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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온의 밤(5회)

김초엽
2018년 10월 29일
 


승희가 지구에 온 건 마지막 두 학기를 원격으로 이수할 수 없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다른 전공도 아닌 외계생물학인데 학위를 받기 위해 지구로 반드시 와야 한다니 좀 이상한 조건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것도 일종의 지구중심주의겠거니 싶었다.
 
밖에서 수강할 수 없었던 수업을 몰아 듣느라 승희는 바빴다. 룸메이트 설아도 늘 바쁜 건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생활패턴까지 잘 맞지 않아서 정작 설아를 방에서 본 적은 드물었다. 시간이 맞을 때 저녁을 함께 먹는 정도가 전부였다.
 
어쩌다 설아와 함께 나가면 길에서 마주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인사를 해왔다. 설아 특유의 친화력은 캠퍼스 곳곳에 침투한 모양이었다. 얼마 뒤에는 승희도 ‘설아 룸메이트’라는 본명 아닌 이름으로 덩달아 인사를 받게 되었다. 심지어 설아가 옆에 없을 때도 아는 체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지구에 머무는 동안 누군가와 어울릴 생각이 없었던 승희는 좀 피곤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이 재미있기도 했다.
 
알고 보니 설아는 다른 쪽으로도 유명인사였다. 학과 동기는 이름을 듣고 바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걔. 뉴스에도 자주 얼굴 비치는데.”
 
“그래?”
 
방에 쌓여 있는 상패와 트로피들을 보면서 승희는 설아가 뉴스에 자주 얼굴을 비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일까 생각했다. 원격 탐사미션을 수행하는 로봇설계 대회에서 받아온 상들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어느 탐사 프로젝트에서라도 설아를 데려가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승희는 설아에 관한 그보다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저녁을 같이 먹다가 설아가 뜬금없이 물어왔던 것이다.
 
“그 세미나 기억나?”
 
“응?”
 
“우리 거기 가다가 만났잖아. 어떤 사람들이 우주에 가는가.”
 
설아는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고작 학점 받으러 가는 세미나에 그렇게 출력물까지 꼼꼼히 준비해갈 거라고 생각했겠어. 딱 봐도 시술까지 받았는데, 굳이 그런 주제를 들으러 간다니 관심 있을 줄 알았지. 사실 잘 얘기해서 우리 모임에 끌어들이려고 했는데.”
 
“우리 모임?”
 
“연결주의자들. 가끔 광장에 피켓 들고 서 있는데, 아직 못 봤어?”
 
그렇게 초면에 들떠 말을 걸어온 이유가 따로 있었을 줄이야. 이제야 비밀 하나가 풀린 듯했다.
 
승희는 짐짓 슬픈 얼굴을 하며 말했다.
 
“포교활동이었단 말이지.”
 
설아가 그 말에 깔깔 웃더니 얼른 덧붙였다.
 
“하노브에 가보고 싶다는 건 진심이야. 거짓말은 안했어. 꼭 그런 이유만으로 도와준 것도 아니고.”
 
“그래, 믿을게.”
 
승희는 픽 웃고 말았다. 듣고 보니 강사가 열변을 토하던 내용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확실히 그런 주제였다.
 
어떤 사람들이 우주에 가는가.
 
우주에 간다는 말은 다른 두 의미로 쓰인다. 일시적 여행, 또는 영구적 정착. 승희에게는 여행의 개념이 먼저 연상되곤 했지만, 사실 대부분의 이들에게는 후자의 의미가 더 익숙했다.
 
성간이동은 인체에 큰 부담을 주는 과정이다. 터미널을 통과할 때 발생하는 고에너지 우주방사선과 2차 입자들은 세포와 조직에 악영향을 미치고 DNA 손상을 유발한다. 처음 두세번까지는 보호흡수제의 도움으로 큰 문제없이 통과할 수 있지만, 이후로는 기하급수적으로 손상이 누적되어 생명이 위험해진다. 거듭된 희생 끝에 연구자들은 유전자 개조를 통해 치명적 손상을 피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이후 잦은 성간이동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여행자’ 시술을 하게 되었다.
 
승희는 태어날 때부터 여행자였다. 승희의 부모님은 우주의학자였고 끊임없이 거주지를 옮겨다니며 그 지역의 의료 기틀을 잡는 일을 했다. 그들처럼 여러 행성을 다니는 부부에게는 제한된 목적으로 인간 배아 디자인이 허용되었다. 승희는 이미 부모님을 따라 몇번이고 성간이동을 거쳤고, 앞으로도 수백번도 더 성간 수송선에 오를 수 있었다. 사실 그건 승희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었는데도 삶은 처음부터 그렇게 예정지어진 것 같았다.
 
“여행자가 웬일로 지구 대학에 와서 강의를 듣고 있나 했지. 보통은 밖에서 돌아다니느라 바쁘잖아? 굳이 학위 안 따도 불러주는 곳은 많고.”
 
“그렇게 살기 싫었어.”
 
승희가 무신경하게 대답했다. 설아가 말했다.
 
“그래? 난 네가 부러운데.”
 
위험한데다 비용까지 만만치 않은 여행자 시술을 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사람들은 생애 한두번 정도 태양계 여행을 떠나 가니메데와 이오의 기이한 표면을 감상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수송선에 올라 다른 행성계까지 가는 이들은 대부분 편도 티켓을 샀다. 정착이 목적이었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찾아 지구를 영원히 떠나는 사람들.
 
정작 수많은 우주거주지를 다녀본 승희는 저 밖에 더 나은 삶이 있다는 말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지구에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사람들만이 떠나기를 결심한다. 그곳에 더 나은 삶이 존재할까.
 
“너도 나가면 알게 될걸. 우주는 낭만적이지 않아. 끔찍해. 그런 곳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슬플 정도야.”
 
“그건 안 나가봐도 알지.”
 
승희와 설아는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어쨌든 둘은 한가지 의견만은 일치하는 셈이었다. 연결주의자들의 주장도 바로 그런 인식에 기반하고 있었다. 우주는 밀려난 사람들의 공간이라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지구를 같은 대기를 공유하는 하나의 행성 공동체로 묶었다. 그 과정에서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적어도 공동체라고 부를 만한 수준에는 도달했다. 하지만 성간이동 기술이 아무리 발전을 거듭해도 우주에 흩어진 수많은 세계를 하나로 묶지는 못할 것이다. 그 사이에는 도저히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있었다.
 
개척지들은 갖가지 이유로 생겨나고 또 버려졌다. 사람들은 터미널 너머의 존재들을 완벽하게 자신들과 분리할 수 있었다. 행정 착오로 반년 동안 식량공급이 되지 않아 거주민들이 극도의 영양실조에 시달렸던 뮤른 행성의 사태는 일종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관리 당국은 참혹한 상황이 담긴 영상 자료가 지구로 전송되는 것을 막았지만, 그 자료를 운동가들이 겨우 훔쳐내 뮤른의 인권침해 실태를 폭로했다.
 
연결주의자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연결주의는 모든 우주개척지들에 대한 인류 공동의 책임을 강조하는 운동으로, 그들의 주장에는 우주로의 확장을 멈추고 추가 개발을 중단할 것이 포함되었다. 급진적인 운동가들은 개척 행성으로 출발하는 우주선 조립 스테이션에 테러를 감행했다. 그 이후로 대부분의 우주선은 지구 위에 떠 있는 공장이나 달로 옮겨가 조립되었다.
 
“그런데 설아 너는 우주에 가고 싶어하잖아.”
 
그게 설아의 가장 모순된 부분이었다.
 
연결주의자들의 보편적 의견과 설아의 주장에는 차이가 있었다. 운동가들 사이에서는 희생되는 이들을 줄이기 위해 추가적인 탐사를 아예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우주는 무한해 보일 만큼 넓고 탐사를 계속하는 한 거주가능한 행성과 자원 가치가 있는 행성은 끊임없이 발견된다. 누군가는 그곳을 원할 것이고, 또다른 누군가는 그 개척지를 채울 것이다.
 
하지만 설아는 우주탐사만은 강하게 옹호했다. 승희가 생각하기에, 설아는 사람들의 문제를 걱정한다기보다는 천체들 자체를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 말은, 조심스러운 방문객이 되자는 거야. 수천개의 행성을 지구처럼 만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분명 저기서 찾아낼 건 많이 남아 있지만 지금 같은 방식은 아니라는 거지.”
 
“개발은 안 되지만 탐사는 하자고 하면 누가 우주로 나가려고 할까. 너무 비현실적인데.”
 
“안 될 건 뭐가 있어? 이미 만들어놓은 개척지들을 책임지려고만 해도 앞으로 이백년은 더 우주선을 조립해야 할걸.”
 
승희는 이어지는 설아의 말을 가만히 들었다.
 
“나는 알려진 세계 너머를 알고 싶어. 지적 외계문명이 없을 거라는 항공우주국의 선언은 너무 성급했어. 발견된 천체들과 그 생태계를 공부하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니까. 개발 명목으로 오염시켜버린 수많은 거주지 중에도 우리랑 말이 통하는 녀석들이 있었을 거라고. 테라포밍에 눈이 멀어서 들여다볼 생각이 없는 거야.”
 
승희가 말했다.
 
“하지만 네 말대로 탐사 목적으로만 우주 진출을 허용한다면, 수천개의 다른 행성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극소수에 불과하지 않을까. 지금은 적어도 누구에게나 우주가 열려 있긴 하잖아.”
 
설아는 얼른 반론을 꺼내들었다.
 
“누구에게나라니, 여행자가 할 말은 아니지. 게다가 그건 모든 과학자들이 해명할 문제야. 잘 생각해봐. 바론 박테리아의 삼중나선 구조 분석이 네 프로젝트잖아. 그런데 인간과 유전 코드도 다르고 말도 못하는 미생물을 분석하는 게 우리 스스로를 아는 데에 정말 도움이 돼? 그 의미를 이해하고 감탄할 사람이 세계에 몇 명은 될까.”
 
“그러게. 삼중나선 미생물 같은 걸 왜 연구하는지 모르겠다.”
 
승희는 체념해서 말했다. 설아는 키득대더니 말을 이어갔다.
 
“지식의 최전선이라는게 다 그렇게 쓸모없어 보이잖아. 입자물리학은 어떻고, 만물의 방정식은 또 어때. 수백년을 넘게 찾았어도 아직 물리학자들은 근원적 진실을 알아내지 못했는데, 여전히 달에 있는 가속기는 점점 규모만 불리고 있어.”
 
“하지만 그건 우주에 가는 것과는….”
 
“아냐, 똑같아. 무쓸모해 보이지만 무의미한 건 아니지.”
 
설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누군가가 우주의 끝에서 아무도 보지 못한 풍경을 보고 온다면 그건 모든 사람의 성취인 거야.”
 
설아의 말은 우주개발에 관한 오래된 낭만적 견해 같기도 했다. ‘이것은 한 인간의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이백년 전쯤이라면 그럭저럭 통할 얘기다.
 
하지만 지금도 그럴까. 승희는 회의적이었다.
 
설아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알게 된 건 조금 더 나중의 일이었다. 교내 동문회보에 설아의 인터뷰가 ‘로봇 디자인 3관왕’ 같은 수식어와 함께 실려 있었던 것이다. 왜 하필 기계공학을 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설아는 답하고 있었다. “우주에 가려면 그게 최선이었거든요.”
 
이어지는 내용은 인터뷰어가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해 과장한 듯한 설아의 어린시절이었다. 설아는 우주와는 아무 상관도 없어보이는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그곳은 변화가 없었고, 보수적이었고, 모든 것이 지난 세기의 일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십대 시절 설아는 여러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더 좋은 교육기관에 보내보라는 교사의 설득에도 가족들은 불평만 했을 뿐이었다. 몸이 약한 언니를 돌봐야 한다는 잔소리도 따라 붙었다. 그러나 설아는 우연히 읽은 책 한 권으로 우주에 매료되었고 스스로 그 작은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무슨 영웅신화의 도입부 같았다. 아마 설아가 의도한 건 전혀 아니겠지만. 승희는 웃으면서 기사를 마저 읽었다. 끝까지 읽고 보니, 설아를 내세운 로봇 설계대회 홍보 기사였다.
 
새벽까지 이어진 미생물 배양 실험을 마무리하고 방에 들어오자 웬일로 아직 잠들지 않은 설아가 침대에 앉아 있었다. 승희가 패드를 내보였다.
 
“잘 봤어. 자서전 써도 되겠던데?”
 
화면을 확인한 설아는 괴로운 듯한 얼굴을 했다.
 
“십년치 놀림감이야. 난 안 볼래. 그냥 홍보만 할 거라더니.”
 
“인터뷰가 다 그렇지. 멋있게 나왔어.”
 
설아는 한숨을 푹 내쉬며 헤드보드에 등을 기댔다. 위로가 되긴 했는지 표정이 풀려 있었다. 승희가 장난스레 물었다.
 
”그나저나 대체 무슨 책을 읽은건데?”
 
“책?”
 
“네 운명을 바꿨다는 책.”
 
“아. 그거.”
 
설아는 짧게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별 내용 아니야. 그냥 우주탐사대 이야기. 그런데 거기서 하노브가 언급되거든. 탐사대가 처음으로 착륙 조사를 했던 곳이었대. 그러면서 열 페이지에 걸쳐 행성의 노을에 관한 묘사가 이어져. 탐사대는 하노브의 독특한 하늘빛이 대기에 서식하는 부유 미생물들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이런저런 가설도 제시하는데, 요점은…… 그냥 그 놀라운 광경을 잊지 못했다는 거였지.”
 
그래서 처음 봤을 때 하노브 얘기를 그렇게 했구나. 승희는 어깨를 으쓱했다.
 
“진짜 노을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행성인데.”
 
설아는 웃었다.
 
“알아. 그래도 그걸 처음 읽었을 때, 마음에 작은 돌이 던져진 것 같았어. 파문이 일었지. 그 사람들은 오랫동안 내 영웅이었어. 이제와서는 굳이 하노브가 아니어도, 뭐 상관없지만.”
 
“하노브가 워낙 외진 곳에 있긴 해. 조사도 거의 끝났으니.”
 
“어차피 그 모든 장소에 다 갈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우리는 많든 적든 서로의 경험에 빚지는 거고.”
 
승희는 물었다.
 
“그럼 언젠가 하노브에 직접 가보지 않아도 괜찮아?”
 
“물론 그렇게 되면 슬프겠지.”
 
설아는 침대에 길게 늘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 노을이 거기에 있다는 걸 알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어.”
 
잠들기 전 승희는 그날의 대화를 머릿속에서 반복해보았다. 승희는 여전히, 그 노을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일부에 불과하고 그래서 경계가 확장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쓸쓸해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설아의 ‘연결된 경험 이론’을 믿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만약 그게 정말로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 넓혀가는 경계가, 반대편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에게도 파문이 될 수 있다면.
 


김초엽
소설가.
 


6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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