존에 방치되거나 중성적이었던 공간이 활성화되도록 했다. 마찬가지 의도를 가지고 4층의 공용 계단실은 두 집이 공유하는 서재와 창고로 설계됐다. 사유하거나 공유하는 여러개의 공간으로 집을 구성하여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고자 한 것이다. 이 주택은 1~2인가구를 위한 소형주택은 아니지만 공동주택에서 잘 인식하지 못했던 옥상 공간을 물리적 장치를 통해 공유하도록 함으로써 공유공간의 또다른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하지만 공유주택의 경우 공유공간이 결국 개인공간에서 할애된 부분이라는 점, 또한 이를 운영하고 지속하는 시스템까지도 개인이 떠안아야 한다는 점은 공공의 개입이 최소화되면서 국가나 공공의 역할을 개인에게 전가하게 되는 난점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하기: 지역사회권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소유의 종말』에서 주택과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공동관심 단지 개발(CIDs, Common Interest Developments)’이라는 공동 라이프스타일 임대단지가 늘어나고 있음을 언급했다. 한국보다 먼저 새로운 주거형식을 실험해온 일본 건축계에서도 삶의 방식과 주거형태를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 역시 1~2인가구 비율이 증가하면서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생활방식을 제안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지역사회권’이다. 지역사회권은 개인을 기본단위로 하는 공동체 주거 시스템으로, 건축가 야마모또 리껜(山本理顕)이 제안했다. 개인이 점유하는 전용공간은 작고, 함께 사용하는 공유공간은 크다는 것이 특징이다. 500명 정도의 규모로 이루어진 지역사회권에서는 개인의 휴대전화, 침대, 옷장 등을 제외하고 60~70%의 생활공간을 공유한다. 또한 자신의 취미나 재능을 기반으로 한 소모임, 가게를 운영할 수 있다. 이것은 최근 논의되는 공유경제와도 연관된다. 그는 저서 『마음을 연결하는 집』(한국어판 이정환 옮김, 안그라픽스 2014)에서 기존의 ‘1가구 1주택’과 지역사회권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1가구 1주택이 표준가족을 전제로 공급되는 것이라면, 지역사회권은 반드시 가족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2. 1가구 1주택이 사생활과 보안을 중심으로 공급되는 데 반해 지역사회권은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전체의 상호관계를 중심원리로 삼는다.

3. 1가구 1주택이 주변 환경, 주변 지역사회에 대한 무관심으로 성립된다면 지역사회권은 주변 환경과 함께 계획된다.

4. 1가구 1주택은 궁극적인 소비단위다. 그것을 전제로 국가적인 성장경제전략이 성립된다. 지역사회권은 단순한 소비단위가 아니다. 지역 내부에서 작은 경제권이 성립될 수 있게 계획한다.

5. 1가구 1주택에 공급되는 에너지는 모두 외부로부터 온다. 따라서 주택은 단순히 에너지 소비단위에 해당한다. 지역사회권은 그곳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효율적으로 이용한다. 따라서 단순한 소비단위가 아니다.

6. 교통기반시설은 1가구 1주택을 전제로 삼는다. 공공교통이나 자가용이 그것이다. 지역사회권에서는 그 중간적인 교통기반시설을 구축한다.

7. 질병보험, 건강보험, 연금제도 같은 사회보장제도는 1가구 1주택의 자조노력을 전제로 성립한다. 하지만 1가구 1주택의 붕괴와 함께 막대한 사회보장비용이 필요해졌다. 지역사회권에서는 그것을 보완할 수 있게 전체적인 상부상조를 생각한다.

8. 지역사회권은 임대를 원칙으로 한다. 분양을 통해 민간주택업자가 이윤을 올리는 현재의 공급시스템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 그것은 주택정책이라는 이름을 빌린 경제정책이다.

9. 분양맨션의 전용공간은 75~80% 정도다. 전용면적으로 가격이 결정되므로 가능하면 공용면적을 줄여 전용면적을 넓히려고 한다. 지역사회권의 공용면적은 60% 정도다. 전용면적과 공용면적 비율을 바꾼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용면적과 공용면적이라는 의식자체가 바뀐다.

10. 1가구 1주택의 각 주택은 외부에 대해 매우 폐쇄적이다. 지역사회권의 주택에는 외부를 향한 개방공간이 마련된다.4)

 
 
우리나라에서도 야마모또 리껜이 지역사회권을 모델 삼아 설계한 성남 판교 월든힐슨 2단지와 강남 보금자리주택 A3 블록이 지어졌지만, 투명한 현관문을 거주인들이 일반문으로 교체하는 등 웃지 못할 상황들이 벌어졌다. 이는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의 경계에 대한 인식이 일본과 한국에서 다르기 때문인데, 이상적인 공동체 주거 모델이라고 하더라도 문화에 따라 잘 작동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자족적인 공동체 주거환경이 개인의 삶에 얼마만큼의 이득을 가져오는가에 대한 협의가 면밀히 이루어져야 한다. 지속가능한 주거 공동체를 위해서는 오히려 정확한 경제적 논리를 구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작가 알랭 드 보똥은 『행복의 건축』에서 “건축은 법을 만드는 대신 제안을 한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건축에 권유의 힘이 있음을 말해주는 동시에 거절당할 여지가 있다는 사실도 내포한다. 그럼에도 다른 예술과 건축과의 차이가 있다면, 건축은 제안이나 선언으로 그쳐서는 안되는 숙명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실제로의 물리적 구현이 일어날 때 그것은 미력하더라도 영향을 발휘한다. 이 물리적 구현이 경험의 구현, 나아가 실질적인 삶의 구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건축가를 포함하여 제도적 차원의 개선을 이끌어줄 정치가와 행정가, 사유와 실험을 계속해서 개진할 연구자와 예술가 들의 힘이 필요하다.
 

 

남는 질문들


3  우리 사회에서 1~2인가구가 급증하며 주거 개념과 인식이 변화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그 여파는 주로 (소형 평수의) 아파트 수요 증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최근 자본주의적 욕망의 대상으로 집을 인식하는 시대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공간으로서 집을 상상하는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고 진단하는 근거가 될 만한 사회적 변화의 사례를 간단히 들어줄 수 있을까?
 
박세미  한국에서 집이 재산 가치로서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한편에서 사회·문화적 변화에 따라 주거공간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한데, 이를테면 현대인의 삶을 지칭하는 어휘들을 통해서도 그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편안함’ ‘아늑함’ ‘안락함’을 뜻하는 단어로, 안락한 환경을 통해 소박하고 여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휘게(hygge)’, ‘가족처럼 가까운 친구들’이라는 뜻으로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느긋하고 소소한 생활방식을 찾고자 하는 ‘킨포크(kinfolk)’, ‘적당한’ ‘충분한’ ‘딱 알맞은’이라는 뜻으로 소박하고 균형 잡인 생활과 공동체와의 조화를 중시하는 ‘라곰(lagom)’ 등은 오늘날 젊은 세대의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와 맞물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않더라도 삶의 주된 공간인 주거공간을 삶의 가치에 맞게 조성해가려는 욕구가 확산되고 있다.
 
또한 거대담론과 집단의 시대가 사라지고 개인이 등장하면서 가치관의 다양화가 진행되는 취향의 시대를 경유하고 있다는 점 또한 주거공간에 대한 인식 변화에 가세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홈퍼니싱* 시장 규모는 2008년 7조원 규모에서 2016년 13조 1000억원으로 가속도적 성장 추이를 보이고 있다. 자가 보유와 관계없이 주거공간이 개인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매개로 자리 잡고 있음을 방증한다.
 
한편으로 재테크 수단이었던 아파트 값이 급등하면서 전세 비용으로 집이 짓는 것이 현실적으로 나은 선택이 되기도 했다. 저렴하고 합리적인 비용의 협소 주택, 노마드 시대에 맞춰 쉽게 짓고 이동시킬 수 있는 조립식, 모듈형 주택도 등장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나타나는 현상들과 더불어 현대사회의 주거공간 개념의 인식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집(home)과 가구(furnishing)의 합성어로 가구나 조명,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 집안을 꾸미는 것.
 
3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언급한 구절이 인상적이었는데, 한편으론 거기에만 기댈 수는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새로운 주거감각을 만들어가기 위해 지역 공동체가 조성해야 할 여건 혹은 건축가의 작업에 부응할 만한 공동체의 협력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박세미  맞다. 앞서 말했듯이 건축은 제안을 할 뿐이지 건축으로 삶의 방식을 결정지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좀더 나은 거주공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고, 함께 협력해갈 공동체도 필요하다. 개인주의가 극대화된 시대에서 개인적 공간의 강화와 함께 공동체적 삶이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질문하면서 균형을 맞춰가야 할 것 같다. 특히 공유주택 혹은 주거 공동체는 타인과 시공간을 공유하는 것을 전제하는데, 이는 사실상 가족이 되는 일이다. 혈연가족조차 시공간을 오랫동안 공유하면서 서로를 견뎌내는 암묵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각기 다른 개인들이 새로운 주거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몸과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여기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협력과 가치 공유가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공간 점유 방식, 공용 공간 범위의 허용치, 이에 따른 개인의 경제적 이득, 공동의 가치 등을 실질적 데이터로 축적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주거 모델을 구축해가는 것이다.
 
3  새로운 주거감각을 만들어가기 위해 언어예술인 문학이 하면 좋을 역할이 있다면 무엇일까?
 
박세미  어려운 질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사회와 문화, 기술, 자본의 논리가 강하게 결합되어 있는, 그리고 무엇보다 실재적이고 물리적인 건축의 세계와 다른 예술이 직접적인 공명이 일어나기에는 너무나 큰 비약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문학적 상상력이야말로 물리적 이미지의 껍데기를 뚫고 들어가 가장 근본적인 우리의 삶의 방식, 주거감각을 고양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고 믿는다. 마치 이딸로 깔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작가가 마법처럼 불러낸, 그러나 어딘가에 실재할 법한 도시와 광장, 거리를 직접 가본 것처럼 선명하게 경험하고, 어느새 상상의 공간에 나의 삶을 투영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문학적 경험을 통해 이상적인 주거감각이 만들어지고, 반영되고, 실현되며, 전해지기를 바란다.
 

 


1) 국가통계포털(kosis.kr)

2) bay는 기둥과 기둥 사이의 창이 면하여 햇빛이 들어오는 공간을 뜻한다. 방 3개와 거실이 전면부에 배치된 구조를 4-bay라 하는데, 4개 공간이 동일한 선상에 배치되기 때문에 보통은 넓은 평수에 적용하는 구조다.

3) 건물 각층의 바닥 높이를 일반적인 건물과 같이 1층분의 높이만큼씩 높이지 않고, 각 층계참마다 반층차(半層差) 높이로 설계하는 방식.

4) 이상 같은 책 26~28면.
 


박세미
월간 「SPACE(공간)」 기자, 시인. 건축과 건축역사·이론·비평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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