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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온의 밤(2회)

김초엽
2018년 10월 08일


―무단침입 시도가 감지되었습니다.
 
승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보음이 날카롭게 귀청을 때렸다. 파편 충돌은 아니다. 상황실 모니터들은 모두 꺼져 있어 정황을 알 수 없었다. 소장실 문이 열렸다. 유경이 물었다.
 
“뭐 잘못 눌렀어?”
 
승희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무단침입이라니, 여기에 왜? 오작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경이 승희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나가보자.”
 
직접 확인해보는 게 낫다. 오래 고민할 것도 없었다. 승희는 의자에 걸려 있던 외투를 챙겼다. 걸음을 옮기는 동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연구소에 무단침입을 시도할 동기는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연구단지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니만큼, 재난 이후의 혼란을 틈타 나쁜 마음을 먹은 누군가가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혹시 정말로 침입자라면, 제압할 수 있을까? 승희는 유경을 흘끗 보았지만 유경은 이미 성큼성큼 앞서가고 있었다. 시스템 상으로 경보가 울리는 순간부터 자동으로 보안 담당자에게 연락이 가게 되어 있다. 잠시 시간을 버는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계단을 통해 내려가는 것이 빨랐다. 유경이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뒤따른 승희는 부자연스럽게 멈춰선 유경의 뒷모습을 보았다. 정문 앞에 도달하자 유경이 왜 그렇게 당황해 멈춰 섰는지 알 수 있었다.
 
유리문을 마구 두드리고 흔들어대는 소년이 있었다. 십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삐쩍 마른 소년이었다.
 
문을 억지로 열려 하는 행동을 감지하여 경보음이 울린 것 같았다. 소년은 유경을 보고 잠시 멈추더니, 유경이 가만히 보고만 있자 다시 문을 두드렸다. 승희가 물었다.
 
“열어줄까요?”
 
유경은 눈을 가늘게 뜨며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사이에는 유리문이 있었지만 뭐라 말을 하면 충분히 들릴 만한 거리다. 소년은 여전히 자신의 방문 목적을 밝히지 않고 있다.
 
“멈춰. 진정해. 무슨 일이야?”
 
소년은 듣지 않고 계속해서 문을 쾅쾅 두드렸다. 유경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옆의 인터폰을 들었다. 밖에 스피커가 달려 있었다. 소년의 시선이 인터폰을 향했다.
 
“무슨 일이지? 네가 말을 해야 도울 수 있어.”
 
문을 두드리던 손이 멈추었다.
 
소년은 입을 열어 무어라고 소리를 냈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더니 입고 있던 외투의 주머니를 뒤져 무언가를 찾았다. 승희가 보기에는 휴대폰을 찾는 것 같았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급하게 나오느라 챙기지 않은 걸까.
 
지켜보던 승희가 버튼을 눌러 문을 열었다. 유경이 당황한 듯 흘끔 승희를 보았지만 승희는 신경 쓰지 않았다. 승희는 자신의 휴대폰을 소년에게 건넸다. 내장된 펜도 함께 주었다.
 
소년은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펜을 들고 휴대폰 위에 썼다.
 
 
―도와주세요 전화
 
 
무슨 뜻이지? 소년은 휴대폰을 가리키며 무언가 손동작을 했다. 누군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 같았다. 승희는 소년이 번호를 직접 입력할 수 있도록 화면을 열어주었다. 소년이 번호를 입력하자, 연구단지 내의 연락망에서 자동으로 불러들인 이름이 떴다.
 
―이설아
 
승희의 표정이 굳었다. 소년은 울먹이며 유경과 승희를 올려다보았다.
 
*
 
미겔은 2년 전에 달온에 왔다.
 
아주 어렸을 때는 리스본에서 아빠와 단둘이 살았다. 일곱살이 되자 아빠는 갑자기 미겔을 돌볼 수 없다고 선언했고, 미겔은 한국에 와서 엄마를 만났다. 달라진 생활에 적응하기도 전이었던 일년 뒤, 엄마는 말했다. “미겔, 우리는 달온에 갈 거야. 괜찮겠니?” 설령 괜찮지 않아도 미겔은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매주 출발하는 수송선의 명단 끝에 두 사람의 이름이 있었다. 수송선에 오르는 그 순간까지도 미겔은 달온이 어떤 곳인지 잘 몰랐다. 지구에서 출발하면 몇개의 터미널을 거쳐 3주는 가야 도착할 수 있다는 것과, 다른 관광행성들과는 달리 개척이 다 되지 않아 돔 거주구역 안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 뉴스를 검색해보면 미겔이 잘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쏟아졌다. 연구단지 설립을 두고 연일 시위가 벌어졌다고 하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달온은 아주 멀고 쓸쓸한 곳일 것 같았다. 하지만 지구에서는 늘 외로웠던 기억뿐이니 오히려 아주 먼 외계위성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공평하게 외로울 테니까.
 
엄마는 지질학자였다. 달온이 돌고 있는 모행성을 연구한다고 했다. 궤도탐사와 착륙탐사를 번갈아가며 일주일씩 떠났고, 연구단지에 있을 때는 탐사 자료를 분석하느라 바빴다. 달온에는 미겔 또래의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미겔의 가장 친한 친구는 베이비시터 로봇 리리였다. 리리는 미겔의 수화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다. 가끔 엄마조차 미겔이 한 말을 알아보지 못할 때면 리리가 능숙하게 전달해주었다. 미겔은 지구에서 전송해 온 홈스쿨링 영상을 온종일 켜놓고 졸다가 밤이 되면 리리를 옆에 앉혀 놓고 영화를 보았다.
 
설아 누나를 알게 된 건 작년이었다. 엄마는 설아를 친한 동생이라고 미겔에게 소개했다. 부서도 다르고 나이차도 있지만 엄마의 탐사 장치를 정비해주다가 친해졌다고 했다. 설아는 주말 저녁마다 들러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떠났다. 옆에서 들어보니 모행성 표면에서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성분을 발견했다느니, 착륙하려고 했던 장소가 알고 보니 화산이었다느니 하는 이야기였다. 설아는 주로 듣는 역할이었다. 미겔은 엄마가 그렇게 즐거운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신이 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설아는 곧 미겔에게도 말을 걸어왔다. 리리가 옆에 있으면 설아는 목소리로, 미겔은 손으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웬 모르는 누나가 자꾸 말을 걸어오는 게 귀찮았지만, 싫지는 않았다. 설아는 리리보다 더 이야기를 재미있게 했고 아는 것이 많았다. 미겔이 또래 친구가 없어서 늘 집에만 있다고 하자 말도 안된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왜? 연구단지에 재밌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 엄마가 집에서 분석 일을 하는 동안 설아는 미겔을 연구단지의 중앙 전망대로 데려갔다. 그곳에서는 크레이터 안쪽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넓은 하늘이 보였다. 미겔은 그날 처음으로, 달온에 밤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건 단지 돔 안에 늘 인공태양을 켜놓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미겔이 취미가 리리와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이라고 하자 설아는 미겔이 좋아할 만한 영화들을 골라주었다. 미겔은 그중 특히 미친 듯이 연주를 하는 천재 베이시스트에 관한 영화가 마음에 들었다. 음은 구분할 수 없었지만 화면만으로도 진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누나는 왜 나에게 잘 대해주는 걸까? 동정심일까? 그런 생각도 물론 했다. 사람들이 미겔을 대하는 방식은 두가지였다. 아주 차갑고 잔인하게 대하거나 아니면 아주 조심스럽게 무슨 말이라도 하면 부서지는 유리알처럼 대하거나. 설아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그러니 설령 그게 다른 방식의 동정이라고 해도, 미겔은 괜찮을 것 같았다. 설아 누나와 함께 있을 때면 아빠와 함께 리스본에 살던 시절이 가끔 생각났다. 영원할 줄 알았던 행복했던 순간들.
 
일주일 전 탐사를 떠난 엄마는 모행성에 발이 묶였다. 파편 추락이 계속되었다. 미겔은 잠들지 못하고 베개를 붙잡은 채 떨었다. 어딘가에서 충돌음이 들려올 때마다, 진동으로 집이 흔들릴 때마다 공포에 휩싸였다. 이튿날부터 설아가 찾아왔다. 혼자 있는 미겔이 걱정되었다고 했다. 설아는 미겔이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 주었다.
 
어제 미겔은 연구단지 전체에 전달된 상황종료 안내를 받았다. 설아에게 마지막으로 받은 메시지는 밤 아홉시쯤에 왔다.
 
 
「미겔, 급한 일이 생겨서 좀 늦을 거야.
이제 별일 없을 테니까 마음 놓고 쉬어. 나중에 잠깐 들를게.」
 
 
이상하게도,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자정이 넘어갈 무렵에도 설아는 집에 들르지 않았다. 미겔은 첫번째 메시지를 보냈고, 두시간 뒤에는 세통의 메시지를 연속으로 보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잠을 못자는 건 괜찮았다. 하지만 설아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너무 무섭고 두려웠다.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미겔은 눈을 억지로 감고 잠을 청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았다. 설아는 언제나 미겔을 안심시켜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연락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면, 분명 좋은 소식은 아니라는 판단밖에 서지 않았다. 미겔은 리리에게 물었다.
 
―리리, 내가 어떻게 해야 해?
 
리리는 꺼져 있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엄마에게 연락할 수는 없었다. 모행성 탐사대와 연락하려면 특수전화를 써야 한다고 했다. 설아가 시설관리팀의 정비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로 가서 어떻게 그 부서에 연락을 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전화를 받는다고 해도 그들이 미겔의 말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미겔은 서랍을 뒤져 비상연락처에 적힌 시설관리팀 번호를 찾았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무어라고 음성안내가 나오는 것 같았지만, 미겔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미겔은 무작정 집에서 나와 불이 켜진 건물 중 가장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설아가 어디로 갔는지도, 누구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몰랐다. 억지로 문을 열려고 하면 경보가 작동한다는 것도 방금 처음 알았다. 큰 진동과 소리에 몸이 굳어 긴장했지만, 어떻게든 설아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해야 한다고 미겔은 생각했다.
 
*
 
유경은 시설관리팀에 연락했다. 미겔의 말대로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현장에 나가 있는 책임자에게 겨우 연락이 닿았다. 일부 직원들이 밤새 보수작업을 하고 있지만 위치를 다 아는 건 아니라고 했다. 유경은 정비사 이설아의 행방을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찾아보겠다는 답이 돌아왔을 뿐이다. 삼십분째 보고가 없었다.
 
승희는 휴게실에 데려온 미겔에게 따뜻한 코코아를 내주었다. 미겔은 한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평소였다면 몇시간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겼을 거라고 추측하는 게 과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은 고립된 연구단지이고, 지금은 재난 피해가 다 수습되지 않은 상황이다.
 
"한번 더 걸어봐."
 
승희는 설아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발신음만 가고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갑자기 화면이 전환되었다. 유경이 옆에서 말했다.
 
"세이프티모드 같은데."
 
전송된 화면이 좀 이상했다. 유경의 설명에 따르면 부재중 전화가 여러번 쌓였을 때 전화를 건 사람에게 주위 상황을 전송하는 기능인데, 화면 속의 풍경이 낯설었다. 이 시각에 눈부신 오렌지색 조명이 쏟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달온 연구단지 내부인 듯했지만 어디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검은색 격자형의 무언가가 화면을 가로질렀다. 승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화면을 뚫어져라 보았다. 어디지? 연구단지에 이런 장소가 있었던가?
 
떠오르는 장소가 하나 있었다.
 
"소장님. 혹시 여기는……"
 
승희가 고개를 돌리자, 유경은 이미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있었다.
 


김초엽
소설가.
 


3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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