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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리틀 러버(1회)

김봉곤
2018년 10월 03일


1. 夏日


 
사랑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된 건 스물다섯의 여름날이었다.
 
정확하게는 그래, 나도 너 사랑해.
 
나는 걸음마를 떼는 아기처럼 엉거주춤, 후들후들, 비틀비틀이었겠지만 비로소, 그것을, 처음으로 해냈다. 내가 그 말을 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사랑하지만…… 사랑한다니. 내가 진짜로 그 말을 했다고? ‘맙소사!’처럼 그저 문어로만 존재했던 그 문장을 더듬더듬, 종내 힘까지 주어 말해버렸을 때, 나는 중학생 시절 레코드 가게에서 테이프를 훔쳐 나오다 친구와 눈을 마주쳤을 적처럼 쿵, 하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낙원상가로 이어지는 비좁고 어두운 골목,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구운 오징어 냄새, 달처럼 뜬 동그란 ‘男情’ 간판. 저기, 우리 키스하는 중도 아니었잖아, 근데 내가 이 말을 왜 해? 그것보다 내 억양은 어땠어……? 이미 축축한 몸 위로 또다시 땀이 흘러내려 등을 마구 긁고 싶었다.
 
나는 부풀어오르기보다 쪼그라들려 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엄습하는 낭패감에 선 채로 다리를 떨기 시작했을 때, 나를 바라보던 창준의 표정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이런 말이 가능할까? 언젠가 내가 창준의 얼굴을 영영 잊게 되더라도 그 표정만은 잊을 수 없을 거라고. 어쩌면 그와 함께했던 기억마저 모두 사라지고 ‘그’가 누구였는지조차 알 수 없어져버려도 그 눈빛만은 떠올릴 수 있을 거라고. 지금의 나는 여전히 눈을 잘 맞추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정말로 그것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절대 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날, 둘 데 없는 시선으로 황망하는 나를, 내 얼굴을, 창준이 능숙한 안경사처럼 양손으로 바루자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제, 모든 것을, 인정하라고. 그리고 넌 그 말을 한 게 맞아! 나는 그와 눈을 맞추었다.
 
나와 반대로, 창준은 그 말을 처음 듣는 듯한 사람의 경이로, (비할 바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이에게 처음으로 아빠, 하는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물기로 가득한 눈이 되어 있었다. 눈꼬리는 처지고 입꼬리는 올라간 어디서도 본 적 없었던 기쁨으로 가득 찬 얼굴로 창준은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야, 이건 너무 달콤하잖아. 그 표정은 혹시 풍토병 같은 거니?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선 그런 걸 본 기억이 없어.
 
나는 손바닥을 허벅지에 꾹 눌러 땀을 닦았다. 너무 많은 것을 말하는 듯도, 단 하나만을 말하는 듯도 한 그 눈빛을 마주하자 나는 그만 아이처럼(?) 황송해져버렸다. 내가 그런 표정을 만든 사람인 걸까? 그가 그런 표정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인 걸까? 나는 나 아닌 사람이 될 수 없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를 따라 미소 지었다. 조금 부끄러웠고 많이, 정말이지 많이 기뻤다.
 
사랑해,라는 말에 평소라면—,으로 시작할 매뉴얼이 그때의 내겐 없었다. 설거지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 오늘 외박이구나? 또, 캐시 충전했어? 의심이나 타박이나 농담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순간, 미친 게 아니라면 일대일로 대응할 액면가 그대로인 말, 사랑해. 욕조에 쏟아넣은 소금처럼 녹아 없어지고, 다른 데로 옮아간 것을 애써 발견해내고, 이온 음료를 완미하듯 맛이 있다 여전하다 느끼고, 착각하고, 억지로 떼어다 붙이고 갖다 붙일 필요 없는 말 그대로의 사랑해.
 
창준과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그 말을 주고-받았다. 문장의 밀도만큼 진한 밤의 열기에 휩싸여, 미소 지었지만 웃음기는 없이 우리는 그 말을 주고받았다. 사실은 그 말 말고는 다른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여긴 종3이니까 손잡고 걸어도 돼.”
 
“그래?”
 
“……된대.”
 
내가 의아해하자 창준이 말끝을 흐리며 웃었다. 그러고는 내 옆으로 나란히 붙어서서는 손바닥을 펴 보였다. 사방 눈앞과 머리 위 쏟아져내릴 것만 같은 모텔 조명이 우리의 어깨에 묻어났지만, 성(性) 에너지를 서모그램 지도로 담아낼 수 있다면 가장 새빨갛게 달아올랐을 이곳,의 검붉은 두개의 점이었을지도 모를 그와 나였지만, 우리는 손을 잡고 버스정류장을 향해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갔다.
 
사랑한다는 말에 너무 많은 마음을 담아 건넨 탓일까? 아니면 맞잡은 손에 바람을 넣었다 빼길 반복하며 조금이라도 더 접촉의 시간을 늘리는 데 집중한 탓일까? 걷는 내내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로의 횡단보도에 서자 자동차들이 더운 바람을 일으키며 빠르게 지나갔다. 버스가 지나가고 난 자리 멀리로 희미하게 남산타워가 보였다. 지하철은 이미 끊겼지만 버스 막차는 아직 여유가 있었다. 역시 서울. 나는 흘끔 창준의 옆얼굴을 보았다. 뭘 더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저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면 나는 좋았다. 그거면 너무너무 충분했다.
 
누군가에 혹은 사랑에 흠뻑 빠졌을 때, 가장 자주 하는 생각 중 하나는 ‘(않았)더라면—’이 아닐까? 그러니까, 내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로 대학을 가지 않았더라면, 그해 우리가 본 수능시험에서 복수 정답이 인정되지 않았더라면, 어설프게 마음에 들던 그 성대 남자애의 고백을 내가 덜컥 받아버렸더라면.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한 형과 했던 술 약속이 파투나버리고 과방에 누워 욕정인지 용기인지 헷갈리는 감정에 휩싸여 평소에는 안 하던 짓—먼저 메시지를 보내는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 썰렁한 농담과 김칫국 발언에 네가 나를 만나기도 전에 짜게 식어버렸더라면. 오늘 3차로 갔던 곳의 바텐더가 우리에게 참 잘 어울리신다고, ‘참’이라는 부사를 써서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내가 좀더 나를 의식해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더라면…… 불과 십분 전에서 선캄브리아기까지 거슬러올라갈 수도 있을 ‘(않았)더라면’의 연쇄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손을 잡는 일이 어쩌면 에로틱한 이유도 체액이 섞이는 것이기 때문이리라는 음란한 착각을 하며, 창준의 손을 잡고 계속해서 걸었다. 그저 손을 잡았지만 그런 내가 미쳤다고 생각할 정도로 대담하게 느껴졌다. 누구 하나 우리를 의식하지 않는 게 억울할 만큼. 믿어지니? 너와 내가 알게 된 게 고작 일주일이라는 게. 모르는 사람이 동갑이라는 사실에,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경이에, 그것에 감동할 새도 없이 사랑에 빠지고, 그게 바로 너란 게 말이야. 스물다섯의 밤, 다름 아닌 첫 연애야, 놀랍게도 너도 처음, 우린 조금 늦었지만, 가장 신생의 연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말이야. 누군가와 사랑하는 상상을 오래도록 해왔지만, 그 말을 하는 나를 그려본 적은 없었는데 나는 오늘 그것을 했고!
 
눈앞의 창준을 두고 아주 먼 곳까지 다녀온 것 같다고, 그런데 지금 여기에 너가 있어, 감격하려 들 때 그가 잡은 손을 놓고 나와 마주 섰다. 
 
“나, 간다!” 
 
버스가 도착했다는 걸 알아채지도 못했는데 창준은 차 문 앞에 서서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만원 버스를 비집고 들어가는 창준을 지켜보다 어느 순간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는 버스가 가는 방향을 따라 느리게 걸었다. 아이팟터치를 꺼내 감아둔 이어폰을 풀어 귀에 꽂았다. 무엇을 들으면 좋을까 이리저리 커버를 넘기다 고개를 들었을 때 신호에 걸려 그다지 멀리 가지 못한 버스가 보였고, 버스는 다시 출발하고, 손잡이를 잡고 앞을 보던 창준이 고개를 돌려 한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벅차오르는 마음을 가눌 길 없이, 나는 그것이 계시라도 되는 것처럼 아이팟에 깔려 있던 그라인더를 지워버렸다. 게이 데이팅의 혁명, 하지만 날 지금 붙잡지 않으면 언제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암시로만 기능했던 그것. 혜성처럼 등장한 그라인더도 출시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나와는 작별이었다.
 
난 아주 로열(loyal)한 사람이라고, 무엇보다 믿음이 중요하지 않느냐고, 이 마음 변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하지만 다짐을 한 지 오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급한 마음이 되어 창준에게 문자를 했다.
 
—너 아직 그라인더 안 지웠지? 제발 그렇다고 말해줘.
 
—오늘 집에 가서 싹 지우려고 했지! 근데 왜?
 
—지우지 마! 지우지 마!
 
—응응. 일단 그냥 놔둘게.
 
—신나서 막 지워버렸는데, 거기 우리 처음 나눴던 대화, 그거 남아 있는 거 생각도 못하고 나 그냥 지워버린 거 있지.
 
—올, 나 기분 좋으라고 먼저 지운 거야? 이따 집에서 와이파이 연결하면 열어보고 저장해둘게. 그러고 나도 지울게.
 
—고마워.
 
—난 이제 터널 지나서 이대야. 
 
—조심히 들어가. 들어가면 연락하고.
 
—고개 돌리면 너 있었으면 좋겠어.
 
—헙. 
 
문자를 주고받는 데 정신이 팔려 나는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일요일 밤의 종각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고요했지만,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셔츠를 들어올려 얼굴의 땀을 닦아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신각, 종로타워, 청계천, 영풍문고…… 그리고 어째서 내가 이곳에 있는 거지? 하고 불쑥 들이닥친 감각에, 질문에 나는 우뚝 멈추었다. 때로는 내가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로 바뀌어 다가오기도 하는 그것. 웃음이 새어나올 만큼 희열을 동반할 때도, 미어질 듯한 서글픔이 함께 밀려들기도 하는 그것. 물론 창준의 생각으로 곧바로 이어진 오늘은 전자였고, 신호가 바뀌자 나는 그 생각이 찾아왔다는 사실조차 잊고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대 연애시대의 개막이겠지? 올려다본 왼편 밤하늘에 ‘빠이롯드만년필’ 전광판이 어둠속에서 파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발견한 나는 정류장을 향해 힘껏 내달렸다.
 


김봉곤
소설가. 소설집 「여름, 스피드」가 있다.
 


2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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