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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리틀 러버(2회)

김봉곤
2018년 10월 10일

*

학영을 처음 만난 것 역시 창준을 알게 된 2009년의 일이었다.
 
그해 봄 우리는 ‘듀나게시판’에서 만들어진 소모임 ‘1.1.1’에서 만났다. 일주일에-한번-한 페이지짜리 글을 쓰는, 내용은 무엇이 되어도 상관없었지만 주어진 한시간 안에 무조건 A4 한면을 다 채워야 하는 꽤 막무가내인 모임이었다. 시네필들이 모인 커뮤니티의 특성상, 아트시네마와 중앙시네마, 단성사, 어디든 갈 수 있을 까페 뎀셀브즈 3층에서 우리는 매주 토요일 정오에 만났다. 대개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거나 소설을 쓰려는 사람들이었기에 주로 읽게 되는 글은 시놉시스나 트리트먼트 그리고 콩트 들이었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사람도 있었고 본인만 읽을 수 있을 불어 작문을 하는 사람도, 연인을 군대에 보내놓고 편지를 쓰러 온 사람도 있었다.
 
쓰는 분야가 제각각이었기에 본격적인 합평은 불가능했지만, 우리는 동그랗게 둘러앉아 말 한마디 없이 글을 쓰고, 떠날 사람은 먼저 떠나고, 그러고도 남은 사람들끼리 반시계방향으로 하나에 삼분 남짓 서로의 글을 돌려가며 읽고, 간단한 소감을 건네기도 했다. 그 짧은 순간에도 어떤 이들은 글을 기억해뒀다 “오늘은 하밀 님의 글을 읽었어요”라는 제목으로, 두 페이지는 너끈히 넘어갈 감상문을 밤시간에 올리기도 했다. 좀 질린다…고도 생각했지만 나의 글에 대한 피드백이 올라올 때면, 그것을 텍스트 파일로 저장해놓고선 두고두고 읽기도 했다. 그들의 해석에 동의할 순 없어도 누군가의 글을 정성스럽게 읽는 법을 나는 그곳에서 배웠다.
 
학영은 천성이 좀 삐딱하달까, 비웃지 않고는 못 견디는 타입이랄까, 정말로 진지한 사람이 그렇듯 여럿이 함께 진지한 것을 잘 못 참는 사람이었다. 짧은 소감의 시간, 누가 또 심각한 이야기라도 꺼낼라치면 화장실에 가버린다거나, 싫은 소리가 조금이라도 나올 기미가 보이면 재떨이를 갈고 물을 떠오며 ‘죄송하지만 맥락을 놓쳤네요’ 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깅엄 셔츠 무늬에 심오한 의미라도 있는 듯 흰 줄과 파란 줄을 번갈아 어루만졌다. 하지만 자기소개서를 피드백해주면서 라깡을 권하고 별 시답잖은 타임슬립물에 베르그송을 언급하는 사람들 속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처럼 보이는 사람도, 이곳에 모인 그 누구보다 글의 핵심을 제대로 짚어내 어렵지 않은 말로 설명해주는 사람이 학영이었다.
 
학영은 모임 후기 글은 물론 리플조차 쓰지 않았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눈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했다면 글만 쓰고 떠나면 될 것을 굳이 왜 모임이 파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지가 내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학영을 알게 된 지는 한달째였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학교 친구를 만나기 위해 자리를 옮겨 앉아 더치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사라진 줄 알았던 학영이 불쑥 나타나, 곧바로 핵심으로 치고 들어갔다.
 
“곤님은 게이죠?”
 
“네에?”
 
나는 물고 있던 빨대를 떨어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이 너무 많아도 문제였고 너무 없어도 문제였으니까. 다행히 우리에게 이목이 쏠리지는 않았지만 그 질문이 당황스럽기도 했고, 학영이 내게 개인적으로 말을 걸어왔다는 데에도 당황해 한참을 그애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는요, 이성애자 남자가 절대 퀴어물을 쓸 리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리오님은 로봇이세요?”
 
내가 받아쳤더니 리오, 그러니까 학영이 한없이 미소에 가까웠지만 확실히 웃어 보였다.
 
무례하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고작 한달 남짓 그애를 보았지만 이런 직설적임은 리오 성격의 연장선상에서 이해가 갔고, 차갑고 시니컬하기 짝이 없는 그애가 내게 미소를 지어줬다는 데 나는 그만 필요 이상으로 기뻐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리오님은 웃을 줄은 아는 로봇인 게 맞는 것 같고요, 저도 게이가 맞아요.”
 
“그래, 아닐 리가 없다니까!”
 
학영은 장학퀴즈의 주 장원에라도 결정된 듯 눈을 질끈 감으며 턱을 들어올렸다. 언제나 제이크루풍의 캐주얼 차림, 거기에 똑같은 모카신을 신고 왔던 학영. 나는 학영이 물리학과이거나 철학과 학생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훗날 이청준을 너무나 좋아하는 국문과 학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서 묘한 실망감과 동시에 너무나 답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저도 그래요. 그리고 여긴 큐브 쇼콜라가 맛있어요.”
 
이렇게나 난데없고도 헐한 커밍아웃은 난생처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학영은 손에 쥔 케이크 상자를 뜯어 큐브 쇼콜라를 내 앞에 부려놓았다. 아닌 게 아니라 학영이 건넨 케이크는 눈물이 핑 돌 만큼 달콤하고 찐득하고 맛이 있었다. 학영은 플라스틱 포크를 뜯어 자신도 한입 베어물고선 내 글이 스킬 면에서는 완전 꽝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솔한 구석이 있어 마음에 들었다고, 사실 글이라는 게 그거면 되지 않느냐고 칭찬인지 후려치기인지 모를 말을 덧붙였다. 나는 쪽글만을 보고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는 건 좀 극성스럽다고 생각했기에 사실 전 그 분야를 잘 몰라요, 하지만 언젠가 이 모임이 망하더라도(실제로 모임은 삼 개월이 지나지 않아 공중분해되었다) 시나리오를 완성하게 되면 제게 꼭 보여달라고 순간의 진심을 가득 담아 말했다. 학영은 처음에는 위장처럼 장르의 가면을 썼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 되어도 좋은 그 장르에 새삼 무한한 애정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는 작가들을 영업했는데 덧니를 보이면서 씨익 웃는 그애의 미소엔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마력이 있었다.
 
-
 
햇수로 십년째, 때로는 현기증을 느끼기도 하지만 대체로 광화문과 종로에 다다를 때면 나는 안정감을 받는다. 버스에서 뛰어내려 나무 그림자가 묻어나는 편평한 회색 타일을 밟는 순간 나는 더없이 포근한 마음이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익명의 공간이 나가 나일 수 있는 공간이 되고, 그러고도 시간이 흘러 일상의 공간이 되었을 때. 그건 집에서조차 느낄 수 없는 근사한 기분이었다.
 
나는 오늘도 여느 때처럼 학영과 광화문에서 약속을 잡았다. 내가 이문에 살 때도 수색에 살 때도 우리의 약속 장소는 광화문에서 종로2가 사이를 벗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이 이곳에 있었고, 원하는 게 생긴다 해도 웬만하면 걸어서 갈 수 있었다. 서울의 경이는 스케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광화문과 인사동이 지척이라는 것, 시청을 지나면 곧바로 롯데백화점이 나타나는 데 있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그리고 학영과 나는 정말이지 잘 걸었다.
 
찌는 듯한 여름은 지나갔지만, 밖에서 기다리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학영은 타코벨 창가 자리에 앉아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창밖 너머 내가 손을 흔들어 보이자 학영은 읽던 책을 덮고 가방을 옆쪽으로 옮겨 빈자리를 만들었다.
 
“저기, 혹시, 훈건장 리오 86님?”
 
“어머나. 섹요미 85님이시구나!”
 
“반가워요.”
 
“전 별로예요. 여기 커피 맛없어서 입맛만 배렸거든요.”
 
“그럼 바로 2차 가시죠.”
 
“화끈하세요.”
 
“너무 마음에 들어서 텔비는 제가 낼게요.”
 
“그만하세요.”
 
“어, 미안.”
 
나의 합장을 끝으로 우리는 상황극을 그만두고 피식 웃었다. 학영은 두모금은 마셨을까 싶은 커피를 셀프바에 쏟아붓고는 짭짭 소리를 내며 쓴입을 다셨다. 가게를 빠져나온 우리는 이렇다 할 계획 없이 정처 없이 걸었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걷다보면 옛이야기가 흘러나오고, 문득 책이 사고 싶어지고, 커피가 마시고 싶어지고, 배가 고프고,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겨나 정처가 되었다. 간만에 현대미술관 쪽으로 가볼까? 물었지만 학영은 일단 새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말하며 조계사 방향으로 발걸음을 틀었다. 찢어지는 매미 소리 아래, 한참을 말없이 걷던 학영이 입을 뗐다.
 
“이쪽 길로 안 걸어본 사이 저런 건물이 다 들어섰네. 짓고 있는 줄도 몰랐어.”
 
“저거 짓기 시작한 지가 언젠데.”
 
“그래? 근데 저거 다 지을 동안 나 뭐했냐?”
 
“뭐하긴. 장편 하나 쓰셨고, 살이…… 좀 찌셨고, 늙기까지 하셨잖아.”
 
“그거 아마 저 건물 짓기 전에 다 써놓은 걸걸?”
 
“울지 마. 나도 있어.”
 
방학이면 강의마저 끊어져 영락없이 백수의 모습인 나와 학영은, 그러고 보니 한여름과 한겨울에 신세한탄이 잦았다. 아득한 눈으로 빌딩을 올려다보는 학영을 지켜보다 내가 말했다.
 
“나는 박지윤만 보면 내 인생이 존나 한심하게 느껴져. 넌 그런 사람 없어?”
 
“그게 뭔데?”
 
“나 중학교 1학년 봄소풍 때 용돈 받은 걸로 박지윤 1집을 샀거든. 걘 벌써 그때부터 가수였던 거야. 그러고는 연기도 했지, 연애도 했지, 변신도 했지. 4집은 또 얼마나 명반이냐? 난 요즘에도 「환상」 들으면 막 눈물이 날 것 같아. 그리고 7집 때는 또 얼마나 달라졌는데. 난 그냥 대학원 졸업만 했는데 걘 9집 가수고 그래.”
 
“「환상」 명곡인 건 인정. 근데 박지윤 우리보다 나이 많지 않아?”
 
“그렇긴 하지. 그래도 그래. 몰라, 난 박지윤만 보고 있으면 막 내가 한심해.”
 
“난 보아.”
 
“보아랑 너가 동갑이지?”
 
“어. 이제 이사님이라고 하대? 난 쓰레긴데.”
 
“보아는 「Moto」가 짱.”
 
하고 말하고는 엉엉,이라고 말하며 소리 내어 웃었다.
 
“커피 마시지 말고 밥 먼저 먹을래?”
 
학영이 물어왔고, 서울역 고가공원에 아직 안 가봤으면 오늘은 거기로 가보자고 덧붙였다.
 
학영은 큐브 쇼콜라를 건넸을 때부터 내겐 신문물을 전해주는 사람이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나고 자라 도심에서 대학을 다니고, 또 홍보회사에도 한때 몸을 담았던 터라 어디가 핫하고, 어디가 지고, 무엇이 또 새롭게 들어오는지에 빠삭했다. 맛집에 유독 강한 것 역시 그런 연유이기도 했겠지만, 오랜 시간 한 사람과 연애를 해오면서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기도 했을 터라고 나는 짐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어느새 종각역 사거리에 나란히 섰다. 휘황하게 신식으로 지어진 빌딩 맞은편의 영풍빌딩이 이제는 좀 초라해 보였다. 물론 그래서 예전보다 훨씬 아름다워 보였지만.
 
“학영, 너 기억나? 나 예전에 영풍에서 알바할 때 너가 불러내서 BH랑 사귈지 말지 고민이라고 물어봤던 거.”
 
“그걸 어떻게 잊어.”
 
“난 그때 사실은 반대하고 싶었다?”
 
“그랬었어? 그건 또 처음 알았네. 근데 왜?”
 
“여자랑도 남자랑도 연애 한번 안해봤다는 게 좀 이상했고, 난 BH가 결국엔 결혼할 것처럼 보였어.”
 
“기혼 게이, 바이 혐오를 멈춰줄래요?” 학영이 짐짓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BH 존나 게이야. 존나 존나. 근데 왜 사귀지 말라고 말 안했어?”
 
“일단 너랑 별로 안 친하다고 생각했고, ……틀리고 싶지 않았달까? 올해로 몇 년째냐? 8년? 9년? 지금까지 만난 거 보면 진짜 내가 단단히 사람 잘못 봤었다 싶고, 그때 헛소리 안한 거 천만다행이다 싶고.”
 
“헛소리 좀 해주시지 그러셨어요. 이젠 헤어지는 것도 귀찮아서 걍 살아.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미움도 싸움도 없어.”
 
“그래서 싫어?”
 
“아니, 난 그게 정말 좋아.”
 
날 위해 불행해줄 순 없었던 거니?라며 농담을 하고도 싶었지만, 학영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고요하게 행복한 사람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자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횡단보도를 반쯤 건넜을 때였나? 학영이 내 어깨를 빠르게 두드렸다.
 
“야, 저기 봐봐.”
 
“뭐?”
 
“빠이롯드.”
 
“빠이롯드 뭐?”
 
나는 햇빛 가리개로 쓰던 부채를 이마에서 떼고 학영이 손짓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빠이롯드 만년필 간판 없어졌잖아. 안 보여?”
 
“오, 진짜다. 진짜 없어졌다!”
 
길을 건너면서도, 길을 다 건너서도 나는 간판이 떨어져나간 곳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았지만, 어설프게 흘러버린 세월에 빈티지를 느낄 구석도 없었지만, 하물며 잉크 한병 그곳에서 산 적도 없었지만, 덩그러니 비어버린 그곳을, 나는 부신 눈을 참아가며 한참 동안을 바라보았다.
 


김봉곤
소설가. 소설집 「여름, 스피드」가 있다.
 


3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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