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닫기
SHARE
0

모르는 것을 잘 모르기 위해

안희연
2018년 10월 02일
 



요즘 저의 화두는 ‘반경(半徑)’입니다. ‘반지름’의 옛 용어이자, ‘행동이 미치는 범위’라는 뜻을 가진 낯익은 단어지요. 말의 뜻을 살피자면 크게 어려울 것이 없지만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 적용해보자니 어쩐지 어렵게 느껴집니다. 제 삶의 반경이라는 것이 참 좁고 구차하기 때문이지요. 매일 같은 길을 걷고, 매번 만나는 사람들과 비슷한 패턴의 대화를 나누고, 매일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우유와 계란과 맥주를 사서 터벅터벅 돌아오는 삶. 거기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고 달라지기를 원하지도 않는 안전하다 못해 지루한 삶. 그렇게 매일매일 하루의 끝에 다다를 때면 허무가, 무기력이, 덧없음이 두더지처럼 사방에서 고개를 내미는 통에 밤을 지새울 때가 많아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요즘 어떻게들 지내시나요.

제 마음이 서둘러 늙어버린 탓일까요. 사람들은 삶의 지겨움을 어떻게 견디는 걸까요. 며칠 전엔 십수년 만에 똘스또이의 고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펼쳐보기도 했어요. 똘스또이는 그 답을 ‘사랑’에서 찾고 있으나 제 마음이 비좁아서인지 믿음이 부족해서인지 그 좋은 약도 몸에 듣지를 않더군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미세한 다름을 변별하는 것이 시인의 자질이라고 말하는 영화 『패터슨』이나, ‘모든 것은 빛난다’는 말의 진위를 확인하러 떠난 이에게 ‘빛나는 모든 것이 있을 뿐’이라는 선한 가르침을 주는 책* 또한 꼼꼼히 살펴보았어요. 그런데 왜 점점 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요. 어떤 자극에도 시큰둥해지고 복잡한 문제들을 목전에 두고도 쉽게 쉽게 생각해버리려는 욕망이 제 안에 가득합니다. 어려선 그토록 경멸했던, 관성에 따라 오래 살아온 어른의 모습으로 제 스스로가 변해가는 것 같아 괴로운 날들입니다.

물론 아주 작은 것부터 전환을 꾀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를테면 ‘소확행’처럼 일상의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되찾는 일. ‘나심비’**를 고려한 소비로 스스로에게 크고 작은 보상을 하는 일. 그런데 이 또한 미봉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물질로 도피할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지 않으면 그 좁은 둘레만 뱅뱅 돌다가 삶이 끝날 것 같은 무서운 마음이 듭니다.

유계영의 「봄꿈」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합니다. “멀리 바람으로 날아갈 수 있는 죽음이 있다고 믿는/삶의 아둔한 속도로는/집오리 같은 시간 속을 영영 뒤뚱거리게 될 것”. 저는 이 문장들이 우리 삶의 반경이라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비좁아질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경고로 들립니다. 살피고 고민하지 않으면 금방 내성이 생기고 타성에 젖을 것이라는 예보. 뒤뚱거리는 집오리는 얼마나 탁월한 비유인가요. 제가 자라난 집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사육당할 운명은 알지 못하는, 저 아둔한 오리들이 제가 아니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요. 물론 저는 그 답을 알지 못한 채 계속 살아갈 것이 분명합니다. 사는 게 지겹다고 투정하면서, 우둔한 실수들을 몇번씩이나 반복하고 후회하겠지요. 삶이 답답하다 여겨질 때마다 제일 먼저 책을 펼쳐드는 것은 문학에 대한 여전한 신뢰 때문이지만, 문학은 그 고민에 동참할 뿐 정답을 제시해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같은 시인은 이렇게도 말하는군요. “모르는 것은 끝까지 몰라두거나/어른 같은 아이는 귀엽지가 않으니” 저는 이 문장을, 모르되 ‘잘’ 모르라는 말로 바꿔 읽습니다. 확정하지 않고 확장하는 삶. 부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귀여운 어른으로 늙어가라는 당부.

〔문학3〕은 ‘징검다리 돌’처럼 늘 거기 있습니다. 우리 안의 다른 우리를 열어젖히고 그곳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발 디딜 무언가가 필요하듯이, 〔문학3〕의 고민들이 여러분의 삶의 반경을 질문하고 넓혀가는 일에 기꺼이 쓰이기를 소망합니다. 물에 잠긴 쇠젓가락처럼, 각자의 삶으로 휘고 구부러지는 문장들을 발견하는 재미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겁니다.

저 역시도 게으르지 않겠습니다. 제게 남은 과제는 제 삶에 찾아온 ‘지겨움’이라는 감정을 허비하지 않고 섬세하게 감각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시간이 어떤 문을 열어 보일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은 가봐야겠지요. 유난히 혹독했던 여름이 끝난 것처럼. 유난히 혹독하리라는 겨울도 언젠가는 끝날 것처럼.
문학3 기획위원 안희연



*휴버트 드레이퍼스·숀 켈리 『모든 것은 빛난다』, 사월의책 2013.
 
**‘나’ ‘심리’ ‘가성비’의 합성어로, 내가 만족할 수 있다면 지갑을 여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소비 심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